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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로 공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신작. '낭송'으로 새로운 독서법을 이야기한다. 춘향전, 동의보감, 논어와 맹자 등 28권의 동양고전의 텍스트 낭송을 통해 이제 책을 몸 안에 새기자.
2014.11.07.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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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Mi Sook,高美淑
고미숙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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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공부의 달인』 책에서 쿵푸의 비법으로 ‘낭송과 구술’을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 공동체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이 비법을 실험한다. 낭송 오디션이며 낭송 페스티벌 등등. 다들 그렇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에 가면 독자들은 또 물었다. 낭송이 뭐예요? 낭송을 어떻게 해요? 소리 내서 읽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등등. 그만큼 우리의 독서와 공부에는 ‘음소거’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공동체의 사례를 들어가며 최선을 다해 설명했지만 그래도 뭔가 미진했다. 그러다 올봄, 저 달리는 열차 속에서 한바탕 ‘일장춘몽’을 꾸게 된 것이다. 역시 인생만사엔 시절인연이 중요한 법이다. 결국 『공부의 달인』이 『낭송의 달인』을 부른 셈이다. 그럼 왜 ‘낭송의 달인’이 ‘호모 큐라스’인가? 큐라스는 케어care의 라틴어다. 푸코 강의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다. 『동의보감』을 내 나름대로 재해석한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의 마지막 장에서 이미 활용한 바 있는 낱말이다. 낭송과 양생의 결합으로선 최고의 단어다. 양생의 핵심은 사계절과 함께 리듬을 타는 것이다. 낭송 또한 그러하다. 하여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모두들 고전에 담긴 소리를 통해 내가 자연 속으로, 천지가 내게로 오는 ‘천인감응’의 파노라마를 즐기시길!”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저자 고미숙 인터뷰 1. 낭송의 달인이 포함된 ‘낭송Q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간략하게 어떤 책들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출간된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고전을 낭송하기 위한 책인데요,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만든 건데, 너무 절실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소리를 내장하고 있는 텍스트들이에요. 그래서 ‘소리 내어 읽어야 완성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고전을 보면 사실 막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 시대는 ‘책을 읽는다’ 이러면 눈으로 이렇게 뚫어지게 막 보는 거고, 책을 째려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게 항상 좀 ‘몸’하고 안 맞는 공부법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낭송집을 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소리가 막 제 몸 속에서 터져 나와서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 소리에 부응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사실 달인 시리즈는 『돈의 달인』 쓰고, ‘이제 끝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낭송의 달인』을 쓸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고전을 낭송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안내하는 글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낭송의 달인??을 쓰게 된 것이고요. 사실 메인이벤트는 낭송집 28권에 있는 거죠. 그럼 왜 28권인가? 이게 동양 별자리에서 빌려온 거예요. 동양 별자리가 동청룡, 남주작, 서백호, 북현무에 각각 7개씩 이렇게 28개가 일 년 동안 쭈욱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1년 내내 낭송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내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까지 막 아이디어가 폭발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조금 대작이 된 것이죠. 그리고 『낭송의 달인』을 뭐라고 해야지 맞을까. 호모 쿵푸스, 호모 에로스, 호모 코뮤니타스……, ‘호모 큐라스’가 어떨까. ‘케어care’의 어원인 라틴어 큐라스curas. 양생이라는 뜻도 있고, 또 심지어 책을 쓴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래서 그 의미들이 다 결합이 되어 있는 ‘호모 큐라스’가 좋겠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몸과 고전의 마주침’인 ‘낭송Q시리즈’를 내게 된 것이죠. 2.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는 실제로 '낭송'을 여러 과정에서 중요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모 쿵푸스에서도 낭송을 중요한 공부법으로 언급하기도 하셨구요. '낭송'이 어째서 '쿵푸(공부)의 비법'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고전을 일단 ‘소리 내서 읽는다’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논어』나 불경, 이런 것들이 제자들한테 말로 한 것을 기록한 것이니까요. 서재에서 문법에 맞게 글을 쓴 다음에 고전이 된 게 아니거든요. 다 현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이 고전들을 읽을 때 내 몸이라는 현장이 살아 있어야 해요. 그런데 혼자서 눈으로만 묵독을 하면, 이것은 울려 퍼지는 개념이 아니고, 안에서 고이는 느낌이 들죠. 이런 걸 우리가 이제 ‘지식’, 굉장히 건조한 ‘정보’ 이렇게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그럼 이게 울려 퍼지는데, 제일 먼저 내 몸에서 울려 퍼져야 되니까, 그러면 ‘낭송을 해야 되겠구나’ 하는 이걸 모두가 공유를 하게 돼서 제가 있는 남산강학원이나 감이당에서는 공부를 시작할 때, 끝날 때 꼭 낭송을 해요. 그리고 책을 제대로 정독했는지 이런 걸 확인하는 방법도 암송을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자꾸 하다 보니까 학기마다 낭송오디션을 하게 되었죠. 물론 처음에는 ‘낭송’이라니까 외워야 하잖아요, 그걸 소리 내어 말해야 하고, 그러니 다들 이런 걸 어떻게 해요, 이것만은 못하겠어요, 막 이랬었요. 그랬는데, 오~ 이제는 막 온갖 끼를 다 발휘해서 ‘낭송’을 너무너무 즐겁게 하죠. 그 모습을 보고 ‘아, 여기에 공부의 길이 있구나’ 이걸 이제 더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죠. 지금은 다른 것은 힘들지만 ‘낭송오디션’은 하고 싶다 이런 분이 생겼을 정도예요. 그리고 그것은 10대나 6080세대까지 다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연세 드신 분들이 더 막 자기가 소리 내서 이걸 표현하고자 하는 이 욕망이 엄청 커졌다는 걸 알고, 이게 정말 기가 막힌 공부법이라고 말씀하세요. 