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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07

1장 서곡: 1919년 5월 11
2장 정상성으로의 복귀 29
3장 빨갱이 공포 67
4장 회복하는 미국 107
5장 풍속과 도덕의 혁명 123
6장 하딩과 스캔들 167
7장 쿨리지 번영 211
8장 밸리후 시대 247
9장 지식인들의 반란 299
10장 알코올과 알 카포네 325
11장 즐거운 플로리다의 집 357
12장 대강세장 381
13장 ‘폭락!’ 417
14장 여파: 1930-31 439

참고 문헌 462
옮긴이의 말 469

저자 소개 2

프레드릭 루이스 앨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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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erick Lewis Allen

20세기 초 미국 사회와 문화를 날카롭게 통찰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 ‘광란의 20년대Roarng Twenties’를 기록한 『온리 예스터데이: 1920년대 비공식 역사Only Yesterday An Informal History of the Nineteen Twenties』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890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난 앨런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1912년 학사 학위를, 1913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그는 하버드에서 영문학 강사로 잠시 재직했으며, 이후 〈애틀랜틱 먼슬리〉의 부편집장을 거쳐 1923년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
20세기 초 미국 사회와 문화를 날카롭게 통찰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 ‘광란의 20년대Roarng Twenties’를 기록한 『온리 예스터데이: 1920년대 비공식 역사Only Yesterday An Informal History of the Nineteen Twenties』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890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난 앨런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1912년 학사 학위를, 1913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그는 하버드에서 영문학 강사로 잠시 재직했으며, 이후 〈애틀랜틱 먼슬리〉의 부편집장을 거쳐 1923년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고급 교양 잡지 〈하퍼스 매거진〉에 합류했고 1941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편집장으로 재직하며, 미국 저널리즘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온리 예스터데이』는 1차 대전 이후 대공황까지 미국의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를 생생하고 재치 있게 그려내며 미국 역사서로는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1920년대부터 본격화된 대중 사회의 대두, 부패 스캔들, 금주법, 풍속 혁명, 대공황의 전조와 여파 등을 통찰력 있게 담아낸 이 책은 '비공식 역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유려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는 저널리즘과 역사학을 결합한 새로운 서술 방식을 제시하며, 이후 많은 작가들이 대중 역사서 집필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 대공황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서만 찾지 않고, 1920년대 미국인들의 과도한 낙관주의와 물질적 탐욕,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경향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하며 사회문화사적 관점으로 대공황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 주요작으로 『온리 예스터데이』와 후속작 1930년대의 대공황을 다룬 『어제 이후Since Yesterday』, 대공황 이전까지의 미국 금융 및 산업계를 지배했던 거물들을 다룬 『창조의 군주들The Lords of Creation』, 1900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의 20세기 전반기를 총체적으로 다룬 『거대한 변화The Big Change』 등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출판계에서 편집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성서 시대사』, 『교양 노트』, 『여자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마음을 들여다보면』, 『소년 시대』, 『미식 예찬』, 『유모아 극장』, 『이야기가 있는 사랑수첩』, 『미국 문명의 역사』, 『사고의 기술』, 『야구 감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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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76쪽 | 128*188*30mm
ISBN13
9791194598091

책 속으로

군중들은 윌슨과 정의를 위해 환호성을 질렀지만, 투표에서는 로이드 조지와 복수를 선택했다. 독일이 패배한 지금, 수십 명의 유럽 정치인들은 파리에서의 협상에서 각자 자국의 이익과 개인적 영광을 위해 무엇을 챙길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가길 원했다. 군중들이 윌슨을 향해 환호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대중이 변덕스럽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중은 영토 합병과 가혹한 배상금에도 똑같이 열렬히 환호할 것이다.

철강 파업에는 급진주의적 요소가 거의 없었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긴 노동 시간에 항의하기 위해 파업을 벌였다. 상당수는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었고, 그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철강 재벌들은 보스턴 경찰 파업에서 교훈을 얻었다. 당시 대중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으며, ‘볼셰비키’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어떤 주장도 기각될 수 있었다. 철강 재벌들은 이를 활용하여 노동자들에게 쉽게 급진주의자의 딱지를 붙였다.

