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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1부 | 세계는 원래 훼손된 그림이야블랙박스 해체하기의상실제논, 개구리, 전갈개미를 삼등분하시오로코코식 부사와 형용사파우스트 엔딩의자가 생겨 뒤늦은 초대장을 보냅니다버터와 냉장고왕의 초상화 위에 파리가 앉았네훅훅 레프트훅 카피레프트와 불한당들의 세계레몬을 변호함케첩과 피 사이의 붉은 자국오브제변증법적인 거울폭우색맹사물A재난영화일방통행파종청개구리와 이끼 테라리움은유적 블랙홀의 사례2부 | 붉어지지 말랬지뱀파이어어둠에서 벗어나기그림자, 아닙니다구름 창조자루만의 메모상자자화상 못 그리는 사람육식 빨강 맨드라미적록색맹비극의 재료악몽 측량사∞삶과 살신비는 물을 좋아한다세컨드 윈드기적 없이0과 1의 산책누빔점안테나악성루머검은 백조아리아드네의 칼과 붉은 실거장과 시계수리공안긴 문장과 안은 문장3부 | 이별의 색깔은 밤팬터마임교실병원 대기실에서 폭포 영상을 틀어주는 이유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샥스핀둥근 사각형미싱링크죽은 화분이기적 유전자붉고 캄캄한 흙속에 묻혀서, 누워서림보: 404 Not Found재현의 윤리선악과뤼미에르나무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뭇잎을 떼어낸다. 하나하나 손으로. 정성스럽게.“내가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려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해설 | 언어-오브제 | 선우은실(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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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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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1: 색『비극의 재료』의 인상적인 장면들에는 언제나 색이 있다. 그러나 그 색은 명료하지 않다. 「색맹」에서는 “흑백영화에서는 불이 더 환하게 타요/ 물도 더 환하게 흘러요/ 그리고 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캄캄하지요”라 말하며, 감각의 불안정함을 시각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명암과 색채는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미학적 장치다. ‘비극’이란 그 자체가 어둠이 아니라, 빛을 감지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점을 시인은 알고 있다.「케첩과 피 사이의 붉은 자국」에서는 “화면에서는 케첩도, 피도 모두 붉은 물감일 뿐”이라 말한다. 피와 케첩, 폭력과 예술,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모호하다. 시인은 이 ‘유사한 붉음’을 응시하며 현실과 재현의 틈을 탐문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성은의 시에서 비극은 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재현의 문제다. “이 장면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후에/ 집에 오자마자 쓰고 있는 나”라는 구절은 그 자각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성은의 시는 그러한 자각을 미학으로 바꿔놓는다.재료 2: 불화레몬을 제외한 것들, 정확히는오렌지와 유사한 종들만담아놓은 과일바구니가 있어낑깡, 금귤, 유주, 한라봉, 천혜향오렌지, 오렌지, 오렌지그리고 이건 그리고, 라는 부사의 사용처럼불쑥 끼이는 레몬이야낄 데 안 낄 데를 모르는 레몬이야캘리포니아의 쨍한 햇살 같은 맛해바라기처럼 촘촘한 밀도의 빛오렌지그러나 이건 그러나, 라는 찡그림처럼신 맛의 레몬이야(…)그리고, 그러나, 그래서레몬은 레몬이기를 멈추지 않았다씨앗도 열매도 모두 돌이킬 수 없어져서흙속에서 무럭무럭나뭇가지 끝에서 주렁주렁레몬은 레몬이었다_「레몬을 변호함」『비극의 재료』의 시들은 조용한 불화를 지속한다. 「레몬을 변호함」의 달콤한 오렌지들 사이에서 홀로 시큼한 레몬은 달콤함의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다. 시적 화자는 레몬을 질서에 편입시키려 하는 대신, 그 신맛을 변호하며 불협화음과 비정상을 옹호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언어와 사람, 틀린 문장과 비뚤어진 감정을 감싸안는다. 이 불화의 미학은 「적록색맹」에서도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색맹이 유행한다/ 야생동물들은 원래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 포식자의 눈에 초록색의 나뭇잎과 풀 모두/ 붉은 핏물이 묻은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을 전쟁이라고 부른다”. 초록과 붉음의 혼동, 즉 감각의 왜곡은 곧 세계의 윤리적 혼란을 반영한다. 또한 「사물A」에서 “사물은 사람을 대체한다”라고 선언하듯, 인간 중심의 질서를 벗어난 비인간적 감각의 언어가 등장한다. 시인은 언어와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발견한다.“여기저기 치이는 존재에 대한 옹호는 그 존재가 특정한 상황을 희망으로 이겨낸다는 역전을 꾀하는 대신, 여전히 그런 세상에 그런 채로 지속되고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여 빛난다.”(「해설」) 원성은의 시는 ‘여전히 그런 채로’의 세계를 품는다. 시와 세계가 서로를 해체하며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조화가 이 시집이 구축한 언어의 윤리다.재료 3: 죽음“내가 죽였다”여자는 이렇게 쓴 작은 나무판과 함께죽은 화분의 사진을 액자에 걸어두었다죽은 화분의 이름은 수경이었다그렇게 하면 살아 있는 수경이가 정말 죽기라도 하는것 같았다_「죽은 화분」『비극의 재료』의 많은 시는 소멸과 변형의 순간을 응시한다. 「죽은 화분」에서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기억이 형상화되는 장면이다. “내가 죽였다”라는 문장은 선언이자 주석처럼 죽음을 언어로 봉인하려는 것 같다. 시적 화자는 그 장면을 차분히 관찰할 뿐 애도나 감정의 폭발로 나아가지 않는다. 죽음은 이미 액자 속에 들어간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고, 그 오브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살아 있는 자의 증거가 된다.죽음을 그리려고 할수록화가의 손은 민첩해야 한다꽃이 시드는 속도, 깎아놓은 사과가 갈변하는 속도, 신선한 치즈가 부패하는 속도, 곰팡이가 번지는 속도, 그리고사랑의 심장박동과 시곗바늘이원래 속도를 찾아가는 속도_「림보: 404 Not Found」「림보: 404 Not Found」에서는 죽음을 멈춤으로 보지 않는다. 꽃이 시드는 속도, 사과가 갈변하는 속도, 치즈가 부패하는 속도 그리고 사랑의 심장박동과 시곗바늘이 원래 속도로 돌아가는 속도. 죽음은 정지의 상태가 아니라 시간의 미묘한 변화로 나타난다.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원래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부패하고 변색하며 사라지는 일은 곧 세계가 스스로를 갱신하는 운동이다. 『비극의 재료』의 죽음은 그래서 정지된 사건이 아니라, 언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점이다. 시인은 멈춘 것을 응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움직임을 감지한다. 그것이 원성은의 시가 보여주는 비극의 새로운 감각이다.『비극의 재료』는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다. 완전하지 않고, 복원되지 않으며, 여전히 훼손된 채로 남아 있는 세계를 담았다. 시인은 얼룩과 균열, 실패와 부조화의 흔적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로운 선을 긋는다. 원성은의 시는 세상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부서진 언어로 기록하는 일을 택한다. 그렇게 그는 비극을 미학으로 전환시킨다.시인의 말함께 좋아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혼자서만 좋아하고 싶은 것도 있다오롯이 독대하고 싶은 사람, 시간,배타적인 사랑, 아무도 모르고나눌 수 없는 슬픔그런 것들과 같이시는 내게는 공공연해지지 않는 것2025년 10월, 원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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