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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일관되게 해석하면, [논어]의 "오도일이관지"와“부자지도충서이이의”라는 구절은 마침내 다음과 같이 훈토된다. 공자가 “나의 도는 (경험자료들을) 하나로 꿰는 것이니라”라고 말하니 이에 증삼은 “선생님의 도는 공감에 충실한 것일 따름이다”라고 풀었다. 또 [중용](10장)의 "충서위도불원"도 "공감에 충실한 것은 도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뜻이다. --- p.61
결론적으로 공감은 뇌의 거울뉴런에 의해 상대방의 신체변화와 감정을 거울처럼 시뮬레이션한다. 그것도 아주 자동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그리고 순간적으로 처리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게 공감은 인간들이 상상적 ‘역지사지’ 같은 번잡한 인위적 사유실험이 전혀 없어도 순식간에 즉각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진화한 인간본능임을 알 수 있다. 남의 감정과 처지를 실시간으로 진실하게 이해하는 데 ‘역지사지’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시간소모 때문에 유해하고, 조작과 기만의 위험 때문에 심히 미심쩍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일단 ‘자타동일시’(홉스, 루소, 쇼펜하우어), ‘상상 속의 입장 바꾸기’(아담 스미스)나 ‘타인의 관점으로 옮겨가 모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칸트, 롤스), ‘상상적 자기전치’와 ‘상상적, 관념적 대리체험’(슐라이어마허, 딜타이, 짐멜, 즈나니키), ‘상상적 재구성’(매키버), ‘사유이입적 재현’(콜링우드), ‘가상적 관점인계’(하버마스), 또는 ‘상상적 역할 채택(role-taking)’(미드, 콜버그, 쾨글러) 등과 같은 온갖 인위적 ‘역지사지’는 순전히 철학자들이 지어낸 공상물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표한다. --- p.122 초대형 들소 한 마리만 잡아도 가령 80명 단위의 수렵채집 집단이 11일 이상 먹어야 하고, 기린은 22일 이상, 코끼리는 56일 이상, 매머드는 67~112일 이상 먹어야 한다. 50톤의 고래는 562일 이상 먹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린보다 무거운 모든 초대형 동물의 거대한 식육 덩어리는, 1~2일 안에 먹어치우거나 작은 조각으로 해체한 다음 거주지로 운반하여 건조시키지 않는다면, 또는 얼음이나 영구동토층 속에 보관하지 않는다면, 다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사방에 진동시키거나 각종 벌레와 유해조수 및 파충류를 꼬이게 하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극물, 기생충, 병균 등의 병원으로 변질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소비.보관량을 넘는 모든 살코기와 기름.내장 덩어리는 불가피하게 즉시 인근의 다른 인간집단이나 동물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가족과 친족, 이웃, 이방인, 나아가 인간을 뛰어넘어 동물에게까지 미치는 보편적 동정심과 이타적 인심 베풀기는 때때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을 것이다. 이 추정에 따르면 보편적 이타주의와 동정심의 인간다운 본성은 초대형동물들의 멸종과 멸종위기를 대가로 생겨난 것이다. --- p.1518 인간은 길고 긴 수렵채집 생활 속에서 생존과 행복을 위해 동식물과의 교감과 공감을 발전시키고 진화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동식물의 정복욕과 함께 동식물에 대한 엷지만 보편적인 생명애를 유전자화했다. 또한 특정한 동물, 즉 소크라테스가 경탄해 마지않은 품성을 가진 늑대 또는 개와는 강력한 공생동맹과 깊은 공감을 발전시켜 특칭적 사랑과 심오한 동정심을 개발함으로써 은빛늑대를 거의 10만 년, 20만 년 동안 오랜 세월 순치시켜 개로 진화시켰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현생인간’으로 순치, 진화시켰다. 따라서 ‘현생인간’은 인간선택에 의한 늑대의 순치를 통해 이것과 연계되어 진행된, ‘인간선택’ 또는 ‘인간의 자기순치(human self-domestication)’를 통한 진화의 소산이다. 즉,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고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도 아니고, 자기선택적 ‘수신’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 p. 1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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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문학 연구는 몹시 가물었다. 도도히 흘러야 할 철학과 사상의 강은 메말랐고 본류를 잃어버린 분과학문들은 심층으로 천착하지 못한 채 표면에서 뿌석한 흙먼지만 간간히 일으킬 뿐이다. 이번에 공간된 황태연(동국대 정치학) 교수의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전2권, 청계출판사)은 이 메마른 학문의 대지를 적셔줄 단비와 같은 책이다.
