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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서준환 소설 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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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마녀의 피

해설 │ 주의: 글을 쓰는 외계인이 있습니다 / 허윤진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徐俊桓

1970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2001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으며, 작가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너는 달의 기억』 『파란 비닐 인형 외계인』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다음 세기 그루브』가 있고 장편소설 『골드베르크 변주곡』 『로베스 피에르의 죽음』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프랑스 소설 『알렉스』 『일렌』 『카마유』 『로지와 존』 『어린 왕자』 『갑자기 혼자가 되다』가 있으며 영미 에세이 『무작정 소설쓰기? 윤곽잡고 소설쓰기!』 『인간의 130가지 감정 표현법』 『주말 소설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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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33g | 128*182*10mm
ISBN13
9788925554570

책 속으로

“조금만 지나면 지금까지 당신을 사로잡고 있던 온갖 감각들과 기분들 그리고 의지나 의욕 따위에서 풀려나와 아주 평안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모두 더러운 찌꺼기들이거든요. 저희가 여기 와 있는 건 그런 걸 거둬가기 위해서죠. 저희는 당신의 몸과 마음에서 그런 찌꺼기들을 송두리째 뽑아내서는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우주소각장에서 태워 없애려고 해요. 설령 그 찌꺼기들을 저희가 가져간다 한들 어디다 쓰겠어요? 그러니 그 점에 관해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희를 절대 의심하지 마세요.”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선뜻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나를 위로해주려는 것만 같아 미소 띤 얼굴로 선선히 고개를 주억주억했다. 〈본문 41쪽〉

사내는 나와 굳은 악수를 나누고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 사내의 차는 우리가 온 길을 그대로 달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국도 변의 벌판을 둘러보며 한동안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러다 하릴없이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더니 뜻밖에도 줄넘기 줄이 나왔다. 시민공원에서 사내의 손에 이끌릴 때 나도 모르게 줄넘기 줄을 주머니에 쑤셔 넣어 온 모양이었다. 나는 잘 됐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 훨씬 기력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줄넘기 줄이 파닥파닥 메마른 벌판 바닥을 후려갈기고 넘어갈 때마다 야트막하게 뽀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다시 기력이 솟구치니 몸도 가뿐해졌다. 나는 좀더 가뿐한 발돋움으로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내가 부는 휘파람 소리는 청랑하게 너른 벌판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 마치 그 휘파람 소리가 호출한 것처럼 길모퉁이를 돌아 저만치에서 차가 한 대 달려오다 멈춰서는 게 보였다. 나는 줄넘기를 하다 말고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본문 72~73쪽〉

“도대체 지하에서”
아내가 먼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그 어색한 침묵을 깼다.
“무슨 일들을 벌인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가씨는 도대체 누구죠?”
“거기선 여자랑 여자가 사랑을 나눠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나지막하고 서늘해진 목소리로 맹인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쇠지팡이를 놓은 한쪽 손으로 더듬더듬 아내의 머릿결과 어깨와 위팔까지를 쓰다듬어 내려왔다. 그런데도 아내는 멍해진 표정으로,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고 맹인 소녀의 손길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물론 남자랑 남자도 사랑을 나누구요. 아니면 여럿이 한데 뒤엉켜서 사랑을 나누기도 해요.”
이제 소녀의 부드러운 손길은 반팔 티셔츠 밑으로 맨살이 드러나 있는 아내의 팔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맹인 소녀는 계속 속삭였다.
“거기선 사람도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에요. 개가 더 이상 개가 아닌 것처럼 말이에요.” 〈본문 96~97쪽〉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로베스피에르의 죽음』 『골드베르크 변주곡』 작가 서준환의 소설집

“서준환 소설가는 독자적이다. 측량된 적 없는 현실과 공고한 환상이 교직된
그의 소설 속엔 수많은 국도들이 사방격자무늬처럼 뻗어 있거나
어떤 비행기도 내려앉아 본 적 없는 활주로들이 즐비하다.”_김경주 시인, 극작가

