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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4
우리의 추억은 이곳에 남아 12 감사의 말 344 |
Virginie Grimaldi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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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가트를 따라 문 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아가트의 머리칼에 부서졌고, 금발 속에 긴 흰머리 몇 가닥이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내 가슴을 조여왔다. 내 눈에는 동생이 늙지 않는 것만 같았는데, 지난번 만남 이후 벌써 5년이 지났고, 어느새 아가트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열쇠를 어디다 뒀더라.” 아가트는 가방을 현관 매트 위에 쏟아부었다. 껌과 담뱃갑들 사이에 긴 열쇠가 놓여 있었다. “찾았다!” 열쇠가 거기에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돌아서야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기 전에 우리의 마지막 여름휴가를 여기서 보내자고 내가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문이 열리는 걸 보는 기분, 그리고 신발을 벗으라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기분을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 p.15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도 더는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할머니를 사랑한 순간부터 나는 할머니를 잃을까 두려웠다. 어릴 때 밤늦게 전화가 울리거나, 할머니가 전화를 바로 받지 않거나, 엄마가 어떤 소식을 듣고 눈썹을 찌푸릴 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가 추측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그게 사실이라고 받아들여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죽은 몸 위에서 울었고,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할머니의 부재를 격렬히 느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마가 받은 전화가 다른 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행복에 벅차올라서 하늘과 운명과 전화기와 엄마, 감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곤 했다. 그때 세상은 갑자기 맛있고, 놀랍고, 훌륭해졌다. 한 심리학자가 어느 날 내게 말하길, 건강염려증이 있는 사람들은 중병 소식을 가장 잘 견디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머릿속으로 이미 너무 많이 훈련해서,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치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평생 반복해도 나는 할머니의 부재에 준비되지 않았다. 세상이 할머니라는 중심축 없이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를 한 번도 버리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을 잃은 후에 내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 pp.42-43 동생.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동생으로 태어났고, 동생으로 죽을 것이다. 나는 형제자매 사이에서의 위치가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는지를 깊이 각인시키고, 심지어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다. 만약 내가 첫째였다면 아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첫째는 길을 열고, 모든 곳에서 자리를 차지하며, 모든 관심을 빨아들인다. 부모는 첫째의 존재에 몰두하고 온갖 근심이 첫째를 감싸며, 모든 ‘처음’의 힘은 첫째에게 쏠린다.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첫째 아이와 함께 시작된다. 그다음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가족을 넓히지만, 첫째는 가족의 토대를 세운다. 첫째는 뒤따르는 이들이 알 수 없는 중요성과 책임을 짊어진다. 반면, 뒤이어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점유된 공간에 발을 들인다. 관심은 나누어지고, 불안은 덜하며, ‘처음’은 이미 지나 있다. 그들은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해 본보기를 정하고, 그것에 의지하거나 거역하면서 성장한다. 그들의 성격은 반응과 비교 속에서 정의된다. 더 시끄럽거나, 더 조용하거나, 더 이렇거나, 덜 저렇거나. 어느 자리가 더 부러운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각자의 위치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으니까. 내가 아는 건, 나는 둘째이고, 막내이고, 작은아이이고, 그다음에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나는 평생 그것을 깊이, 본능적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 p.54 “난 그런 걸 꿈꿔. 충분히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 진짜 유대감이 생기는 거. 인생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충분히 잘 아는 거. 상대의 반응을 미리 눈치채는 거. 뜻밖의 실망이 없는 거. 눈빛만 봐도 통하는 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는 거. 겉모습이 아닌 진짜 내 모습 말이야. 문제는, 감정이 잔잔하게 안정되기 시작하면 내가 쉽게 지쳐버린다는 거야.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꾸고 있는 셈이지.” 