199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래 동서양의 정치철학과 정치사상 연구에 일로매진해 왔던 저자는 정치학의 공고화를 위해 뇌과학, 신경과학, 생물학, 고고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외연을 확장하고 내포적으로는 인간의 본성과 유래, 인간과학(인문.사회과학), 인간 자체에 대해 궁구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 인간의 인식 및 이해 능력, 인간에 본유한 감정과 감각에 대한 올바른 경험적 탐구 없이 도덕률을 정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도덕제정론이나 과학적 인종주의, 인간파시즘 등의 ‘비(`)인간과학’만을 양산할 위험이 다분하므로 이 외연과 내포의 조합은 인문학자가 추구해야 할 온당한 학문적 자세일 것이다.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의 외양은 압도적이다. 공자, 소크라테스, 크세노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맹자, 에피쿠로스, 폴뤼비오스, 왕부, 주돈이, 정이천, 주희, 진순, 퇴계 율곡, 김장생, 데카르트, 홉스, 템플, 컴벌랜드, 푸펜도르프, 스피노자, 로크, 라이프니츠, 섀프츠베리, 허치슨, 스미스, 칸트, 이토진사이, 정약용, 헤겔, 쇼펜하우어, 다윈, 스펜서, 마르크스, 니체, 벤담, 밀, 딜타이, 셸러, 미드, 서티, 후설, 하이데거, 호이징거, 가다머, 아렌트, 롤스, 푸코, 콜버그, 하버마스, 마틴, 로티, 윌슨, 드발, 켈트너 등이 주요인물로 등장해 논거와 비판의 대상이 되며, 이외에도 수많은 논문들이 인용되었다. 방대한 사상과 이론의 시비곡직을 가리기 위해 뇌과학, 신경과학, 생리학, 심리학, 정신병리학, 사회생물학, 동물행태학, 진화인류학, 고고학, 고생물학 분야의 최신 연구결과들까지 객관적인 경험자료로 제공되다보니 이 저술의 분량은 무려 200자 원고지 약 12,000매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이 저술의 압도감은 인간과 인간과학에 대한 저자의 인애적 태도, 그리고 논증의 치밀함과 엄밀성에 있다. 이 책의 현실정치적 출발점은 ‘복지국가 이후’에 대한 고민이며 정치철학적 논구의 출발점은 도덕.국가이론의 ‘대전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도덕.국가이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행위의 수행자요 판단자이며 관계로서의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다시 이해의 방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 대전제의 단초를 [중용](10장)의 “충서위도불원”에서 찾아 “공감에 충실한 것은 도와 거리가 멀지 않다”로 풀이하고, ‘공감’ 개념 하나로 인간과학을 관통하는 공자주의 과학방법의 현대적 복원을 시도한다. ‘공감적 해석학’ 복원의 지난한 여정은 인간의 만듦새, 특히 감정, 공감, 내감, 변별감각의 인간본성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우선 동양의 교감, 공감, 동감 개념과 서양의 ‘sympathy’ 및 ‘empathy’ 개념을 비교한 뒤 감정의 재현 유무에 따라 공감과 교감을 구분한다. 공감의 감정재현은 흄이 주장했듯이 상상력에 의해 관념이 인상으로 전환하는 것도, 스미스가 주장했듯이 타인의 처지에 우리 자신을 옮겨 놓을 때 상상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거울뉴런’과 ‘신체감정론’이 뇌과학적으로 규명해 주듯이 뇌의 거울뉴런에 의해 상대방의 신체변화와 감정을 거울처럼 자동적으로, 순간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인간들이 “순식간에 즉각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진화한 인간본능”(p.121)이다. 