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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파리, 위그노의 길을 따라
반양장
진병철
열린북스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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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04 서언
08 추천사_ (파리 선한장로교회 담임목사) 성원용 목사
10 추천사_ (경서교회 원로목사) 김태환 목사
16 위그노 주요 장소 사진
26 왜 위그노인가?
30 주요 망명지
34 위그노의 길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34 라틴 쿼터
35 팡테옹
40 꼴레주 드 몽테규
42 칼벵의 탑
44 꼴레주 뒤 쁠레씨
47 마튀렝 수도원
52 로베르 에스티엔느 인쇄소
57 모베르 광장
59 작은 제네바
59 생 제르멩 데 프레 교회
62 프랑스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 사회 도서관
64 비스콩티 거리
66 수난의 현장
66 예술의 다리
74 루브르, 안뜰 ,그리고 옥세로아교회
82 가스파르 콜리니 제독 동상
85 앙리 4세 피살 장소 / 철공소 거리
88 트로카데로 광장
90 위그노의 오늘
90 성령교회
93 파리 소개
94 로마의 갈리아 정복과 파리의 기원
96 노르망디
97 위그 카페
97 라틴 구역
98 100년 전쟁
99 앙부아즈 시대
100 빛의 도시
101 베르사이유 시대
102 파리의 근대화
103 파리 꼬뮌
104 파리 엑스포
105 파리와 세계 대전
110 파리 근교
110 놔용
113 모
120 프랑스 중서부
120 오를레앙
126 프랑스 남부
126 광야 교회
136 에그 모르트
144 여행지
144 베르동 협곡
148 위그노 관련 방문 추천 장소
149 부록
149 저항하라 마리 뒤랑의 노래 서문
_ (저자 성원용 목사)

저자 소개 1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현대그룹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벨지움, 필리핀 및 프랑스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다. 파리지사장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개인사업을 하면서, 파리선한장로교회와 파리의 명물이었던 파리한인 새벽 교회(2019년 코로나로 폐쇄)에서 기독교적 소양을 쌓았다. 프랑스 국립 예술공예원(Conservatoire National des Arts et Metiers)을 졸업하고 프랑스 정부(Ministere charge du Tourisme, Ministere charge de la Culture) 공인 작품해설가(Guide Conferencier) 자격증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현대그룹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벨지움, 필리핀 및 프랑스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다. 파리지사장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개인사업을 하면서, 파리선한장로교회와 파리의 명물이었던 파리한인 새벽 교회(2019년 코로나로 폐쇄)에서 기독교적 소양을 쌓았다.

프랑스 국립 예술공예원(Conservatoire National des Arts et Metiers)을 졸업하고 프랑스 정부(Ministere charge du Tourisme, Ministere charge de la Culture) 공인 작품해설가(Guide Conferencier) 자격증을 취득하여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로뎅 미술관, 베르사이유 궁전 등에서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저자는 『위그노처럼』(성원용 목사 저)을 영어 및 프랑스어로 번역하였으며, 프랑스 종교 개혁자 장 칼벵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에서 위그노(프랑스 종교개혁가인 장 칼벵의 후예 개신교도들)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중에 있으며,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인류의 문화유산인 각종 미술관의 명화들을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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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13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50g | 130*200*8mm
ISBN13
9791189338237

책 속으로

종교개혁(Reformation)의 1세대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 1546)는 1517년 독일 비텐베르그(Wittenberg)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개혁(Reformation)을 시작했다.
ㆍ 로마 카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 부패를 비판
ㆍ 성경 중심(오직 성경),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이신칭의)라는 신학강조
ㆍ 주로 독일과 북유럽에서 확산

종교개혁의 2세대인 장 칼벵(Jean Calvin, 1509~1564)은 스위스 제네바(Geneve)에서 활동하며 종교개혁(Reformation)을 심화시켰다.
ㆍ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Predestination in Calvinism ) 강조
ㆍ 철저한 교회 조직과 엄격한 생활규범 제시로 개혁교회(칼벵주의) 형성
ㆍ 유럽 전역, 특히 프랑스, 네덜란드, 스코틀란드에 영향을 미침.

