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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씨앗 하느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겨자씨를 뿌리며 봄 만우절에 문을 연 거짓말 같은 국수집 민들레 국수집 첫손님 맞던 날 VIP 손님 딱 한반만 드셔야 해요! 어머니의 나들이 작은 사랑을 모아 사람을 섬기는 집 첫손님의 홀로서기 사랑이 가득한 밥상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들 여름 민들레 국수집의 여름나기 비오는 날의 풍경 사랑은 아낌없이 자기를 내주는 것 인정 많은 제주 할머니 열매를 맺은 겨자씨 유명한 박모씨 사랑이 가득한 밥상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들 가을 동네 아이들을 모셔라! 꽃게 무침과 묵밥 영애씨의 희망 찾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 사랑이 가득한 밥상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들 겨울 겨울 버티기 그해 겨울, 사랑의 힘으로 채워지던 화수분 김장 담그기 배추 나누기 사랑의 구속은 자유보다 더 아름답다 가슴 아픈 벙어리 가족 이야기 이슬왕자님을 기다리며 사랑이 가득한 밥상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들 봉화 나들이 민들레 민들레 홀씨는 사랑으로 흩날리고 <인간극장> 방영과 그 이후 국수집은 부업? 본업은 교정사목 최고수 형제들 박용기 꼴베 형제 베베 공동체 민들레 편지 출소자 형제들과 지내면서 알게 된 점들 에필로그 추천사 |
서영남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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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변화, 그러나 그들은 변한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문구와 다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노숙자들이 새겨야 할 말인 것이다. 민들레 국수집의 첫손님이었던 대성씨. 길가에 쓰러져 몸도 가누지 못하는 것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와 밥을 먹였던 인연으로 만났다. 대성씨는 그후 민들레 국수집의 손님이 되었고 국수집 2층에서 지내며 국수집 일을 거들었다. 누구보다도 노숙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그는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도 두 번 세 번 밥을 꾹꾹 눌러 고봉으로 대접한다. 얼마 전 대성씨는 인천의 한 용역업체에 취직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일당제가 아닌 월급으로 급료를 받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 첫손님이었던 대성씨의 홀로서기는 서영남 수사가 조용히 실천하고 있는 민들레 홀씨 같은 사랑이 조금씩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영남 수사가 민들레 국수집과 더불어 주력하고 있는 것은 ‘민들레의 집’ 운영이다. 국수집 주변에 방을 얻어 노숙자들 몇 명씩 같이 살게 하는 것이다. 현재 화수동에만도 6-7개의 민들레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을 중심으로 각자 흩어져서 기거하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국수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간다. 식구 중 누군가에게 생일 같은 특별한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서 중국집에 가기도 하고 한 사람이 병원에라도 입원하면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여전히 알코올이나 게임에 중독되어 있는 식구도 있다. 민들레의 집은 느슨한 공동체이다. 상처 많은 식구들이 자기 몫을 제대로 해내는 한 사람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할 수 없지만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갔다가도 외로울 때는 언제든 몇 번이든 찾아올 수 있는 고향집 같은 곳이 되고 싶다는 것이 서영남 수사의 바람이다. 사실은 교정사목이 본업? 서영남 수사는 수도원 시절부터 해오던 교정사목 일을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다. 재소자 형제들과 편지를 나누는 틈틈이 한 달에 두 번 청송 교도소로 면회를 가서 상담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청송 교도소는 무기수와 장기수들이 많은 곳으로 한 달에 꼭 필요한 최소생계비인 만 원조차 보내주는 이 없는 외로운 형제들이 많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다. 박용기 꼴베 형제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서른 살에 청송 교도소로 온 후 16년째 그곳에 머물고 있는 그는 서영남 수사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갔다. 조금뿐인 자신의 영치금과 공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털어 민들레 국수집을 위해 쓰라고 내놓는 그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몇 년 후면 출소하는 꼴베 형제는 몇 년밖에 안 남았다며 기뻐한다. 출소 후에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와 오 척 담장 밖에서 만날 날을 서영남 수사는 손꼽아 기다린다. 서영남 수사는 사형을 앞둔 최고수 형제들을 만나며 사형 집행 반대에 대한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어떤 최고수도 정의롭지 못한 자비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사랑 없는 정의는 사실 폭력이다. 사랑과 정의는 함께 가야 한다. 그럴 때에만이 사랑이 사랑으로서 정의가 정의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