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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비움으로써 사랑의 곳간을 채우는 우리 시대 현자들-황대권
지율 스님: 나는 소유하고 있다, 햇살과 바람과 구름을 알렉산더 대왕의 두 손을 보라|24시간 켜진 등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가|우리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은|놓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강과 카지노,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자연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간다|천성산이 나를 약초처럼 쓰는구나|내 이름 석 자가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황대권이 만난 지율: 집요한 원칙주의를 구도행으로 이어가는 수행자 박기호 신부: 이제 호화 여객선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 인간은 가장 불완전한 틈새 생활자|무소유의 삶은 비주류의 삶|“돈도 신발도 지팡이도 가져가지 말라”|강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기계로 인해 퇴화하는 인간들|세 걸음 앞선 삶|내 삶의 주인 되는 첫 번째 조건|시대의 피난처이자 쉼터|공동체에서의 행복은 스스로 발견하는 것|공동체 운동의 키워드는 무소유와 육체노동 황대권이 만난 박기호: 말씀대로 사는 신앙인 이남곡: 21세기 말, 무소유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무소유의 연습이 필요하다|진보를 연찬하라|개별 주체성이 살아 있는 ‘좋은마을’|개인주의를 넘어선 공인주의 세상|야만과 진보, 기로에 선 인류|능력만큼 일하고 능력만큼 쓸 수 있는 사회|자본주의 시장의 인간화|2060년 서울에서 태어난 A군의 성인화 과정|‘노숙인이 되어도 좋다’는 기개가 필요하다 황대권이 만난 이남곡: 진보의 브레인, 혹은 된장의 달인 임락경 목사: 사람은 섞여 살아야 한다 맞선 보고 퇴짜 맞을 바엔 내가 먼저 싫다고 하자|아침 진지는 진시에, 잠은 자시에, 술은 술시에|농자천하지대본|이치를 돌파하는 돌파리|백성의 노래와 농담|사람은 섞여 살아야 한다 황대권이 만난 임락경: 기인 가운데 기인, 보물 가운데 보물 칫다다: 인간에겐 소유권이 없다, 다만 관리권이 있을 뿐 무한한 행복으로 가는 길|자본휴머니즘에서 네오휴머니즘으로|다시 돌아가는 법을 가르친다|모든 존재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당신 뜻대로 하소서”|프라우트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황대권이 만난 칫다다: 자본주의 이후의 ‘이상국가’ 건설자 서영남: 무소유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줄탁동시의 마음으로|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처럼|내게 콩깍지를 씌운 사람들|이웃이 희망이다|함께 꿈꾸고 이뤄낸 1만 원의 기적|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가 보물이 되는 곳 황대권이 만난 서영남: 내가 만나본 가장 경이로운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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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세워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강을 허물고 카지노를 지어야 할까요? 우리 삶의 터전을 밀어내고 디즈니랜드를 지어야 할까요? 그것들을 지을 때 그곳에 살던 수많은 생명체들은 어떻게 될까요? 지역민들은 개발사업이라고 좋아하더군요. 하지만 그 누구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한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생명들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답만 내릴 뿐입니다. --- p.36
이 땅이 아파서 나를 약초처럼 쓰는구나, 천성산이 나를 불러다가 쓰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주어진 소임이 있어 바쁘니 대신에 게으르고 한가한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여겼습니다. 다른 곳에는 쓸모 없는 나를 불러다 이 일을 시키는구나, 싶었지요. 그렇게 주어진 일이기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일하는 것입니다. --- p.46 신앙생활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열심히 교회에 다녔고 가난한 이에 대한 나눔도 열심히 실천했다고 한다면 훌륭하게 신앙생활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결합되어 살아가는 세계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구조인데 자발적인 소비문화의 노예로 살아갔고 생태계를 파손하며 살아갔다면 그 종말의 결산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열심히 산 것은 인정하지만 엉뚱한 목적지에 도착한 여객선이란 말이지요. 스승이 가르쳐준 대로 참된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 p.76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은 전쟁입니다. 전쟁을 멈추게 하는 길은 최전선의 병사가 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라고 설파했습니다. 가장 쉬운 해답이지만 실천은 어렵고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내가 총을 내려놓으면 누군가 나를 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지요. 무한 질주의 타락한 문명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은 과학도 인문학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의지입니다. ‘나는 필요 없다’고 거부하는 삶이지요. 