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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이상규 교수 5
머리말 9 제1부 교회쇄신운동의 배경 한국교회의 역사적 흐름 19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한국교회의 대응 45 한상동 목사의 조직적인 신사참배 반대운동 63 한국 장로교회 신사참배 결의 이후 1940년대의 부일과 배교 81 광복 후 한국교회 상황과 교회쇄신운동, 친일청산의 문제 95 제2부 교회쇄신운동의 길을 연 사람들 한상동 목사의 광복 후 한국교회 쇄신운동 119 주남선의 신앙과 삶, 나라 사랑과 교회 사랑 145 박윤선의 신학이 고신교회와 SFC에 미친 영향 167 한부선 선교사의 생애와 신학과 광복 후 초기(1946-1948) 선교사역 193 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순교와 고신교회 221 이약신 목사의 광복 후 사역과 고신교회 249 송상석 목사의 사역과 공헌에 관한 서지학적 분석 273 한명동 목사의 목회와 사역 311 박손혁 목사와 고신교회 초기 교육 335 장기려 박사와 복음병원, 고신교회 평신도들의 디아코니아 사역 359 제3부 고신교회 정신과 영성 고신교회 역사 연구와 편찬의 현황과 과제 383 고신교회 경건과 영성 형성의 네 기둥 413 고신교회 정신사에 비추어 본 21세기 교회의 과제 437 에필로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로 빗은 60년 449 참고문헌 453 찾아보기 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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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함께 8월 17일 평양형무소에서 석방된 한상동은 순교한 주기철의 후임으로 평양 산정현교회의 청빙을 받아 시무하던 중 모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 1946년 3월 남하하였다. 그때 이남에는 남부총회가 총회직영신학교로 인가한 조선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는 교회쇄신을 위해 개혁주의신학에 입각한 목회자 양성이 시급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한상동은 고등교육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일반적인 목회자 양성 과정과 같이 교회를 봉사하다가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학자적인 소양을 갖출 기회가 없 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교육과 목회자 양성 구상에는 신학자가 꼭 필요하였고, 박윤선이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한상동은 남하와 함께 신학교 설립을 구체화하였고, 서울에서 박윤선을 만나 그의 옥중 기도와 신학교 설립 계획을 밝혔고, 박윤선이 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주남선과 한상동 등은 신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였고, 손양원도 기성회원이 되었다. 그들은 신학교의 개교의 긴급성을 고려하여 준비하는 과정으로 1946년 6월 23일부터 6주 동안 진해에서 신학강좌를 개최하였다. 진해 신학강좌에 등록했던 63명의 학생들은 대다수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투쟁했거나 그 정신에 동조하는 이들로서 이들은 대부분 고려신학교에 입학하거나 편입되어 신학을 마치고, 후일 이들은 고신교회의 주류로 편입되었다. 출옥성도 주남선, 한상동 등의 설립자들은 1946년 7월 경남노회의 인가를 받아 1946년 9월 20일 부산 일신여학교 교실을 빌려 고려신학교를 개교하였다. 한상동과 신학교 기성회에서는 고려신학교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계승하는 신학교육기관이 되기 위해 만주에 체재하던 박형룡을 교장으로 청하기로 하고, 박윤선을 교수와 교장 서리로 임명해 개교하였다. 박형룡을 국내로 초치하기 위해 1차로 제자였던 남영환을 만주로 보내었 지만 콜레라 창궐로 인천에서 돌아왔고, 2차로 송상석의 목숨을 건 인도로 박형룡이 귀국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에 도착하여 교계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부산으로 내려가기를 꺼리다가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인도한 고신 지도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6개월 만에 고신을 떠났다. 박형룡이 고신을 떠난 후 박윤선은 14년 동안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봉사하며 고신을 대표하는 학자로 신학교육에 힘썼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에 견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깊은 기도 생활에서 나온 경건으로 설교와 강의에서 회개운동을 외쳤으며, 학생들에 게 깊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다. 고려신학교가 1956년 3월에 송도에 교사를 마련하고 이전하였으며, 고신교회가 신학교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며 총로회가 총회로 승격되었다. 이때는 고려신학교도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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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광복 후 교회 재건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며, 교회쇄신운동이 단순한 조직 개혁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영적 운동’이었음을 보여줍니다. 2부에서는 고신교회의 설립자들인 한상동·주남선·손양원·박윤선·한부선·이약신·송상석 등 20세기 한국교회의 위대한 신앙인들을 조명합니다. 이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시대적 사명을 통해 저자는 “교회의 순결과 신앙의 정통은 인물의 영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3부에서는 고신교회의 영성과 정신의 형성을 논구하며,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가치로 ‘경건, 순결, 개혁, 봉사’의 네 기둥을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21세기 다원화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신학적 제언입니다. 『고신교회 정신사 연구Ⅰ』은 방대한 1차 사료와 문헌, 교단의 공식 기록, 신학 논문 등을 치밀하게 분석한 실증적 연구서이면서도, 그 근저에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자는 연구자로서 냉철한 시선과 목회자적 따뜻한 마음을 함께 담아, 교회의 순수성과 개혁 정신을 균형 있게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이 책은 학문적 깊이와 신앙적 감동을 동시에 지닌 드문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80년 동안 한국교회는 눈부신 성장과 더불어 깊은 상처를 겪어왔습니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나삼진 박사는 “역사를 잊은 교회는 신앙을 잃는다”는 신념으로, 고신교회의 뿌리를 더듬어가며 ‘정신사(精神史)’라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한국교회사를 새롭게 써 내려갑니다. 그가 말하는 교회의 본질은 제도나 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결을 지켜온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 책은 신학도와 목회자는 물론,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귀중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고신교회 정신사 연구Ⅰ』은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로 빛난 고신교회의 80년 역사를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함을 일깨우는 시대적 선언이자 신앙적 고백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와 다음 세대를 향한 영적 나침반으로써 오랫동안 그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 광복 80년의 역사는 광복 후 한국교회에서 일어난 교회쇄신운동 80 년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필자는 총회교육원에서 28년 6개월 동안 사역하면서 고신교회의 역사와 신앙과 정신을 전국화시키 고 세계화시키고자 했으며, 부산경남지방 일우에 머물던 우리의 정신을 대중화시키고 현대화 시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 교육 분야에서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고신교회의 역사와 정신을 탐구(探究)해 왔는데, 광복 80 년, 교회쇄신운동 80년을 맞이하여 『고신교회 정신사 연구』이라는 책 을 펴냅니다. 여기에 실린 논문들은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탐구해 온 ‘고신교단 정신사 서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의 무대를 살피면서 한국교회 교육 과 함께 교회역사를 공부하고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논구해 왔 습니다. 고신교회 70주년을 맞아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통사를 발 간할 때 집필위원으로서 11개의 소논문을 집필하였습니다. 또 고신총 회에 속한 전국적인 기구인 총회교육원, 전국SFC,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역사를 집필하였고, 서문로교회 60년사를 비롯한 교회 역사, 학생신앙 운동과 총회교육원 등 기관의 역사를 집필한 바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동안 저의 한결같은 관심은 고신교회의 역사와 정신 세계였습니 다. 그리하여 지난 10년 동안 고신교회 창립기의 중요한 인물들을 깊이 탐구해 왔습니다. 이러한 긴 노력이 이 책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