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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_곽재구(시인) - 나희덕(시인)
이월 February 이월 소원 곡우 무렵 도토리 연두 수선화 벚꽃 고요 Stillness 고요 과도한 소망 들꽃 꽃들 2 꽃들 3 봄밤 봄날 아침 파랑 이는 날 부드러운 시간 그대가 내게 온다면 낙화 현자 운명 철쭉꽃 하직 달팽이 Snail 달팽이 바다 거리에서 산양 모이 비와 하프 너는 꽃이다 수련 애벌레 파도 여우비 그리운 날 사막 산 해변 피 저녁 목동의 별 젖은 낙관 슬픔을 문지르다 To rub away sorrow 슬픔을 문지르다 연화蓮花 장일순 깊은 가을 늦가을 설선당說禪堂 양 밤이 온다 어린 은행나무 고음 저녁 사랑해요 I love you 사랑해요 사과밭 주인 두 손 다리 하나 당신의 동쪽 The East of you 당신의 동쪽 굴참나무 두보초당 사과 한 알 늦가을비 귀뚜라미를 조상함 저녁연기 운동화 군무 겨울 벚나무 겨울 오후 아기 국화 저녁 새벽 세 시 바람이 분다 산다음山茶吟 어떤 꽃 페어 스케이팅 담양 장아찌 상봉 손 Hand 손 노래 저녁 바다 불 쉼표 툇마루 끝 End 끝 전화기를 끈다 계엄이 있던 겨울 작품 해설_ ‘사이’로 향하는 필생의 시 - 노지영(문학평론가) |
도종환,都鍾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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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내 생애도 찬 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위안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 와 내가 바라보는 들판의 푸릇푸릇한 흔적을 함께 보고 있다 --- pp.22-23 「이월」 중에서 꽃 없는 나무들은 이미 자기 생의 가장 빛나는 연두를 밖으로 불러냈고 연분홍과 어우러져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냈어요 (…) 그대 마음에 연둣빛 물이 들면 좋겠어요 --- pp.26-27 「곡우 무렵」 고운 꽃이 누추한 곳에서 올라온다 척박하다고 투덜대는 꽃은 없다 버려진 곳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며 환하게 웃는 여리고 가난한 꽃 --- p.60 「들꽃」 중에서 새로운 것은 유연하다 우듬지 제일 높은 곳에서 한 뼘 더 올라가는 잎은 강한 잎이 아니라 몸이 부드러워진 잎이다 --- p.66 「부드러운 시간」 중에서 만일 그대가 다시 일어서서 내게 온다면 저녁 들판의 꽃들이 모두 그대 향해 손을 흔들게 하겠어요 그대가 상처받고 쓰러져 있다면 푸르고 싱싱한 초원으로 담요를 만들어 그댈 감싸안겠어요 --- p.68 「그대가 내게 온다면」 중에서 바람을 원망하지 마라 구름을 원망하지 마라 들판의 풀들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고 산벚나무는 구름을 원망하지 않는다 (…) 그게 네 운명이었다 원망하지 마라 사람을 --- pp.72-73 「운명」 중에서 사려 깊은 사람은 자기 안에 깊은 가을을 지니고 있다 단풍 드는 날까지 동행해준 인생에 감사할 줄 알고 멈추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 --- p.132 「깊은 가을」 중에서 잎 다 졌다 나 없어도 없는 그곳에 나 있다 그대와 함께 아름다운 꿈을 꾸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더 많았다 그러나 꿈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p.134 「늦가을」 중에서 바람이 오면 바람에 감사하고 상실이 오면 상실에 감사하고 소멸이 와도 소멸에 감사하겠노라 말한 내 전언에 그대는 동의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 p.176 「사과 한 알」 중에서 꿈꿀 수 있어서 아름다웠으므로 세상을 사랑한 것만으로 내 생은 충분했으므로 해금 연주가 끝날 때까지 잠시 있어주면 고맙겠다 인연 깊은 이들을 고맙게 기억하며 나도 한 마리 귀뚜라미처럼 돌아가리라 --- pp.180-181 「귀뚜라미를 조상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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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시대의 소음을 통과한 조용하고 투명한 울림
