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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편지를 쓰기 전의 모차르트
1부 이탈리아, 남쪽의 빛 속으로(1769~1776) 첫 번째 편지 잘츠부르크, 1769년 두 번째 편지 밀라노, 1770년 3월 3일 세 번째 편지 볼로냐, 1770년 3월 24일 네 번째 편지 로마, 1770년 4월 21일 다섯 번째 편지 나폴리, 1770년 5월 19일 여섯 번째 편지 로마, 1770년 7월 7일 일곱 번째 편지 볼로냐, 1770년 7월 21일 여덟 번째 편지 볼로냐, 1770년 8월 4일 아홉 번째 편지 밀라노, 1772년 12월 18일 열 번째 편지 뮌헨, 1774년 12월 28일 열한 번째 편지 뮌헨, 1775년 1월 14일 열두 번째 편지 뮌헨, 1775년 1월 18일 열세 번째 편지 잘츠부르크, 1776년 9월 4일 2부 첫 번째 사랑, 첫 번째 굴욕(1771~1778) 열네 번째 편지 바서부르크, 1777년 9월 23일 열다섯 번째 편지 뮌헨, 1777년 9월 26일 열여섯 번째 편지 뮌헨, 1777년 9월 29일 열일곱 번째 편지 뮌헨, 1777년 10월 2일 열여덟 번째 편지 아우크스부르크, 1777년 10월 17일 열아홉 번째 편지 아우크스부르크, 1777년 10월 23일 스무 번째 편지 아우크스부르크, 1777년 10월 25일 스물한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0월 30일 스물두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1월 8일 스물세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1월 29일 스물네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2월 3일 스물다섯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2월 6일 스물여섯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2월 10일 스물일곱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2월 20일 스물여덟 번째 편지 만하임, 1777년 12월 27일 스물아홉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1월 7일 서른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1월 17일 서른한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2월 2일 서른두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2월 7일 서른세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2월 14일 서른네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2월 19일 서른다섯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2월 22일 서른여섯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2월 28일 서른일곱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3월 7일 서른여덟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3월 11일 3부 파리에서의 고난과 어머니의 죽음(1778~1779) 서른아홉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3월 24일 마흔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5월 1일 마흔한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7월 3일 마흔두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7월 3일 마흔세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7월 9일 마흔네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7월 18일 마흔다섯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7월 31일 마흔여섯 번째 편지 파리, 1778년 9월 11일 마흔일곱 번째 편지 슈트라스부르크, 1778년 10월 15일 마흔여덟 번째 편지 슈트라스부르크, 1778년 10월 20일 마흔아홉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11월 12일 쉰 번째 편지 만하임, 1778년 12월 3일 쉰한 번째 편지 카이저스하임, 1778년 12월 18일 쉰두 번째 편지 뮌헨, 1778년 12월 29일 쉰세 번째 편지 뮌헨, 1778년 12월 31일 쉰네 번째 편지 뮌헨, 1779년 1월 8일 4부 불멸의 멜로디(1780~1781) 쉰다섯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1월 8일 쉰여섯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1월 13일 쉰일곱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1월 22일 쉰여덟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1월 24일 쉰아홉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2월 1일 예순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2월 13일 예순한 번째 편지 뮌헨, 1780년 12월 16일 예순두 번째 편지 뮌헨, 1781년 1월 3일 예순세 번째 편지 뮌헨, 1781년 1월 10일 예순네 번째 편지 뮌헨, 1781년 1월 18일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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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이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고장에 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를 떠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훌륭한 전문가들, 특히 깊이와 지식, 품격을 갖춘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극장 사정은 성악가들의 부재로 좋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무지코가 없으며, 쉽게 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후한 보수를 요구하는데, 관대함은 궁정의 미덕이 아니니까요.
