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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고양이 털 뭉치 2. 티라미수케이크 3. 달방 4. 송 씨 아저씨 5. 여탕 6. 회복탄력성 7. 나영 8. 소멸해 가는 너의 무릎을 베고 누워 9. 탄광 사우나 10. 로라케이크 11. 위클래스 12. 지방에 삽니다, 놀랍게도 청년이고요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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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가 묻은 가죽 다이어리에는 정갈한 글씨들이 빼곡했다. 엄마가 글씨를 이렇게 잘 썼었나 싶을 정도였다. 절망과 현학이 뒤섞인 김미숙의 지난 시간들을 훔쳐보다 민지는 어딘지 섬뜩한 기분이 들어 다이어리를 덮어 버렸다. 그간 엄마가 느꼈을 감정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과거를 살피고 보듬는 건 어쩐지 딸인 자신의 영역이 아니지 싶었다. 그럼에도 가름끈처럼 숨겨진 현금이 남아 있을까 싶어 얇은 종이들을 빠르게 넘겨 보는데, 진짜 가름끈이 끼워져 있는 페이지가 활짝 펼쳐졌다. 지난주 목요일 날짜였다.
민지의 시선이 마지막 문장 위에 멈추었다. 사우나 바닥에 묻어 놓은 3천만 원을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 p.19 엄지손가락으로 지도 앱을 눌렀다. 액정 속 농협 위에 파란 점이 떠올랐다. 사우나. 손가락이 가는 대로 단어를 입력하니 금세 소축척으로 지도가 바뀌며 온천 기호 하나가 표시되었다. 검지와 중지로 지도를 요리조리 옮겨 보아도 사방 30킬로미터 이내에 사우나는 오직 한 곳뿐이었다. 파란 점이 찍힌 곳은 선인면 초입, 엄마의 아파트로 가는 길이었다. 민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탄광마을 사우나.’ --- p.41 “티라미수케이크예요, 겉모습은 재를 뒤집어쓴 것 같아 보여도 속은 한없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사실 여기 있는 케이크들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직접 만드는 케이크이기도 해요. 그냥 납품을 받아도 되지만 이건 누군가에 대한 헌사와 위로가 담겨 있는 빵이라서.” --- p.48 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 네댓 명의 목소리였다. 걸쭉하고 지쳐 보이는 목소리, 이따금씩은 짙은 강원도 사투리를 섞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격의가 없는 사이처럼 보였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코끝은 점점 붉어졌다. 두피부터 솟아난 식은땀에 축축해진 눈꺼풀은 돌풍을 만난 낚시꾼처럼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엄지손톱만큼 입을 벌린 민지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텅 빈 목욕탕 허공을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비누 거품이었다. --- p.73 아빠? 엄마는 아빠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빠를 잃은 어린아이는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기회를 박탈당한 채 어른이 되고 말았다. 민지의 기억 속 아--- p.114 “나 열심히 살았어. 깡촌에서 땅 한 마지기 없이 소작하는 부모 대신 동생 넷 업어 키웠고, 탄가루가 입천장에 들러붙어 토악질을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일했어. 내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버텨 왔는데. 다 너 하나 잘 키워 보겠다고 이렇게 살아온 건데!” “누가 나 하나 보고 살래? 엄마는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제발. 이딴 부적 좀 그만 가져오고. 엄마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렇게 살아 주라, 제발!” --- p.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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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 작가
이인애 신작 장편소설 탄광의 쇠락과 함께 시간이 봉인되어 버린 탄광마을 ‘설백’. 노인과 오래된 건물만이 남은 마을에 어느 날 고소한 커피 향이 감돌기 시작한다! 커피 향이 흘러나오는 곳은 다름아닌 ‘탄광마을 사우나’. 그러나 그곳은 폐광 이후 오랫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는데……. 서울로 올라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던 민지에게 어느 날 엄마의 부고가 날아든다. 상경한 이후로 엄마와 서먹하게 지낸 지 오래였지만, 결국 민지는 오랜만에 고향인 탄광마을 ‘설백’으로 향한다. 요양병원에 도착해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민지는 병실 구석에서 우연히 다이어리를 발견하게 되고. 의미심장한 문장을 발견한다. 사우나 바닥에 묻어 놓은 3천만 원을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사우나? 3천만 원? 어쩐지 그 말이 엄마의 마지막 유언인 듯 민지의 마음속에 박힌다. 고된 서울살이에 지칠 대로 지쳤던 민지는 잠시 설백에 머무르며 엄마가 잃어버린 3천만 원의 행방을 좇기로 하고. 그러던 중 민지는 마을 초입에 위치한 오래된 목욕탕을 발견한다. 낡은 건물을 카페로 리모델링하고 있던 건물주 정훈과 마주치고, 민지는 생계를 위해 목욕탕 청소를 돕기로 한다. 목욕탕 청소 1일 차. 기세 좋게 청소 도구를 들고 남탕 안으로 들어선 민지.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아무도 없어야 할 이곳에 의문의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을 따라 시선을 옮긴 곳에 있는 건…… 비누 거품? 게다가 이 거품들,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기까지 한다! 단 한 사람의 온기가 머물던 자리에서 남들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늘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는 서연. 진회색 교복 치마와 노란 명찰,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설백고 학생이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언제나 조용한 따돌림뿐이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결국 서연은 폐쇄된 탄광 사우나를 찾게 되고, 그의 눈앞에 한 여인이 홀연히 나타난다. 이름은 로라. 이곳 출신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을의 유명인사, 로라 여사였다. 오랫동안 사람이 찾지 않아 수풀이 우거진 그곳에서, 서연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느낀다. 함께 식사를 나누고, 길고양이를 돌보며 쌓인 시간들은 서연의 세상에 작은 온기를 남긴다. 로라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서연은 여전히 그 집을 찾는다. 여느 날처럼 단지 고양이 ‘마릴린’을 돌보러 간 것뿐인데……. 집 안에 낯선 여자가 와 있다!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집 안을 둘러보던 그녀에게, 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묻는다. “혹시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으세요?”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 탄광 마을의 오래된 사우나. 지금 이곳은 커피 향과 빵 냄새가 가득한 카페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삼촌이 남긴 사우나 건물을 리모델링해 운영을 준비 중인 평범한 청년 사장, 정훈.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이 공간의 시간과 기억을 잘 알고 있다. “티라미수케이크예요, 겉모습은 재를 뒤집어쓴 것 같아 보여도 속은 한없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그가 직접 구워 내는 케이크엔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 그리고 오래전부터 남은 한 조각의 마음이 케이크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픈 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를 본 순간, 정훈의 눈빛이 잠시 멈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 정훈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 속엔,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