이런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의 어떤 리듬과 딱 합쳐지는 기획으로 ‘낭송Q’시리즈가 나오게 된 겁니다. 3. 막상 낭송을 하려고 해도 무슨 책으로 해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가 난감합니다. 논어나 맹자 같은 동양 고전을 무작정 소리 내어서 읽으면 되는 것인가요? 또 모든 책을 낭송으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같은 서양-과학 책들도 낭송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묵독이 필요할 때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낭송할 책과 묵독할 책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책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기 때문에 독서 방식이 기본적으로 묵독이에요. 예전에는 책 자체가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사서삼경이든 불경이든, 일단 책을 읽는다고 하면 자기 소리를 내서 읽었죠. 심지어 일억 번 읽었다는 기록도 있었요. 물론 그 시대에도 묵독이 있긴 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건 소리를 내서 읽는 그런 시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책이 너무 많기 때문에 빨리 읽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묵독이 보편화되었죠. 그러면 어떤 책을 낭송하는 게 좋으냐. 어떤 책을 읽고 이건 정말 내가 몸에 새기고 싶다. 그러면 낭송하고 암송해야 돼요. 그래야지 이 텍스트가 내 몸의 세포하고 섞여서 내 몸의 에너지나 기운을 만들어 낼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하면 다들 “좋아요”, “하고 싶어요”, “그런데 뭐부터 해야 되나요?” 이걸 꼭 물어요. 그냥 자기가 책을 읽다가 이것은 내 몸에 새기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낭송을 하면 되는데 좀 어색한가 봐요. 그래서 이제 낭송집을 기획하게 된 거죠. 낭송집으로는 특히 동양고전이 가장 좋은데요, 현대인들은 몸이 좀 많이 들떠 있거든요. 이 들떠 있는 화(火)기운을 좀 가라앉히고, 평정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 건 동양의 음기(陰氣), 그러니까 물의 기운이 필요해요. 동양고전은 이런 파동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시작하라고 권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동양고전 28권을 기획을 한 거예요. 보통 ‘낭송’이라고 하면 시나 동화 같은 것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파동’을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책이든 그 책에 어떤 인생과 우주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면, 그 파동은 우리 몸을 변화하게 하고 기질도 아주 맑게 해주고 이런 기능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나, 또 어려운 수학책 이런 것도 다 낭송할 수 있죠. 제가 고등학생일 때 수학선생님을 짝사랑해서 수학책을 다 외워 버렸잖아요. 그 덕분에 제가 로그와 수열을 아주 사랑하게 되었죠.^^ 제가 수학선생님을 짝사랑할 때 진도가 그거였거든요. 그때 저는 풀이과정이나 이런 것을 계속 머리로 리플레이하면서 중얼거렸어요. 마찬가지로 과학책이든 수학책이든 소리 내서 내가 친구들 앞에서 풀어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물리구조나 수의 이치 같은 것을 이야기로 해본다, 이러면 되게 멋진 일이에요, 사실. 되게 멋있어요, 그렇게 하면. 그러니까 사실 낭송에는 경계가 없죠. 인생과 우주의 지혜가 담긴 언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우주적 파동이 담겨 있다, 이걸 기억하시면 아마 굉장히 많은 책들을 낭송으로 만나게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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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흥보전]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흥보전』을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판소리라는 장르 자체에 흥미 있었습니다. 소리꾼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특정 대목만’ 뚝 떼어서 들려준다는 것이 재밌었어요. 지금 우리는 뭔가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작품이란 완결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불과 몇 십 년 전 사람들은 이미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매번 새롭게 들었을까요? 소설과는 다른 판소리만의 고유한 이야기 방식이 있을 것 같았죠. 그걸 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흥보전』을 보니까 아는 이야기인데 재밌고, 각 대목마다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놀보가 나쁜 사람인 걸 다 알고 있는데도 심술타령을 듣다보면 ‘어찌 인간이 이럴 수가 있나!’ 놀라게 되고, 흥보가 가난한 걸 알고 있었지만 가난타령을 듣다보면 ‘이렇게 가난해도 흥보가 죽지 않고 살았다니!’ 감탄하게 되죠. 각 대목마다 전혀 다른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매력이 있었어요. 『흥보전』은 매우 다채로운 텍스트였어요. 잘 골랐다 싶었죠. 판소리 중에서 『흥보전』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고 행운이죠. 그래도 조금 마음이 끌렸던 것은 사실이니까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부자’가 된 ‘착한 사람’ 이야기가 좋았어요. 예전에 초등 논술 학습지에서 흥보를 ‘무능한 가장’으로 비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좀 화가 났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주인공을 그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논리’를 내세우며 따지는 게 맘에 안 들었죠. 흥보라는 캐릭터가 지금 우리에게 뭔가 다른 삶의 윤리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인간이 극도의 가난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지를 흥보는 보여줍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가난과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배우는 거죠.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흥보전]은 판소리 『흥보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고른 『흥보전』의 원 판본은 신재효가 정리한 본입니다. 오래된 옛말이 많고, ‘아주’ 교훈적으로 끝을 맺었어요. 예를 들어 창본들마다 놀보가 심술을 부릴 때 흥보와 흥보 마누라가 나누는 대화도 조금씩 다르고, 놀보가 반성하게 된 대목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창본에는 걸쭉한 욕들도 많고 자극적인 설정도 있는데 신재효본이 가장 밋밋해요. 좋게 말하면 많이 점잖은 거죠. 어떤 창본에는 있는데 빠진 부분도 있고, 상대적으로 짧은 대목도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조금 보충하고, 창본에 좀더 실감나는 표현이 있으면 그걸 쓰기도 했죠. 그래도 큰 흐름을 바꾸진 않았어요. 한자어들과 옛말들은 현대어로 최대한 고쳤습니다. 요즘은 잘 안 쓰는 사자성어도 많고, 중국 역사나 한시 인용들도 참 많았어요. 그대로 낭송되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거든요. 그걸 최대한 풀어서 썼습니다. 