10년 만에 다시 독자와 만나는 서준환의 실험적 작품세계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서준환이 2005년 발표한 두 번째 소설집이다. 2001년 『문학과사회』에 단편 「수족관」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그는, 2005년 어느 출판사를 통해 소설집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을 표제작과 「마녀의 피」를 수록해 펴냈다. 단시간에 읽을 수 있는 짧은 중단편 두 편을 아담한 판형에 담았으니, 요즘 말로 일명 ‘테이크아웃 소설’이었다. 이 책은 젊은 감각의 콘셉트, 그리고 엄연한 현실성과 극단적인 환상성이 교차하는 실험적인 내용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절판되면서 독자들과 단절되고 말았다.

***
이 작품들이 나온 것은 10년 전쯤이다. 당시 나는 중단편 분량으로만 책을 내겠다는 어느 신생 출판사의 기획의도에 응해서 이 작품들을 썼다. 하지만 그 출판사는 어느 순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여기 실린 두 작품은 유실되고 말았다.
_「작가의 말」에서
***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재탄생한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실험적이고 환상적인 서준환의 초기 작품 세계로 다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재발간 소식에 반색한 시인 김경주는 “나는 서준환 소설가의 중요한 독자다.”라고 고백하면서 “독자들은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작가가 정찰해온 세계의 악천후를, 다른 세계의 속삭임들을.”이라고 추천의 말을 남겼다. 이제 우리 앞에 외계인을 만난 남자를 통해 ‘과연 현실은 없는가’ 생각케 하고(「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한 젊은 부부의 사도마조히즘적 일상이 현실/환상의 교차와 주객의 혼동 속에 전개되는(「마녀의 피」) 서준환의 작품들이 “메뚜기 떼처럼 그의 활자들에 내려앉을(시인 김경주)”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평온한 듯 잔혹한 일상 속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과의 조우

표제작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가 외계인과 조우함으로써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늦은 시각 지방 출장을 마치고 곧장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상경하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속도로를 벗어난 뒤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러다 어두컴컴한 국도 변에서 산책을 하다 길을 잃었다는 수상한 사내를 차에 태우는데, 알고 보니 그 사내는 ‘휘파람별’에서 온 외계인이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다소 당혹스럽게 전개된다.

***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모습만 사람의 형상에서 벗어나 파란 빛기둥처럼 변했을 뿐 사내는 여전히 부드럽고 온화한 인간의 목소리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사내는 그제야 비로소 이 비행접시가 휘파람별이라는 행성에서 날아왔으며 자기 또한 그 행성에 사는 외계인이라고 털어놓았다. 자세히 보니 사내의 모습은 다시 파란 인광의 입방체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팔과 다리 그리고 몸체의 형상을 갖춘 비닐인형의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았다.
_「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에서
***

‘나’는 흡사 완구점에서 파는 비닐인형처럼 보이는 외계인을 따라 비행접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찌꺼기들’을 거둬들여준다는 말에 혹해 ‘우주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그로 인한 증상은 인간의 감각과 기분, 의지, 의욕, 욕구의 상실이다. 출근은커녕 먹지도, 말하지도 않게 된 ‘나’는 10년간 근속해온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족에게서까지 버림받지만 그 어떤 상실감이나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휘파람을 불며 줄넘기를 하면 버텨갈 최소한의 기운이 생겨나기에 ‘휘파람 줄넘기’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면 그만이다.
서준환은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속삭인다. 우리가 이름 붙인 ‘지구’라는 이 별의 이름도 ‘지구인’이라는 우리의 이름표도 모두 거짓일 수 있지 않느냐고. 어쩌면 지구의 진짜 외계 행성 명칭은 ‘휘파람별’이거나 저 먼 별의 누군가들에겐 바로 우리가 ‘외계인’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마녀의 피」에서는 사도마조히즘적 쾌락에 빠진 한 부부가 남편과 아내라는 고유의 역할을 해체하고 뒤섞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이어간다. 현실과 환상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한 ‘지하창고’에서 벌어지는 집회에서는 주인-노예 관계가 역전을 거듭하며 반복된다. 일견 끔찍하게만 느껴지는 장면이지만 작품을 찬찬히 읽다 보면 불현듯 우리의 일상도 정상적이고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불안이 고개를 쳐든다.

