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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딸기
2. 샌드위치 3. 나팔꽃 4. 우산 5. 밀림 6. 피크닉 7. 베개 8. 발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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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 candy@yes24.com
이 특이한 이름의 소설가와 만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퇴근길의 지루함을 잊으려고 『작가세계』라는 문예지를 꺼내든 것이 발단이었는데, 거기에 뜬금없이 웬 마르시아스라는 작가의 단편 소설 「베개」가 실려있었고, 그 낯선 이름이 좀 걸리기는 해도, 소설의 제목이 풍기는 그 '은근히 야함'을 차마 져버릴 수 없어 첫 장을 넘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걸 기대에 부응했다고 말해야하나 아니라고 말해야하나... 소설의 내용은 사랑이야기이긴 한데, 놀랍게도 서른아홉 살의 남자와 예순넷의 여자의 사랑이야기인 것이다. 게다가 기묘하게도, 소설을 쓰는 그 서른아홉 살의 남자는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느끼고 맛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위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느끼길 원하는 사람이었으며, 적어도 다양한 여성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개성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런 남성형이 있다니... 남자란 소위 '영계'를 좋아하는 파렴치한(?) 짐승성의 유전자를 간직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런 남성을 창조해낸 '마르시아스 심'의 이력 또한 독특하다. 사실 그의 본명은 심상대. 독특한 미학의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 『늑대와의 인터뷰』등을 통해 잘 알려진 기성작가이지만, 올해 초 '선데이 마르시아스'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후, 다시 '마르시아스 심'으로 필명을 바꾸며 최근 탐미적인 성애소설 『떨림』을 발표한 것이다. <먼 옛날 내가 아주 젊고 자유로왔을 때, 나는 장차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래서 언젠가 소설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심했었다. 어떤 문고본 책갈피에 그 동안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들의 몸에서 하나하나 훔친 불꽃털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듯이 내 소설 속에 그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두려 했던 것이다.> 『떨림』은 직업이 소설가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자신의 성애담을 8편의 이야기를 통해 회고하는 연작소설집이다. 8편의 이야기를 통해 공부보다는 연애에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생시절부터 이혼한 경력이 있는 서른아홉 살의 한 남자가 되기까지의 그의 이력이 얼기설기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 '그 여자들과의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늘어놓는다. 만약 이 소설이 대중에게 어필한다면 그 빚은 소위 '순수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성욕과 섹스에 대한 꼼꼼한 묘사와 다양한 여성과의 편력에 있을 듯하다. 하지만 『떨림』은 천박하지 않고, 도색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이 민망한 느낌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애잔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맑은 인상이다. 무엇이 '성애의 고백으로 이루어진 한 젊음의 성장사'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먼저 작중 화자의 '나'의 당당하면서도 강한 주관성이 눈에 뛴다. 이 소설은 '눈물에 젖은 한 여인의 알몸을 부둥켜안은 채 다시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한 소설가의 옛날 이야기이다. 따라서 '나'와 여인들이 벌이는 갖가지 섹스는 현재형이 아니라 '나'에 의해 기억되는 과거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움을 희구하는 '나'의 시선에 의해 관조되고, 의미가 부여되며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제는 이야기하여야겠다'식으로 거침없이 편집되기도 한다. 이렇듯 띄엄띄엄 나열되는 그의 성애담은 이혼 경험이 있는 서른아홉 살 소설가의 성숙한 자아에 의해 한 남자의 성장사를 만들기 위해 짜맞춰야하는 퍼즐 조각. 하지만 그 조각만으로도 완전한 그림을 이루는 퍼즐 조각이 된다. 또한 이 소설집에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하며, 그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성욕과 섹스가 등장한다. 차마 나이를 밝히기도 부끄러운 어린 소녀와의 관계, 매독에 걸려 몸이 썩어나가는 여자의 눈을 보며 치밀어오르는 성욕을 느끼던 일, 하숙집 여주인 앞에서의 수음, 유부녀와의 사랑, 매번 성적 엑스타시를 경험하는 유 마담과의 관계... '나'가 이들에게 느끼는 성욕은 남성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기만과 권위가 아니라 지금 '나' 앞에 있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순수함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여성을 진면목을 느끼고 맛볼 수 있으며, 여성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 남자를 진심으로 아껴준다. '나'와 관계하는 여성들은 욕망에 솔직하며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할 수 있는 진정한 암컷이다. 이러한 남과 여가 만나 벌이는 성애는 억압되거나 은폐되지 않은 공정하고 건강한 행위이다. 그리고 이 행위를 통해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나'의 의지는 세계의 그리고 생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노력과 동의어이다. <"이리 와. 이리 와"하고 그녀는 나의 얼굴을 당겨 자신의 젖가슴에 댄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주체할 수 없는 색정을 달래려고 다시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있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기기 시작한다. 유 마담의 몸 위에서 100번의 피스톤 운동을 할 때마다 채널은 한 자리씩 돌아간다. 채널을 16번까지 다시 한바퀴 돌리게 되면 삼천이백 번이 된다. 아침 어스름이 창가로 밀려올 때가지 채널은 세 번쯤 돌아가게 되고 그러면 사천팔백 번이다. 그리고 긴 잠에 빠져들어 정오가 되어서야 허기에 지친 몸으로 잠에서 깨어났으며, 깨어나서도 서로의 몸을 만져대며 오래도록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당시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가치, 그 모든 아름다움의 정점에 서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무위(無爲)였다, 라고 나는 지금도 자신한다. 