춘향이가 변 사또에게 절개를 굽히지 않은 무기가 뭡니까? ‘난 부귀영화 필요 없다’는 거절이었습니다. --- p.98 2009년의 통계를 보면 연 소득 2400만 원 이하로 살아가는 가정(4인 가족 기준)이 2300만 명입니다. 4인 가족이 한 달에 200만원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절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정들도 대부분 집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고 식구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정에서 다달이 나가는 통신비를 생각해보십시오. 월 200만 원의 수입 가운데 20%가 통신비로 사라집니다. 이제 엥겔계수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쓰이지 않습니다. 대신 통신비계수라는 단어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 p.101 예수, 공자, 석가는 대략 2000~2500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오랜 인류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를 생각하면 2000년은 거의 동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동물계로부터 확연히 금을 긋는 인류의 선각자들이 나타난 것이지요.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인 삶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도와 물질 등의 발전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기의 진보는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을 안됐는데 가능한가?가 아니라 2000년 동안 준비해온 토대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토대 위에서 인류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가치, 즉 이기심을 넘어서지 못하면 자멸하는 위기 국면이 옵니다. --- p.161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자꾸만 나누고 분류하려 합니다. 노인은 노인시설에서 살게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장애인들은 시설에서만 살게 합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는 수학자만 살고, 어느 마을에는 화가만 살고, 어느 마을에는 운동선수만 살면 어떻게 될까요? 세 마을 사람들 모두 불행해집니다. 노인, 일반인, 어린아이,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섞여 살아야 합니다. 서로 어울려 살면서 서로를 돌보고 이끌고 배우고 가르침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고 외롭지 않습니다. --- p.232 달러가 급락하여 달러 체제에 이상이 생기면 세계 교역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각 나라가 무역을 하는데 달러를 받지 않아 교환에 문제가 생기면 대체통화가 나오기 전까지 세계무역은 중단됩니다. 물건은 생산되어도 교환이 안 됩니다. 1940년대에 일어난 인도 벵갈의 기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추수가 그리 크게 줄지 않았는데도 굶어죽은 사람은 무려 수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주민들이 먹을 전체 식량이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이 벵갈 기근은 사재기에 의한 교역의 중단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창고에는 식량이 가득 쌓여 있어도 그 옆?서는 사람들이 굶어죽은 것입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 p.261 우리는 인간답게 사는 것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알고 있습니다. 1등부터 주지 않고 약자부터 먼저 주면 세상은 행복해집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구명정에 탄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아이들이 가장 먼저 타고 여자들이 두 번째로 타고 노인들이 세 번째로 탔습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남자들 중에서 어리고 병약한 사람부터 태웠어요. 그리고 나머지 건강하고 젊은 남자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그 순서가 우리 사회에서도 지켜지면 참 좋겠습니다. --- p.336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을 다 내놓아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제 아내인 베로니카를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옷가게를 하는 아내는 그동안 민들레 국수집 식구들과, 감옥에 있는 형제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항상 더 못 주는 걸 안타까워합니다. 사랑만이 용기를 내게 합니다. 무소유를 애기하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사랑이 있는지, 정말 나만 사랑하고 있진 않은지, 나는 없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 p.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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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채움’의 비결은 비움에 있었다
