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사 . 4
프롤로그 _ “보자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아시나요?” . 8 PART 1 빚더미에서 어느 날 갑자기 보자기 공방의 사장이 되다 단돈 35,000원으로 시작한 보자기 창업 . 15 5평짜리 사무실에서 첫 창업을 시작하다 . 20 하루 하나의 글, 미래의 고객을 부르다 . 25 자격증 없이 시작한 ‘이단아’의 용기 . 29 맨땅에서도 성과를 내는 온라인 마케팅의 힘 . 35 투자 금액보다 중요한 건 ‘의지’다 . 43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하는 ‘직관적인 이름’ . 47 PART 2 보자기 한 장도 배달해 드립니다 찾아가는 장사, 보자기 방문 판매의 시작 . 55 이윤이 아닌 ‘사람’을 모으는 사업 . 59 이윤 계산, 그런 거 몰라도 됩니다 . 63 보자기를 사면 홍보는 덤입니다 . 67 사람을 좋아했을 뿐인데, 평택의 골목이 달라졌다 . 72 거래처와 오래가는 비결, 서로의 VIP 고객 되기 . 79 제안서 없이 기관, 기업에 출강하는 법 . 83 PART 3 ‘데일리보자기’ 사업의 성공 노하우 좁은 공방에서 시작된 꿈, 넓은 공간에서 현실이 되다 . 89 간절함이 만든 기회, 공중파 출연의 순간 . 92 영업의 달인이 되는 인스타그램 활용 비결 . 97 ‘처음’이 ‘최고’를 이기는 순간 . 107 일 년 열두 달 중 석 달만 바빠요 . 112 시급 12,000원 vs 시급 200,000원 . 116 저는 팔릴 만한 제품만 만듭니다 . 119 작은 공방이 대량생산 공장을 이기는 법 . 126 PART 4 장사꾼과 사업가 사이, 그 어딘가 BMW/GUESS와의 협업 비결 . 139 장인이 될 것인가, 돈을 벌 것인가 . 143 무인 공방의 시작, 문 닫힌 날의 대안 . 148 혼자가 아닌, 함께해야 브랜드가 된다 . 152 수많은 실패는 돈 주고도 못 사는 노하우가 된다 . 156 경쟁자가 있어야 시장도 성장한다 . 164 장사를 열심히 했더니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 169 PART 5 ‘데일리보자기’, 전국 지점의 꿈을 이루다 혼자보다 함께, 공동구매에서 시작된 프랜차이즈의 꿈 . 179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 . 184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보자기 CEO . 188 보자기를 통해 실현하는 ESG 가치 . 194 LA에서 평택까지 ‘데일리보자기’를 찾아 오다 . 201 ‘데일리보자기’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 . 206 보자기 계의 ‘이삭토스트’가 되기로 하다 . 217 에필로그 _ 이제, 당신의 보자기를 펼칠 시간입니다 . 224 |
|
스물세 살에 보험 영업을 시작하며 제법 큰 돈을 벌었다. 돈의 맛을 보니 세상이 만만해 보였지만, 그 교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단계의 덫에 걸려 결국 스물다섯 살에 ‘개인회생’이라는 낙인을 짊어지게 됐다. 모아둔 돈 하나 없이 스물아홉 살에 빚만 안고 결혼했고, 출산 후 통장 잔고보다 빠르게 불어나는 대출이자에 숨이 턱턱 막혔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 무엇도 내게 남은 게 없었다. 매일 육아에만 매달리며 ‘나는 이제 끝이구나’ 싶은 순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보자기 포장 수업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남편과 함께 평택에서 이천까지 보자기 수업을 들으러 갔다. 출산 이후 처음으로 집을 벗어난 외출이었다. 늘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며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자책하던 그 시기, 결혼 준비로 가입했던 커뮤니티에서 ‘화장품 예단을 보자기로 포장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 p.15~16 보자기 포장을 해 보니 재미가 붙었다. 하루하루가 생기로웠다. 이동수단도 없었고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아, 아이를 업고 아모레 사무실로 출근했다. 연고 하나 없는 평택에서, 단 20만 원으로 본격적인 창업에 도전했다. 아모레 카운슬러 일은 재고 없이도 시작할 수 있었기에 유일한 희망이었다. 제품을 팔면 30%의 수익이 남았다. 다만 기존 카운슬러들의 이미지는 대부분 50대 이상이었기에, ‘젊은 카운슬러’로서 나만의 브랜드를 새롭게 구축해야 했다. 비상금 15만 원으로 ‘미쁘다예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로고를 제작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마치 실제 매장처럼 정성껏 꾸몄다.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느껴 온라인 강의를 찾아봤고, 3개월 과정 99,000원짜리 강의를 카드 할부로 결제했다. --- p.18 마음먹는 순간, 움직임은 빨랐다. 평소에도 혼자 결정하고 추진하는 편이라 행동은 거침없었다. 며칠간 발품을 팔아 마침내 보증금 300만 원, 월세 20만 원짜리의 5평 남짓한 작은 상가를 찾았다. 계약을 마음먹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는데, 의외로 “같이 가 보자.”라며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마음에 들면 바로 계약하려고 부족한 보증금은 동생에게 미리 빌렸다. 그날 밤은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실제로 상가를 눈앞에서 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사무실이었지만, 그곳은 내게 ‘처음으로 얻는 나만의 일터’였다. 꾸미는 데 돈을 쓸 여유는 없던 터라, ‘간판 없이 시작하자’라고 마음먹었다. 최소한의 인테리어 비용으로 200만 원 안에서 작업을 마치고, 드디어 첫 공방 ‘미쁘다공방’의 문을 열었다. --- p.21 공방을 오픈하고 나니, 집에서 아모레 카운슬러로 일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당시에는 ‘설화수’라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아모레퍼시픽’이라는 회사 시스템 덕분에 마케팅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님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 끝나야 했다. 