실제로 판소리를 하시는 분들은 몸짓도 하고 즉흥적으로 설명도 넣고 해서 분위기를 잘 전달해 주지만 『낭송 흥보전』은 ‘누구나’ 낭송할 수 있게 고전을 다듬는 작업이니까 그대로 둘 수 없었죠. 그러다 보니 문장이 길어지는데 그럼 운율이 살지 않아서 그걸 또 4·4조에 맞도록 다듬었죠. 예를 들어 박타는 대목에서는 온갖 비단, 보화, 가정 살림살이 이름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모르는 게 정말 많았습니다. 그걸 현대어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꾸고 글자 수가 달라지면, 순서를 조금 바꿔서 운율을 맞추는 거죠. 근데 판소리에서 아니리 같은 부분은 운율이 딱 맞을 수가 없거든요. 나중엔 그런 곳도 글자 수가 안 맞으면 찜찜하더라구요. 그래도 꾹 참고 ‘말하듯이’ 쓴 표현은 그냥 두었어요. 그리고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들었을 때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질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방향을 정해서 위에서 아래로, 안에서 밖으로. 이런 식으로요. 최대한 소리를 타고 상황과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다듬었습니다. 3. 앞으로 [낭송 흥보전]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에서도 한 말이지만 『흥보전』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꼭 읽어보세요. 스토리를 다 아는 소설도 영화로 나오면 또 보게 되잖아요. 각 장면들이 어떻게 실감나게 그려졌는지 즐기고, 새록새록 다시 감동도 느끼고요. 『흥보전』도 그래요. 줄거리는 우리가 알던 『흥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재미와 감동은 정말 다를 거예요. 말로 스펙터클과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소리꾼들의 능력에 정말 놀라시게 될 거예요. 그걸 보면 흥보가 능력도 없고 운도 없는 사람이지만 정말 고귀하고 (좋은 의미에서)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리 내서’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제가 한때 그림동화책을 좋아했는데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소리 내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 올 때가 많았거든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신 경험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거예요. ‘소리’와 함께 전달될 때 제 맛이 나는 텍스트들이 있잖아요. 판소리가 정말 그래요. 누군가를 앞에 두고 낭송하신다면 더 좋겠지요. 판소리 작품은 정말 ‘소리’가 다르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꼭 소리 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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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서유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서유기』를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출발은 아주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겠네요. 어린 시절, 저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긴 것은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요즘 아이들이 뽀로로와 로보카 폴리에 정신을 잃듯이, 제 세대 친구들이라면 ‘날아라 슈퍼보드’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근두운 대신에 슈퍼보드를, 말 대신 지프차를 타고, 저팔계가 쇠스랑이 아니라 바주카포를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신한 아이디어였죠. 인기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에요. 그 다음에는 [최유기]라는 만화책을 봤는데,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서유기]와는 전혀 다른, 웃음기가 쫙 빠진 한편의 철학서적이었어요. 충격이었죠. 분명 [서유기]의 에피소드들을 충실하게 쫓아가는데도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캐릭터와 주제가 완벽하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책보다 유독 [서유기]가 이렇게 해석의 폭이 넓은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할수록 [서유기]는 일단 재미가 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 또한 무수히 던져주더라고요. 그 점이 저를 매료시켰고, 또 제가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부분이 중국 사대기서이기도 해서 [서유기]의 이런 재미를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서유기]는 오승은의 『서유기』와 어떻게 다른가요? [서유기]는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과 감동을 받는 부분이 매번 달랐어요. 언제는 요괴들과의 싸움이 주는 통쾌함과 그것의 의미를 찾는 데 골몰했다면, 또 다른 때는 그저 웃느라 바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삼장법사와 세 제자들의 관계를 유심히 보게 되기도 했고요. 이번에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이들의 여행기가 말 그대로 ‘여행’ 즉 길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편의 시트콤 같다는 점이었어요. 생애 처음으로 목도하는 자연 환경과 이국적인 정취에 마음을 빼앗기고, 듣도 보도 못한 존재들과 만나고, 낯선 정취와 습관을 맞닥뜨리면서 기존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감정을 겪어가죠. 내가 접하지 못했던 것을 접함으로써 나를 확대하는 경험이 눈에 들어왔어요. [서유기]가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번 [낭송 서유기]에서는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서유기]의 여러 면모 중에서도 특히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낯섦’을 마주할 때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 같은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에피소드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책을 낭송하면서 흡사 여행을 떠나고,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내용들로 채우려고 노력했고요, [서유기]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나 ‘웃음 코드’들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3. 앞으로 [낭송 서유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첫째도 둘째도 소리 내어 ‘낭송’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실 묵독은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할 수 있지만, 낭송은 그러기가 쉽지 않죠. 그런 면에서 시간과 마음을 어느 정도 더 집중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게 전제되어 있어요. 바쁜 세상에 그럴 틈이 어디 있나 싶으시겠지만, 정말 ‘일’ 삼아서 한번 [낭송 서유기]를 낭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가나 명상처럼 낭송하는 소리와 낭송의 호흡이 몸의 기운을 바꾸어 놓을 거예요. 