정치인들은 가이 엠피의 말을 인용하며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데 적합한 도구는 어떤 철물점에서든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내세울 모토는 ‘S.O.S.’ ─ 즉, ‘배에 태워 추방하든가, 아니면 쏴 죽이라ship or shoot’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돌로 만든 배에 태우고, 납으로 만든 돛을 달아, 첫 번째 정박지가 지옥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 졸업생들은 급진주의 성향이 의심되는 교수들의 해고를 요구했다. 학교 교사들은 충성 서약에 서명해야 했다. 정치·경제적 견해가 전통적이지 않은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입을 닫아야만 했다. 미국 사회의 히스테리가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직업적인 슈퍼애국자super-patriot들(그리고 슈퍼애국자를 자처한 온갖 특수 선전가들)은 이제 막 싸움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수많은 애국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각 단체의 사무국장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위협을 만들어내야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반대하는 모든 것에 ‘볼셰비키’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무너뜨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대해군주의자big-navy men, 징병제 지지자, 금주법 옹호자, 금연 운동가, 진화론을 반대하는 근본주의자, 도덕 질서의 수호자, 도서 검열가, 유대인 혐오자, 흑인 혐오자, 지주, 제조업자, 공공시설 운영자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성조기와 건국의 아버지들의 망토를 두르고, 자신들의 반대자들을 레닌과 한통속이라고 몰아붙였다.

백인 소녀가 흑인 남성이 자신에게 부적절한 접근을 했다고 주장하면 ─ 그 주장이 신경과민에서 비롯된 것이든, 증거가 전혀 없든 상관없이 ─ 흰 두건을 쓴 무리가 흑인을 납치하여 숲으로 끌고 가 타르와 깃털로 ‘교훈을 주거나’, 채찍질을 했다. 백인 남성이 인종 갈등에서 흑인을 두둔하면, 그 역시 납치되어 구타당할 수 있었다. 흑인 여성이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클랜 조직원이 원하는 가격에 팔지 않으면, KKK의 최후통첩을 받게 되었다 ─“팔거나, 강제로 쫓겨나거나.”

이러한 변화는 또한 미국 여성의 점점 커져가는 독립성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여성들은 1920년 여성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참정권을 얻은 후, 그들은 의외로 이에 대해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투표를 하긴 했지만, 여성 클럽이나 여성유권자연맹League of Women Voters이 여성의 시민적 책임을 일깨우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남성들처럼 기존 정당의 투표 패턴을 따랐다. 여성 정치 후보자는 드물었고, 텍사스 주지사 마 퍼거슨Ma Ferguson과 같은 일부 여성 정치인들은,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공직을 고결하게 만들 영적인 영향력’과는 거리가 먼 듯 보였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 전후의 환멸, 여성의 새로운 지위, 프로이트의 복음, 자동차, 금주법, 성과 고백 잡지, 그리고 영화 ─이 전부 합쳐져서 사회적 혁명을 촉진했다. 각각의 요소는 다른 요소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그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미국의 생활 방식을 크게 변화시킬 수 없었겠지만, 이들이 결합되었을 때 그 영향력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후 여성상이 지향하는 것은 성숙한 결실이나 깊어진 지혜, 세련된 우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날씬한 몸매에 대한 집착, 가슴을 평평하게 보이려는 유행, 짧은 치마의 확산(그 짧은 치마가 어린 소녀 같은 인상을 준다 해도), 길게 떨어지는 허리선이 연출하는 유아적 느낌 ─ 이 모든 것은 여성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단순한 ‘젊음’이 아니라, 미숙한 젊음을 숭배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남성들이 원하는 것이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이나 성숙한 지혜의 동반자가 아니라, 가볍고 무책임한 동료라고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넓은 엉덩이를 가진 ‘인류의 어머니’가 아니라, 무책임한 놀이 상대가 되고자 했다. 그들이 모방한 젊음은 순진무구한 소녀가 아니라, 로맨틱한 사랑이 아니라, 성性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상 물정 밝은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 또한 ‘예술을 숨기는 것이 예술’이라는 전통적인 기법이 아니라,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이었다.

무도회에 초대받지 않고도 당연한 듯 찾아가는 ‘무단 침입gatecrashing’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고, 수많은 남녀가 진부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저녁 식사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게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플래퍼들과 폭이 넓은 바지를 입은 젊은 남성들로 이루어진 하우스파티에서는,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타다 남은 담배가 그대로 놓였고, 카펫 위에는 재가 흩뿌려졌으며, 베란다에 있던 쿠션은 배로 가져가 방치되어 빗물에 젖었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육을 받고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는 남녀들이 칵테일 몇 잔을 들이켠 후, 디너 파티를 시끄러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선한 삶’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착각했던 것일까? 오래된 도덕적 장벽은 무너졌고, 새로운 기준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돼지들이 초원을 활보하고 있었다.

워싱턴에서 새 행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초반에는 항상 국민적 기대감이 따른다. 하지만 하딩 행정부의 출범 당시 분위기는 유난히 온화하고 따뜻했다. 새 대통령의 미소는 마치 긴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봄날의 해방감처럼 국민을 녹였다. 4년 동안 백악관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무장한 경비병들이 출입을 통제했지만, 하딩 대통령의 첫 공식 조치는 백악관 문을 활짝 열어 시민들이 정원으로 들어와 창문을 들여다보고, 대리석 포치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동차와 트럭마저도 백악관 드라이브웨이로 올라와 대통령 관저 앞을 지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마치 ‘정부가 국민에게 되돌아왔다’는 상징적인 선언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형제애와 친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지나치게 형제애를 베푼 자들이 행정부를 부패의 늪에 빠뜨리고 있으며, 그 스캔들이 곧 드러날 것이고,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 치욕 속에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문제였다. 그것이 바로 워런 하딩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문제였다.