명함 하나, 사진 한 장, 글 한 줄까지 모두 내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보자기를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기로 결심한 뒤, 오랫동안 사용해 온 ‘미쁘다예단’이라는 이름도 과감히 내려놓고 새롭게 ‘데일리보자기’라는 브랜드를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인스타그램 하나만 겨우 운영하던 내가 블로그와 유튜브까지 운영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 p.25 단돈 35,000원을 내고 배운 원데이 클래스, 이 강의 하나만 믿고 보자기 공방을 열기로 결심했다. 당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원데이 클래스의 진행, 보자기 판매, 그리고 포장 서비스가 전부였다. 상호를 ‘데일리보자기’로 바꾼 뒤에야 전국의 보자기 공방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화려한 보자기들과 대기업과의 협업, 전시회 개최, 수강생들과 함께하는 일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들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서울도 아닌 평택, 5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나의 일상이 시작됐다. 창업을 시작했던 5년 전만 해도 ‘보자기 공방’이라는 개념은 생소했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자기는 명절 선물 포장이나 예단을 싸는 황금 보자기 정도로만 인식돼 있었다. 보자기 공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드물었으며, 업계는 평균 연령 50대 중년층 중심의 협회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알아보니 민간 자격이었고 취득에는 약 50만 원이 들었다. 이제 막 공방을 연 입장에서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 공방들과 차별화된 ‘데일리보자기’만의 감성과 스타일로 꾸려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p.29~30 공방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걸려온 첫 전화. “함 포장도 하세요?”라는 질문에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함 포장은 예단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망설일 겨를도 없이 “네, 가능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3시간 후에 방문하겠다.”라는 고객의 말에 대책 없이 “이따가 뵙겠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네이버 검색을 시작했다. ‘함이란?’, ‘함 포장 방법’, ‘전통 함의 의미’ 등 키워드를 입력해 가며 정보를 찾았다. 메모하며 ‘함’의 전통적 의미를 이해하려 애썼는데, 이보다 더 급한 것은 실제 포장법이었다. 요즘은 캐리어나 고급 상자에 예물을 담아 포장한다고 했지만, 내가 찾고자 한 전통 방식의 정보는 많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은 전통공예를 하는 한복 사장님이었다. 전화를 걸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함의 역사부터 현대의 변화까지 30분 넘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특히 인상 깊었던 말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담느냐가 중요하다.”였다. 전통 함은 구하기 어렵고 다루기도 까다로우니 캐리어를 활용하되 정성을 다하라는 조언도 주셨다. 보자기 선택과 매듭 방식, 세세한 팁들까지도 함께 알려주셨다. 전통을 고수하기보다 현대적 감각을 더해 신랑, 신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었다. --- p.32~33 콘텐츠 제작의 시작은 자기소개부터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추구하는 가치, 앞으로의 목표 등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서툴지만 꾸준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영상 편집 없이 날것 그대로의 영상을 올리더라도, 매일 한 편씩 꾸준히 업로드하면 그것이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 공예 재료를 고르는 과정, 작업하는 모습, 완성품을 포장하는 순간까지, 일상의 모든 순간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매일 같은 하늘을 찍어 올리더라도, 그 꾸준함이 쌓이면 독특한 콘텐츠로 탄생했다.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다른 사람의 화려한 콘텐츠와 자신을 비교하며 위축되는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시작점은 다르고, 성장 속도도 다르다. 완벽한 출발보다는 꾸준한 실천이 더 중요하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공방과 같은 수공예 분야는 작업 과정 자체가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재료를 고르는 안목, 정성스러운 제작 과정, 완성품의 탄생 순간까지 모든 것이 스토리가 되었고, 이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 p.36~37 유튜브에서 본 보자기 가방 매듭법을 따라 해 보니, 의외로 간단하고 실용적이었다. 예쁜 원단으로 만든 보자기 가방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무 귀엽다.”, “수업을 받고 싶다.”라는 댓글이 이어졌는데, 전통 포장 수업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전통을 선호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누구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이 더 강력한 반응을 얻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초기에는 예쁘다고 생각한 원단 세 가지로 샘플을 제작했지만, 수업 요청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원단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수강생이 말했다. “사장님, 이 가방 너무 유니크하고 예쁜데, 판매도 해 보세요.” 수업이 아닌 판매? 망설였지만, 그 수강생은 예쁘다며 가방 세 개를 선물용으로 구매해 주었다. 