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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시인의 말
Ⅰ 013 불멍 014 마음 궤적 015 헛가래 016 틈새 017 혼불 망각 018 칡꽃 019 건너가는 사람 1 020 건너가는 사람 2 021 건너가는 사람 3 022 건너가는 사람 4 023 건너가는 사람 5 024 건너가는 사람 6 025 건너가는 사람 7 026 마음 풍경 027 된볕 028 월동 이후 029 어떤 맛일까 030 천둥 작달비 Ⅱ 033 마음 세초 034 짚라인 035 안개 는개 036 툭 던지고 싶다 037 다시 사랑하기 038 몸 가시 039 겨울 바다 3악장 040 산 소리 041 씬벵이 낚아채기 042 언덕에 서는 이유 044 툭 투득 045 그 집 046 백두대간 금강송 047 흉터는 상처보다 가렵다 048 까투리복숭아 050 순지르기 052 공 053 새벽 바람비 Ⅲ 057 가자미처럼 058 옛집 060 봄날의 기도 061 까치걸음 062 가지치기 063 구순의 지팡이 064 박힌 업보 065 깡통 066 마음 간격 067 나는 곱빼기 068 사나사 일주문 069 싸리울타리 070 물수제비 071 뻐꾸기시계 072 십팔 원 오십 전 073 평상 074 Por Una Cabeza 075 고래 비상을 꿈꾸다 Ⅳ 079 단심 080 소소리바람 082 돌담집 붉은 동백 084 안부 085 하지 감자 086 눈색이꽃 087 산 노루 088 유둣달 089 고성 천진 바다 090 내 사랑, 세뇨테에 잠들다 092 새벽 숲 093 물총새 094 가위바위보 095 다락논 096 웃비 097 유혹 098 고드름 099 밭이랑 삼백 평 해설 101 생명의 시심詩心과 모성적 사랑 | 이성혁(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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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를 보며 가슴이 저리면
제 목숨을 달아맨 허공 때문이다. 붉디붉은 저녁놀 슬그머니 널어놓고 은은한 별빛에 젖은 채 이것 보란 듯 하늘 강 건너는 사람 있어 먼 길 가듯 보폭이 넓히다가 숨 고르며 고요해진 낌새 산 자드락을 주섬주섬 말아내고 아득해진 생각을 달아맨 채 그 홀연한 기운에 눈을 맞추면 얼굴을 훑고 가는 날갯짓으로 문득 나를 건너가는 사람. --- 「건너가는 사람 1」 중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 틈새를 비집고 나온 잡풀이 그새 수북하다. 얼기설기 돌 밑 어디쯤 뿌리 깊숙이 내렸는지 여간해서 뽑히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들이밀기도 빠듯한데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거리다가 다가서면 꽉 물어버릴 것 같은 어둡고 습한 틈바구니 늪 그 깊이의 끝이 가늠되지 않아 한참 들여다보고 힘주어 잡아 뜯어봐도 죽자 살자 걸어 잠그는 목숨이니 저런 구덕 살 박힌 궁리 어느 흉중에 박혔는지 헤집어 봐야겠다. --- 「틈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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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속을 건너는 자 - 존재의 기원으로부터
김진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건너가는 사람』은 제목부터 하나의 행위, 곧 건너감의 동사를 품고 있다. ‘건너가는 사람’은 단순한 이동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내면과 외면·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존재이다. 시집의 첫머리에 배치된 「불멍」은 그 상징적 서막이다. “누군가 불 속으로 달려든다/ 텅 빈 낯빛 망설임도 없이”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시인이 자기 내면의 한 조각을 불길 속으로 던져 넣는 모습을 본다. 불은 파괴의 이미지이자 정화의 이미지다. 김진환의 시는 바로 그 양가성 위에서 시작된다. 불은 업보와 기억, 억눌린 감정의 잔재를 태우지만, 동시에 언어의 재를 남긴다. 시인은 그 잿불을 “휘저어줘야겠지”라고 말하며, 자신이 불태운 마음의 잔해 속에서 다시 언어를 길어 올린다. 이러한 장면은 시인의 시적 기원을 드러낸다. 시 쓰기는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 곧 자기를 소멸시킴으로써 새로운 목소리를 얻는 의례다. 김진환의 ‘건너가는 사람’은 바로 그 소멸의 문턱을 넘어가는 존재, 혹은 불길과 어둠의 경계에서 언어를 부활시키는 자로 읽힌다. 따라서 이 시집은 삶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시의 존재론을 탐색하는 장편의 시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틈새의 생명과 언어 - 미물의 숭고함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정조는 ‘틈새’와 ‘잔여’에 대한 시선이다. 「틈새」의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 틈새를 비집고 나온 잡풀”은 폐허와 생명, 시간과 욕망이 공존하는 이미지다. 시인은 이 틈새의 풀을 뽑으려다 끝내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 풀의 뿌리는 “죽자 살자 걸어 잠그는 목숨이니”라고, 스스로의 생을 움켜쥔 의지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김진환의 시세계는 늘 이런 ‘틈’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연을 낭만적으로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서진 돌담, 흙의 상처, 헐거운 호흡 속에서 생명의 심지를 본다. “목숨줄 하나 움켜잡고/ 씨줄 날줄 자아내다가/ 멈칫 숨죽이는 거미”(「짚라인」)와 같이, 미물의 생존은 시인에게 하나의 윤리적 감각으로 확장된다. 