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일제강점기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쓴 시인.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에 사망했다. 어릴 때부터 시를 썼고 이후 연희전문 문과를 진학,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실패. 1942년 일본으로 가서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1943년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 혐의로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히고, 광복을 앞둔 28세의 나이로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광복 후에 다른 유고 작품들과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 되었다.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 작품 발표 때 ‘육사’와 ‘二六四(이육사)’ 또는 활(活)을 사용하였다 ‘청포도’, ‘서울’, ‘절정’, ‘광야’ 등의 시와 수필 ‘은하수’, ‘계절의 표정’ 등을 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의열단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작품 세계는 크게 ‘절정’에서 보인 저항의식과 ‘청포도’에 나타난 실향의식과 비애, ‘광야’나 ‘꽃’에 나타난 초인의지(超人意志)와 광복에 대한 염원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반복적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빈궁한 삶을 살면서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며 살았다.
최서해
본명 최학송(崔鶴松). 일제강점기, <탈출기>, <기아와 살육>, <홍염> 등을 썼고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는 데 역할을 한 소설가. 1901년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하고, 1918년에 간도에 가 부두노동자나 음식점 심부름꾼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하며 서해(曙海)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빈곤으로 고통 받는 조선인의 삶을 강렬한 표현으로 그렸다.
강경애
일제강점기 <소금>과 <인간 문제> 등을 쓴 작가. 1907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일곱 살에 장연으로 이주. 이후 평양 숭의여학교와 서울 동덕여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931년 장하일과 결혼, 간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건강 악화로 1943년에 사망하였다. 1931년 단편소설 <파금(破琴)>,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며 문단 데뷔. 단편소설 <부자>(1934) · <채전(菜田)>(1933) · <지하촌>(1936) 등과 장편소설 <소금>(1934) · <인간문제>(1934) 등으로 1930년대 대표적인 소설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백신애
일제강점기 <나의 어머니>, <꺼래이>, <적빈> 등을 쓴 소설가. 경상북도 영천(永川) 출생하여 어려서는 한문을 공부하였고, 이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다.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에 이어 자인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여성동우회와 여자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한 것이 탄로나 해임 당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와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朴啓華)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1932년에 결혼했으나 이혼, 1934년경부터 창작에 몰두하며 작품을 발표하였다. 러시아 국경을 넘나드는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꺼래이>(1934), 여성 리얼리즘을 잘 보여준 <적빈>(1934) 등이 있다. 1938년 중국 상해로 여행했으나 이듬해 위장병의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지하련
본명은 이현욱.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생. 1935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화(林和)와 결혼. 광복 후 임화와 함께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고 함께 월북하였다. 1953년 미국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임화는 처형되었고, 지하련은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다. 1941년에 쓴 수필 ‘체향초’는 고향에 머무는 동안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효석
일제강점기 <메밀꽃 필 무렵」>, <들>, <여수> 등을 쓴 소설가.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작은 경향문학의 성격으로 인해 ‘동반작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1933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하여 순수문학을 집중하였다. <메밀꽃 필 무렵>은 고향을 무대로 향토적 정서를 표현하였다.
허민
일제강점기 <아픈 다리>, <삼월의 눈바람>, <봄과 님이> 등의 시와 동화 <숲의 향연>, 소설 <사장> 등을 쓴 작가이다. 191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허종(許宗)이다. 태어나고 얼마 뒤 측량기사였던 아버지가 사망하여서 어머니와 외조부의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유엽 시인에게 부탁하여 합천 해인불교전수학원(해인사 강원)에서 수학하였다. 1933년 해인사 강원을 수료하고, 해인사 사설강습소인 해명학원(海明學院)의 교원이 되었다. 1935년 이웃의 중매로 신채봉(愼采鳳)과 혼인하였고, 1937년 봄 진주로 내려가 동아일보 진주지국 기자로 일하였으며, 진주기예학교에서 국사와 동양사를 가르쳤다. 이 해부터 지병인 폐결핵을 앓다가, 1943년 봄 29세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