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옮긴이의 말
킬리만자로의 눈 킬러들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 미시간 북부에서 혁명가 빗속의 고양이 작품해설 - 『빗속의 고양이』 비교 번역 작가소개 |
Ernest Hemingway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의 다른 상품
이정서의 다른 상품
|
빗방울은 매우 굵어 마치 폭포를 통과해 나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그곳을 벗어나자 콤피가 머리를 돌려 싱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거기, 앞쪽에, 그가 볼 수 있는 전부가, 온 세상처럼 넓고, 거대하고, 높은, 그리고 햇빛 속에서 믿을 수 없이 하얀, 그 킬리만자로의 네모진 정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그곳이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짐은 입을 약간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리즈는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키스했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약간 들어 올려서 흔들었다. 그는 머리를 떨구더니 침을 삼켰다. 리즈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선창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가서 물을 내려다보았다. 만으로부터 안개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추웠고 비참했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 그녀는 울고 있었다. --- 「미시간 북부에서」 중에서 그들은 자갈길을 따라 돌아가서는 문을 통과했다. 여직원은 우산을 접기 위해 밖에 머물렀다. 미국인 여자가 사무실을 지날 때, 그 주인이 책상에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무언가 아주 작고 꽉 찬 어떤 것이 여자의 내면에 느껴졌다. 그 주인은 그녀가 매우 하찮으면서도 동시에 중요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최고로 중요한 존재라 는 느낌이 들었다. --- 「빗속의 고양이」 중에서 그 호텔에 머무는 사람은 미국인 두 사람이 전부였다. (M사, 「빗속의 고양이」 중에서) 그 호텔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은 두 명뿐이었다. (이정서) 빗속에서 바다는 파도가 길게 부서졌다가 해안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갔다가 다시 빗속에서 길게 부서졌다. (기존 번역) 바다는 빗속에서 긴 줄을 이뤄 부서졌고 해변으로 올랐다가 뒤로 미끄러져 내려갔다가는 다시 빗속에서 긴 줄을 이뤄 부서졌다. (이정서) 그들 방의 창문 바로 아래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박테이블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기존 번역) 그들의 방 창 바로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녹색 테이블 가운데 하나 밑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정서) --- 「『빗속의 고양이』중에서 비교 번역」 중에서 |
|
문장 구조 그대로를 살려 번역할 때, 헤밍웨이의 문체는 더욱 빛을 발한다!
“엷게 펼쳐 놓기보다는, 항상 졸인다boiling” 20세기 미국 최고의 작가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대작을 남기고, 1952년 발표한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기자로 일한 경험에서 그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사실적으로 내용을 묘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스스로 “엷게 펼쳐 놓기보다는, 항상 졸인다boiling”라고 말할 정도로, ‘하드보일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글쓰기 방식에 특히 신경을 썼다.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함께 헤밍웨이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이 ‘빙산 이론’이다. 작가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모두 서술한 것과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서로 읽는 게 아닌 이상, 번역 과정에서 서술구조나 대명사, 단어의 의미를 번역자 임의로 번역하게 되면, 독자는 그 뉘앙스나 작가의 의도를 놓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헤밍웨이의 작품들은 여러 번역자들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은 뒤 기억나는 것이 줄거리뿐이라면 우리는 헤밍웨이를 절반밖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헤밍웨이 문체’는 단순히 짧게 끊어 쓰는 단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문을 보면 그의 문체는 장문, 복문도 수시로 등장한다. 그런데 번역하면서 ‘단문’에 집착하여 접속사와 쉼표를 무시한 자의적 번역들이 많았다. 이는 헤밍웨이 문장의 맛과 멋을 많은 부분 해친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더 이상 난해한 소설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원래 문장을 흩뜨리면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라는 원칙 아래, 쉼표 하나, 단어 하나도 원문에 충실한 정역을 위해 노력했다. 벽돌(단어)의 날카롭고 투박한 모퉁이를 갈아내는 것처럼 단어를 고르고 또 골라내고, 다듬은 문장들이 원 뜻과 부합한지 여러 차례 숙고했다. 그래서 그 어렵기로 소문난, 헤밍웨이 자신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킬리만자로의 눈〉이 더 이상 난해하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헤밍웨이의 야성적인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것이다. 또한 〈빗속의 고양이〉 비교 번역을 실었다. 헤밍웨이 단편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빗속의 고양이’는 그 명성에 비해 독자들의 호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영어소설의 원 문장과 기존에 번역된 문장, 이 책의 번역문을 함께 실어 의역과 정역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했다. 헤밍웨이의 문체와 문장,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한층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역자의 말 “번역은 직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직역의 의미는 ‘작가가 쓴 문장의 서술구조를 살려주는 번역’을 의미한다. 동사는 동사대로, 수식어는 수식어대로, 쉼표는 쉼표대로, 원래 작가가 쓴 문장 성분을 무시하고 의역하면 원래의 의미가 변질될 것은 당연하다.” 이런 주장을 처음 펼치며 번역의 세계에 뛰어든 지 어느새 8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나름 저 원칙을 지키며 여러 책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과정 중에 수없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회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연히 초기의 번역은 서툰 점도 많았습니다.그러나 번역을 할수록, 원래 작가가 쓴 문장 성분을 그대로 살리면서 번역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확신은 무엇보다 ‘헤밍웨이’를 만나고부터였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의 단편집들을 보면서, 이게 정말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맞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스럽고’, 의심스러웠습니다. 작가 자신을 주인공 삼았다는 대표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은 컸습니다. 도대체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고자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밍웨이 단편을 번역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헤밍웨이의 원문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심’은 역시 번역에 있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단편들은 원래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 번역하는 것과 번역자 임의로 의역한 문장이 결국에 얼마나 내용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은 기존의 헤밍웨이 번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헤밍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