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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면서 出版前言 _ 4
제1부 행복한 중국 유학 생활 第一部 快?的中?留?生活 행복한 중국 유학 생활기 _ 12 幸福的中?留?生活 _ 16 강남대학 어학연수 _ 19 江南大??言?修 _ 30 제주도에서 꿈꾸기 _ 35 在?州?上追? _ 39 편견과 이해를 넘어가는 여정 _ 42 超越偏??理解的旅程 _ 45 중국어 선생님 _ 47 我的??老? _ 50 국제평화병원장과 함께 _ 52 ???和平?院院?的?面 _ 55 마리아의 손편지 _ 57 ?利?的??信 _ 61 온주(溫州)에서 _ 64 在?州 _ 68 우시-살아 숨 쉬는 도시 _ 71 无? ? 一?有生命的城市 _ 78 상하이 푸동 _ 82 上海浦???城市的未?正在?生 _ 89 인간의 품격 _ 94 人的品格 _ 97 작은고모 생각 _ 99 想念小姑姑 _ 103 사랑하는 아들에게 _ 106 ??的?子 _ 110 제2부 설을 맞는 마음 第二部 快?的中?留?生活 자랑스러운 내 조국 - 대한민국 _ 114 自豪的祖? - 大?民? _ 118 설을 맞는 마음 _ 122 迎接春?的心情 _ 126 새로운 시간, 새로운 마음 _ 129 新的??,新的心境 _ 133 고통은 향기로운 힘이다 _ 136 痛苦, 是一?芬芳的力量 _ 140 아름다운 섬나라, 제주도 _ 143 美?的海??家???州? _ 148 가족 _ 152 家人 _ 156 생명의 등가 _ 159 生命的等价 _ 163 나와 영화감독 _ 166 我??影?演 _ 169 제3부 아버지, 거기 계셨군요 第三部 父?,?原?一直在那里 아버지, 거기 계셨군요 父親,?原來一直在那裡 _ 174 봄, 불문사에서 春日,在不?寺 _ 178 저 아득한 풍경 那遙遠的風景 _ 182 풀을 뜯으며 拔草時 _ 184 이제 아버지의 뒤가 보인다 如今看見了父親的背影 _ 186 이름 名字 _ 188 서귀포에서 在西歸浦 _ 192 유모차 ?兒車 _ 194 풀 草 _ 196 노래 歌唱 _ 198 제4부 사람이 내는 길 第四部 人??的道路 사람이 내는 길 人開出的路 _ 204 틈 縫隙 _ 206 목련꽃 잔해를 빗질하며 梳理木蘭花的殘骸時 _ 208 마음의 집 心之屋 _ 210 아버지의 술잔 父親的酒盞 _ 212 봄 春天 _ 216 언니들 姐姐們 _ 220 한라산 漢拏山 _ 224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는 것 不是消失,而是被?裂 _ 226 고향의 봄날 故?的春日 _ 228 기러기 雁 _ 230 광야에서 在曠野中 _ 232 희경루(喜慶樓)에서 在喜慶樓上 _ 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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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중국은 우리나라와 이웃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불편한 관계로 때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화적으로도 다른 점도 많지만 유사한 점도 많이 있다. 그런 까닭이어서일까? 나는 어린시절부터 낯선 나라가 아니라 매우 친근한 나라로 인식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문자인 한자는 세계 공통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보다도 가까운 느낌이다.
