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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소데의 손
2. 문고요비 3. 눈,눈,눈 4. 오니에게 먹히다 5. 연기를 잡다 6. 깔깔 웃는 여자 7. 노인의 얼굴을 가진 벌레 8. 옷깃을 세운 옷 9. 창녀의 머리카락 10. 강가의 갓난아기 |
Natsuhiki Kyogiku,きょうごくなつひこ,京極 夏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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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라는 기능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정말이라면 웃지 못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가. 분명히 학생들도, 늙은 교사도, 그 남자도 실로 자연스럽게 웃는다. 의미도 없이 차별한다. 거기에는 아무 사상도 없다. 그래도 웃는다.
… 왜 나는 웃지 못하나. 스미코는 거울을 응시했다. 깔깔깔. … 조소당하고 있다. 움찔하고 얼굴을 든다. 창 밖 담 너머의 하늘 가득히 큰 여자가 스미코를 조소하고 있다. … 아줌마, 빨간 입술, 저것은 아줌마다. 스미코는 창을 열었다. 깔깔깔. 아니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 아줌마는 소리내어 웃고 있다. 하늘 가득히 퍼져서 우스꽝스럽고 왜소한 스미코의 모습을 경멸하며 배를 잡고 비웃고 있다. 아아, 저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아주 이상하잖아 … . 스미코는 그 모습을 보고 아마 태어나 처음으로 웃었다. 와하하하, 와하하하. 우습다, 우습다, 우습다. 그러나 거울을 보고 있지 않던 스미코는 자신이 웃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대로 시계가 끊어졌다. 야마모토 스미코가 폭한에게 습격당해 웃음 띤 얼굴을 한채 고민하다가 죽은 것은 1952년 섣달 그믐이 다가온 연말의 일이다. --- pp.258-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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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코드 중 하나가 '공포' 또는 '엽기'다.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른바 N세대들에게 공포와 엽기는 하나의 코드이기에 앞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사이버상에서는 수백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운영중이며 오프라인에서도 공포와 엽기 관련 카페나 소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올 한 해 상영된 국내외 영화 중 공포물은 그 양에서 압도적이다.
공포와 엽기에 대한 관심은 출판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90년대 대표적인 젊은 작가 백민석은『목화밭 엽기전』을 통해 기성 제도와 권력, 억압에 대해 남녀 주인공의 엽기적인 행동과 광기로 저항했다. 시인 김언희 역시 첫 시집과 이어지는 두 번째 시집『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저 여자』를 통해 유감없이 엽기성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문화 수용 방식과 표현의 자유를 통해 그동안 억압받아 왔던 폭력과 광기의 본능이 분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서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반면 한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기성 세대와는 다르다는 신세대의 구분짓기이기도 하며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하위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초록배매직스에서 출간한 쿄고쿠 나츠히코의 소설『백귀야행』은 기본적으로 공포와 엽기라는 맥락에 닿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공포와 엽기가 최근의 경향처럼 위악적이거나 역겹지 않다. '빈틈없는 일상 생활이 흐트러질때 사람은 마음속에 숨어있는 어둠과 직면한다'는 광고 카피처럼『백귀야행』의 공포는 차분하지만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백귀야행』은 모두 열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교사, 금 세공사, 소방사, 경찰, 작가 등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만의 경험에 의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지니고 산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자신의 목에 매달리는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 학교를 그만두고 손을 두려워하는 교사, 부정한 아내를 옹이 구멍으로 훔쳐보다 이를 안 아내가 자살하자 누군가의 시선에 쫓기는 금 세공사, 전쟁에서 부상당해 자신도 모르게 인육을 먹고 난 뒤 자신도 오니(鬼)에게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직장인, 어릴때 자기 앞에서 분신한 사람을 보고선 연기에 집착하는 소방사 등 과거 경험은 현재를 보이지 않게 얽매고 압박한다. 결국 순간의 흐트러짐이 그들을 공포의 세계로 이끌어 파멸시키는 것이다. 제목은『백귀야행』이지만 책에는 오니라 불리는 일본의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등장하는 단편이 있긴 하지만 그 오니는 실재의 오니가 아니다. 귀신을 두고 실재, 비실재를 나누는것은 우습지만 적어도 작품 속에서의 오니는 바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공포가 투사되는 환시고, 환청일 뿐이다. 결국 오니는 정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공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 쿄고쿠 나츠히코는 인간 내면의 억압과 두려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구성을 통해 표현했다. 여운이 많은 문장은 독자를 주인공의 마음속으로 서서히 밀어넣어 주인공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사지 절단에 피가 난무하는 호러 영화보다 인간 근원의 심리를 교묘하게 건드려 공포를 느끼게 하는 히치콕류의 영화가 때로 더 무섭다.『백귀야행』의 공포가 바로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