***
곡이 끝나갈 즈음에 아내는 남편의 목덜미에 깊은 입맞춤을 하고는 남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남편은 멍해 보이는 태도로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다 고무가면의 양쪽으로 나사못처럼 튀어나와 있는 돌기 부분만 만지작거렸다. 아내는 오디오를 끄고는 개 목줄과 혁대를 챙겨 들고 왔다.
“프랭키, 너는 네가 뭐라고 생각해?”
아내는 엄한 목소리로 난데없이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여전히 머리 양쪽만 만지작거릴 뿐 말을 잃은 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는 혁대로 마루 바닥을 내리치며 더욱 엄해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프랭키, 너는 너 자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그제야 남편은 아내의 말에 끄응 하는 신음소리로 반응을 보이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잠시 후엔 납작 엎드려 개처럼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_「마녀의 피」에서
***

이 책에 수록된 서준환의 소설들에서는 환상과 현실, 실재와 허구, 주체와 객체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원무(圓舞)한다.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기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애당초 없으며 단지 그렇다고 믿는 ‘착각’만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허윤진은 말한다.

***
고체이지만 형태를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비닐처럼, 고무 가면처럼 일상과 비일상,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는 사실 탄성(彈性)이 있다. 우리들이 규격화된 제도 속에서 규범을 따르며 영위하는 일상의 ‘지하’에는 정상적인 것에 틈입해 작란을 일으키려는 비정상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아니, 안온한 일상이라는 것은 애초에 부재했다. 단지 모든 것이 정상적이라고 애써 스스로 다짐한 우리의 믿음만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익숙한 현실에, 어느새 낯선 환상이 일렁이며 겹쳐 보인다.
_「해설」에서
***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과 그 속에서 놓쳐버린 정체성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다. 독자들은 두 수록작을 읽어나가면서 평온한 듯 잔혹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고된 일과의 끝에서 몸과 마음의 온갖 찌꺼기를 거둬주겠다는 친절한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과 맞닥뜨린다면, 혹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가운데 지하창고에서 열리는 황홀한 집회에 초대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이 평온하다고 믿었던 일상을 지켜낼 자신이 있는가?

추천평

나는 서준환 소설가의 중요한 독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타인이 발표한 모든 소설을 챙겨 읽은 경우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좀 곤란하다. 오직 한 작가! 서준환을 제외하면 말이다(그가 이 사실을 끝내 몰라주길 바란다). 단편 「수족관」부터 첫 단편집 『너는 달의 기억』 『골드베르크 변주곡』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 등이 나올 때마다 나는 시리아 공습 초읽기에 들어간 정찰기들처럼 서점으로 날아갔고 굶주린 메뚜기 한 마리처럼 페이지에 내려앉아 이야기를 폭풍 흡입하곤 했다. 서준환 소설가는 독자적이다. 측량된 적 없는 현실과 공고한 환상이 교직된 그의 소설 속엔 수많은 국도들이 사방격자무늬처럼 뻗어 있거나 어떤 비행기도 내려앉아 본 적 없는 활주로들이 즐비하다. “이 작가의 소설엔 언제나 우주소각장이 있고 알 수 없는 국도번호들과 활주로가 가득하다구!” 만일 감옥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꼭 사입(!)하라고 이렇게 종종 학생들에게 뻔뻔한 통과의례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감정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은 끝내준다! 아는 사람은 이미 좀 알아채신 듯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비행들의 예감과 소설의 바깥에서 구축된 서준환의 외계의 서사는 더욱 매혹적인 구근들과 점액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서준환 소설가의 중요한 독자다. 서준환은 몰라도 좋지만 독자들은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작가가 정찰해온 세계의 악천후를, 다른 세계의 속삭임들을. 자! 메뚜기 떼처럼 그의 활자들에 내려앉아 보자! _
김경주 (시인,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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