특히 오늘날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교류가 많아져 양국간에 유학생들이 어느 나라보다 많아졌다. 나 역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해 중국인들과 친선 우정을 도모하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일해보고 싶은 오래된 소망을 이루기 위해 비교적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늦기 전에 중국유학을 결행하였다. 다행히 강남대학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같은 반 학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매시간 공부했다. 중국어를 더욱 잘하기 위해서는 물론 중국어 수업도 잘 받아야겠지만 중국문화를 잘 알고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중국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교에서 생활을 토대로 한 글을 모집하였는데, 나는 그 대회에 참가해 중국에서의 나의 생활을 글로 써서 응모하였다. 진솔하면서도 창의적인 글을 써서 10명 안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다. 500위안의 금액이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뜻깊어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뛰었다. 나는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이 돈을 어려운 친구에게 기증하고 싶었다. 그런데 행정실 선생님께서 “너도 이곳에 와서 고생하니 네가 잘 쓰도록 해”라고 말씀하셔서 그 돈을 한국에 있는 나의 아들과 고모에게 드렸다. 지난 학기에는 무석박물원과 설복성 생가의 문화행사에 참여해 많은 것을 얻었다. 무석(無錫)은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중국 10대 경제활력 도시 중의 하나로 중국 민족 공업 발상지이며 선진적인 국제제조업 기지이다. 이곳에는 유명한 석혜공원이 있고, 중국에서 가장 큰 청동불상이 있는 문화·관광 교육도시로 유명하다. 이곳에 있는 설복성 생가를 방문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는 근대 외교가이자 산문가이다. 양무운동의 주요 지도자로 국가 주도의 근대화정책인 양무운동을 통해 19세기 서양 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한 운동가이다. 설복성 생가에서 예쁜 화환을 수놓는 것을 배우고, 무석박물관에서는 왕관 만드는 방법을 배워 중국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날 수업시간에 내 손으로 완성한 작품을 착용하게 되어 뿌듯하고 흐뭇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는 중국문화의 박대 정심함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우수한 문화유산에 충격을 느꼈다. 이렇듯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로 인해 중국어를 보다 깊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기점반 학우들과 서로 도우며 중국어를 배우는 길을 꾸준히 나아갔다. --- 「행복한 중국 유학 생활기」 중에서 강남대학은 중국교육부 직속 대학이며, 국가 ‘211공정’ 중점건설학교 및 일류학과건설 대학에 속한다. 학교 설립 및 발전 역사는 190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삼강사범학당으로 인해 국립중앙대학, 남경대학 등의 발전시기를 거쳤다. 2001년 3개 관련 대학 합병 구성해서 강남대학을 만들었고, 2003년 동화대학 우시 캠퍼스도 강남대학으로 합병하였다. 1964년부터 국제학생 모집·양성 교육을 시작하였고, 교육부가 처음으로 중국에 유학생 모집 허가한 57개 대학 중 하나이며, 비교적으로 일찍 중국정부장학생을 받기 시작한 학교 중 하나이다. 학교에서는 우수한 유학생한테 중국정부장학금, 강소성정부장학금 등 여러 종류 장학금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유학생한테 시설 완비한 국제유학생아파트 및 현대화된 학습 생활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해마다 강소성 내 중국 유학생 교육 선진 집단 칭호를 받았다. 강남대학은 교사와 학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학으로 현대화된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캠퍼스를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선진적인 시설과 쾌적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캠퍼스 대지는 3250묘, 건축면적은 107만 제곱미터, 도서관 장서 255만권, 한 명의 학생을 위해 평균 투자되는 연평균 연구비용 3만5400위안, ‘지혜로운 캠퍼스’ 건설 완화되며 경기장, 체육관, 문호과학관, 대학생캠퍼인센터 등의 문체관과 16개의 학생아파트가 조성되어 있다. 중국어 학생 모집과 어학연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남대학교 국제교육학원에서는 유학생에게 최고의 중국어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데 경험이 풍부한 중국어 교사가 수업을 가르친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종합적인 방면에서 교육을 강화한다. 학생 중국어 수준에 따라 입문, 초급, 중급,고급의 4가지 단계로 나누어 인재에 의한 교육, 소반 수업을 실시한다. 내가 강남대학에 어학연수를 와서 중국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산 앞에 서 있는 것 같아 손댈 데가 없었다. 한자 하나하나가 알아볼 수 없는 돌처럼 보였고, 문법 규칙은 더욱 나를 부적당하게 했다. 중국어를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도전이다. 나는 여러 차례 수업 시간에 혼란을 느꼈고 심지어 포기할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풍부한 문화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박대하고 정심한 문화적 저력과 지혜가 담겨 있어 황홀하다. 나의 전환은 우연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무소불위의 배려와 노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학습 과정에서 선생님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실에서의 해설이든, 방과 후의 상담이든, 그들은 항상 싫증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우리에게 모든 의혹에 대한 해답을 준다. 한 번은 선생님이 내 불안감을 알아채시고 방과 후 특별히 나를 불러주시며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실패는 전진의 기회입니다. 당신이 버티면 반드시 진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라고 온화하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 순간 깊은 위로를 느꼈고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낮과 밤을 희생했는데, 수업을 준비하든 숙제를 고치든 그들은 모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의 비이기적인 헌신과 노고 덕분에 나는 중국어 학습의 길을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캠퍼스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왔고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배운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사이의 의사소통이 도전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언어의 장벽은 우리가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위챗은 우리 간의 가장 중요한 소통 도구가 되었다. 