단언컨대 낭송의 시간은, 내가 오늘 하루 무심하게 보낸 나에게 주는 힐링 타임이라고 말씀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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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선어록]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선어록』을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선어록』을 낭송하는 고전으로 소개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도 첫째로는 선(禪)이라는 독특한 형식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살짝 조미를 한다면, 저는 선(禪)이 불교적 깨달음의 한 궁극을 지시하는 수행법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삶의 비전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맞닿아있는 매우 현실적인 ‘장면’들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보통 선사(禪師)들의 대화로 구성되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저간에는 불교적 가르침(道)에 관한 물음들이 형식화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종교가 제시하고자 했던 인간 일반의 관한 오래되고 또한 근본적인 지혜가 녹여져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선사들의 이러한 대화를 특별히 ‘화두’(話頭)라고 부릅니다만, 주지하다시피 화두라는 말 자체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죠. 요컨대 왜 꼭 선어록이어야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이 지향했던 어떤 궁극적이고 투철한 지성과 지혜의 정신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반복되지만, 개인적으로 선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선어록]은 『선어록』과 어떻게 다른가요? 앞에서 선사들의 근본적인 질문이나 대답이 들어가 있는 선문답을 보통 화두라고 일컫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화두는 다른 한편 공안(公案)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공안이란 말은 본래 법률 용어입니다. (공안 정국? 공안 검사?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도 이 말은 낯설지도 멀지도 않은 말이네요^^). 예컨대 법원의 재판 판례문 같은 걸 의미하는 말입니다. 저는 화두와 공안이라는 말의 상호성에서 최소한 화두가 그저 먹먹하고 고원하고 끝이 날 수 없는 생각거리라는 식의 이미지를 끊어내라는 메시지를 봅니다. 다시 말해 선문답의 화두는 원초적으로 분명하고 단호한 것입니다. 마치 시비를 가르는 판결문 같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선에는 일종의 절대성이 있죠. 그런데 이제까지 불교라는 종교 바깥에서 선(선문답)은 주로 모호하거나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 등에 붙이는 수사처럼 쓰이곤 했습니다. 저는 이런 일반적인 오해가 반드시 오해하는 쪽에만 원인이 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설명할 수 없는 선, 언어로 전할 수 없는 궁극의 깨달음 같은 이미지로 붓다의 가르침을 고립시키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친절하게 설명적이어서 오히려 누추해진 해설서들로밖에는 선을 만날 수 없는 지혜를 나누는 가난함에 더 큰 원인이 있다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낭송하는 선어록’이 그 모든 간극을 메꿀 수 있는 만능 해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다각적이고 개성 넘치는 돌다리들이 추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모아놓은 선어록들은 한 편 한 편이 화두요 공안이다. 하지만 또한 이 글들은 선사들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 작품들 각각은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공부꺼리이지만 또 누군가에는 그저 재미있는 한 편의 이야기들이다. 어렵게 읽자면 평생의 고민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흥미진진한 생각의 덩어리들. 이 글들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낭송 선어록』을 구성해보았습니다. 불교도가 아니어도, 선문답을 좋아하지 않아도, 특별한 지식이 없이도 그저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도 도전해볼만한 인생의 비전이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3. 앞으로 [낭송 선어록]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선어록을 어떠한 선입견 없이 그냥 소리 내어 읽어보자고 권하는 제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입니다. 여기에 있는 ‘화두=공안’의 명명백백함은 단 한 가지! 즉 소리 내어 읽고, 암송하고, 또 읽고, 또 암송하기!입니다. 이보다 명백한 판결문이 어디 있을까요?^^ 이 책은 [벽암록], [무문관], [종용록] 등 세 편의 선어록집에서 엄선한 대화들을 소리 내어 읽기 좋도록 번역한 낭송(낭독)용 책입니다. 한 편, 한 편이 최소한 선의 동네에선 이름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이고 곁눈질로 귀동냥만 해도 깨달음이 바로 육박해 들어올 것 같은 불후의 화두=공안들이지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글자 나부랭이에 불과한 잡설들입니다. 낭독(낭송)의 요령은 따로 없습니다. 본문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놓긴 했지만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한 편, 한 편이 매우 짧고 굵직한 말들인 만큼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낭독에서 중요한 건 자기 목소리를 자기 귀로 듣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분명 낯설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온몸을 통과해 나오는 이와 같이 책 읽는 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책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신체가 이러한 새로운 리듬을 만들게 되는 이런 행위를 체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깨달음은 그저 덤에 불과한 게 아닐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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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고대 중국의 병가(兵家)의 저작들 중 가장 심오하다고 평가되는 텍스트입니다. 병가란 잘 싸우는 법,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연구한 학파라고 할 수 있죠. 이 책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길고 치열했던 전란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했습니다. 춘추시대에만 1211회, 전국시대에는 468회의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로 크고 작은 전란이 줄을 이뤘던 시대였죠. 이런 시대를 관통하며 얻은 전쟁에 관한 노하우, 성찰들을 집약시킨 책이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입니다. ‘전쟁’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세요? 무차별한 학살과 약탈을 일삼는 반인륜적인 폭력행위.