그렇게 보자기 가방 판매가 시작되었다. --- p.40 창업 지원금 지원이나 정부 혜택을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조급한 성격 탓에 사업계획서를 쓸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다. ‘차라리 그 시간에 뭐라도 하나 더 파는 게 낫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본금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맨손으로 일궈 낸 ‘데일리보자기’는 이제 내 손끝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가 되었다. 사업은 자본금보다 버티는 힘으로 지탱한다. 요즘은 2년만 버텨도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로,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는 가게들이 허다하다. 수강생 중에도 ‘돈이 없어서’, ‘기계가 없어서’, ‘매장이 없어서’라며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작업할 공간이 없는 수강생들에게 “공방도 언제든지 빌려줄 테니, 수업도 해 보고 판매도 해 보라.”고 말해도,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도조차 하지 않고 끝나버리곤 한다. 지금 나의 공방은 여러 대의 기계도 갖추었고 넓은 공간도 있지만, 그 시작은 오직 ‘의지’ 하나뿐이었다. --- p.44 보자기는 명절이나 예단 포장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다’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나는 ‘데일리보자기’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듣는 순간,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 이것이 마케팅의 핵심이었다. 그 무렵 블로그를 배우며 ‘검색어 키워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고객들은 공방 이름을 검색하지 않았다. 대신 ‘평택 보자기’, ‘보자기 파는 곳’ 같은 본인들이 필요한 키워드 중심으로 검색해 들어왔다. 그래서 브랜드명에 반드시 ‘보자기’가 들어가야 했다. 당시 보자기 공방의 상호는 대부분 전통적인 한글이나 순우리말 기반이었기에, 차별화를 위해 영어를 넣고자 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기에 글로벌 감성까지 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데일리보자기’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성과 철학을 담은 결과였다. 지금까지도 이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 p.48 ‘데일리보자기’에서는 기존의 보자기 공방들과는 달리 일반인이 아닌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 즉 ‘사장님 맞춤 보자기 컨설팅’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콘텐츠는 평택을 넘어 먼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반응이 좋았다. 명절 시즌처럼 바쁠 때는 보자기가 동나서 판매하지 못 하는 일도 생겼다. 거래처에 문의하니, 같은 색상과 크기로 1,000장을 한 번에 구매하면 장당 200원가량 더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기존에는 한 장당 200원 정도의 이윤을 붙여 팔았는데, 이 조건이라면 이윤이 400원으로 늘어나는 셈이었다. 망설임 없이 1,000장을 주문했다. 공방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처음 해 보는 대량 발주였다. 거래처 사장님도 대량 주문에 놀라 “도대체 어떻게 영업을 하시는 거예요?”라며 물었다. 1,000장을 주문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100장씩 사 줄 사장님 10명만 찾으면 되잖아.’ 늘 그랬듯이 단순하게 직진하는 방식이었다. --- p.59~60 지금까지 수많은 사장님을 만났다. 거래처로 인연을 맺은 분 중 많은 이가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반면,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고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진 분들은 보자기 주문량이 두 배 이상 늘며 자리를 잡았다. 그 차이는 결국 ‘장사를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내 방식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윤을 1,000원, 2,000원까지 세세히 따지며 정 없는 장사꾼이 되지 않겠다는 원칙은 분명했다. 사람 냄새 나는 장사. 이 정도는 해 줘도 되겠다는 선에서 진심을 담으면, 그 진심은 언젠가 돌아온다. 샘플비를 받지 않고 보내드린 고객이 3년째 단골이 되어 대량 주문까지 해 주신 적도 있다. 이름도 처음 듣는 대기업에서 대량 주문 문의가 왔을 때, 손에 땀이 날 만큼 떨렸지만, 여느 고객과 다름없이 실물부터 보여드렸다. 실물을 직접 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택배비나 샘플비도 따로 받지 않는다. 분명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호의가 기회를 낳고, 인연을 만든다. --- p.64 인생은 끊임없는 영업의 연속이다. 취업 면접에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도, 의사가 병원을 개원해 환자를 맞이하는 것도,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일도 결국은 영업이다. 하지만 ‘영업’이라는 단어는 보험, 정수기, 화장품과 같은 키워드와 함께 등장할 때 불편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칼이라는 물건이 주방에서 어머니가 쓰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조리도구가 되고, 강도가 들면 흉기가 되듯, 영업 또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성공적인 영업은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이것을 어떻게 팔까’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먼저 떠올리는 순간, 전혀 다른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고객을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 p.75 인지도가 부족했던 오픈 초반에는 문화센터조차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출강이 어려웠지만, 공방 운영 기간을 사업자 등록일로 인정받으며 점차 기회가 늘어났다. 