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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해체, 시선의 발명
입체주의
이슬비
은행나무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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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I.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전복의 기원
II. 브라크, 〈포르투갈인〉 감각의 질서, 구조의 탄생
III. 그리, 〈세면대〉 세 화가의 화음
IV.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No. 2〉 충돌하는 감각
V. 아르키펭코, 〈걷고 있는 여인〉 공간적 확장

나가며

참고 문헌
미주
입체주의 다섯 개의 그림

저자 소개 1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아트 인 컬처〉 뉴비전미술평론상(2008)을 받았으며,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다. 공저로 《메타유니버스: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 《그들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업에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특성」 「매체 탐구로 구현된 박영숙의 페미니스트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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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110*175*20mm
ISBN13
9791167376022

책 속으로

그렇다면 수많은 작가가 입체주의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당대의 감각과 사고, 지각 방식에 대한 입체주의의 전복적인 시각에 반응했다. 입체주의는 단지 하나의 양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20세기 전반에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사유한 실천이었다. 이 책은 형식적인 계보에서 벗어나 입체주의를 유연하고 폭넓게 바라보고자 한다. 입체주의가 어떻게 각기 다른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다시 발명’되었는지를 살펴보며, 보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탐색할 것이다. 입체주의는 설명보다 감각을, 논리보다 충격을 앞세우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바로 낯설고 불편한 그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보자. ‘아름다움’이 아니라 ‘새로움’이라는 충격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일반적으로 하나의 미술 운동이나 사조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입체주의만큼은 그 출발을 한 점의 그림에서 찾는다. 바로 1907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이다. 이 그림은 전통적 미술 규범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파격적 실험이었고, 피카소 자신도 그 충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완성 후에도 무려 10년 가까이 공개를 미루었으며, 그의 작업실을 드나들던 일부 예술가들만 이 낯설고 강렬한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결국 1916년 《살롱 당탱Salon d’Antin》 전시에서 비로소 대중 앞에 선보이며, 미술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알렸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지금 봐도 파격적인 작품이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었다. 동료 화가들조차 이 그림을 보고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피카소가 이 작품을 마티스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는 “너무 불쾌하다”라고 반응했다. 브라크 역시 처음 그림을 보고 “불을 내뿜기 위해 석유를 삼킨 듯했다”고 회상할 만큼 큰 충격과 불편함을 느꼈다.
---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중에서

흔히 입체주의 회화를 ‘다중 시점multi-viewpoint 회화’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여러 시점을 동시에 재현한 그림이라기보다 시선이 대상 위를 미끄러지고 흔들리며 머무는 과정을 시각화한 실험에 가깝다. 화면 속 형태들은 앞, 옆, 위의 모습이 뒤섞인 채 불완전하게 연결되어 있고, 관객은 그 조각난 형상들을 따라가며 스스로 ‘조립’하듯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이때 회화는 더 이상 완결된 대상을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보는 행위 자체를 체험하게 하는 장이 된다. 입체주의의 핵심은 대상을 해체하거나 결합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혁명이다.
--- 「브라크, 〈포르투갈인〉」 중에서

그리는 파피에 콜레의 파편성과 충돌을 논리적 구성으로 변환하며 입체주의를 가장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시각 언어로 발전시켰다. 피카소가 파괴적 충돌을, 브라크가 시각적 아이러니를 탐구했다면, 그리는 이 모든 실험을 질서와 조화 속에 재구성했다. 특히 그는 격자 구조를 통해 입체주의의 조형적 틀을 명확히 시각화했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화면에 암묵적으로 숨어 있던 수평과 수직의 구조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황금비율과 대각선을 활용해 형태와 색면을 배열했다. 그러나 완전한 질서에 머물지 않고, 일부러 그 격자를 비틀어 이성적 구조와 감각적 리듬의 긴장을 공존시켰다.
--- 「그리, 〈세면대〉」 중에서