생명이란 거창한 자연의 합창이 아니라 “손가락 하나 들이밀기도 빠듯한”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버티는 목숨들의 연대다. 이러한 생명의 감각은 김진환 시의 언어적 질서와도 맞닿는다. 그의 시어들은 결코 장식적이지 않다. 한 줄의 문장 속에 곧은 숨결과 낮은 온도를 남긴다. “둘둘 말아 다시 밀어 넣는다”(「헛가래」)라는 절제된 리듬 속에는 고통을 언어로 봉합하려는 인간적 몸짓이 있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근육의 미학, 즉 상처와 버팀의 언어학이다. ‘건너가는 사람’의 존재론 - 나와 타자, 기억과 사라짐 연작시 「건너가는 사람」은 이 시집의 중심축을 이룬다. 각 편에서 ‘그 사람’은 시인의 앞뒤를 오가며, 때로는 타인으로, 때로는 내면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지는 해를 보며 가슴이 저리면/ 제 목숨을 달아맨 허공 때문이다.”(「건너가는 사람 1」)라는 첫 연은, 이미 존재가 죽음의 사선 위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시인은 저녁빛 속에서 ‘하늘 강 건너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결국 “나를 건너가는 사람”이며, 곧 내 안의 타자이자 나를 낳는 시심(詩心)이다. 그는 붙잡을 수 없는 존재로 반복 등장하지만, 그 부재가 곧 시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건너감’의 운동은 단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행위다. 「건너가는 사람 6」의 “느슨해진 줄을 꽉 부여잡고”, “힘에 부친 듯 헐렁해지다가/ 이내 곧추서는 저 심지(心志)”는 그 상징적 장면이다. 헐거워지는 줄을 부여잡는 몸짓은,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으려는 존재의 의지다. 이 ‘심지’야말로 김진환 시의 핵심이다. 시인은 언제나 불안정한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 그 경계는 죽음의 언덕일 수도, 생의 문턱일 수도 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건너가는 사람”으로 규정함으로써, 존재의 지속을 위한 시적 행위를 제시한다. 바람, 소리, 모성 - 존재를 이어주는 매개 시집 후반부로 갈수록, ‘건너감’의 주체는 개인의 내면에서 세계의 질서로 확장된다. 시인은 자연의 미세한 징후들(바람, 빛, 소리) 속에서 생명들의 상호작용을 감지한다. 「산 소리」에서 “향피리 소리 듣는다”는 구절은 단순한 청각적 감상이라기보다, 세계의 숨결을 감응하는 행위다. 돌이끼, 산죽, 석간수까지 ‘숨 고르는 소리’를 내는 순간, 자연은 거대한 합주가 된다. 이때 시인은 ‘심산계곡 악공’이 되어 그 생명의 리듬에 화답한다. 그 리듬은 바람과 비로 이어진다. 「웃비」의 “밭이랑 뒤적이던 어머니처럼/ 허리 펴지 않은 채/ 산중(山中) 우주를 구석구석 훑어내고 있다”는 구절은, 비를 모성적 행위로 전환시킨다. 바람과 비, 달빛은 모두 세계를 어루만지는 손이다. 시인은 그 손을 ‘어머니’로 읽는다. 모성은 단지 여인의 상징이 아니라 존재를 지속시키는 보편적 에너지다. ‘생명의 시심’이 곧 ‘모성적 사랑’이라는 이성혁 평론의 결론은, 이러한 세계적 공명 속에서 다시 확인된다. 그러나 김진환의 모성은 신화적이거나 초월적이지 않다. 그것은 밭이랑을 뒤적이는 손, 산안개 한 자락에 둘러앉은 일상의 몸짓이다. 그의 시는 어머니의 노래가 아니라, 어머니의 노동에 가깝다. 존재의 온도를 지키는 시 『건너가는 사람』은 생명에 대한 찬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유한성을 통과한 사유의 기록이다. 시인은 생명체들의 ‘망집(妄執)’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생존의 고집이자 존재의 존엄이다. 그는 삶의 주변부, 흙의 틈, 불의 잔해에서 시의 원형을 길어 올린다. 그의 언어는 낮고 느리며, 흙냄새와 재 냄새가 배어 있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온도를 느낀다. ‘건너가는 사람’은 타자이자 나 자신, 생명이자 시인, 그리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결국 김진환의 시가 향하는 곳은 건너감의 미학, 즉 사라짐을 통해 존재를 새로이 낳는 순환의 윤리다. 「새벽 숲」에서 “어둠을 밀치며 꿋꿋이 건너가는/ 누군가”를 시인은 끝내 지칭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가 바로 ‘시’이며, 또 다른 생명을 향해 불 속을 건너는 김진환 시인 자신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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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 시인의 생명의 이야기는 모성적 사랑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하였다. 이 사랑으로 생명은 태어나고 유지되며 자라난다. 이러한 결말에 도착하니, ‘건너가는 사람’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건너가는 사람’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도록 이끄는 존재-시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건너가는 사람’을 좇는 일은 생명의 표현을 찾아 시를 발견하려는 작업이었다. - 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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