특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비용의 보자기 가방 수업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 19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비대면 수업 요청을 받았다. 나는 보자기 포장법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고, 개별 포장된 키트로 재료를 제작해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이 아이디어는 큰 호응을 얻었고, ‘키트 판매’라는 새로운 사업으로까지 연결되었다. 다른 공방들이 기관이나 기업에 출강하려면 제안서를 보내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나는 주어진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 기회를 만들어 나갔다. 교육 강사로 일했던 과거의 경험 덕분에 많은 사람 앞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꼼꼼히 기록을 남긴 덕분에 중·고등학교는 물론, 학부모 연수, 교직원 연수, 도서관, 아모레퍼시픽같은 공공기관과 기업까지 출강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 p.84 마케팅의 방법은 변했지만, 내가 5년 전부터 꾸준히 사용한 인스타그램 영업 전략은 여전히 효과적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필요한 제품을 파는 인스타그램의 소규모 업체를 먼저 팔로우해서 구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참기름이 필요하면 유명 브랜드가 아닌, 나와 같은 1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작고 열정적인 계정을 선택한다. 오히려 나보다 팔로워가 적은 계정을 선택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수는 그 자체로 강력한 홍보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매한 제품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면, 해당 업체의 사장님은 반드시 확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내 계정에 관심을 두게 된다. 특히 내가 구매한 제품을 예쁘게 보자기로 포장해 선물한 사진을 함께 올리면 더욱 눈길을 끈다. 이후 자연스럽게 보자기 샘플을 무료로 보내겠다고 제안하면 대부분의 사장님이 기꺼이 받아들인다. 물론 샘플만 받고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샘플 제작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활용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은 없다. --- p.98 DM으로 적극적으로 다가가면서 주변을 관찰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차로 이동하거나 공방 주변을 산책할 때, 온라인 검색을 할 때도 새로운 매장을 발견하면 항상 관심을 기울인다. 예쁜 로고의 디저트 가게를 보면 제품을 구매하고 명함을 교환하며, 보자기 샘플을 만들어 다시 방문하는 방식으로 오프라인 영업을 펼쳤다. 이렇게 평택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자리를 잡은 뒤에는 온라인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보자기가 필요한 업종은 떡집, 과일 가게, 화과자 전문점, 마카롱 가게, 주얼리숍 등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양말까지도 보자기로 포장할 만큼 보자기의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나는 이미 보자기를 사용하고 있거나, 오픈했지만 아직 포장 패키지가 없는 매장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이런 전략으로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했고, 매출 역시 점점 늘어났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한 떡집 사장님께 DM으로 협업을 제안했다. --- p.99 ‘보자기로 돈을 벌어야겠다’라고 결심했을 때, 나는 공예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손재주도, 자격증도 없었고, 오직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라는 절박함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공예를 돈이 되도록 재구성하는 법’부터 고민했던 이유다.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아이템은 ‘단디백’이었다. 일반적인 보자기 공방에서는 보자기를 가방처럼 묶는 방법을 수업으로만 다루곤 했다. 하지만 매듭을 느슨하게 묶어야 해서 실용성보다는 ‘이렇게도 쓸 수 있다’라는 시연용 소품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겠다고 결심했다. --- p.107 ‘데일리보자기’ 창업 2년 차, 첫 번째 큰 고비가 찾아왔다.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설과 추석, 그리고 5월 가정의 달, 딱 석 달만 정신없이 바빴다. 어떤 달에는 월 매출이 500만 원을 넘기도 했지만, 나머지 아홉 달은 100만~200만 원을 겨우 넘겼다. 들쑥날쑥한 매출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공방을 확장했고, ‘거래처 납품만 꾸준히 하면 언젠가 자리를 잡겠지’ 하는 안이한 믿음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1~2년 사이, 매장을 접는 사장님들이 속출하면서 거래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설 대목을 대비해 넉넉히 준비한 재고는 팔리지 않았고, 석 달에 집중됐던 특수 시즌마저 예전 같지 않았다. ‘2년이면 대출을 다 갚고도 남겠지’라는 계산은 허상이었다. 2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고, 수입은 그대로인데 원금 상환 시점은 성큼 다가왔다. 