신문 독자들도 이러한 우호적인 정서를 되풀이했다. 건실한 사업가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엄숙하게 말하곤 했다.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비난하여 정부의 신용을 실추시키는 것은 비애국적인 일이다.” 또한 이 문제를 끝까지 파헤치려고 하는 사람들은 “볼셰비키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주요 애국자 중 한 명인 프레드 R. 마빈─ 미국의 핵심 인물들Key Men of America의 일원 ─은 석유 스캔들이란 것이 전부 “국제주의자들의, 혹은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고 불러도 좋을 자들의 거대한 국제적 음모”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제 광고 카피라이터들은 자사 제품의 특성과 장점보다는 대중의 욕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젊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부유해지는 것,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광고 기법이란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사실이든 냉소적이든 상관없이, 자사 제품을 이러한 욕망 중 하나 이상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치약 광고의 감성적인 허구에 대응하기 위해 한 치약 회사가 의학 전문가들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그 반격은 강풍 속의 한숨과 같았다. 1920년대 초, 광고는 하나의 사업으로 여겨졌으나, 쿨리지 번영 시대의 초창기에 광고업계의 허풍 떠는 예언자들이 이를 ‘전문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10년이 끝날 무렵,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에서 차용한 기법이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을 목격한 광고업자들은 이제 광고를 사석에서는 ‘갈취racke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매년 광고 시상식을 열어 상업 제품 판매를 위한 세련된 마케팅 문구에 학문적 ‘후광’을 부여했다. 교회도 이 거센 비즈니스 열기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아메리칸 머큐리》에 따르면, 뉴욕의 스웨디시 이마누엘 회중 교회는 영적 호소보다 사업적 호소가 더 강력함을 인식하고, 교회 건축 기금에 100달러 이상 기부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왕국 우선주” 투자 증서를 발급했다. 뉴욕 도심의 한 교회 광고판에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볼 수 있었다. “교회에 오십시오. 기독교의 예배는 당신의 능률을 높여줍니다. 크리스찬 F. 라이즈너, 목사.”

지식인들은 더 자유로운 성性을 신봉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 자유를 실제로 경험했을 때(혹은 책과 연극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때), 크나큰 실망을 느꼈다. 크러치Krutch는 사랑이 “철저히 분류된 정신병”으로 변형됨으로써,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시와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감정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먼저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사랑은 너무 쉽게 얻어지고,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엘머 데이비스는 한 수필에서 전후 소설의 여주인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녀는 ─ 내가 정확히 기억하자면 ─ 259번의 사랑을 경험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여주인공이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유혹에서 얻을 법한 감정적 충격조차 경험하지 못했다.”

금주법 지지 세력의 지도자들은 미국 전역을 금주 상태로 만드는 일이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금주법 시행을 위한 예산을 대폭 증액하도록 의회를 압박하는 대신,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볼셰비키’나 ‘문명 파괴자’로 몰아세우며 여론이 다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오기를 바랐다. 의회 역시 현실을 직시하기를 꺼려했다. 상·하원 모두에서 금주법 지지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금주를 찬성하는 것과 그 시행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925년, 사람들은 무엇이든, 어디든, 그것이 플로리다에 있기만 하면 구매했다. 새로운 부동산 개발 계획이 발표되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맨해튼 에스테이트는 “빠르게 성장하는 번영의 도시 네티에서 불과 3/4마일 거리”라고 광고되었다. 그러나 네티라는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티는 버려진 테레빈유 채취 캠프의 이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지를 구매했다. 멜번 가든즈라는 개발지의 진위를 조사하던 이들은, 초원과 습지 사이를 지나며 길도 없는 곳을 헤매다, 목적지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서 진흙탕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땅을 샀다.