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폭력이라는 등식을 떠올릴 거예요. 그렇다면 전쟁의 방법을 연구한 병서들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을까요? 맞습니다. 약탈과 기만과 폭력의 기술들이 가득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어떻게 하면 두려움에 벌벌 떠는 아군의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적의 식량과 자원을 노략질 할 것인가.’ ‘어떻게 적을 기만하여 방심하게 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끔찍한 살육의 기술들을 ‘학문’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병서의 내용을 두고 과연 ‘심오하다’는 평을 내릴 수 있을까요? 단언컨대, 고대 중국의 병서에는 심오한 지혜가 가득합니다. 병가들은 전쟁에 대한 존재론적 숙고라든지 도의적인 판단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일체 유보합니다. 대신에 전쟁 안으로 깊이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잘 싸울 수 있는가’라는 것을요. 우리는 왜 싸울까요? 강해지기 위해 싸우죠. 이익을 얻기 위해 싸웁니다. 파괴와 죽음은 전쟁에 수반되는 것이지 궁극의 목표가 아닙니다. 하지만 싸움을 하다보면 본말이 전도되어 파괴 그 자체가 목표가 되죠. 적에 대한 파괴, 적대, 섬멸. 생각해 봅시다. 이런 싸움에 이기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이익이 될까요? 병가들은 싸움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상기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잘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적국을 온전히 두고 이겨야 하고,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합니다. 이런 싸움에서 얻은 승리야말로 이익이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우리에게 ‘잘 싸우는 법’을 가르친다고. 그리고 ‘잘 싸우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잘 사는 것’으로 이어진다고요. 어떻게 잘 싸우는 것이 잘 사는 것과 연결되냐구요? 『손자병법』에 실린 유명한 말이 있죠.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병가들은 우리에게 ‘다른’ 싸움을 제안합니다. 적과 적대하는 싸움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하는 싸움. 이익(利)을 얻고 기세(勢)를 불리는 싸움. 이 가르침이 결국 강하고 건강한 인간을 길러낼 것이라고, 삶이라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전사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은 손무의 『손자병법』, 그리고 오기의 [오자병법]과 어떻게 다른가요? 『손자병법』은 춘추시대의 장수 손무(孫武)가, 『오자병법』은 전국시대의 오기(吳起)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 모두 전장에서 장수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공허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전에서 자기가 몸으로 겪은 귀중한 체험과 노하우들을 책에 집약시켰다는 것입니다. 손무에 관한 몇 안 되는 기록 중 사마천의 「손자오기열전」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손무는 생전에 이미 『손자병법』 13편을 책으로 냈고, 이 책이 유명세를 타게 되어 오나라의 왕 합려를 만나게 됩니다. 합려는 손무를 무시합니다. 붓이나 놀리는 작자가 실전을 지휘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이에 손무는 궁녀들에게 완벽한 군사훈련을 시켜서 자신을 깔본 합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내뱉은 말이 있죠. “임금께서는 그저 말로만 병법을 찾으실 뿐이고, 그것을 실제로 쓰지는 못하시는군요!” 합려의 허세를 꼬집으며 상황을 반전시키는 촌철살인의 말입니다. 이 한마디 안에 병법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법의 생명은 실천입니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을 다투는 급박한 일입니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지식, 단순한 정보 덩어리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안에 아무리 현묘한 지혜가 담겨 있다 하더라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한비자』의 「오두」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라 안의 백성 모두가 군사를 말하고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집집마다 소장하고 있지만 군사가 더욱 약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입으로 용병하는 자만 많을 뿐 정작 갑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가 싸우려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입으로 떠드는 데 그친다면 병법의 올바른 사용법이 아닙니다. 병법은 유용하게 쓰여야 합니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병법의 사용법에 관한 철칙입니다. 병법을 삶 가운데 작동하는 것으로, 살아 있는 것으로 읽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병서는 몸으로 만나야 합니다. 머리로 외고 입으로 떠드는 게 아니라 살과 뼈를 부딪쳐 몸으로 겪어내야 합니다. 소리를 통해 몸을 울리고, 몸을 울려서 삶을 진동시키는 낭송의 독법이야말로 이 시대에 병서를 만나는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낭송에 최적화 된 ‘우주 유일’의 낭송용 병법서입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의 전문을 수록하되, 병서 특유의 함축적인 설명들이 읽는 이의 몸과 마음을 울릴 수 있도록 언어를 가다듬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병서를 낭송하는 이색 체험(?!)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3. 앞으로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군인이 아닌데, 될 생각도 없는데 이 책을 굳이 읽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분명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대문자 전쟁’에 관한 지침서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대신에 저는 이 책이 우리 일상에 미시적으로 숨어 있는 ‘소문자 전쟁’에 관한 지침서로 읽히길 기대합니다. 진부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삶이란 또 하나의 전쟁입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무수한 싸움들을 겪게 됩니다. 삶이란 결국 거듭되는 싸움의 연속일 것입니다. 힘으로 약자를 누르는 강자에 대한 싸움, 상황에 굴복하고 타협하려는 자기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싸움. 자기 일상을 돌아보세요. 싸움 아닌 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싸움을 싫어하죠. 싸움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회피합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우리에게 ‘저곳’의 전쟁에 눈이 팔려 ‘여기’의 전쟁에 침묵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여기’의 전쟁이란 무엇일까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맞붙게 될 최종 심급의 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병서를 공부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적’을 그리고 ‘나’를 단일한 존재로 고정시켜 놓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국가, 특정 종교인, 특정 정파를 가진 사람이 적이 아닙니다. 