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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안개 은숙의 비밀 새 친구 이른 아침의 충격 비 오는 일요일 무지개 여름 방학 새로운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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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도시에 산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요. 죽자 살자 노력했지만 남는 건 바닥난 돈주머니였습니다.’
--- p.12 너무 갑자기 큰 슬픔에 싸여 버려서일까? 호기는 가슴 밑바닥에서 울리는 양심의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막 지갑을 버리려는 순간 밖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 p.19 그런데 도가뜸 모습이 낯설었다. 눈에 익던 초가가 아니고 알록달록 색깔 슬레이트 지붕으로 싹 바뀌어 있었고 꾸불꾸불 흙길은 반듯한 시멘트 길로 바뀌어 있었다.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는 새마을기가 부는 바람을 타고 펄럭거렸다. --- p.27 양초와 성냥을 받아 집으로 향하는 호기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까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가 자꾸 귀에서 잉잉거렸다. 유신헌법. 호기는 자세히 모르지만 서울에 살 때 대학생들이 데모하다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 p.42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호기는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 p.54 언젠가 서울에서 내려온 외삼촌 친구가 “아니, 자네 밥 짓고 농사지으려고 그 비싼 공부를 했나?” 하고 나무랐지만, 외삼촌은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 p.57 호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히 돈을 묻은 자리가 파헤쳐져 있었다. 누군가가 손을 본 것 같았다. 호미를 찾을 새도 없이 호기는 손으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 p.82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약간의 돈을 벌겠다고 조금 편해 보겠다고 마음을 나쁘게 먹어선 안 돼.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더 먼 장래를 위해서 큰 희망을 품어야 해.” --- p.97 내가 혼자 산다고 했지만, 혼자가 아니다.창숙이 이모네, 은숙이 외삼촌, 선생님이 계속해서 나를 돌보아 주신다. 고마운 분들이다. 진홍이 형도. --- p.99 네가 나의 희망이듯이 나도 너의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 p.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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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서 시작된 한 소년의 생존과 성장 이야기
1970년대, 산업화의 거센 물결은 농촌을 텅 비게 하고 수많은 이농민을 도시로 몰아넣었다. 『빈집의 아이』는 바로 그 격변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소년의 운명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주인공 호기는 부모를 잃고 서울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텅 빈 옛집에 홀로 남는다. 하지만 이 ‘빈집’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그것은 상실과 고독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무게이자,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가능케 하는 희망의 공간이다. 호기는 두려움과 배고픔, 차가운 외로움을 견디면서도 점차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법을 배워간다. 작가는 소년의 시선으로 당시 한국 사회가 겪은 급격한 변화와, 어린이가 감내해야 했던 삶의 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빈집’에서 출발한 이 성장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강인한 회복력을 일깨우며, 잃어버린 것들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선사한다. 독자는 이미 호기의 빈집에 함께 발을 들여놓으며, 소년의 고단하지만 꿋꿋한 삶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게 된다. 1970년대의 그림자 속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담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역사적 풍경을 교차시킨다. 새마을운동의 깃발이 마을 곳곳에 펄럭이고, 유신헌법의 무거운 그림자가 골짜기마저 뒤덮던 시대. 어린 호기의 눈에도 그 모순된 풍경은 분명하게 각인된다. 어른들의 술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유신 비판, 대학생들이 잡혀간다는 소문, 그리고 마을의 변화는 호기에게 ‘나라’와 ‘권력’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어렴풋이 인식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독자에게 한 소년의 삶이 결코 개인적 비극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역사 속에 깊이 얽혀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빈집의 아이』는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본 역사적 기록이 된다. 독자는 호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질곡을 체험하게 되고, 개인의 성장이 곧 시대의 환경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공동체와 돌봄, 그리고 희망 ― 빈집을 가득 채운 사람들 호기가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결코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담임 류 선생님, 창숙 이모 부부, 은숙과 그 외삼촌, 그리고 지갑의 주인 김진홍 아저씨까지. 이들은 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호기를 지켜주고 가르쳐주는 ‘또 다른 가족’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 더 많이 감동을 준다. 공동체적 연대와 따뜻한 돌봄은 호기의 상실을 메우고, 그가 앞으로 농부가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품게 만든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호기가 이 모든 도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 간다는 사실이다. 추위와 배고픔, 빈집의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다시 일어나 방을 치우고, 땔감을 마련하며, 삶을 꾸려 나가기로 다짐한다.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몫을 하겠다는 호기의 고집은 고난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결국 진정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비어 있던 집은 이웃과 선생님, 친구의 발걸음이 오가며 점차 ‘채워지는 공간’으로 변해가지만,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보살핌 덕분만은 아니다. 호기 스스로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삶을 붙잡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결국 빈집은 ‘비어 있음’의 상징이 아니라, 용기와 성장을 통해 다시 채워지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빈집의 아이』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날 도시화와 가족 해체, 공동체의 붕괴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고, 작은 관심을 건네는 순간 그리고 스스로 설 줄 아는 용기를 가질 때, 빈집이 다시 행복이 가득한 집이 될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