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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시
빗방울화석 시집 열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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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 앞에

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신대철
- 민북 마을 아이들
- 바람의 시
- 민통선
- 전망대에서 전망대로
- 눈 발자국
- 답사 일지
- 장바위
- 대간령으로
- 야간 산행
- 천상데미
- 오서산 2
김일영
- 갯바닥 건너
- 봄은 왜 오지도 않고 겨울은 왜 또 가지도 않는가
- 함성
손필영
- 검은새
- 갇힌 길
- 물총 한 줄기
- 교동도 망향대에서
- 백암산 정상에서
- 김현식 선생님
- 널문리 미루나무
- 난민
조재형
- 선포했다
- 남태령 대첩
- 아이들의 미소로 지워지는 선
- 동해북부선
- 그대 있는 곳이 만물상 그대 있는 곳이 망양대
이성일
- 정지!
- 강물은 어디서 맑아지는가?
- 너지? 너 맞지?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 흩어진 산
- 바다가 아니면
최수현
- 황금빛 자작나무
- 마이산 천지탑에서
이승규
- 안국역
- 안국역 2
- 전야
- 봄의 선고
- 식목일
- 흐른다는 것이
- 양구 밖에서
- 교동도 구름
- 주황색 잠수함
- 녹슨 수평선
박성훈
- 수상한 밤에
- 응원봉
- 마중
장윤서
- 교동도 난정 전망대에서
- 당부
- 없다
- 계엄이 성공했다면
-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 다시 만난 세계
- 동물원에서
- 키세스단
- 가족을 위하여
- 절교
- 주저하는 이들에게
- 시인의 자리
- 울린다, 온다
- 메아리 하나
오하나
- 2018년 4월 27일
- 철책
한국호
- 교동도 망향대에서
- 얼어붙은 시간

2 길 안의 집

신대철
- 개복사나무
- 자연의 시간 1
- 점심골
- 마곡동 1
- 마곡동 2
김일영
- 울타리
- 춘백
손필영
- 연밥
- 칠면초
- 길 안의 집
- 민둥산에 오르는 샘
- 탑골승방 우물
- 포도원 언덕
- 북정동 우물
- 날아간 비둘기
- 마사토 방우산장
- 코로나 19와 실시간
조재형
- 박산골
- 덕유평전에서
- 수리취
- 상금정 할아버지
- 무인도에서
- 내성천 1
- 내성천 2
- 제비
이성일
- 악성 댓글 같은
- 혓바늘
- 개구리, 날다
- 까마귀
- 원형탈모
- 뜨겁지 않다면, 빛은
최수현
- 은하
- 자작나무 2
- 바다
- 열셋
- 얼굴
이승규
- 니시와세다 언덕에서
- 김중업(1922~1988)
- 김종팔 선생님
- 비둘기낭폭포
- 가을 가기 전에
장윤서
- 나니 11
- 나니 12
- 나니 13
- 나니 14
- 나니 15
오하나
- 아 소리 내며
- 유월
- 고장 난 음수대
- 참나리
한국호
- 꽃다지 같은

저자 소개 1

저빗방울화석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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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화석 시인들은 1994년부터 백두대간과 정맥을 타면서 남북 분단의 이념적인 갈등, 생태계의 환경 문제 등 당대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공동체험을 바탕으로 『산늪』 『곰배령 넘어 그대에게 간다』 『빙폭』 『금강산에 살다 죽어도』 『천지에서 바이칼로』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산상초원』 『천장호수』 『야생말들이 툭툭 얼음장을 두드린다』 등 아홉 권의 공동시집을 펴냈고, 백두대간 시집 『혼자 걸어도 홀로 갈 수 없는』과 백두대간 정맥 시집 『나는 흔들린다, 속삭이려고, 흔들린다, 귀 기울이려고』와 시선집 『야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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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9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130*205*20mm
ISBN13
9791189522063

책 속으로

‘임진강 물굽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일대가 DMZ입니다’

태풍전망대에 들어서자
한 병사가 지휘봉으로
상황판 한가운데 점선을 가리킨다
산과 마을과 논밭이 있던 자리에
전선과 고지 이름만 남아 있다.