적은 곳곳에 있습니다. 때로는 나태해 지려는 우리 편이 치명적인 적일 때가 있습니다. 군법 위에 군림하려는 군주가 위협적인 적일 때가 있습니다. 감정을 주체 못하고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적보다 이런 내부의 적들이 더 위험합니다. 나 혹은 아군도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적이라도 사로잡아 포섭하면 우리 편이 되지요.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더라고 적의 힘을 역이용하여 무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다시 이 지점으로 모아집니다. 잘 싸우는 자는 적과 적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이기려 합니다. 남에게 도전장을 내밀기 전에 먼저 아군,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병가들은 싸움 앞에 머뭇거리는 우리의 등을 떠밉니다.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수행하라고, 먼저 나를 알고 나에게 이기라고 조언합니다. 저는 이 책이 삶의 전사를 기르는 병법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니체도 ‘성인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전사가 돼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많은 독자 여러분들이 이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기존의 나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내가 기대고 있던 안이한 의지처를 깨부수며,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수행하게 되기를, 나아가 삶이라는 전장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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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이옥]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이옥의 글들을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옥은 18세기 소품문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는 문인입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이나 이덕무, 박제가 등 소품문으로 유명한 다른 동시대인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런데 알고 보면, 이옥은 정조의 문체반정에서 ‘이상한 핵심’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이상한 핵심’이라고 한 것은, 그가 분명 문체반정의 핵심인물은 아니지만 문체반정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체반정’이라는 사건을 온몸으로 돌파한 사람은 이옥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1792년에 정조에게 문체로 낙인찍힌 후 1800년에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될 때까지, 거의 10년 동안을 정상적 문인의 궤도 바깥에서 방랑해야 했으니까요. 오로지 ‘문체’가 바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런 점에서, 이옥의 글을 읽는 것은 18세기 문체반정에 접근하는 하나의 우회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옥의 글맛이 일품이기도 하지요. 시시콜콜한 사물에 관한 묘사, 유배 중에 보고 겪은 사건들을 엮고 풀어내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이옥의 글에 푹 빠져 재미를 느낄 즈음, 아마 어렴풋이 알게 될 겁니다. 이런 글을 읽는 게 도(道)를 해친다고 했던 정조의 우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요. 아울러 ‘글쓰기의 불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해줍니다.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이옥]은 이옥의 글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이옥이 남긴 글로는 현재 희곡 「동상기」와 담배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연경」, 이옥의 글쓰기론을 집대성한 「이언」, 그리고 이옥의 벗 김려가 자신의 문집 『담정총서』에 실은 소품문들이 전합니다. 현재 번역된 『이옥 전집』은 부(賦), 서(書), 서(序), 발(跋), 기(記), 논(論), 설(說), 변(辯), 전(傳), 문여(文餘), 이언(俚諺) 등 글의 장르에 따라 편집되었으나, 『낭송 이옥』은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이옥이 남긴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첫째는 그의 독특한 독서론과 글쓰기론을 보여주는 독(讀)/서(書)론입니다. 두번째로는 이옥의 ‘주정주의’(主情主義)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았고, 세번째 주제는 미물들이 선사하는 깨달음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이옥 소품문의 정수(精髓)랄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주제는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과 별 것 아닌 이야기들에 매혹되어 이옥은 번번이 자신의 신산한 삶을 망각합니다. 여기에 글이 갖는 힘, 혹은 글쓰기의 ‘부득이함’이 있는 것이지요. 『낭송 이옥』은 이옥의 글을 그가 살아온 삶의 맥락 속에서 읽고자 의도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굽이굽이 요동치는 법. 이옥은 그 속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갔고, 그의 초라하지만 단호한 저항이 현재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앞으로 [낭송 이옥]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옥은 누구나 한번은 느꼈을 법한 정서들을 기가 막힌 언어로 풀어냅니다. 또 우리가 그냥 지나쳤을 법한 소소한 것들을 예기치 못한 시선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 ‘의외성’에 번번이 놀라긴 하지만, 이옥의 글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읊조리면 됩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구절인가가 가슴을 ‘탁’ 하고 치는 걸 느끼시게 될 겁니다. 먹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때론 ‘웃프기도’ 하지요. 그 다이내믹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그저 느끼시면 됩니다. 교훈이라든가 도덕 같은 무거움에 짓눌리신 독자라면, 이옥의 글을 읽으면서 천천히 인간의 마음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보세요. 그런 다음 가볍게 몸을 비틀면, 어느새 한없이 가벼운, 저 꿈틀거리는 미물들의 세계에 당도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혹, 글을 쓰고 싶은 독자라면 ‘글쓰기’에 대한 모든 규준을 내려놓고 그저 마음으로 이옥의 글을 읽어보세요. 