위그노(Huguenot)는 16세기에서 18세기 프랑스에서 칼벵주의(Calvinisme)를 따르는 개신 교도들을 가리킨다.
ㆍ 프랑스 내 가톨릭과의 갈등으로 36년간의 종교 전쟁(1562~ 1598) 발생
ㆍ 1562년 바씨(Wassy)에서 가톨릭 세력에 의한 개신 교도 학살로 전쟁 시작
ㆍ 1572년 성 바르텔레미 축일의 학살로 대규모 피해
ㆍ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칙령(Edit de Nantes)으로 일정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
종교 전쟁 이후 등극한 앙리 4세는 파리를 프랑스 왕국의 명실상부한 수도로 부활시켰고, 이후 파리에는 루브르 궁(palais du Louvre)과 튈르리 궁(Palais des Tuileries)을 연결하는 그랑드 갈르리(Grande Galerie) 건축, 퐁 뇌프(Pont Neuf) 다리 신축 등에 위그노 출신 장인과 상인들을 적극 활용하여 건설을 추진하여 왕권 강화 및 종교 갈등 완화를 꾀했다.
그러나 루이14세는 1685년 퐁텐느블로 칙령(Edit de Fontainebleau)으로 자신의 할아버지인 앙리 4세가 선포한 낭트칙령(Edit de Nantes)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절대 왕정(絶對王政)을 강화하면서 루이 14세는 국가의 종교적 통일을 추구했고, 개신교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이 칙령의 결과, 약 20만 명 이상의 위그노들이 네덜란드, 영국, 스위스, 프로이센/브란덴부르크, 북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카리브 등지로 망명했으며 이들은 숙련된 장인, 상공업자,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프랑스 경제에 큰 손실을 주었고 반대로 망명국의 산업과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중심의 절대 왕정(絶對王政, Absolute Monarchy)은 강화되었으나 국제적으로는 비난을 받았다.
퐁텐느블로 칙령(Edit de Fontainebleau)은 종교적 관용 후퇴의 상징이며 프랑스 사회의 종교적 긴장을 심화시켰고, 이후, 프랑스 혁명(1789)과 인권선언에서 종교의 자유 보장이 중요한 원칙으로 다시 부각된다.
--- 「왜 위그노(Huguenot)인가?」 중에서

예술의 다리(le Pont des Arts)
퐁데자르(예술의 다리)는 파리의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선사하는 다리이다. 예전에는 전 세계 젊은 연인들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 다리에 자물쇠를 걸곤 했다. 이 자물쇠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었기에, 파리시는 2016년 자물쇠가 걸리지 않도록 모든 자물쇠를 제거하고 철제 막대를 유리 막대로 교체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또다시 자물쇠가 등장했다. 이 다리 위에 서 있으면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위그노 교도들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이곳은 ‘위그노의 역사 파노라마’라고 불린다. 동쪽에는 생 루이(Ile Saint Louis) 섬과 시테 섬이 있다. 퐁네프 다리(Pont Neuf)는 이 섬들을 본토와 연결하며, 다리 중간에는 위그노 출신의 앙리 4세(Henri IV)의 기마상이 있다.
남쪽으로는 학술원 엥스티튀(Institut)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소르본대학(Sorbonne)과 작은 제네바와 라틴 거리가 있다.
서쪽으로는 에펠탑(Tour Eiffel)이 보이며, 그 뒤로는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ro)이 있다. 1572년 ‘성 바르텔레미 축일의 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lemy) 당시 수많은 위그노 교도들이 학살당해 세느강(Seine River)에 던져졌고, 시민들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에펠탑 주변에 묻었다.

루브르, 안뜰, 그리고 옥세로아교회
루브르(Louvre), 지금은 박물관이지만, 1200년경 바이킹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 요새로 지어졌으며, 14세기부터 왕궁으로 쓰여지다가 1789년 대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면서 1793년부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퐁데자르(Pont des Arts)를 건너 바로 안으로 들어가면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동쪽 안뜰(Cour carr?e)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텔레미 축일의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동쪽 문으로 나가면 길 건너편에 고딕 양식의 옥세로아교회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1572년 8월 24일 자정 직후 종이 울리자마자 왕실경호대(스위스 근위대와 왕실 병사들)가 콜리니(Coligny) 제독을 비롯한 위그노 지도자들을 습격했고, 곧바로 일반 시민들과 가톨릭 민병대가 가세해 파리 전역으로 학살이 번졌다.
남쪽에서 바라본 안뜰 입구에는 죽어가는 노예(미켈란젤로)와 모나리자(다빈치)의 그림이 보인다
르네상스(Renaissance)를 대표하는 두 대가들의 작품이 하룻밤 사이에 수천 명이 죽어나간 안뜰(Cour carr?e)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가스파르 콜리니(Gaspard de Coligny) 제독 동상
가스파르 콜리니 제독(1519~1572)의 기념비는 오라토리오 성당 후진(apse)에 위치하며, 리볼리 거리(Rue de Rivoli)의 창살을 통해 볼 수 있다. 1889년 7월 17일 제막되었으며, 건축가 셀리에 드 지조르(Scellier de Gisors, 1844~1905)와 조각가 귀스타브 크룩(Gustave Crauck, 1827~1905)이 설계했다.
프랑스 귀족이자 제독이었던 가스파르 드 콜리니(Gaspard de Coligny, 1519~ 1572)는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텔레미 축일의 학살 당시 안뜰 근처의 자택 2층에서 떠밀려 살해당했다.
--- 「수난의 현장(Le Quartier de la souffrance)」 중에서