반세기가 흘렀어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아직도 방향 잃고 흔들리는 깃발들

그날 새벽 4시에 비상
두 발에 모래주머니 차고
완전군장으로 걷고 또 걸어
한밤에 기지에 도착
초병이 자물쇠 풀고 철문을 열어주었을 때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한번 들어가면
무엇이 되어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안개 모퉁이길

흙덩이 구르다 멎으면
칠흑과 번개와 심장이 뒤엉키고
동족을 향해 밤낮
노리쇠 후퇴, 장전, 고정
오발에 지뢰에 죽고
불안으로 공포로 살아
쭈그러진 반합에 하루를 채우던 또 하루

집 나간 아내 소식을 기다리며
속 태우는 전우를 위해
푸르디푸른 하늘을 믿고
답장 없는 편지 대필하며 수없이 쓴
부모님 전상서, 본제입납

지뢰도 이념도 경계심도 잊은 채
한낮에는 콘크리트 총안에 붙박여
벌거벗은 아이들과
강 넘나드는 꿈 이어 꾼
그 길 망연히 바라보는 동안
머리끝을 울리는 소리

‘앞에도적?뒤에도적?’
‘탄핵하라내란수괴탄핵하라’

강물은 숨죽여 흐르고
벼랑 울리며 바다로 흐르던 바람이
한 자락씩 벽 차고 오른다
깃발 후려치고
그 자리에 드높이 떠 있다

먼 까마귀 떼 따라 더 멀리
먹구름은 황강댐 위에서 흩어지고
다시 한번 일렁이는 바람을 향해
펄럭이는 태극기, 옆에 유엔기
--- 「바람의 시」 중에서

국회 안으로 완전 군장을 한 군인들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는 모습이 TV 화면에 보였다.
콧줄을 끼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말을 잊은 엄마가 눈물을 흘린다. 주름골마다 눈물이 스몄다.

거리는 소용돌이가 되었다.
군홧발 소리도, 총성도 없었지만.

펄럭이던 깃발이 갈라져 찢어졌다.
그들은 손을 뻗어 잡지 않았다.
검은새가 울며 날아다녔다.
--- 「검은새」 중에서

누가 문을 두드린다
모두가 비상계엄의
집단불면에 시달리는
이 밤에

흙 묻은 발로는 오를 수 없는
아파트 4층 베란다 창문을
두드린다, 나뭇가지다

꽃 필 때 잠깐
꽃잎인지 눈발인지
해 들지 않는 뒤꼍을 환히
비추던 왕벗나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망나니 윤석열의 칼바람에
잊었던 흙내가 묻어 온다

치솟는 집값에, 재개발
부동산 투기 바람에
묻어 온다. 국회 본관
뒷마당에 진입한 헬리콥터
날개 소리가 묻어 온다.

강제철거 통지서와
시뻘건 래커로 휘갈겨 쓴
스프레이 페인트 냄새에
묻어 온다. 국회 앞 대로에서
장갑차를 막아세우던
시민들의 분노가

공포로 묻어 온다. 나지막한
집들의 벽과 지붕을 무너트리던
포클레인이 지나간 자리에
집인지 상품인지
층층이 쌓아놓은 매물에 매달려

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에
울고 웃는 꽃들이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중에서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 「봄의 선고 -안국역 4」 중에서

이 시국에 시인은
민중의 어디쯤 있어야 하나

민주 시민에게 화장실을 못 쓰게 한다며
연로한 건물 경비원 분에게 욕설하는
유튜버들 맨 앞에 서 있어야 하나
며칠을 밤을 새웠는지
묵묵히 자리하고 있는 키세스단
그들 뒤에서 은빛 주름들 하나하나 펴줘야 하나
유명하지 않은 시인답게
안국빌딩 후미진 곳
흡연 장소를 서성거려야 하나

한 진행 요원이 햇살처럼 모두에게 외친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서 있지 말고 이동해 주세요
--- 「시인의 자리 -20250402 안국역에서」 중에서

열쇠전망대에서 보았다.
민가 하나 없는 땅에
겹겹이 쳐진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 군사분계선 추진 철책
사계청소 대상이 된 나무 풀
경계선이 된 길 강
전투 고지가 된 산 능선
모든 지형지물이 감시받는 사이
그냥 풀 그냥 나무 그냥 강 그냥 산 그냥 길은 없고
구름도 적 바람도 적 햇볕도 적
적만 있고 사람은 없는 땅을 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이 통제 구역을 벗어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 철책이
헌법재판소 앞까지 따라와
피켓을 들고 분노에 찬 구호를 외치는
내 또래 여자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대치시키고
적으로 만드는 것
내가 어디를 가든 어디서
자유롭게 걷고 먹고 자고 일하고
생각하든 나는 이 분계선에서 한계선에서
한 발짝도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철책이 칭칭 감긴 땅에
서 있는 것 보았다.

--- 「철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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