그러면 자신이 가진 모든 규준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낭송 이옥』을 통해 그의 글을 맛보시고, 그 다음엔 『전집』에 실린 다른 글들도 독파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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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한비자]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한비자]를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몇 해 전에 제자백가 텍스트를 원문으로 강독하는 강의를 들었는데 [한비자]가 가장 매력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께서 [한비자]는 한문 고전 중에서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A급 문장’이라고 하시더군요. 설명을 듣고 보니 초보인 제가 보기에도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제가 글쓰기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일단 잘 쓴 글이라면 관심이 가거든요. 번역하고 윤문하면서 공부가 많이 되겠다 싶었죠. 한비의 인생과 사상도 흥미로웠어요. 한비는 왕족으로 태어났는데, 평생 관직 한 번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 글이 뛰어나다고 이웃나라까지 소문이 나서, 처음으로 사신으로 발탁되어 갔는데 그곳에서 죽게 되거든요. 문장 때문에 소원을 이루고, 문장 때문에 일찍 죽게 된 거죠. 글을 통해 한비가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은 법과 그에 맞는 형벌을 통한 부국강병입니다. 그는 왕에게 은밀히 술수도 쓰고 권세와 무력도 이용하라고 말합니다. 유가가 말하는 정치와 완전 다르죠. 왜 [맹자[에는 맹자를 만나 ‘리利’, 즉 부국강병책을 묻는 왕에게 맹자가 따지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인의예지 등등 좋은 거 다 놔두고 왜 ‘리’만을 생각하느냐고 왕을 가르치는 거죠. 한비는 달라요.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왕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아요. 한비의 이런 솔직한 면이 좋습니다. 한비는 호랑이와 같은 다른 나라들과 겨루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을 잊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동정을 구하거나 타인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남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스스로 강해지라고 말하는 거죠. 왕이 왕으로써, 국가가 국가로써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남는 법을 한비에게 배우고 싶었어요.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한비자]는 한비의 『한비자』와 어떻게 다른가요? [한비자]는 분량이 꽤 많습니다. 한비의 저작이라 의심되는 편들도 있고, [노자] 해설서도 있고, 유가와 묵가에 대한 비판도 있으니까요. [낭송 한비자]는 그중 인용이 많이 되는 유명한 편들을 중심으로 실었습니다. 한비가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라 비슷한 주장들을 다양한 예를 들어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땐 가장 재밌는 일화가 있는 편들을 골랐어요. 낭송했을 때 누군가 듣게 만들려면 일단 재밌어야 하잖아요. 일단 책의 이름만 들어본 분들은 [한비자]가 재밌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을 거예요. 근데 정말 재밌어요. 왕들에게 어필하려면 재미가 없으면 안 되죠. 한비가 논거로 사용하는 일화들은 정말 재밌고 자극적인 것이 많아요. [낭송 한비자]에 그런 대목을 적극적으로 선별해서 실었어요. 한비가 인용하기 위해 모아둔 재밌는 고사들도 골랐습니다. 완성된 글은 아니지만 뽑아놓은 일화만 보아도 한비의 숨은 뜻이 이해될 거예요. 물론 앞서 말했듯이 핵심적인 편들도 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낭송했을 때 뜻이 통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청년시절의 글들은 왕에게 보내진 것들이라고 하니 최대한 공손한 어투를 살려 담았고, 다른 편들은 글의 분위기에 맞춰 다듬으려고 애를 썼어요. 한자로는 몇 글자 안 되는데 번역하면 문장이 엄청 길어져서 들을 때 의미가 안 통할 것 같으면 문장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내용과 재미, 거기에 낭송까지 고려한 거죠. 3. 앞으로 [낭송 한비자]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비에게 정치술보다는 ‘청년의 마음’을 배우시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일단 한비의 ‘비분강개’悲憤慷慨와 서사능력을 느껴보세요. 나라가 아주 위급한 상황에 왕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상상하면서 읽으시면 더 도움이 될 거예요. 본인은 묘책을 갖고 있는데 멍청한 왕이 듣지 않으니 애가 달은 청년 정치가가 이런저런 웃기는 얘기까지 동원해서 설득을 하는 거죠. 아울러 한비가 인용하는 일화들 대부분이 진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중복되는 내용도 꽤 됩니다. 그가 인용하는 일들이 진짜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한비가 괜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실 거예요. 낭송하다가 젊고 고귀한 한 청년이 온 마음을 다해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마음이 느껴지신다면 성공입니다. 그렇게 왕을 강하게 만들고 온 나라와 함께 강해지려고 하는 청년의 마음을 느끼시면 좋겠어요. 한비가 말하는 법이라는 게 딱딱하고 엄격해 보이지만, 함께 지킬 규율을 만들어서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열어보고자 하는 열정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거든요. 세상에 투신하는 청년의 열정을 현재의 나이를 불문하고 다시 느껴 보세요. [낭송 한비자]를 낭송해서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신다면 더욱 좋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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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낭송Q시리즈의 기획자이신 고미숙 선생님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고 하셨는데요, 낭송이 되기를 염원하는 여러 고전 중 특별히 [동의보감]의 「잡병편」을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동의보감』 「집례」를 보면 허준은 몸을 세 가지로 구분했어요. 생명의 원천인 정(精)과 인체의 생리적인 운용을 담당하는 기(氣), 정신활동의 주체인 신(神)이 몸속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몸 안에 오장육부가 있고, 몸 바깥에 근골, 기육, 혈맥 등이 자리한다고 하였지요. 허준은 이렇게 몸을 안팎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여 『동의보감』은 몸 안의 풍경인 「내경편」과 몸 바깥의 형상인 「외형편」으로 나뉩니다. 이것을 그대로 확대하면, 우리 몸은 몸 자체의 안팎 뿐 아니라 몸과 외부환경, 곧 천지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안팎이 나뉩니다. 이른바, 천지자연과 몸 사이의 대칭적 구도 속에서 또 다른 안팎이 생긴 셈이죠. 이것이 「내경편」과 「외형편」에 이어 「잡병편」이 등장한 까닭입니다. 몸과 천지자연이 열린 평면 위에서 그대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이로써 보면, 우리 몸은 정기신(精氣神)을 기둥으로 삼아 천지자연과 원활하게 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의보감』 「잡병편」을 보면 기후와 지형에 대한 자연탐구가 주를 이룹니다.