산 위로 뭉게구름이 떠다녔다. 나는 아가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을 찾을 거야, 아가트. 그 사람은 멍청이였어. 너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다니. 누구도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아가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하지만 언니는 날 떠났잖아.” --- p.91 별이 하늘을 가로지를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소원을 빌었다. 그 힘이 사라지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빌었다. ‘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가 평생 행복하게 해주세요.’ --- pp.128-129 나는 짧은 방학을 보내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할머니를 충분히 만나지 못했다. 2주 동안 나는 할머니와 라자냐에 푹 빠져 지냈고, 2킬로그램과 사랑을 한가득 안고 돌아왔다. (…)시간을 멈추고만 싶다.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 할머니를 내 삶 속에 가두고 싶다. 언니와 함께 소파를 영원히 공유하고 싶다. 시간을 붙잡지 않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 p.207 나는 이 기쁨의 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울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둑이 무너져버렸다. 너무나 두려웠다. 사실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겁에 질린 적은 없었다. 아가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아가트가 사라진 세상의 윤곽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이미 상실의 문턱에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완전히 그 세계에 들어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p.236 나는 물과 하나가 되었다. 아가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스치더니 서로 맞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아가트는 옆에서 평온하게 배영을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광활한 공간 속에 떠 있는 우리를 상상했다. 혼자이면서도 함께 있는 우리, 나는 아가트를 곁에 둔 것이 무한히 행운이라고 느꼈다. --- p.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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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재회한 엠마와 아가트 자매
한여름 바스크 지방에서의 일주일 할머니의 집이 팔리기 전, 엠마와 아가트는 추억이 가득한 곳에서의 마지막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만난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현관문, 장난처럼 이어지는 말다툼, 냉장고 속에 남아 있는 치즈와 사과, 정원에 다시 피어난 양귀비까지…. 두 사람은 익숙하고도 아련한 공간에서 어린 시절의 엠마와 아가트를 마주한다. 5년이라는 긴 공백에 어색함도 잠시, 두 사람은 다시 이전처럼 자매의 모습을 되찾는다. 바닷가에서 물에 휩쓸려 넘어지며 웃고, 시장에서 와인을 나눠 마시고, 설거지하며 티격태격하는 일상은 모두 두 사람이 다시 서로에게 닿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가운데 엠마와 아가트는 그들이 잃어버린 것과 전하지 못했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닮은 듯 너무나도 다른 우리 사랑하고 미워하는 가족이라는 이름 언니인 엠마는 책임감이 강하고, 감정을 조용히 삼켜내며, 오랜 시간 가족의 균열을 온몸으로 버텨온 인물이다. 동생인 아가트는 감정에 충실하며, 겉으로는 가볍고 유머러스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큰 우울과 불안을 지닌 인물이다. 폭력적인 엄마의 불안정함과 아빠의 부재는 엠마와 아가트의 마음에 진한 멍 자국을 남겼다. 그런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지탱해준 건 바로 할머니의 존재였다. 맛있는 음식과 넘치는 사랑과 따뜻한 위로를 주었던 할머니. 언제나 두 사람의 돌아갈 곳이었던 할머니의 집을 이제는 비워줘야만 한다. 이제 엠마와 아가트는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추억과 사랑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상처와 상실을 건너 다시 살아내는 일 엠마와 아가트는 가족 안에서 많은 아픔을 경험하고, 그 경험은 상처가 되어 오랫동안 두 사람을 괴롭힌다. 두 사람은 자주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예민해진다. 힘겹게 걸어가다가 또 무너지고, 무너진 자리에서 한참을 헤매다가도 서로의 손을 잡고 다시 걸어간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나아가는 이야기, 손을 맞잡는 이야기, 또 넘어져도 된다고 그러면 또 같이 일어나자고 말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함께 나아가자고 손을 뻗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에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걸어가는 엠마와 아가트의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와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당신에게도 소중한 누군가가 있다면, 이 소설이 분명 마음 깊이 와닿을 것이다. 상실의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유머와 희망을 놓치지 않는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소설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