수익은 고스란히 대출금과 카드값을 막는 데 쓰였고,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 p.112 추운 겨울밤, 주차된 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휴대전화 화면에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선명히 떠 있었지만, 손가락이 차마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세 가지 일을 뛰며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에게 또다시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일모레 결제될 카드값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을 쳤다. 공방을 연 지 3년, 그동안 크고 작은 위기에도 꺾이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으로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자금난은 깊고 냉혹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받았던 소상공인 대출의 상환이 시작되면서 숨통이 조여왔다. 월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정비는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 p.116 1년 뒤, 코로나 팬데믹이 잦아들자 한국 전통 아이템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MZ 세대는 한복 차림에 ‘단디백’을 매치하며 ‘힙한’ 전통 패션을 즐겼고, 외국인들은 ‘단디백’을 기념품으로 사 갔다. 종로 쌈지길 ‘소담상회’에서 첫선을 보이자마자 완판을 기록했고, 여수의 전통 소품 숍에서도 입점 판매 요청을 받아 납품했으며,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에도 위탁 판매를 진행했다. LA에 있는 한국 전통 소품 숍에서는 40개의 대량 주문이 들어와, 첫 수출까지 성사되었다. 결국 한 고객의 요청이 ‘데일리보자기’보다 ‘단디백’을 먼저 유명 브랜드로 밀어 올린 셈이었다. --- p.120 예를 들어, 보자기에 인쇄를 넣는 작업은 공장도 할 수 있다. 단, 최소 주문 수량이 대개 1,000장을 넘어야 한다. 여기서 작은 공방의 기회가 열린다. 100장 이하 소량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강력한 경쟁력이다. 사례는 분명하다. 한 연예인 팬클럽이 생일 기념으로 50장의 특별 보자기를 주문했다. 대형 업체라면 거절했을 물량이지만, 작은 공방은 흔쾌히 응했다. 팬들의 세세한 요구까지 반영된 보자기는 높은 만족도를 끌어냈다, 산악회 기념 손수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또한 소상공인에게는 대량 주문 방식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미리 저렴한 금액으로 소량 샘플을 제작하고 반응이 좋으면 추가 주문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처럼 대량생산 라인에서는 불가능한 정성이, 작은 공방에서는 가능했다. 그렇게 시작된 소규모 주문은 입소문을 타고, 비슷한 니즈를 가진 단체의 의뢰로 이어졌다. --- p.127 변화는 곧 성과로 이어졌다. 기존 보자기를 ‘손수건 굿즈’로 재해석해 출시하자, 이전보다 두 배 높은 가격에도 반응이 뜨거웠다. 같은 제품이라도 시대의 언어를 입히면 전혀 다른 가치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포장재’라는 틀을 벗어나 이렇게 선언했다. “단 한 장의 그림이라도, 손수건에 정성껏 인쇄해 드립니다. ”그 결과, 그림책 작가의 일러스트를 담은 전시회 굿즈, 아이 이름을 수놓은 어린이집 휴대용 고리 손수건, 독창적인 캐릭터가 그려진 디자인 손수건 등 다양한 주문이 이어졌다. 2030 세대를 겨냥한 친환경 전략은 탁월했다. 업사이클링 보자기나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선물용 천 포장재는 높은 가격에도 꾸준히 팔려 나갔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에게는 가격보다 가치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공방 운영의 본질은 틈새를 포착하는 안목에 있다.사회의 변화를 읽고,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며, 매일의 상담 기록과 시장 조사, 트렌드 분석을 성실히 쌓아야 한다. --- p.130 “보자기 가방 키트 200개를 구매할 수 있을까요?” 국가기관 담당자가 보낸 메일을 읽는 순간, 심장이 요동쳤다. 카드값을 간신히 감당하던 작은 공방에 찾아온 인생 최대의 주문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지만, 놓칠 수는 없었다. 블로그 덕분에 대량 주문 문의는 간혹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견적만 받은 뒤 연락을 끊기 일쑤였다. 중국산 대량생산 제품과는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매번 성실히 견적서를 작성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가격 흥정 대신 구성품 변경 요청이 들어왔고, 실시간으로 샘플을 주고받으며 담당자의 요구를 하나하나 파악했다. 끈질긴 소통 끝에 500만 원 규모의 계약이 성사됐다. --- p.140 공방 운영 3년을 넘기자, 일이 한가해지는 시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시기를 미리 준비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일찍 퇴근해 아이와 놀고, 주말에는 함께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며 가족에게 짜증을 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일이 없는 날은 재고를 채우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같은 업종의 지인들과 만나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새 다시 바쁜 시기가 찾아왔다. 공방에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시기와 타이밍’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가한 시기에는 나의 멘탈을 돌보는 데 집중했고, 바쁜 시기에는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몸의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라는 말에 스스로 몰아붙였다. 