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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벽, 다시, 숨, 내 속의 타인, 숙주, 함께 있어도 혼자, 너는 너를 의심했다)
유리 벽 남편의 과보호를 받던 지수는 결혼 7년 만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동창과 여행계획을 세운다. 여행 당일, 남편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견디며 집을 나서는데 함께 가기로 한 친구에게 문제가 생겨 홀로 여행길에 오른다. 하필이면 그날, 성폭행범이 여행지에 출몰한 뉴스가 뜨고, 목적지인 산장의 주인은 할머니가 아닌 낯선 남자였다. 그는 성폭행범과 닮았다. 여자는 탈출할 기회를 놓쳐 남자와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공포와 마음속 불안이 합쳐져 여자는 산장 남자를 범인으로 확신했고 의심은 증폭된다. 다시, 숨 이탈리아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화자는 코로나 시국에 버틸 수 없어 귀국하게 된다. 공항에서 감염자라는 걸 알게 되고 후각을 잃었다. 함께 살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옛집이 있던 자리엔 빌딩이 들어섰다. 상실감에 빠진 남자는 회복의 실마리인 후각을 되찾으려 갖은 노력을 하지만 그럴수록 삶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운다. 남자는 절망적인 현실에 죽음을 생각하고 조력자를 찾는다. 조력자는 혼자 사는 노파의 금고를 털자고 제안한다. 결정적 순간에 남자는 노파의 집에서 옛날 할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 냄새를 맡게 되고 삶과 다시 연결된다. 내 속의 타인 동갑내기 고모와 조카 외갓집이 부르주아인 조카는 성장 배경과 외모부터 남달랐다. 반대로 비움이는 오빠와 엄마의 죽음으로 사돈집에 얹혀산다. 발레리나인 채움이는 고모인 비움이를 비서처럼 대하고 남자친구까지 가로채려 한다. 사돈어른은 외손녀인 채움이를 이용하여 다시 권력을 손에 쥘 계획을 세우지만 채움이는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귀국하여 공연이 있던 날, 비움은 자신의 남자친구를 유혹한 채움에게 정비공과 놀아 난 사진을 대포폰으로 전송하며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한다. 공연을 망친 채움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한 뿌리에서 시작된 고모와 조카. 두 자아의 분열을 통해 개인의 자아가 어떻게 침식되는지, 타자의 욕망과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될 수밖에 없는 존재……. 숙주 의심병이 있는 아버지.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가족.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삶을 살아온 오빠와 태이. 엄마는 그런 아빠를 몸속 짐승만 사라지면 좋은 사람으로 감싼다. 참다못한 오빠는 엄마를 숙주라며 폭행했고 가정은 부서진다. 화가인 태이는 뱅갈보리수에 눈동자를 그려 폭력을 감시하는 내면을 표현한다. 폭력을 낳고 폭력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 엄마에 대한 양가적 심정이며 그녀 자신을 향한 시선이기도 하다. 함께 있어도 혼자 코로나로 남편을 갑작스럽게 먼저 보내게 된 할머니는 슬픔과 외로움을 이겨내려 라인댄스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회원들은 춤출 땐 함께 하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만남을 시도할수록 대화는 단절되고 자기중심적이라 인간관계의 피상성과 군중속의 외로움과 내적 고립은 깊어간다. 할머니는 키우던 개와 소통하며 위로를 받으며 남편의 부재를 메운다. 공연을 간 요양병원에서 과거 근무했던 미술관 관장을 보게 되지만 늙음과 치매로 과거가 사라진 재회는 그녀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할머니는 남편 제삿날 어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개에게 남편과의 추억을 들려준다. 너는 너를 의심했다 가족이 함께 간 바다. 갯벌로 여행을 갔지만 남편은 아내와 딸과 어울리지 않고 감시자 역할만 한다. 자신들 옆에 자리 잡은 낚시꾼들이 신경 쓰이는 남편, 남자들 중 젊고 건장한 남자에게 아내가 눈길을 주고 있다고 의심하는 남편. 자신의 불안과 집착이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억압적 시선을 견디기 힘든 아내는 언니 집에 잠시 가 있겠다며 딸과 함께 사라진다. 숨 고르기를 한 뒤 아이의 아빠라서 돌아왔다며 과거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무능과 공허를 아내에게 투사하고 의심은 깊어진다. 희망이 없는 관계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결심한 아내는 남편의 왜곡된 욕망에 맞서,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 머릿속에 이미 구상하고 있는 정답인 최악의 대답을 해주며 결혼의 균열을 예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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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번에 출간된 『내 속의 타인』에서 우리의 마음에 끊임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감정들, 시기와 질투, 사랑과 증오, 성취와 좌절이 만들어 낸 사건들은 피상적 관계든 지나친 밀착이든 우리 모두를 피로하게 만들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누군가 내 소설을 읽으며 삶의 유한성과 순환성을 은유적으로 체험했으면 좋겠다. 하루 앞, 아니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도 예측할 수 없으면서 우리는 미래를 믿는다. 내 것이 될 수도 그럴 기회가 영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것만이 희망이기에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 끝이 죽음인 줄 알면서도. 매일매일 다른 장면이 연출되는 일상 속에서 인간관계는 틈을 넓히고 결집력 약화에 영향을 미친다. 「함께 있어도 혼자」에서 코로나로 남편을 허망하게 보낸 노부인을 만난 아래층여자의 말이다. “요즘 할아버지는 통 안 보이세요. 항상 두 분이 같이 다니시더니…….” “아…… 네.” “어디 가셨나 봐요.” “네, 좀 멀리.” “왜 같이 안 가시고” “그러게요. 같이 갈 걸 그랬나…….” 달이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입가에 번진 미소는 욕조에 풀어 둔 거품처럼 쉽게 꺼지지 않았다. 추억은 늙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달이가 낑낑댔다. 녀석의 검고 촉촉한 코에 입을 맞췄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파먹고 산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 본문 중에서 이처럼 현대인들은 모든 일상에 무관심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일상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잊고 살진 않는지, 내 상처가 타인의 몸에서 발견될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와 마주한 적은 없었는지……. 이번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을 간추리다 보니, 구성이 존재의 심연을 탐색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내 의식이 거기에 닿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소설들을 통해 질문하고 싶었다. 나는, 우리는 누구로 존재할까? 존재는 온전한 자율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한 개인이 사회, 기억, 가정이란 제도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해체되는지를, 인물을 내세워, 내 손끝에서 태어나는 문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부족한 부분도 과잉된 면도 있을 수 있지만 경계에서 타인의 반영체로 만들어진 너, 나. 우리. - 「작가의 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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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의 소설을 읽으려면 마음을 내놓아야 한다. 『내 속의 타인』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불행이 불러일으키는 기시감 때문이다. 그들은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 보였다.’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라도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지 않던가. 그들처럼 슬픔으로 부서진 적이 있다면 ‘누구 탓도 아니지만,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다.’는 말에 담긴 도저한 절망 또한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임수진의 소설은 오래된 다짐 같다. 뜻밖의 순간에 찾아와 내가 누구였는지를 돌아보게 하며 어쩌면 나의 붕괴를 막아낼 수도 있는 그 마음이다. -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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