위챗을 통해 우리는 글과 음성으로 교류하고 학습심득과 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점차 심화시켰다. 우리는 공부에 있어서 서로 돕고 생활에서 서로 관심을 가지며 점차 위챗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끼리 소통하는 가교가 되었다. 타국에서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흔치 않은 인연이었다. 이 인연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더 열심히 공부에 임하고, 두 배의 근면함으로 모든 배움의 도전에 임한다. 우리는 끈질긴 노력을 통해서만 이 소중한 우정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고 학업에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강남대학교, 이 아름다운 캠퍼스는 우리 개개인의 성장과 변화를 목격한다. 매일 이른 아침 동문에 들어서면 열심히 일하는 경비원 아저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오가는 인파를 빈틈없이 점검하며 캠퍼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그의 존재는 나를 든든하고 안심시켰다. 교문에서 교실로 이어지는 이 길에는 수많은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이른 아침 캠퍼스를 청소하는 청소 아줌마들은 묵묵부답으로 우리에게 깔끔하고 쾌적한 학습 환경을 만들어준 하루 일과를 일찌감치 시작했다. 교습동에 들어갈 때마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안부를 볼 수 있는데, ‘좋은 아침’이라는 소리는 언제나 나에게 훈류를 느끼게 한다. 가끔은 항상 그렇게 상냥하고 참을성 있게 내 질문에 답해주는 행정동에서 장 선생님을 만나기도 한다. 나를 향한 그의 관심과 도움은 내가 타국에서도 가족 같은 따뜻함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식당 앞 작은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주인어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웃음은 나를 친근하게 만들었다. 이 낯선 나라에서 강남대학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친절했고, 그들의 배려와 따뜻함이 이곳에 조금씩 녹아들어 처음 왔을 때의 외로움을 없앴다. 강남대학교에 있는 동안 중국어만 배운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따뜻함과 문화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사심 없는 헌신이든, 학우들의 상호적인 도움, 또는 캠퍼스의 그 따뜻한 모습들이 제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유학 생활은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은 성취감을 실감하게 했다. 앞으로의 공부와 삶에서 저에게 도움과 배려를 베풀어주셨던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발전시키겠다. 강남대학교, 온정이 넘치는 이 곳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강남대학 어학연수」 중에서 나는 일찍이 제주도에 진출하였다. 처음에는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개인적인 출발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공익적인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 꿈을 펼치기 위해 중국에 와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장차 미래에는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더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내 자신이 중국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강남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구체적인 꿈은 제주와 광주에 중국어 교육센터를 열어 청년들이 중국문화와 중국어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광주지역 고등학생들을 주말마다 무료로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알 수 있게 하고, 제주에는 중국 학생이나 일반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전문학교를 설립할 생각이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서로 친화력을 높이고자 한다. 이로써 한국과 중국의 학생들에게 교차교육을 함으로써 양국의 선린과 우호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이렇듯 당찬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구징치(顧景奇) 중화인민공화국 주 광주총영사를 만나 나의 뜻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주 광주총영사에게 “중국 강남대학과 손을 잡고 한국어를 배울 중국인을 새로 설립할 광주센터와 제주국제학교로, 반대로 중국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한국 학생들은 제주국제학교에서 교육 후 강남대학이나 그밖의 중국대학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른 중국 대학들과도 협약을 맺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자 구징치 총영사는 “먼저 센터를 개설, 폭 넓은 활동 이후 국제학교를 설립하는 방안도 있다”며 양국간 인재를 키우는데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더불어 구징치 총영사와 나는 이를 통해 한중 양국간의 우호증진은 물론 인적 교류 활성화를 통한 보다 다변화된 관계 설정을 기대했다. 내가 처음 제주도에 진출했을 때는 낯설고 물설었다. 그러나 이제 제주도는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인생 후반기에는 제주도에서 광대한 꿈을 펼치도록 준비하고 있다. 나의 꿈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앞에서 밝힌 중국어학교와 더불어 성형외과를 설립해보고자 한다. 성형외과는 VIP를 상대로 한 전신성형을 위주로 한 병원으로 현대에 와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실현시키는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인당 1억원 정도 드는 고가가 될 것이며 하루에 10여 명 정도가 수술을 할 수 있는 규모가 될 것이다. 환자들은 1달 동안 무비자인 제주도에서 추가요금을 지불하여 숙박과 숙식을 하면서 여유롭게 아름다운 제주도의 정취를 흠뻑 즐길 수도 있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확실한 중국인 투자자를 만나고자 한다. 내가 허가 및 의료진을 알아보고 나의 토지를 제공하면 그들은 건물과 초기 운영비를 내어 공동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중국의 성형기술은 무척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성형기술은 여전히 세계적이며,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우수한 성형기술력은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중국인들을 만족시켜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반드시 꿈을 이룰 것이다. --- 「제주도에서 꿈꾸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