그러나 공감은 무조건적이지 않으며 수의적, 자율적으로 작동한다. 내감의 쾌통·재미·미추·시비의 변별 능력에 따라 공감의 정도도 다르다. 슬퍼하는 누군가의 감정표현이 중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슬픔에 공감하고 측은지심(동정심)이 일어난다. 이때의 감정은 행위조절을 통한 개체들의 ‘서로어울림’을 위해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저자는 이런 감정들을 ‘공감감정’이라 부른다. 측은지심을 비롯하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인간의 진화와 ‘서로어울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도덕적 ‘공감감정’들로 소개된다. 반면 희, 노, 애, 구, 애, 오, 욕의 칠정과 생명, 수줍음, 호기심, 믿음, 놀람을 포함한 단순감정은 단독개체의 ‘생존’에 맞춰진 자연선택의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감정이다. “인간은 내감에 의해 자연적 형성작용과 인간행위로 이루어지는 자연과 사회의 제현상들의 중화성격을 직감적으로 변별하고 판단하는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바로 쾌통감각, 재미감각, 미추감각, 시비감각 등 내감의 각종 변별력이다.”(p.1243) 저자는 시비감각으로서의 도덕감각에 집중하는데, 그 까닭은 이를 통해 쾌통, 재미, 미추에서 벗어난 ‘도덕적 정체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로소 인간이게 하는 이 도덕적 정체성의 수립, 유지, 강화, 향유에서 나오는 도덕적 행복은 모든 행복 중에서 가장 영속적이고 따라서 인간 고유의 진정한 행복이다.”(p.1476) 우리의 유전자에 침착된 ‘서로어울림’과 ‘공감적 동정심’은 일체의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중화를 회복하려는 평등주의적 방향에서만 작동하는 ‘중화적 이타주의’에 기초한다. 이 테제를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고고인류학적 경험자료들을 총동원하여 인간에게 도덕이 생기기 시작한 800만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 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출연해 진화를 완료한 25만 년 전부터 3만 년 사이의 시기를 집중분석하여 초대형동물 사냥에서 기원한 보편적 동정심, 보편적 공감능력과 생명애의 발달, 개의 순치와 이를 통한 인간의 자기순치 등을 도출해낸다. 이 도덕감각의 진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자연선택적 진화이론을 상대화하고 ‘인간선택’을 진화의 원동력으로 규명한 것은 탁절한 분석이다. 감정적 존재로서의 인간, 현생인류의 유래, 중화와 4대 평가감각의 논거를 거쳐 저자는 ‘공감적 해석학’으로 돌아온다. 감정과 공감의 날실에 제 분과학문들의 씨실을 걸어 짠 이 공자의 인간과학적 방법론에는 하버마스의 합리적 해석도, 딜타이와 가다머의 관념적 해석도, 즈나니키의 상상적 대리체험, 매키버의 상상적 재구성, 콜링우드의 사유이입적 재현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공감과 교감의 뇌·신경과학적 구분, 단순감정·공감감정·교감감정의 개념적 구분, ‘타아의 존재에 대한 자아의 인지적 공감적 인지’ 가설, ‘주의자아(attentive ago)에 의한 주의자아의 자기인지’, 인간주의적 ‘정체성도덕’과 공리주의적 ‘생존도덕’의 구분, ‘정체성도덕과 인간의 인간선택적 진화’ 가설 등은 학문적 가치가 뛰어나거니와 그 논증과정도 미려하다. ‘공감적 해석학’이 인간과학에 가장 적절한 방법론임을 ‘공감’하며 표지를 덮는다. (서창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