십자가 본체(Cross)
몰타 십자가(Maltese cross) 혹은 라틴 십자가를 기반으로 하며 끝은 꽃잎 모양으로 장식된 형태이다. 튤립형 끝의 4개 팔은 각 팔마다 2개의 공 모양 끝이 있어 총 8개로 마태복음 5장의 8복음을 상징한다.

아래에 달린 비둘기(Colombe)
마태복음 3장의 예수님 세례시 비둘기처럼 임하신 성령을 연상시키며, 평화(Peace), 위로(Comfort), 인도(Guidance)의 상징한다.
--- 「위그노 정체성과 신앙의 상징」 중에서

1610년 5월 14일, 앙리 4세는 레 알(Les Halles) 지역의 이 철공소 거리에서 암살당했다. 이날, 앙리 4세는 병상에 누워 있던 충실한 신하 쉴리(sully)를 보러 가던 중이었다. 이곳에 마차가 많아 왕의 마차가 멈춰 섰고, 그 순간을 틈 타 광신적인 가톨릭 신자 라바이약(Ravaillac)의 칼에 맞아 사망했다.
앙리 4세는 낭트칙령(?dit de Nantes)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적 관용을 제도화 한 왕이지만 극단적 가톨릭 세력에게는 배교자(개종자)로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프랑스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왕위는 루이 13세에게 넘어갔다.
현재 사건 현장에는 이 사건을 기리는 표지판이 땅바닥과 벽, 두 군데에 있다. 땅바닥의 표지판에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Maison de Bourbon)를 상징하는 세 개의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ys, 백합꽃), 나바르 왕을 상징하는 X자 모양의 금사슬 방패가 새겨져 있다. 왼쪽 표지판에는 1610년 5월 14일 앙리 4세가 가톨릭 광신도 라바이약(Ravaillac)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 「앙리 4세 피살 장소 /철공소 거리」 중에서

에펠탑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며, 여름에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밤을 새워 젊음을 불태우는 곳이기도 하다.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텔레미 축일의 대학살 당시 세느강(Seine River)에 던져진 시신들을 건져 파묻은 장소가 바로 에펠탑 자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다. 그 대신,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ro) 중앙 입구에 다다르면 우리의 발 아래에 인권 선언 1조가 보인다.
1985년 5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선언문 비문을 설치하였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언인 인권 선언을 낭독하는 이곳에서 역사상 가장 잔혹한 위그노 교도 학살 희생자들의 시신이 묻힌 자리에 세워진 에펠탑을 보면 감동적이면서도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ro)」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진병철 작가의 이번 저서는, 그가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알게 된 위그노들의 신앙과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글로, 사진으로 상세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위그노들의 순교 현장을 찾아서 그들의 삶과 고난을 알려주는 저서로는 최초일 것이다. 이 저서는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개신교 신앙의 은혜가, 몇몇 훌륭한 목회자나 신학자들의 깨달음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무릅쓰고 몸소 지켜서 전해준 헌신의 열매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위그노들이 겪은 고난과 순교의 이야기들, 그 생생한 현장을 찾아서 들려주는 진병철 작가의 증언을 통해, 안일해진 오늘 우리의 신앙 생활이 다시 한번 열정과 헌신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이 시대에 개신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우리가 이루어가기 위해 위그노들의 신앙 열정을 본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진병철 작가의 저서 『내가 본 파리, 위그노의 길을 따라』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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