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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청계(靑溪) 백남룡(白南龍) - 난세의 등대 2. 긍농(肯農) 박준필(朴準弼) - 호남 쌍봉(湖南雙鳳) 3. 열녀 영월신씨(寧越辛氏) 부인 - 책을 사랑한 여자 선비 4. 흑석(黑石) 백인수(白麟洙) - 이웃을 사랑한 만석꾼 5. 이은(梨隱) 백추진(白秋鎭) - 석양동 백씨서당의 산장(山長) 6. 풍암(楓庵) 백동량(白東良) - 〈뇌사(?詞)〉에 새겨진 선비의 모습 7. 고암(顧庵) 백사성(白師成) - 하늘이 낸 효자 8. 중암(重庵) 백상희(白尙熙) - 세효각의 시초 9. 세효각의 선계(先系) 10. 세효각의 후손 남은 이야기 - 역사가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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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별로 인기가 없는 헌종이지만 알고 보면 학문이 깊은 왕이었다고 한다. 고궁박물관에는 헌종이 친히 새긴 인장印章도 여러 개 있다. 바로 그런 왕이 “세효”라는 표현으로 시골의 한 선비 집안을 일컬었다는 사실은, 가문의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세효각 사람들”이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 p.6 집안에 남은 여러 문서를 살피다가 마침 1949년 9월에 작성한 자동차 매매에 관한 서류 2건을 발견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므로 청계는 일단 시국이 안정되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거금 64만 환을 지불하고 서울에서 도요타 승용차 한 대를 구입하였는데, 당시에는 새 차를 구하지 못해 중고차를 매입했다. --- p.37 한 통의 “진정서”가 등장했다. 청계의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불과 수개월 전, 인민군 치하에서 청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이번에는 그들이 앞장서 청계의 목숨을 지켜낸 것이다. --- p.43 긍농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전국 각지의 의병장을 격려하고 그들의 투쟁을 촉구하는 문서를 많이 생산하였다. 그가 퇴직하자 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음이 명백하다. 고종 황제는 강제로 양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조정에서는 과연 긍농과 같은 충신을 정말로 감옥에 가둘 수 있었을까? --- p.64~65 이씨 부인이 날마다 소설을 필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농한기인 겨울철에만 시간을 내어 소설책을 베꼈다. 1865년 정월에 우선 《명주기봉》 제2권을 필사하였고, 그다음 달인 2월 초순에 이어서 제3권 필사도 마쳤다. --- p.87 흑석은 봄가을이면 전국의 걸인을 구제하였다. 봄에는 여름에 입을 옷으로 “삼베 등거리”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가을에는 겨울철에 팔에 껴입을 토시며 버선을 한 켤레씩 제공했다. 그때마다 후하게 차린 밥상을 내놓았고 엽전도 두 잎씩 나눠주었다. --- p.117 귤산(휘 이유원)은 이은이 석양동에 서당을 열고 〈기문記文(연유를 기록한 글)〉을 요청하자 기꺼이 붓을 들었다. 글을 읽어보면, 이은은 마치 신선 황초평처럼 유유자적하였던 모양이다. 틈틈이 거문고를 뜯고 시문을 지으며 맑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무료해지기라도 하면 활시위를 당겼다고 한다. --- p.141 나는 이제 병들어 쇠약하고 글솜씨도 시원찮다. 비록 그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서술하지는 못하나, 백 효자의 순수함에 마음 깊이 느낀 바가 있노라. 이미 만가(輓歌)를 지은 바 있으나 다시 이 전기를 짓노니, 장차 훌륭한 역사가가 이를 채록하여 후세에 전하리라 믿노라. --- p.168 《후한서(後漢書)》 49권에 실린 〈중장통 열전(仲長統列傳)〉에 나오는 바이다. 성재원은 풍암이 중장통의 〈낙지론(樂志論)〉에 정통하였으며, 실제로 그와 같이 살았다는 뜻으로 언급했다. --- p.181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전국적으로 거액을 기부금으로 바친 부자가 50명쯤이었다. 그들에 관한 처우를 명시한 글 가운데, 전주의 백동한은 1만 량을 바쳤으므로 장차 수령 자리에 임명한다고 했다. --- p.189 내가 보기에 고암은 일종의 딜레탕트(dilettante)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여러 학문 분야를 깊이 사랑하는 선비였다. 그러나 어느 한 분야에 정주하거나 그것만을 깊이 천착하는 전문가는 아니었다. 만약 18~19세기에 고암과 같은 딜레탕트가 더욱더 많았더라면 조선 사회는 20세기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p.208 조선 후기는 특히 젠더 불평등이 심했다. 더구나 선비 집안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커, 세효각의 여성에게는 일상생활이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다. 차라리 평범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더라면 오히려 남성보다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 p.218 1767년(영조 43) 정해년 봄에 전라도의 수부(首府) 전주에 초대형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성안에 있는 집은 대부분 불길에 휩싸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의 할아버지 중암 일가는 온전하였다. 이웃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중암의 효행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화재사건의 진상 조사차 한양에서 내려온 암행어사는 중암에 관한 일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 p.218~219 중암부터 나의 할아버지 청계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세효각에서는 모두 14명의 효자와 3명의 열녀가 배출되어 세상의 기림을 받았다. 