아르키펭코가 입체주의 조각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작품은 〈녹색의 오목한 면〉이다. 이 조각은 두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감싸는 여성의 인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인체의 양감은 단순화되었고, 여러 부분에서 반전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허벅지는 부풀려진 덩어리가 아니라 움푹 들어간 오목한 면으로 처리되었으며, 상체 표현 역시 실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어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머리 부분이다. 두 팔이 머리를 감싸는 동작을 취하고 있지만, 정작 머리 자체는 생략되고 그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작품은 현대 조각사에서 ‘빈 공간’이 형태를 만든다는 개념을 실현한 초기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조각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획기적 전환이었다. 이로써 조각은 닫힌 덩어리에서 벗어나, 안과 밖이 서로 통하는 열린 구조로 바뀌었다. 이때 팔을 머리 위로 올려 감싸는 포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속 여성들의 몸짓을 연상시키며, 여기에서 나타난 빈 공간은 동작과 에너지를 드러내는 적극적 장치로 작동했다. 이와 함께 정면 구도를 살짝 비틀어 인체의 측면을 암시하는 방식은, 아직 소극적이지만 입체주의 회화에서 추구한 다중 시점의 감각을 조각으로 옮겨온 시도로 볼 수 있다.
--- 「아르키펭코, 〈걷고 있는 여인〉」 중에서

입체주의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한 가장 과감한 시각 실험 가운데 하나였다. 시점을 해체하고 시공간을 새롭게 엮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단지 조형 언어의 변화를 넘어, 예술이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이후 각 지역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번역되고 변주되며, 서로 다른 감각과 사유의 층위를 만들어냈다. 입체주의는 하나의 완결된 양식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서로 다른 시선과 감각을 교차시키며 새로운 인식과 표현의 언어를 모색한 실천이었다. 그 파장은 유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가 뒤섞이며 혁명을 위한 시각 언어로 전환했고, 사회주의적 현실과 인간의 새로운 형상을 표현하는 구축적 미학으로 발전했다. 미국에서는 산업 문명의 기계적 질서가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감각과 사실주의와 결합해, 효율과 생산을 미덕으로 삼는 ‘아메리카니즘’의 시각적 상징으로 변모했다. 멕시코에서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를 중심으로 벽화운동이 전개되었고, 그는 파리 시절 접한 입체주의의 구성적 사고를 사회주의적 이념과 결합해 예술을 민중의 해방과 교육의 장으로 확장했다. 이처럼 국가별로 입체주의는 혁명, 산업, 해방이라는 서로 다른 민족적 근대의 과제와 결합하며, 새로운 시각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 「나가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예술의 개념을 뒤바꾼 혁명의 시작

‘아트 에센스’ 시리즈는 매혹적이지만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오직 다섯 개의 대표 그림으로 각 미술사조의 핵심만 파악하는 시리즈다. 입체주의는 네 번째 책으로, 저자는 입체주의를 하나의 미술사조를 넘어 전통적 예술의 형태를 해체하고 20세기의 ‘보는 방식’을 발명한 혁명이라고 역설한다. 20세기 초 과학과 철학의 비약적 발전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과 조응하며 탄생한 입체주의를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그리, 마르셀 뒤샹, 알렉산더 아르키펭코의 그림을 중심으로 설명해나간다.

“불을 내뿜기 위해 석유를 삼킨 듯했다.”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브라크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을 처음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마티스 역시 “너무 불쾌하다”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입체주의의 시작은 이처럼 아름다움이 아니라 충격과 도발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누드화는 피카소에 의해 해체되어, 관객을 응시하며 능동적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하는 조각난 여성의 신체가 되었다. 입체주의는 더 이상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체된 형태를 따라 눈을 옮기며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렸는지 스스로 이해해가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림은 이야기 대신 낯섦과 충격을 전해야 한다”
회회의 질서를 뒤흔든 입체주의의 탄생


19세기 후반,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의 존재 의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되었다.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붓으로 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는 ‘눈에 비치는 그대로’ 그리는 인상주의와 내면의 감정을 색과 형태에 투영하는 후기인상주의로 이어졌고, 입체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절대 공간 개념을 뒤집었고, 회화를 지배하던 ‘단일한 시점’ 개념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회화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천재 피카소는 세잔의 작품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잔은 이미 정물화에 ‘다중 시점’을 도입했으며, 자연을 ‘원뿔, 원통, 구’로 재현하는 실험에 몰두해 있었다. 피카소는 세잔의 그림에서 자극을 받았고,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 듯 더욱 급진적인 다중 시점과 해체된 형태를 선보이려 했다. 그 전까지 비극적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왔던 피카소는 원래 〈아비뇽의 여인들〉에도 ‘이야기’를 넣으려 했으나, 실험을 거듭하면서 주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화면을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화면 속 다섯 여성의 얼굴은 기괴한 가면처럼 묘사되어 있고, 몸은 뒤를 향하고 있음에도 시선은 정면을 응시해 관객을 마주한다. 작품의 배경과 인물은 서로 구분되지 않고 얽혀 있고, 관객은 불편한 시선을 마주하며 무엇을 그렸는지 의아해하며 화면 위를 헤맨다. 피카소는 단일한 시점, 사실적인 형태, 인물(대상)과 배경의 구분이라는 미술의 전통을 모두 전복함으로써 입체주의를 탄생시켰다.