평소처럼 10시 전에 취침하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패턴이 무너지자,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 p.162 기존의 꽃무늬 ‘단디백’이 아닌, 무지 원단으로 제작한 새로운 ‘단디백’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아이디어 역시, 결국 고객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단디백’을 여러 개 사용하던 고객님께서 “운동할 때 들기엔 꽃무늬보다는 무지가 더 좋겠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무지 원단의 존재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거래처 사장님께 여쭤보니 다양한 색상의 무지 원단이 있었고, 그중 네 가지 색상을 골라 새로운 ‘단디백’을 제작하기로 했다. 여기에 키링을 함께 구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 자신은 없었다. 대신 전통적인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캐주얼한 매듭 키링을 함께 구성하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된 작가님 두 분께 DM을 보냈다. 한 분은 정중히 거절하셨고, 다른 한 분은 마침 펀딩을 해 보고 싶다며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작가님과 인사동에서 직접 만나 각자의 작업물을 교환했다. 그분의 매화매듭 키링은 ‘단디백’과 아주 잘 어울렸고, 내가 원하는 느낌을 설명해 드리자 직접 제작해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샘플이 완성되었고, 텀블벅 전용 에디션인 매화매듭 키링이 탄생했다. --- p.173 아이가 돌이 되었을 무렵, 나는 창업을 시작했다. 오직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라는 절박한 열망 하나로,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때는 보자기 공방으로 수익을 내는 방법이 오직 보자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까?’, ‘이윤율을 높일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그것이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보자기와는 전혀 무관한 비전공자였던 나는, 재봉도 원단도 모른 채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며 일반 소비자의 시선으로 원단을 구매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객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그렇게 조금씩 공부해 나갔다. 판매량이 점점 늘자 자연스럽게 더 저렴하게 원단을 구매하고 싶어졌다. 마침 원단 공장이 몰려 있고 가격도 저렴한 대구가 떠올랐다. 대구에 사는 자수공방 사장님과 함께 서문시장에 가기로 했다. --- p.179 프랜차이즈 전문 행정사님과의 미팅 후 전문가의 조언을 구한 끝에, 프랜차이즈보다는 물품 구매 계약서로 이루어진 ‘취급점’ 형태로 전국 지점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선택했다. 계약서 작성부터 운영 매뉴얼 제작까지 모든 걸 처음부터 직접 배워가며 하나하나 준비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데일리보자기’ 양산점은 내게 잊지 못할 의미가 있다.내가 지점을 내는 목적은 로열티 이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진심으로 전국에 함께할 사업 파트너가 생기기를 바랐다. 내가 창업 초기에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을 때, 누군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그때의 간절했던 마음을 기억하며,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길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그 꿈은 서서히 현실이 되어갔다. --- p.182~183 창업반 수강생 중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배운 것을 실제로 써먹고 수익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소수였다. 나는 누구에게 나 똑같이 모든 것을 다 알려주었지만, 결과는 늘 같지 않았다. 그 차이를 만든 건 단 하나, ‘간절함’과 ‘실행력’이었다. 인맥이 많다고, 자본금이 많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인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자신의 재능을 실행력으로 바꾸는 사람은 결국 수익을 낸다. 같은 수업료를 내고도 그 이상의 가치를 뽑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깨닫게 됐다. 수강생이 많아져 내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적은 인원일지라도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필요할 땐 언제든 옆에서 서포트해 주는 일이 훨씬 더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 p.187 이 과정을 통해 ‘데일리보자기’만의 루틴이 생겼다. 지점을 오픈한 대표님에게는 처음 기계나 재료 셋팅, 매장 기계 배치 등 기본적인 것들을 도와드리고, 3개월쯤 지나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내가 직접 그 지점에 방문했다. 그 지역 수강생들을 모집해 수업을 열고, 대표님의 공간에서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시연도 했다. 이는 지점 대표가 지역 내 수강생들과 계속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데일리보자기’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아니라, 물품 구매 계약서로 이루어진 취급점 운영 방식이다. 교육 후 기계를 구매하면 운영 종료가 가능한 시스템이지만, 나는 ‘데일리보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유튜브를 통해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기에, 멀어서 오기 힘든 분들을 위해 그 지역에서 수업을 열고 상담을 진행했다. 내가 직접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엔 지점 대표님께 연결해 드렸다. 양산점을 시작으로 부산점, DMC점, 인천점, 광양점, 목포점, 순천점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지점 대표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도왔다. 작년에는 경상도 지역 지점이 여럿 생겨 부산만 다섯 번을 다녀왔고, 올해는 전라도 지점 지원에 집중했다. --- p.190~191 ‘데일리보자기’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오직 ’데일리보자기’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이 있다. 