경제학자들과 시장 예측가들은 여러 차례 “늑대가 온다”고 외쳤지만, 늑대는 잠깐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반복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경고했지만, 인플레이션은 불황을 가져오지 않았다. 경기가 위험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공장은 풀가동 중이었고, 각종 통계 지표들은 산업 전반이 건전하다는 신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과잉 생산의 위협? 그 역시 터무니없는 소리! 기업들은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상품 가격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과잉 재고나 막대한 재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 투자신탁은 보유 주식에서 발생하는 배당 수익으로조차 우선주 배당금을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구조를 가졌으며, 사실상 주가 상승에 의존해야만 유지될 수 있었다. 또 다른 일부 투자신탁들은 자신들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이 시장에서 팔기 어려운 주식을 몰래 떠넘기는 용도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금융 관행이 비윤리적이지 않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가격이 오르기만 하면 온갖 수상쩍은 금융 관행도 양심의 가책 없이 실행할 수 있었다. 대강세장은 수많은 죄를 덮어주는 만능 방패였다. 이는 선동가들에게 황금시대였고, 그들은 그야말로 무수히 존재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역사서, 그 너머

이 책이 다룬 1920년대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중 민주주의, 소비문화, 감정 정치, 그리고 미디어와 금융 자본의 지배라는 현대 사회의 모든 특징이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앨런은 이 시기를 ‘미국이 제국이 된 시대’로 진단하며,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를 지배한 물질적 탐욕과 맹목적 낙관주의를 냉철하게 분석했다. 특히 그는 1929년 대공황을 단순한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대중의 심리적 상태─탐욕과 자기기만, 그리고 ‘현실 회피적 낙관주의’─의 필연적 결과로 묘사했다. 이 통찰은 경제사뿐 아니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앨런의 독창적 시선이다.

『불과 어제』는 단순한 역사책을 넘어 ‘1920년대’라는 시대 이미지를 만들어낸 원형 텍스트다. 지금도 영화, 드라마, 광고 속에서 반복 재현되는 그 시대의 감각─갱스터, 금주법, 재즈와 플래퍼, 증권거래소의 붕괴와 대공황의 절망─이 모두 이 책을 통해 대중의 상상에 각인되었다. 헐리우드의 수많은 영화들이 이 책을 참고했고, 그 감정의 지형도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화적 코드로 작동한다. 『불과 어제』는 대중 문화가 대중 사회의 욕망을 어떻게 흡수하고 형성하는지를 보여준 첫 작품이었다. 책이 다룬 장면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완결된 서사이며, 영화적 감각과 극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는 문장은 당대 독자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책은 출간 이후 대중 역사서라는 장르 전체를 만들어냈다. 이전까지 역사란 정치가와 군인의 이야기였지만, 앨런은 라디오와 광고,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부동산 투기와 도시 생활을 역사 서술의 중심에 놓았다. 이는 ‘생활사’라는 새로운 접근법의 출발점이었다. 『불과 어제』는 이후의 모든 대중 역사서, 나아가 방송과 다큐멘터리, 영화적 재현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지금 막 지나간 시간’을 역사로 쓰는 방식─즉, 가까운 과거를 다룬 시사적 역사서라는 장르도 앨런에 의해 개척되었다. 역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불과 어제’ 일어난 일이라는 감각은 당시 독자들에게 충격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다.

프레드릭 루이스 앨런은 이 책에서 시대의 움직임을 기록하며 한 가지 질문을 반복했다. “도대체 왜?” 이 질문은 단지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고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불과 어제』는 그래서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대중 사회를 성찰하는 하나의 문명 비평서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인간의 유쾌하지 않은 본성에 대한 통찰을 위한 고전적인 자료들을 제공한다. 이 책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대중과 민주주의, 그리고 감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경고이자 통찰이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다. 백 년 전의 광란과 히스테리는 지금도 면면히 우리의 삶에 흐르고 있다.

추천평

역사가 이토록 생생하고 매혹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책. 앨런은 시대를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조했다. - 뉴욕 타임스
학술의 장벽을 넘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초의 역사 고전. 이 책은 역사 서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 워싱턴 포스트
단순한 연대기를 넘어 시대의 영혼을 포착한 걸작. 『온리 예스터데이』는 역사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을 제시했다. - 타임 매거진
1920년대 광란의 미국을 이토록 생생하고 재치 있게 그려낸 책은 전무후무하다. 앨런은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 루이스 멈포드 (사회 비평가, 역사가)
대공황이라는 재앙의 씨앗이 어떻게 1920년대의 비합리적인 토양에서 싹텄는지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경제학자, 『1929년 대공황』 저자)
재즈 시대의 번영과 혼란, 금주법의 아이러니, 그리고 대중의 히스테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압도적인 서사. 앨런은 역사가의 눈과 저널리스트의 필치를 겸비한 천재다. - 더 애틀랜틱
100년 전 미국을 이야기하지만, 놀랍도록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이 책은 기술 발전과 상관없이 반복되는 인간 본성의 불쾌한 측면과 대중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 하퍼스 매거진
강건한 근육에 어린아이의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거인. 앨런이 묘사한 1920년대 미국은 21세기 대중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통렬하게 직시하게 한다. - 월스트리트 저널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감정과 반응은 패턴을 반복한다. 『온리 예스터데이』는 그 패턴의 시작점이자,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선사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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