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유시춘의 다른 상품
|
1982년 8월 11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 16명에 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예상대로 중형이었다. 김현장, 문부식은 사형, 김은숙, 이미옥은 무기징역, 기타 관련자들은 징역 3년에서 15년까지 선고를 받았다. 최기식 신부에게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중형을 선고해도 반미운동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학생들을 비롯해 운동권에서는 지속적으로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문제 삼았다. 특히 각 지역의 미문화원은 운동의 주요 타격 대상이었다. 1983년 9월 22일에는 대구 미문화원 정문 앞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이 사건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으나 운동권 내부의 행위는 아닌 듯 하다.) 그리고 마침내 1985년 5월 23일에는 대학생 73명이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고, 1986년 4월 28일에는 서울대생 이재호·김세진이 “반전반핵 양키 고홈”을 외치며 분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 p.308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