한국 시의 거목, 40년 시의 길을 걸어온 도종환이 건네는 ‘고요의 형식’ 도종환의 시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오래 고요를 잃은 시대에, 다시 한번 ‘고요로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번 신작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는 도종환이 지금껏 펴낸 모든 시집 가운데에서도 가장 부드럽고 다정한 형식으로 완성된 책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부드러움의 힘이 깃들어 있었지만, 이번 시집의 언어는 그 어느 때보다 잔잔하고 따뜻하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현실을 뚫고 피어난 온화한 결심이다. 세상과 눈 맞추며 살아온 한 인간의 목소리가 이제는 한결 조용하고 투명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외피가 돌처럼 딱딱한 벚나무에서 / 새로 솟아나는 연한 가지”(「부드러운 시간」)처럼, 그의 시는 고통을 밀고 나와 세상을 어루만지는 언어로 도달한다. 곽재구 시인은 추천사에서 정치와 시대의 소음을 통과한 시인이 이제 다시 ‘사람의 언어’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도종환이 난해한 정치판에 들어가 판을 향기롭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 향기를 시로 돌려주는 일”이라며 그의 귀환을 축복한다. 나희덕 시인은 “이 시집의 화자들은 폭풍의 시절을 지나 고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도종환의 시가 “소음과 고요, 분노와 사랑, 격정과 지혜 사이에 선 언어”라며, 그가 오랜 시간 지켜온 인간의 진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고 썼다. 두 시인의 말처럼 『고요로 가야겠다』는 떠남이 아니라 귀환의 시집이다. 언어로 다듬은 마음의 집이자, 긴 시간의 혼탁을 통과한 끝에 얻은 ‘고요의 형식’이다. 고요의 끝에서 더 깊은 고요의 방향으로 생生으로 가야겠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고요로 가는 방식’부터 특별하다. 본문이 시작되면 ‘이월’이라는 제목이 백색 페이지 위에 단정히 놓이고, 맞은편은 새까맣게 닫혀 있다. 흰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 첫 장면에서 시인은 이미 말없이 독자를 ‘명상의 문턱’으로 이끈다. 흰 페이지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여는 숨이고, 검은 페이지는 닫힘이 아니라 머묾의 공간이다. 첫 시가 검은 바탕 위에 떠오를 때, 독자는 마치 선가의 방 안으로 들어간 듯한 감각에 잠긴다. 시는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한 행 한 행이 묵상처럼 독자를 붙잡고, 그 사이의 여백이 시 자체의 일부로 작용한다. 도종환은 산문적 속도에 지친 현대의 독자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문장에 오래 머물게 하는 고요의 방을 마련해준다. 이 시집은 기존의 4부 구성 대신 여덟 개의 ‘사유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으로 이어지는 여덟 개의 화두는 각각 하나의 명상적 공간을 연다. 시인은 각 부를 전시관처럼 배치해, 독자가 방과 방 사이를 거닐며 자신에게 가장 깊이 울리는 문장을 발견하도록 한다. 여백과 어둠, 문장과 침묵이 교차하는 이 구조 속에서 독자는 읽는 동시에 사유하고, 시를 감상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본다. 『고요로 가야겠다』는 물리적 구성 자체가 하나의 시적 장치가 된 작품이다. 시집의 중심부에 자리한 시 「고요」는 이 여정을 집약한다. “바람이 멈추었다 / 고요로 가야겠다.” 이 간결한 선언은 시인이 도달한 내면의 결심이다.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자신을 용서하고 세상을 다시 받아들이는 윤리적 태도이며,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고, 침묵이 아니라 이해이다. 그가 이르는 고요는 외부의 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소리 속에서 자신만의 호흡을 찾는 일이다. “슬픔을 문지르면 분노가 덜 아프다” 필생畢生의 시, 인간으로 서는 언어 노지영 평론가는 해설에서 도종환의 시를 “사이로 향하는 필생의 시”라 명명한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극단을 넘어서, 분노와 용서, 현실과 영혼, 상처와 회복의 경계에 서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중심을 증언한다. 