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고 다양한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것은 우리 몸에 내재하는 운동 원리에 대한 탐구인 셈이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이 땅의 계절을 알고,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몸은 풍(風)·한(寒)·서(暑)·습(濕)·조(燥)·화(火)의 리듬을 탑니다. 하여 병은 내 몸의 리듬과 우주의 리듬이 어긋났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 병을 치유하려면? 우주의 리듬과 일상의 리듬을 맞춰야 합니다. 해가 뜰 때 일어나고 해가 질 때 잠을 자야하지요. 봄에 일을 펼치고, 여름에 분주히 활동하고, 가을에 결실을 맺고, 겨울에 기운을 모아야 하지요. 이것이 바로 양생, 타고난 생명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동의보감』 「잡병편」은 저 빛나는 별의 세계와 인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여기 나의 몸이 이미 천지자연과 통하고 있다는 사실, 나의 몸을 회복하는 일은 곧, 자연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 그때 비로소 충만한 신체로 거듭난다는 일깨움.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 가던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일갈한 루카치의 저 복된 시대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여기 나의 몸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 깨달음을 준 텍스트가 바로 『동의보감』 「잡병편」입니다. 2. 낭송Q시리즈의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은 허준의 『동의보감』 「잡병편」과 어떻게 다른가요?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은 「잡병편」의 본래 체제에서 변화를 주었어요. 허준은 「잡병편」을 천지운기(天地運氣), 심병(審病), 변증(辨證), 진맥(診脈), 용약(用藥), 토(吐), 한(汗), 하(下)를 배열하고, 그 뒤에 풍·한·서·습·조·화를 배치하였죠. 이는 진단학과 치료학의 이론들을 먼저 배치하고, 계절의 차서에 따른 여섯 기운[六氣]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병의 향연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허나,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은 천지운기와 이 기운들이 얽히고 설켜 병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육기와 엮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판단하여 같이 묶었습니다. 이것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기운과 병을 곧바로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동양에서 소리는 율려(律呂)입니다. 율은 양(陽)의 기운이며, 려는 음(陰)의 기운입니다. 율은 만물을 자라나게 하는 소리이고, 려는 만물을 성숙하게 하는 소리죠. 율려는 12개의 소리로 분화됩니다. 이 소리는 우리 몸의 12경맥과 대응하죠. 그래서 특정 경맥에 병이 나면 그에 해당하는 음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소리를 잘 이용해서 경맥을 자극하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리의 힘입니다. 그러니 『동의보감』을 공부하는 최고의 방법은 ‘낭송’입니다. 이것이 3년 넘게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터득한 이치입니다. 하여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은 낭송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낭송하기 좋으려면 우선 들고 다니기 편해야 합니다. 내용도 이해하기 쉬워야 하겠지요. 엄청난 분량의 『동의보감』 「잡병편」을 선별하는 작업이 일차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천지운기와 육기에서 기초가 되는 내용을 선별하였고, 그에 따른 다양한 병들도 고르고 골라냈습니다. 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양생법들을 우선 배치하고, 기본이 되는 방제를 골라 외워두면 나중에 찾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잡병편」에는 숱한 병들이 나옵니다. 이 많은 병들을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익힐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병을 설명하는 문장과 함께 병명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한의학적 용어도 익히고, 일상에서 접하는 증상과도 연관 지을 수 있게 되더군요. 또 낭송하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실 학인들과 수차례 읽는 작업을 했지요. 이렇게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은 작고 아담한 사이즈이지만 천지운기와 육기에서 기초가 되는 내용은 알차게 수록된 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을 낭송해보세요. 기초가 되는 내용은 무조건 외우고 입에 붙을 때까지 낭송하는 것. 그렇게 입에 붙이고 몸에 붙이다 보면, 율려와 함께 우주의 리듬을 타고 뭉쳐있던 기가 순환합니다. 내 몸의 기운과 밖의 기운이 섞이는 치유의 경험, 낭송으로 해보세요. 3. 앞으로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는 천기(天氣)로부터 유래합니다. 하늘의 기운인 천기는 땅속으로 들어가 지기의 형태로 나와 만물을 자라게 하지요. 이 기운들이 변화하여 기후가 형성되고, 그 기후에 따라 땅의 특질이 만들어집니다. 예컨대, 오행상 봄은 목(木)에 해당됩니다. 목이 지닌 활동력이 봄을 지배하는 법칙이 되죠. 이것을 구체적인 기운의 양태로 말하면 ‘풍’입니다. 그런데 이 풍이 봄의 절기마다, 해마다, 장소마다 달라집니다. 이런 시공간적으로 달라지는 기운의 변화를 탐구하는 것이 ‘천지운기’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천지자연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은 자연의 변화, 구체적으로는 기의 성쇠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천지운기는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낭송 동의보감 잡병편 (1)』의 1부에는 이러한 천지운기의 대원칙들을 담았습니다. 자연의 원리와 기운의 변화가 궁금하다면, 천지운기편을 보세요. 읽고 낭송하다보면 어느새 천지의 기운에 감응될지도 모르겠네요. 2부부터 7부까지는 천지의 기운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병의 양태들을 담았어요. 인간은 천지자연과 분리된 적이 없으니 천지가 일으키는 풍·한·서·습·조·화의 활동이 몸속에서도 일어납니다. 풍·한·서·습·조·화는 봄여름가을겨울에 만나는 여섯 가지 기운입니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 기운의 균형이 깨졌을 때 각종 병들이 나래를 폅니다. 나무에 꽃이 피듯 봄에는 풍병, 여름에는 서병, 늦여름엔 습병, 가을에는 조병, 겨울에는 한병이 피어납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한서습조화의 스텝을 온전히 겪어내는 것이 순환이라면, 어떤 스텝에 걸려 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병입니다. 순환하지 못하는 몸, 안팎의 기운이 통하지 못하고 막혀 있는 몸, 고로 자연과 호흡하지 못하는 몸이 곧 병이 됩니다. 이럴 때 육기편을 보세요. 육기와 병의 배치를 낭송하다보면, 육기의 무궁무진한 활용법 또한 가능하겠지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 몸을 조율하는 힘도 생기고, 이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