실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 p.230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선조들의 사유와 행적이 켜켜이 쌓여 있기에, 그들의 삶을 또렷이 알면 알수록 오늘의 세파 속에서 흔들리는 나의 걸음 또한 다소나마 바로잡힐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p.253 “제군은 일장기를 우리나라 깃발인 줄 잘못 알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우리나라 국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기는 태극기이다. 이 깃발을 똑똑히 보라!” --- p.277 내가 역사를 공부하게 된 데는 한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왜, 우리나라는 이처럼 오랫동안 군사독재에 시달리게 되었는가?’ 청소년 시절부터 나는 우리가 왜, 민주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데 그토록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하였다. 이것은 물론 아버지 은석의 피어린 삶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내면에서 자라난 정치 사회적 감수성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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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가가 쓴 백씨 집안의 역사
백씨네 이야기는 김씨, 이씨, 박씨…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세효각 백씨 이야기》는 미시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백승종이 자신의 가문인 수원백씨 집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세효각(世孝閣)’은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백씨 집안 사당이자 그 집안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이 집안에서는 효자 14명과 열녀 3명이 쏟아져 나왔다. 저자는 자신의 직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구수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통일신라 말기에서 근현대까지 이어진 한 가문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시대상을 탐구한다. 저자는 집안의 기억을 사회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해 ‘집안의 역사’를 ‘시대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조선 사람들의 생활 태도와 정신세계, 그 당시 여성의 삶과 독서 문화,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산업화기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전략과 생활 방식이 드러난다. 우선 저자는 조선 후기에 살았던 선비들이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며 살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선조들이 남긴 여러 가지 기록이며 그들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구전을 통해 ‘조선의 교양인’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그려낸다. 아울러 책을 읽고 필사하며 감상문을 남긴 여성, 즉 할머님들의 독서 습관을 묘사하는데, 그들 역시 여성 ‘선비’라는 자의식 갖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한다. 근대 이후의 이 집안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 시기를 지나며 저자의 집안사람들도 험난한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며 다양한 생존전략을 구사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상 대대로 이어진 전통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자녀 교육에 힘쓰며, 공동체를 위해 이바지하려는 의지를 발휘한 것인데, 저자의 증조모와 조부 및 부모님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삶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한국의 근현대사로 읽힌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따지고보면 그가 역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집안의 역사,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관계가 깊은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저자의 고백적 기술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다름 아닌 역사적 존재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저자의 일대기는 물론 그 한 사람의 독자적인 체험이겠으나, 조금만 외연을 확대해보면 여러 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전문가 집단의 생애사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한 집안의 연대기를 넘어, 전통과 근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사유하도록 길 안내를 자청하는 인문학적 역사서다. 책을 읽는 동안에 우리는 급격한 현대화 바람에 잊어버리고 살아온 우리 자신의 ‘삶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효각 백씨 이야기》는 저자의 집안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김씨, 이씨, 박씨 등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각자 간직해온 소소한 역사적 기억들을 빠짐없이 채록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종자저장소가 될 것이다. 그처럼 수집된 기억의 종자가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인류의 문화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며, 우리의 삶도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인식에 있다.” -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