「슬픔을 문지르다」, 「두 손」, 「피」 같은 시에서 그는 몸의 감각으로 영혼의 진실을 말한다. “아침 햇살의 밝고 따스한 부분이 따라 들어와 / 고여 있는 슬픔의 기포를 툭툭 터뜨린다”(「슬픔을 문지르다」)는 구절은 언어로 치유의 몸짓을 실현하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어서 “무엇보다 고요가 거기를 채우고 있는 정적이 좋았습니다”라는 고백은, 고통의 자리를 비워내어 고요로 채우는 치유의 완결을 드러낸다. 거칠고 사나운 세상 속에서 함께 버텨온 손들(「두 손」)을 어루만지며, 상처 입은 존재를 다독이는 따뜻한 윤리의 감각을 보여준다. 기도의 손을 통해 그는 고통을 견디는 연대와 회복의 순간을 노래한다. 시집의 말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몸이 회복되는가 보다 하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런 회복의 시간처럼 시도 내게 옵니다. 시는 마음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만난 언어입니다.” 절망과 상처를 통과한 언어만이 지닌 맑은 진술이다. 그의 시에서 희망은 마른 낙관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젖은 낙관이며 세상을 향한 다정한 응시이자 삶을 향한 마지막 결의다. “툭 하고 떨어지는 붉은 방울 / 젖은 낙관 하나”(「젖은 낙관」)라는 구절처럼, 희망은 고통을 통과한 언어의 흔적이다. 나희덕 시인이 말한 “시인의 고요가 잘 익어가면 좋겠다”는 말처럼, 『고요로 가야겠다』는 그 익은 고요의 기록이다. 그리고 곽재구 시인의 말처럼, “힘든 시절과 싸우는 벗들이여,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도종환의 시집을 읽자.” 분노와 슬픔을 지나 사랑과 용서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의 이름이 바로 ‘고요’임을 도종환은 스스로의 언어로 증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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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의 시를 만나던 젊은 날부터 그의 시에 스민 페이소스를 사랑했다. 산전수전을 겪고 돌아왔을 그의 시가 지닌 페이소스는 여전하다. 굴참나무에 가리어진 언덕을 지나면 또다시 드러나는 든든한 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분노 외에 가진 것이 없다면 사랑은 끝내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없다고 얘기한다. 산방의 풀을 베고 돌아온 양말 속에서 떨어진 귀뚜라미의 다리 하나! (…) 다리는 가고자 하는 곳의 지향이며 꿈의 이정이다. 궁핍한 시절 원적지로 돌아온 동무에게 이보다 따뜻한 선물이 있겠는가. (…) 어둠의 시절과 빛의 시절을 이어주는 다리 하나! 우리 모두는 그 다리를 꿈꾸며 산다. 힘든 시절과 싸우는 세상의 모든 벗들이여,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흐르는 물 위에 꽃을 띄우고 도종환의 시집을 읽자. 궁핍한 시절 서로에게 힘이 된 다리 이야기를 하며 귀지를 파주고 손을 잡고 지는 해에 입을 맞추자. -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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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화자들은 폭풍의 시절을 지나 고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소음과 고요 사이에, 겁탁과 지혜 사이에, 빛과 그늘 사이에, 밀물과 썰물 사이에, 참혹과 환희 사이에, 분노와 슬픔 사이에 있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마음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다독이”(「젖은 낙관」)며 숨을 고르고 있다. 절기에 따라 피어나는 꽃들에게 눈길을 주고, 젖은 꽃잎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귀를 기울인다. 떨어지는 꽃이 축복처럼 내린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한다. “세상에 나가 권력의 난폭함을 겪지 않았다면 / 세상을 안다 할 수 없”(「하직」)다고. 이제 “불 속에서 단련된 칼”이 “완전히 다른 칼로 거듭”(「불」)나듯이, 장아찌가 “곰삭을수록 향과 맛이 깊어”(「담양 장아찌」)지듯이, 시인의 고요가 잘 익어가면 좋겠다. 지순한 사랑의 노래도 올곧은 시대의 노래도 그 웅숭깊은 고요 속에 있을 것이다. - 나희덕 (시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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