이렇듯 당시 내게는 그 모든 것이 다 있었기 때문에, 내 눈에 비치는 것, 더욱이 여자라는 존재는, 다 천사요, 선녀요, 세계였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껍질을 벗기는 내기를 한, 그리스 신화의 마르시아스'로 이름을 바꾼 이 사람 심상대. '수억만 송이 나팔꽃이 피어나고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는' 가운데 '눈물에 젖은 한 여인의 알몸을 부둥켜안은 채 다시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그가 예술을 위해 어떻게 자기 껍질을 벗겨 가는지 지켜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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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7 지금 살고있는 집에서는 아침마다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을수있다. 침대에 누워 꿈결인듯 듣는 산비둘기 소리에는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구슬피 두드리는 각별한 정조가 깃들여 있다. 서울시내 한가운데 살고있는 비둘기라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비둘기 소리를 들을때마다 지금은 만날수 없는 한여인의 목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숨죽인 울음에 떠밀려 흘러나오던 낮은 흐느낌 이었다.그 동안 나는----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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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는 무엇보다도 떠난다는 사실에 감격해 있었다. 덜컹대는 시골 버스와 차창 저편으로 펼쳐져 있는 늦은 봄날의 나른한 싱그러움. 풀물로 잔뜩 범벅을 해놓은 산과 들, 그리고 햇살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곱슬머리 총각이 곁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강변에서 버스를 내려 뱀장어 양식장을 지나 좁은 콘크리트 수로를 끼고 있는 둑방을 걸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긴 둑이 있었고, 딸기밭은 그 건너편, 하천과 작은 언덕빼기 사이의 논도 밭도 아닌 경작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은 누추한 작은 농가가 아마 딸기밭을 임자의 집이었겠으나, 짖지 않는 개 한 마리밖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마땅히 딸기밭도 버려진 채였다. --- p.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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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사회에서는 성교를 위한 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동물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공격성을 이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특별하게 진보된 성을 통해 그들사회에 존재하던 폭력을 제거해버린 셈이다. 만일 무리 내에서 싸움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이들은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성행위를 한다. 그러므로 보노보는 다른 침팬지 무리와는 달리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 p.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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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써야 할 게 있다면 그러한 그리움에 대한 서러운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게도 한 번쯤 불꽃 같은 사랑이 찾아오겠지,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영혼을 바칠 수 있겠지. 하는 허영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은 그와 같이 그리움에 저항하는 일말의 막연한 희망과도 같았다. 절망에 휩쓸려 허우적대면서도 팔을 뻗어보는 힘이었다. 어쨋든 그러한 '고독을 견디는 힘'에 기대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 p. 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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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내가 아주 젊고 자유로웠을 때, 나는 장차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래서 언젠가 소설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우선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심했었다. 어떤 문고본 책갈피에 그 동안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들의 몸에서 하나하나 훔친 불꽃털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듯이 내 소설 속에 그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 두려 했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다들 순백의 영혼을 지녔고, 그리고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성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미로운 언어의 선율에 실어 노래하고 싶었다. 오늘의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나는 가슴 아픈 사연 하나를 꺼내 이곳에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청춘, 나의 방랑
--- p.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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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실이의 음부에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아침'이라고. 그리고 연실이는 내 성기를 '희망'이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어요. 그게 다였지. 우리는 깊은 밤 이슬에 젖은 백사장에서 섹스를 했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내게 이야기를 했지. 이 담에 다른 남자랑 살더라도 절대 날 잊지 않겠다고. 다음날 대낮에 잠에서 깨어보니 연실이는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사라지고 없었어. 여름날의 나비처럼 내게로 날아와 잠깐 쉬다가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지. 그런데 그녀는 사라지기 전에 내 몸에 한 가지 흔적을 남겨두었더군. 수영팬티를 갈아 입으면서 보니까 성기에 뭔가 글자가 적혀 있는 거야. 밤새 술에 취해 늘어진 내 성기에 그녀가 볼펜으로 적은 글자였어. 불생불멸.
