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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위원 김갑수
박완서 작품 중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자전소설이 있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 들판에 그토록 흔했던, 하지만 중년의 어느 날 문득 그리워 떠올려 보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던 그 싱싱한 먹거리.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한 내게도 문득 궁금해지는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서울의 집집마다 으레 있던 그 많던 식모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스마다 앞문 뒷문에서 오라이를 외치던 그 많던 차장누나들은 다 어디로 가서 무얼 할까.
논리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했던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이 리얼리스트 만화가 이희재의 손길로 각색되어 나왔다. 전 3권짜리 만화집 [나 어릴 적에]. 1960년대 말쯤, 꼬질꼬질한 서울의 어느 산동네(달동네라는 호칭은 80년대 이후에 생겨난 명칭으로 나 어릴 적엔 다들 산동네라고 불렀다.)의 사람살이다. 지대가 높아질수록 가난해지는 산동네 맨꼭대기에 사는 아홉 살박이 여민이네 일가족과 그 이웃들의 질박한 생활상. 뻔할 뻔 자로 흘러가는 구시대의 반공계몽드라마나 상투화된 민중문학 분위기를 연상하지는 말라. 부모 없이 공장 다니는 누나와 단 둘이 사는 여민의 단짝친구 기종이는 허풍쟁이에 거짓말쟁이고, 이웃집 토굴할매는 집나간 아들을 20년째 그리다 홀로 죽고, 고시 공부한다며 세월을 죽이던 동네청년은 숲속에서 자살을 한다. 이래저래 선생에게 단골로 얻어맞는 산동네 아이들은 가난하면 얻어맞는 거려니 여기고, 공주 같은 여민이 짝궁 장미는 쌀쌀맞지만 실은 여민이를 좋아한다. 그밖에도 참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단일한 줄거리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가 병렬되어 나가는 시추에이션 드라마라고 해야겠다. 가난에 울고 아이다운 철없음에 웃고 때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블랙코미디와 맞닥뜨린다. 새벽마다 공중 수돗가에 줄 서서 물을 길어와야 하고 도시락을 싸올 수 없어 물배를 채우는 아이의 모습은 아프리카 난민촌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바로 엊그제 우리네 모습이었다. 지금도 어느 후미진 도시 변두리에서는 이런 현실이 이어질 것이고 오늘날 북녘땅의 총체적 생활상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작가의 의도는 3권 끝부분에 노출된다. 마흔줄에 접어든 여민이가 아들을 데리고 그 어릴 적 산동네를 찾아와 감회에 젖어드는 결말인데 이 대목에서 갑자기 독후감은 '그때를 아십니까?'로 전환된다. 하긴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출발해서 어느덧 알래스카로 연어잡이 레저를 즐기러 가고 괌으로 골프여행 다니는 '일부 몰지각'도 흔히 보는 성공을 당대에 이루었으니 어찌 뿌듯한 감회가 없으랴.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대견해 해도 될까 하는 반문이 자꾸만 치미는 건 왜일까.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유하면 덜 불행한 게 진실이다. 하지만 부유해서 행복한지는 누구도 모른다.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된 [나 어릴 적에]의 가난 묘사에 대한 반응은 세대별로 무척 다를 테지만, 소위 절대빈곤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지금 10대들이나 온갖 고생을 겪은 나이든 층이나 함께 깊이 공감할 대목이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여전히, 아니 더욱더 마음이 가난하다는 사실이다. 까마득한 옛일만 같은 여민이 동네의 현실이 오늘 우리에게 갖는 호소력이 여기에 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하여간 가난은 싫건만 이 책은 잠시 지난날의 가난을 그립게도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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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따스함이 있었습니다
"지나간 어린 시절은 정말 싫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참 드뭅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어린 시절에 가졌던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과 아련한 추억들 때문이겠지요. 그런 느낌들은 두고두고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하다고 합니다. 컴퓨터도 척척, 인터넷도 문제 없습니다. 셈도 잘하고 말도 잘합니다. 자기 생각도 분명하고 머리 속에 지식도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지요. 그러나 마음속에 따뜻함은 어떨까요. 사람이 살면서 느낄수 있는 감성과 남을 이해하고 남과 화해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은 얼마나 담겨 있을까요.
그것이 부족한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아이가 많아지고 남에게 미움을 사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편리해지고 빨라져만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들과 우리들의 아이들은 많은것을 잃어가고 있는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책과 같이 우리 이웃의 진솔하고 때로는 가슴 시린 이야이가 담긴 책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나 어릴 적에』에는 여러가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아홉살 꼬마 여민이가 달동네로 이사 와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세상의 모습 그리고 어린 시절 누구나 겪게 되는 아픔과 설레임 사랑과 두려움 속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화려한 미사어구가 아닌 꾸밈없는 우리 이웃의 모습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숲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어머니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아이의 이야기, 전쟁에 관한 의문과 주변에서 보게 되는 불우한 할머니의 이야기, 동네 아이들의 놀이세계와 같은반 아이들의 귀여운 감정들, 그리고 가난과 우정, 욕심과 불합리, 그리고 이별과 그 극복과정의 보석같은 이야기들이 거추장스럽고 어색한 포장지에 싸여져 있지 않은 상태로 담겨져 있습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웬지 언짢은 만화라는 매체의 이미지를 높여줄수 있는 두가지 든든한 후원자가 함께 합니다. 첫번째는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부족한, 그래서 꼭 필요한 감성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있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복, 두번째는 아무런 의무감 없이 부드러운 선과 감성적인 그림들 속에 독서의 즐거움을 찾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점점 식어가는 가슴 그 한 귀퉁이에 우리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따스함을 보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