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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흩어진 마음을 이제 스스로 돌볼 시간: 파울 클레, [고통에 봉헌된 아이]
1장_오늘 당신의 삶이 피로한 이유 몹시 피로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아프다 : 움베르토 보초니, [마음의 상태들-걷는 자들]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을까? : 외젠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나는 정말 나 자신으로 살고 있을까? : 에드워드 호퍼, [객실]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사랑 : 오귀스트 로댕, [키스]·에드가르 드가, [벨렐리 가족]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 르네 마그리트, [자연의 은총]·에드거 루빈, [루빈 의 잔] 2장_나를 떠나서 나에게 묻기 나의 습관, 세상의 습관에 얽매이지 마라 : 조르주 브라크, [바이올린과 주전자] 길을 잃지 않고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눈보라]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그들이 또 다른 내 모습이다 : 르네 마그리트, [복제되지 않는] 왜 똑같은 능력자가 되려고 할까? : 마리솔 에스코바르, [여인과 강아지]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건 ‘동심’이다 : 파울 클레, [이 별이 구부리는 법을 가르친다] 3장_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삶이 있는 법 : 카라바조, [나르시스] 넘어진 순간은 삶의 ‘재’일 뿐일까? : 에드바르 뭉크, [재] 순간의 선택이 정말 미래를 결정할까? : 장 뒤뷔페, [풍경]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선물이다 : 파울 클레, [파르나수스를 향하여] 상처 없는 삶은 없다 : 프리다 칼로, [헨리 포드 병원] 우리는 매일 죽고, 매일 다시 태어난다 : 클로드 모네, [수련이 핀 연못]·클로드 모네, [수련이 핀 연못, 저녁(왼쪽 부분)] 4장_당신의 삶을 실험하라 당신만의 패스워드를 만들라 : 조지 시걸, [가시오, 멈추시오] ’상품’이 될 것인가, ‘선물’로 살 것인가 : 클래스 올덴버그,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치즈버거] 나를 떠나 너에게로 가는 법 : 앙리 마티스, [대화] 다시 실패하라, 더 멋지게 실패하라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론다니니의 피에타] 우리가 살기 위해, 우리 아닌 모든 것이 필요하다 : 바실리 칸딘스키, [콤포지션 Ⅶ] 에필로그_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자신’과 대면할 수 있기를 :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에드바르 뭉크, [침대와 시계 사이의 자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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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엔 집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저 집에서 ‘제대로’ 쉬기 위해 허덕이며 달려온 무수한 순간들, 그 순간들은 불행해도 되는 걸까요? 세상 모든 곳을 안식처로 삼을 수는 없었던 걸까요? 죽을힘을 다해 도착한 저 집에서 크리스티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 행복은 영원할까요? 혹 그 집이 춥고 바람도 안 통하는 집이면, 고독한 들판보다 더 고독하고 황량한 집이면 어떡해야 할까요? 그땐 또 다른 집을 찾아가야 할까요?
크리스티나는 지금 벌판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 ‘주저앉아 있음’이 크리스티나의 살아 있는 현존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일어나 다시 걷는 것도 물론 한 방법입니다. 세상은 그래야 한다고 부추기고, 그런 사람들을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치켜세우죠. 하지만 인생에 승리란 없습니다. 그저 매번 다른 순간들이 있고,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한복판에 내가 있을 뿐이죠. 참을 수 없는 피로감, 나를 주저앉히는 절대적 피로감이 찾아왔을 때 우린 질문해야 합니다. 그 피로감이 곧 우리 마음이 우리 몸에 건네는 신호일지도 모르거든요.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가? 난 행복한가? 지금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만큼 나는 자유로운가? 크리스티나는 지금, 질문을 던져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와 있습니다. ---「1장 [몹시 피로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중에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그림에는 형체도, 윤곽도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난폭한 터치로 표현된 소용돌이를 따라 화면의 중앙으로 빨려듭니다. 거기엔 폭풍우에 삼켜질 듯 위태로운 배가 보입니다. 터너의 그림을 묵묵히 응시하다 보면,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배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지금 길도 표지판도 없는 바다 한복판에 있습니다. 파도는 높아지고 바람은 거세집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터너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갑판 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격한 폭풍우 속에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면서 그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터치와 바다와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를 건져 올렸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매일 저렇게 요동치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인생은 길들이 있는 육지가 아니라 저처럼 출렁거리는 바다일지 모릅니다. 가족을 잃고, 사업이 망하고, 원인 모를 두려움과 우울함에 허우적거리며 우리는 바다 위를 떠돕니다. 폭풍우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터너처럼 있는 힘을 다해 중심을 잡는 일뿐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흔들거리며 중심을 잡는 것, 폭풍우를 응시하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다 보면 방향감각이 생길 것이고, 어쩌면 육지에서보다 더 많은 길들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2장 [길을 잃지 않고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중에서 뒤뷔페가 그린 풍경은 흡사 헬기를 타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합니다. 저 풍경 속 어딘가에 있다면 집이며 나무며 사람들이 보이겠지만, 위에서 보니 길들만 보입니다. 거대한 미로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땅속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우리가 가는 길들의 모습도 멀리서 보면 이와 같지 않을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일은 저 복잡한 풍경 속의 양 갈래길 같을 테죠. 그러다보니 매번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는 것처럼 여겨지고, 그중 한 길을 택하면 다른 한 길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그 때문에 생깁니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서 보면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내가 포기한 길이 얼마 후 내가 선택한 길과 만나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거꾸로, 내가 선택한 길이 목적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일 수도 있고요. 요컨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뒤뷔페의 풍경이야말로 우리 삶의 풍경, 삶을 가득 채운 길들의 풍경이 아닐까요? 루쉰은 말합니다. 인생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그저 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길을 가면 된다고요. 원래 길이란 없었다고,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고요. 혹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생각한다면 뒤뷔페의 풍경을, 그리고 루쉰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누구나 결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있습니다. ---「3장 [순간의 선택이 정말 미래를 결정할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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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부터 올덴버그까지, 장자부터 니체까지