--- p.39 「잘츠부르크 1776년 9월 4일」 중에서 오늘 차일 공을 만났는데, 그는 온갖 예의를 차리며 제게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별 성과가 없을 것 같군. 님펜부르크 궁 만찬에서 내가 선제후께 따로 여쭤봤더니, 그분께서 ‘아직 너무 이르오. 그는 이탈리아로 가서 명성을 얻어야지. 내 그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오’라고 하셨소.” 바로 이것입니다! 이 높은 분들께서는 대부분 이탈리아에 발작적인 열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 p.54 「뮌헨 1777년 9월 29일」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시詩를 써서 마음을 엮어낼 수는 없습니다. 시인이 아니니까요. 빛과 어둠을 던져 감정을 그려낼 수도 없습니다. 저는 화가가 아니니까요. 몸짓으로 생각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소리로는, 가능합니다. 저는 음악가이니까요. --- p.93 「만하임 1777년 11월 8일」 중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십시오. 저는 단지 아버지께서 섣불리 기뻐하시거나 슬퍼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두 다 괜찮을 테니까요. 행복이란 어차피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 pp.96-97 「만하임 1777년 11월 29일」 중에서 저희처럼 미천한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아내를 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귀족도, 명문가도, 부자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부유한 아내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부는 머릿속에 있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니까요. 그것을 빼앗으려면 우리의 머리를 잘라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게 되겠지요. --- p.137 「만하임 1778년 2월 7일」 중에서 아버지께서 아버지 형님의 따님(제 사촌)과 저의 명랑하고 순수한 관계를 편지에서 그토록 신랄하게 비난하신 것에 분통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니, 더 답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발러슈타인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베케와 함께 있을 때나 장교 식당에서나 아주 진지했고, 누구와도 거의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 p.148 「만하임 1778년 2월 19일」 중에서 우십시오, 울지 않을 수 없으니 우십시오. 하지만 끝내 위안을 얻으십시오.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정하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그분께 반항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어머니께선 평안한 죽음을 맞으셨으니, 그분의 선하심에 감사하며 기도를 드립시다. --- p.191 「파리 1778년 7월 9일」 중에서 제가 이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누나를 다시 껴안는 행복을 하루빨리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 우리가 다 함께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될까요! 하느님께서 제게 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디 하느님의 뜻 안에서, 마침내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리라는 간절한 희망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의 천성과 기질, 지식과 감성, 그 모든 것을 거스르는 이곳에서의 삶을 어떻게든 견뎌낼 작정입니다. --- p.213 「파리 1778년 7월 18일」 중에서 아버지, 직접 생각해보십시오. 제 입장이 되어보십시오. 잘츠부르크에서 저는 제 위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전부인 것처럼 대접받다가,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저는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도, 보잘것없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무언가 가치 있는 존재라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 p.246 「슈트라스부르크 1778년 10월 15일」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녀가 제 가장 진실한 친구 중 한 명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밤낮으로 친구의 안위를 생각하고, 그의 행복을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해 애쓰는 사람만을 친구라고 부르니까요. 이것이 바로 칸나비히 부인의 모습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약간의 이해타산이 섞여 있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이해타산이 전혀 섞이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그녀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결코 그런 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p.266 「카이저스하임 1778년 12월 18일」 중에서 제발 제게 더는 우울한 편지를 쓰지 마십시오. 지금 제게는 쾌활한 마음과 맑은 정신, 일에 대한 의욕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슬퍼서는 이 중 어느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얼마나 휴식과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저는 마음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까?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아 두렵습니다. --- p.299 「뮌헨 1780년 11월 24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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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광과 고난의 순간, 펜을 들어 편지를 쓴 모차르트
음악이 그의 재능을 담아냈다면, 편지는 그의 삶을 담아냈다 “저는 단지 아버지께서 섣불리 기뻐하시거나 슬퍼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두 다 괜찮을 테니까요. 행복이란 어차피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 가장 찬란한 재능은 종종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것일까. 모차르트의 청년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귀족들에게 몇 번이나 애원해야 했으며 모든 걸 바쳐 사랑한 소녀는 그를 떠나갔다. 파리에서 힘든 작업을 하는 동안 옆을 지켜주던 어머니의 건강은 시시각각 나빠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차르트는 펜을 들어 글을 쓰고, 작곡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는, 오선지 위에 음표를 새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삶을 작곡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꿈꾸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꿈꾸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차르트의 고백』은 그가 남긴 수백 통의 편지 중, 소년이 어른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 마침내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로 거듭나던 1769년부터 1781년까지의 기록을 중심으로 엮은 서간집이다. 눈을 감고 모차르트를 떠올렸을 때 하얀 가발을 쓴 초상화와 그가 남긴 걸작들만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아직 모차르트를 아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모차르트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는, 오선지 위에 음표를 새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삶을 실시간으로 작곡하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이 내밀한 기록 속에서 세상과 싸우고, 사랑을 갈망했으며, 스스로를 변호하고 또 위로했다. 그의 삶을 짓누르던 부조리한 권력, 그를 외면했던 차가운 세상, 그 모든 불협화음 속에서 어떻게 불멸의 멜로디가 탄생했는지를 목격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위로이자 경험이 될 수 있다. 꾹꾹 눌러 쓴 편지를 하나씩 읽다 보면 하얀 가발을 쓴 초상화 속 ‘대가’ 모차르트가 아닌 작고 연약한 ‘인간’ 모차르트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