--- p.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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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 p.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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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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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와 퇴폐 속에서 피어나는 강렬한 존재 확장의 체험
'심상대'라는 본명을 두고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필명으로 펴내는 첫 책이다. 성애의 고백담 형식을 빌려 씌어진 8편의 연작을『떨림』이라는 제목으로 한자리에 묶었다. 문예지에 발표될 때마다 성애담의 수위나 파격적 상상력을 둘러싸고 가벼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작품의 묘한 미학적 성취는 심상대라는 작가를 거듭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이제는 이야기하여야겠다"는 고풍의 고백 장치를 두고 펼쳐지는 8편의 섹스 이야기는 기실 작가의 낭만적이고 탐미적인 미의식이 빚어낸 허구의 서사다. 그러나 작가는 천연덕스럽게도 작중화자에 스스로를 겹치는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 그 위악적 천연덕스러움이 너무 능란하고 자연스러워 독자는 작중화자 '나'와 작가를 구분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연작소설 전체에서 주인공 '나'와 정사를 했던 여자들은 여러 종류이다. <딸기>는 이미 방탕한 성 체험을 지닌 주인공이 대수롭지 않게 동정을 바친 두 자매를 별 즐거움도 없이 차례로 안았던 이야기이다. 혼탁하건 순결하건 모든 종류의 성애가 내내 그의 누추한 삶에 찍어놓게 될 이미지를 예시하는 작품이다. <샌드위치>에서는 성병으로 아랫도리가 썩어버린 늙은 창녀, 수음하는 고등학생을 엿보는 하숙집 여주인, 남의 남자를 사랑하며 죽음의 충동을 느끼는 한 여선생의 인생사를 엇물려 진행시키면서 미에 관한 하나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이 미학은 성애와 퇴폐 속에서, 또는 그 뒤섞임 속에서 느끼는 존재 확장의 체험에 다름아니다. <나팔꽃>에는 동거하던 남자를 감옥에 둔 여자를 풀숲에서 안았던 기억 끝에, 결혼식의 주례를 맡기로 된 처녀와 육체를 나눈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요한것은 바다의 파도처럼 피었다가 이울어지는 육체의 '나팔꽃들'을 기쁘게 누리는 일이다. <밀림>에서는 성적 욕망을 가질수도, 성적 충동을 일으킬 수도 없을것 같은 여자들과의 성교로부터 '성의 사회적 기능론'을 끌어내고 있다. <우산>은 미친 거지 여자를 포함한 세 여자와의 섹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세 개의 우산에 관해 말한다. 권태와 광기의 비를 가려주는 상징으로서의 우산들을 통해 세 개의 독립된 플롯들을 엮어낸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 가지는 압출의 미학과 결기가 느껴진다. <피크닉>은 전형적인 모텔 연애담. 이혼남인 주인공과 만나는 '남편 있는 여자'는 미국 유학 시절 포토맥 강가에서 어느 젊은 남녀의 우아한 포옹을 바라보았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이 '피크닉 연애' 풍경은 거기 곁들인 반결혼론과 더 나아가서는 '창조적 에너지로서의 우연과 비평형'에 대한 옹호를 내용으로 삼는 예술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베개>는 서른아홉인 남자와 예순넷인 여자의 연애 전말기. 발전이 없다기보다 발전을 반대하는,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삶을 죽음의 정갈함으로 정리해버린, 연상의 여자와의 이 정사는 그 밑바닥에 시간(屍姦)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형식은 심상대 소설 미학을 구성하느 기본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에 해당한다. 마지막 단편 <발찌>에서 주인공은, 남자에게 버림받았으나 그 남자를 섬뜩할 정도로 그리워하는 한 처녀와의 관계를 맺는다. 처녀의 미친 그리움은 독자들에게 '고독을 견디는 힘'이자 '그리움에 저항하는 일말의 막연한 희망'을 던진다. 이 연작소설집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은 제각각의 삶의 무게를 안고 헤매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런 다종의 여인들을 통해서 단자화된 인간들간의 관계 즉 소통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서로를 만나고 부둥켜안고 서러워하고 그리고 헤어지는 것들은 모두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소통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고독을 운명으로 부여받고 있는 인간들에게 사랑은 가장 분명한 소통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슬픈 사랑과 운명에 그리고 지상에서의 불완전한 현실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존재와 존재 사이의 완전한 소통을 꿈꾸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