당신을 굳건히 지켜줄 그림 속 철학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그림 속 들판에 주저앉아 언덕 위의 집을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철학자 채운은 등이 휠 것 같은 여인의 뒷모습에서 현대인의 ‘피로’를 느낀다고 말한다. 주저앉아서도 언덕 위의 집을 갈망하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은 턱밑까지 피로가 차 있으면서도 상위 몇 퍼센트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런데 철학자는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언덕 위의 집은 왜 올라 가야하지? 그것은 “자신의 믿음과 욕망에 대해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철학을 담은 그림》은 고전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매개로 동서양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저자는 파울 클레부터 클래스 올덴버그까지,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장자의 사상을, 니체의 철학을 전하며 각자의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해석을 이끌어낸다. 저자가 크리스티나를 향해 던진 질문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질문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에 대한 다른 감각을 배워야 한다” 어떤 위로도 소용없는 당신에게 권하는 책 한때 화가를 꿈꾸기도 했던 저자는 근현대미술사를 공부했고 근현대에 대한 탐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현재 ‘고전비평공간 규문(奎文)’(http://qmun.org)의 연구원(대표)인 저자는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강의하며 여러 동서양 고전 연구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치지 않고 평생 고대를 탐험하는 것이, 동서양의 언어를 가로지르는 공부를 통해 각각의 사유와 예술에 새로운 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그림 속 철학을 우리의 삶과 연결 지어 놓는다. 저자는 그림을 고르는 데 신중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는 그림은 피부가 서서히 굳어가는 병을 앓은 클레가 발병 무렵 그린 [고통에 봉헌된 아이]다. 그림 속 아이는 “여기저기 긁히고 얼룩진” 얼굴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저자는 이 그림을 “클레의 또 다른 자화상” 같다고 여긴다. 손이 굳어가는,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병을 얻은 클레가 “고통에 허우적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대신” 그림 속 아이로 “고통이 삶의 근원임을 깨달은 자의 미소”를 표현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사실 이 그림은 저자가 지인 K에게 전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저자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지인 K가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돈도 시간도 아까워하지 않으며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찾아다녔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지인 K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은 건 “나 아닌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저자가 K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수많은 K들에게 클레의 [고통에 봉헌된 아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는 게 고통스럽다면, 위로와 의지처를 찾아 헤맬 일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다른 감각과 사고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떠나야 나를 찾을 수 있다” 그림 속 철학을 통해 나와 마주하는 법 저자는 “우리가 구축한 거대한 환상”을 깨는 것으로 시작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습속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다시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를 테면 저자는 로댕의 [키스]가 구축한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서로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드가의 [벨레리 가족]으로 여지없이 깬다. “어떤 것도 영원치 않다는 경험적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치 않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지만 그것은 우리가 구축한 환상일 뿐,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우리가 믿어온 환상이 깨지는 순간, 대체로 그 모습은 끔찍하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도망치지 말고 그 끔찍함과 마주하라고 말한다. “내가 구축해온 환상을 남김없이 부수는 용기”를 발휘할 때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하면 사랑하고, 헤어지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그뿐, 상대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 외에도 우리는 자신에 대한 환상, 관계에 대한 환상, 돈에 대한 환상, 가족에 대한 환상, 국가에 대한 환상 등 여러 가지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환상은 사랑에 대한 환상과 다르지 않다. “지속성과 불변의 정체성을 통해 불안한 세상에서 안정성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는 맥락에서 우리가 구축한 환상의 메커니즘은 모두 비슷하다. 결국 우리가 환상을 깬다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만큼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무상한 것으로서의 삶, 그런 ‘혼란의 도가니’로서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긍정하는 사람만이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저자는 그림 속 철학으로 세상의 습속에 굳어진 우리가 자신을 떠나 우리 자신에 이르도록 이끈다. 터너의 [눈보라]를 통해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건 착각일 뿐,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건 목적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사람과 사건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주한 현재가 과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런가하면 카라바조의 [나르시스]를 통해 ‘이상적 자아’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이끌고 뒤뷔페의 [풍경]을 통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놓고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의 길에 마음을 다하도록 이끈다. “아픔의 순간마저 ‘나’로 사는 것, 그 삶이 예술이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세상의 가치와 생각을 다르게 보게 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고 ‘나 자신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때 그림은 다른 가치, 다른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는 고흐의 자화상과 뭉크의 자화상을 나란히 보여주며 세계와 자아에 대해 환상을 구축하지 않았던, 나 자신으로 살며 실패하고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았던 그들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이 책, 스물여덟 점의 그림은 삶에 대한 묵직한 물음과 함께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다. 삶에 대한 철학을 그림과 함께 간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