일반적인 공방이나 협회에서 운영하는 보자기 자격증 수업은 정해진 커리큘럼을 반드시 따라야 하며, 해당 과정을 이수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모든 내용이 복제 가능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반복과 암기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보자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었고, 선행 사례가 없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왔기에 정답 없는 수업을 만들어야 했다. 수업을 진행하는 지금도, 창업 초기처럼 유연한 실전 중심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 p.206 사장님은 곧바로 기계를 구매하고 싶어 하셨지만, 당시 남편의 작은 사무실에서 스마트스토어를 운영 중이었기에 대형 공업용 재봉기를 들일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기계를 들이려면 상가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만 하실 게 아니라면, 이참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시는 건 어때요? 실크 천을 대량 생산하면 속도도 빨라지고 수익도 늘어날 테니, 저렴한 상가를 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업을 마친 사장님은 “바로 부동산부터 돌아다녀야겠다.”라고 하시며, 실제로 그날부터 상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땅한 곳이 없어 걱정하던 중, 2주 뒤 공방 자리로 쓰기 딱 좋은 급매물이 나왔다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계약 소식을 전하셨다. --- p.209 수강생 대부분은 전업주부이거나 50대 이상의 연령층으로, 온라인 마케팅에 익숙하지 않고 창업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수업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단기보다 장기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데일리보자기’ 창업반의 수강료는 점점 오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300만 원에 이르는 고가 수업이 되었다. 나는 ‘금액과 의지는 비례할 것’이라 믿었다. 정말 간절한 사람, 그리고 지금 당장 내 도움이 절실한 사람 위주로 수강생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중장년층 수강생이 많았다. 20대부터 보험 영업을 해 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온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사업한 지 4년이 지나고서야 내 적성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장에서 뛰는 ‘선수’보다, 선수를 도와주는 ‘코치’ 역할이 훨씬 더 잘 맞았다. 한때는 누구보다 성과를 내는 영업인이었지만, 지금은 인재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지도자’의 자리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 p.211 결국,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성공은 특별한 재능이나 타이밍이 아니라, 끝까지 꾸준히 해내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이 경험 이후 나는 앉아서 이론만 설명하는 수업보다, 현장에 투입해서 몸으로 익히는 수업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까이 있는 수강생들에게는 일이 많을 때 일당을 드리고 함께 일하기도 했고, 일이 겹쳐서 혼자하기 버거울 때는 다른 수강생들에게 일을 나눠드리기도 했다. 어제 수업을 먼저 받은 수강생이, 오늘 처음 온 수강생에게 재봉을 가르치는 일도 흔했다. 배운 것을 연습해서 내가 잘하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가르쳐 보면 오히려 더 빠르게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던 터였다. 이런 자연스러운 실전 교육 구조 속에서, 나는 단순한 강사를 넘어 수강생을 사업파트너로 키워낼 수 있었다. --- p.215 내가 꿈꾸는 브랜드는 ‘나만 잘되는’ 브랜드가 아니다. ‘데일리보자기’는 누군가의 인생을 응원하고, 삶을 연결하며, 가치를 나누는 브랜드여야 한다. 그래서 ‘지점’이 아닌 ‘취급점’이라는 이름을 고수했고, ‘교육생’이 아닌 ‘파트너’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나는 공방마다 개성과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기를 바랐다. 같은 제품이라도 만드는 사람의 손끝에 따라 감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그동안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브랜드 운영 매뉴얼은 지침서가 아니라, 서로의 색깔을 존중하는 나침반이어야 했다. 파트너들에게는 원단과 제품에 대한 정보를 아낌없이 공유했다. 함께 제품을 기획하고, SNS 운영법과 촬영 노하우도 알려드렸다.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서로 가장 편한 방법으로 성장하는 구조가 ‘데일리보자기’다운 길이라고 믿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성장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떤 수강생은 공방을 열지는 못했지만, 보자기를 매개로 이웃과 소통하며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어떤 수강생은 자녀 결혼식에서 예물을 직접 보자기로 포장하며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완성했다. 이 모든 경험은 하나의 확신으로 이어졌다. 보자기는 단지 포장재가 아니다. 보자기는 사람과 사람을 묶는 ‘매듭’이다. 그 매듭 안에 이야기와 손길, 그리고 마음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데일리보자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 p.221~222 |
|
“보자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아시나요?”
