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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해설
발렌슈타인의 진영 피콜로미니 일가 발렌슈타인의 죽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
Friedrich von Sch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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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슈타인:
이건 사실이야, 황제가 나를 나쁘게 다뤘지! 내가 원한다면, 나도 그 대신 그에게 사악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겠지. 내 권력을 알고 있는 것이 나의 즐거움일세. 내가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게 될지, 거기에 대해선, 자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네. --- p.173 발렌슈타인: 토성의 제국은 끝났네, 그것은 대지의 품속과 심성의 깊은 곳에서 사물의 비밀스런 출생을 지배하고, 빛을 꺼리는 모든 것을 지배하네. 이젠 더 이상 궁리하고 생각할 시간이 아니네. 찬란한 목성이 지배하며 어둠 속에서 준비된 사업을 광명의 나라로 강력하게 끌어들이네. 이젠, 행운의 형상이 나의 머리 위에서 다시 날아가 버리기 전에 신속하게 행동해야 하네. 창공은 끊임없이 변전하고 있기 때문이네. --- p.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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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의 ≪발렌슈타인≫ 3부작은 독일 문학사에서 처음 이루어진 쾌거였으며, 이 작품을 통해 실러는 자신의 본령인 희곡 작가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소위 시민 비극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 비극으로,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비극과 비견할 수 있는 희곡이 독일 작가에 의해 처음으로 창작된 것이다.
실러는 공연을 관람하러 온 프로이센 왕에게 소개되었고, 역시 공연을 본 스웨덴 왕에게서 귀한 다이아 반지를 하사받았다.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황실에서도 공연 소식을 듣고 방문을 예고했다. 초연을 보고 빌헬름 폰 훔볼트는 감격해서 실러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까지 아무도 이렇게 많은 군중을 동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이렇게 광범위한 소재를 선택한 사람은 없습니다.” 바이마르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발렌슈타인≫은 1799년 베를린 공연을 시작으로 라이프치히(1800), 함부르크(1806) 등지에서 공연되었고 마침내 독일어권 극장의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아 갔다. 그러나 3부작이라는 분량 때문에 공연에 문제가 생긴다. 처음에는 3부작을 3일에 걸쳐서 공연하다가 그 후엔 <발렌슈타인의 진영>과 <피콜로미니>를 첫날 공연하고 둘째 날엔 <발렌슈타인의 죽음>을 공연하는 방식이 시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이틀 또는 사흘에 걸쳐 공연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실러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함부르크 공연을 위해 많은 부분을 생략해서 1회용 대본을 만든 바 있다. 애석하게도 이 대본은 분실되었다가 1958년에 재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가지 1회 공연용 대본이 나왔다. ≪발렌슈타인≫은 책으로 출간되어서도 호평을 받아 판을 거듭했다. 오늘날도 ≪발렌슈타인≫은 독일어권 무대에서 계속 공연되며 괴테의 <파우스트>와 함께 김나지움의 독일어 교재로 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