“관객은 그림의 주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
그림을 넘어 현실로, 형태를 넘어 개념으로


피카소의 전복으로 회화를 가두고 있던 제약이 사라지자, 곧바로 다양한 실험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조르주 브라크는 〈과일 접시와 유리잔〉에서 목탄으로 그린 과일 접시 옆에 나뭇결 무늬 벽지를 잘라 붙였는데, 이후 피카소, 후안 그리 역시 신문지, 연필, 유리 등 다양한 사물을 캔버스에 붙이거나 캔버스 둘레에 밧줄을 묶는 등 그림에 현실 세계의 사물을 도입하였다. 대상을 묘사한 그림과 대상이 한 화면에서 만나면서 그림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것이 되었고, 관객은 다양한 시점, 해체된 형태, 그림과 사물이 공존하는 화면 위를 바쁘게 훑으며 그림의 주제를 능동적으로 창조하게 되었다.

한편 정지된 대상이 아닌 움직이는 대상을 한 화면에 담아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마르셀 뒤샹은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No. 2〉에서 여성의 신체를 도형들로 단순화한 뒤, 계단을 내려오는 움직임을 한 화면에 담아내었다. 고정된 화면에 여러 시공간을 중첩하려는 시도이자, 그림으로 움직임이라는 개념을 표현한 작업이기도 했다. 이후 뒤샹은 자신의 서명을 남긴 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해, 개념미술로 나아갔다. 한편 조각가 알렉산더 아르키펭코는 ‘빈 공간’ 개념을 조각에 도입했다. 그의 〈걷고 있는 여인〉에서는 인물의 얼굴, 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자리한다. 조각가는 ‘빈 공간’을 통해 형태를 암시하고 관객은 ‘빈 공간’에 그 형태를 추측한다. 작품의 의미와 주제가 관객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입체주의는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위축되었지만, 전 세계로 확산되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입체주의의 영향은 그림의 형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졌고, 러시아에서는 미래주의와 뒤섞여 혁명을 위한 시각 언어로, 미국에서는 기하학적 감각과 사실주의와 결합해 ‘아메리카니즘’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멕시코에서는 디에고 리베라를 중심으로 한 벽화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아르키펭코의 조각은 유럽의 바이오모피즘, 한국의 생명주의 조각의 토대가 되었다. 입체주의는 예술의 가능성을 유례없이 넓게 열어젖혔고, 그 속에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향이 탄생할 수 있었다.

추천평

19세기 중엽 이후 100여 년은 진정 당대적인, 즉 ‘모던modern’ 미술이 만들어지는 시기다. 과감한 실험을 통한 형식과 기법의 비약적인 전환이 거듭된 이 시기 미술은 그만큼 흥미로운, 그러나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왔다. 한편 인터넷과 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이미지의 광범위한 유통이 가능해짐에 따라, 당대 미술을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이른바 ‘미술 애호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모던 미술은 매혹적인 그러나 난해한 대상이다. 〈아트 에센스〉 시리즈는 이러한 일반 감상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제목처럼, 당대 미술의 에센스를 뽑아 쉽고도 친근한 어조로 이야기해주자는 것인데, 이번에는 인상주의에서 후기인상주의와 야수주의, 그리고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추적한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교육과 집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사학자들로 이루어진 필진은 각 사조를 대표하는 5개의 작품을 선별하여 그 형식과 내용, 미술사적 의미를 쉽고도 친절한, 동시에 알찬 강의로 재구성한다. 필자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참신한 내용 구성과 필체도 주목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바로 옆에서 강의를 듣는 것 같은 현장감을 느끼는 동시에 미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눈뜨게 될 것이다. 풍부한 관련 도판, 충실한 주석과 함께 전개되는 내용은 주요 작품을 넘어 당대 미술사 전반을, 나아가 그 사회적 맥락까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한다. 이 작은 책이 실제로는 매우 넓고 깊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미술애호가들이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이 책을 들고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할 날을 상상해본다. 그들이 그 작품들의 진정한 미술사적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현대미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 윤난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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