보자기처럼 어떤 상황도 감싸안을 수 있는 따뜻한 용기 그 용기를 여러분께 건네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앞만 보고 달려온 5년이었습니다.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무일푼의 빚쟁이 경력 단절 여성에서 ‘데일리보자기 전국 지점 대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네요. 이 과정에서 흘린 눈물,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던 순간들, 그리고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좌절. 이제야 그 모든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지 저 자신도 놀라울 때가 많아요. 처음 시작했을 때의 목표는 단 하나, ‘돈’이었어요. 빚더미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요. 매일 밤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던 날들이 지겹고 또 지겨웠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솔직한 고백이 너무 세속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에게 현실은 그랬습니다. 아름다운 꿈과 고상한 목표는 빈속을 채워주지 못하잖아요. ‘생계’라는 무거운 바위를 어깨에 짊어진 채 시작한 여정이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오니, 공방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문득 자문하게 되었어요. 작은 공방 하나를 오픈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요. 공간 선정부터 인테리어, 재료 구매, 제품 개발, 마케팅, 판매까지…. 혼자서 해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이잖아요. 저는 그 과정을 홀로 헤쳐나왔기에 더 잘 알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고독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제가 이룬 성공의 가장 값진 활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단순히 “와, 이 사람 대단하다.”라며 책을 덮지 말아 주세요. 그보다는 “나도 뭔가 시작해 볼까?”라는 작은 불씨가 가슴 속에 피어오르길 간절히 바랍니다. 나이, 경력, 현재 상황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첫발을 내딛는 용기예요. 인생의 나이테는 우리가 몇 번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몇 번 다시 일어섰는지로 그려진다고 해요. 이 책을 통해 받은 영감이 내일의 첫걸음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제 이야기가 작은 희망이 되었다면, 이 책을 쓴 가장 큰 보람일 거예요. 이제 여러분의 차례예요. 여러분만의 특별한 보자기를 펼쳐보세요. |
|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웅크릴지, 앞으로 나아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책에는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간 김태경 대표의 용기 있는 여정과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알을 깨지 못한 수많은 이가 자신만의 빛을 품고 세상 밖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바랍니다. - 조재옥 (한국디지털퍼스널브랜딩협회 대표)
|
|
이 책의 저자는 ‘보자기’ 하나로 ‘여성 창업가’라는 수식어를 넘어,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든 주체적 삶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가정과 일, 예술성과 경영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낸 시행착오의 기록은 수많은 여성에게 ‘나 역시 해낼 수 있다’라는 용기를 선물합니다. 당신이 공방 창업을 준비하든, 이미 사업을 운영 중이든, 혹은 단순히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을 뿐이든, 이 책을 통해 얻게 될 것은 지식 그 이상일 것입니다. - 지인옥 (시니어 인플루언서 작가)
|
|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으로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마케팅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그녀의 사업 초창기와 성장 과정을 지켜본 산증인입니다. 김태경 대표는 살아 움직이는 ‘1인 공방의 바이블’입니다. 긴 어둠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빛줄기를 붙잡고 공방을 지켜낸 그녀의 경험과 노하우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1인 사장님들께 희망과 용기를 전해 주기를 바랍니다. - 박주애 (‘트리파크’ 대표, ‘공방 매출 최적화 마케팅’ 전문가)
|
|
삶이 가장 어두웠던 시기, 저는 보자기와 김태경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경력이 단절되고 자존감마저 무너졌던 저에게 대표님은 “지금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 따뜻한 한마디는 제 삶을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보자기와 실크스크린 작업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제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공방, ‘단디보자기’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보자기 만드는 법을 알려 주는 기술서가 아닙니다. 마음을 담는 손길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따뜻한 기록입니다. 특히 경력 단절로 고민 중인 여성,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품으며 자기 자신을 잊고 있는 임산부들에게 이 책이 조용한 위로이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김규리 (‘단디보자기’ 대표(데일리보자기 부산점))
|
|
2022년 3월에 만난 인연이 벌써 햇수로 4년을 지나가고 있네요. 사장님 덕분에 저희 ‘꿀쟁이’ 제품들이 더 잘 팔리고, 품질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자기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장님이 너무 멋지시고 자랑스럽습니다! 사장님 덕에 저희도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데일리보자기’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 ‘꿀쟁이’ 대표
|
|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그 일을 해낸 사람의 경험과 조언이 있다면, 그 과정은 훨씬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시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데일리보자기’ 김태경 대표님의 성공 노하우를 통해 여러분의 꿈을 더욱 수월하게 이뤄내시길 바랍니다. - ‘배로샌드’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