불제자의 세상 귀의, 지율 스님 인간의 소유욕이 빚어낸 비극의 4대강 현장을 지키는 지율 스님. 천성산 싸움 이후 두메산골에서 하루에 5천 원짜리 손수건을 한 장씩 수놓아 팔며 생계를 꾸리다 생명의 신음소리를 듣고 다시 4대강 현장에 나왔다. 스님이 생각하는 무소유는 어떤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24시간 켜진 불 밑에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우리 삶에 무엇이 더 들어와야 하는가? 뭇생명의 터전인 강을 밀어내고 카지노를 세우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외등도 없이 두메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며 바람의 결을 느끼고 햇살을 받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 행복을 누렸던 스님은 30년째 입고 있는 ‘누더기’ 승복을 걸치고 오늘도 강가를 지킨다. 말씀대로 사는 신앙인, 박기호 신부 자기 무덤조차 갖지 못했던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소백산 자락에 ‘산위의마을’ 공동체를 꾸렸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라면 대량생산에서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인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현상에 편승해선 안 된다는 것이 박 신부의 지론이다. 지금 당장 ‘호화 여객선’에서 뛰어내려 구명정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다. 박 신부에게 ‘공동체 운동’은 노아의 방주이며, 구명정으로 갈아타는 일이다. “하느님이 노아를 통해 방주를 준비하게 하셨듯이, 그것을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이 시대의 부르심으로 해석하고 공동체생활로 응답하는 것”이다. 박 신부는 기술문명의 만취 상태에 취해 더욱 불행해진 현대인들에게 공동체가 ‘여기에 피난처가 있다, 여기에 암초가 있다’라고 알려주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공동체생활을 하지 않는 도시생활자들은 어떻게 방주를 찾아가야 할까? 박 신부는 자기혁명을 위한 테스트를 주문한다. “맨발로 거리를 걸어본다든지, 음식점에 가서 일정 시간 일을 해주고 남은 밥을 얻어먹는다든지, 노숙인들과 밤을 새워본다든지.” 진보주의자의 진리 실험, 이남곡 60평생을 진보 운동에 헌신한 이남곡 선생은 인류 최고의 로망이 ‘무소유 사회’이며 그것은 인류가 존속하고 진화하는 한 반드시 도래할 시나리오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근거로 무엇보다 인류는 이미 1970년대에 그에 필요한 물적 토대를 갖추었다는 점을 역설한다. 인류 전체가 쓰고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총수요를 초과하는 총공급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제 혼자만 잘 살려는 ‘야만’과 더불어 잘 사는 ‘진보’의 기로에서 인류는 고도의 지적능력을 가지고 현명한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무소유 사회는 거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공자가 70세에 도달했다는 ‘군자’의 모습, 즉 욕심대로 마음을 따라도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는 상태에 보통사람들이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무소유 사회의 전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남곡 선생의 진리실험을 통해 확인한 바, 21세기말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맨발의 성자’의 제자, 임락경 목사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제자답게 초등학교 4학년 때 평생 헌옷만 입고 살기로 결심했고, 지금껏 어겨본 적이 없다. 또한 그때 “공무원은 없어도 괜찮고, 목사가 없으면 사람들이 더 잘 사 것 같고, 농부가 없으면 다 죽을 것 같기에 ‘촌놈’이 되기로 작정”했고, 지금껏 손에서 흙을 놓지 않는다. 임 목사의 무소유 철학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수천 년 동안 조상들이 해온 대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친환경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 좋은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릴 일이 없고, 병에 걸렸을 때도 음식으로 다스릴 수 있다. 그렇게 살다 “죽을 때 유기농 포도 한 송이 먹으면” 될 텐데, 그렇지 않고 포도당을 꽂은 채 죽으려면 병원비도 벌어야 하고, 높은 학교에 보내서 의사도 만들어야 하니 돈이 무척 많이 필요하다. 그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해치며 일하는 것이 우리 삶의 아이러니다. 영성과 경제의 조화, 칫다다 경제학 박사로 미국식 자본주의를 공부하고 정점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본주의의 폐해를 목도한 후 전부 버리고 내려와 스승 사카르를 만났다. 사카르는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모델 ‘프라우트’를 제창한 인도의 성자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등 인류의 지성들이 주목하는 ‘프라우트’는 영성에 바탕을 둔 경제모델로 인간을 넘어 식물과 동물, 무생명체까지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네오휴머니즘을 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가장 많이 가진 자가 가장 적게 가진 자의 5배 이상을 갖게 되면 그 사회는 불안해진다.’ 그런데 경쟁을 최우선가치로 여기는 지금의 자본주의사회에선 수만 배의 차이도 용인한다. 88만원세대의 출현, 자영업자의 몰락, 미국발 금융위기, 부의 극?적 편중에 따른 실물시장의 축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불안은 이첹 임계점에 도달한 듯하다. 세계 도처에서 ‘프라우트’ 실험에 나선 칫다다의 ‘아난다마르가’에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비움으로 채운 사랑의 곳간 주인장, 서영남 2003년에 자본금 300만 원을 가지고 차린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은 오늘도 500명의 손님들에게 밥을 대접하는 기적의 행렬을 이어간다. 예수님처럼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은 주인장의 모습이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주인장에게 무소유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나를 위해 쓰고자 하면 수백억 원으로도 모자라고, ‘나는 없다’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쓰고자 하면 300만 원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주인장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늘도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밥상을 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