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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역사 앞에서
매월당 김시습 - 10 구운몽, 그 꿈에 대한 유폐의 시詩-김만중 아홉 개의 꿈 - 11 생사生死 - 14 겨울 남도행 - 15 석모도 일몰 백서 - 16 겨울 벌판에서 - 17 몸속의 새 - 18 적막 끝에서 - 19 마라도 - 20 그대 간 곳은 - 21 별어곡에서-어린 단종에게 - 22 파적破的 - 23 새하곡塞下曲 - 24 그믐 끝에서 - 26 겨울 바다, 그 몇 개의 구도 - 27 바람에게 - 29 사리舍利 - 30 2부 흔들리는 구도 흔들리는 구도 - 34 새벽 두 시 - 35 아내의 생일 - 36 어머니의 치매 - 37 갈치 - 38고드름에게 - 39 서울, 악몽 - 40 슬픔의 우물 - 41 가장家長 - 42 어머니 - 43 밀물 - 44 별, 먼 그대 - 45 산 - 46 혼혈 - 47 겨울 김장 - 48 백일홍 - 49 인연 - 50 3부 적음寂音속에서 감자꽃 - 54 백담사에서 길을 잃다 - 55 망운암 - 56 다비-서옹스님 - 57 암자에서 - 58 덫 - 59 적음寂音 - 60 아우라지에서 - 61 기도 - 62 유사流沙 - 63 겨울 산사 - 64 암자 - 65 적석사 범종 - 66 빙하기 - 67 환속還俗 - 68 부처 - 69 석남사 가는 길 - 70 4부 마음의 감옥 늦은 시간 - 74 마음의 감옥 - 75 주막에서 - 76 실직자 - 77 첫 눈 - 78 시인 - 79 비가悲歌 - 80 섬 - 82 단오 - 83 봄날 - 84 산다는 것은 - 85 파종기 - 86 겨울산 - 87 가시 - 89 연어 - 90 그곳 - 91 지리산에서 - 92 |
정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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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에게 한갓 생生은 꿈이었네
말 잃고 벼슬 잃은 유폐의 날들을 생각하니 금강경 한 줄 공空처럼 무심에 젖어든다 인간사 부질없음을 단 하룻밤에 깨달아 눈 감은 눈 감은 듯 써 내려간 일필휘지一筆揮之여 내 어찌 미처 몰랐을까 한 생이 한갓 꿈임을 --- 「구운몽, 그 꿈에 대한 유폐의 시」 중에서 거북이 삼천 알 중 한 마리만 살아남듯 네가 오늘 숨 쉬고 사는 것은 기적이네 밥상을 앞에 다 놓고 살기 위해 비우는 그릇 --- 「생사生死」 중에서 첫눈 내려 그대와 함께 떠나는 구절리행 단종이 걸어왔던 그 유폐의 길을 가네 별어곡 키 작은 왕의 울음소리를 듣네 --- 「별어곡, 어린 단종에게」 중에서 숲이 흔들리면 길 위에 선 내가 흔들리고 내가 흔들리면 온 가족이 흔들린다 비로소 대못이 빠져 기우뚱하는 집기둥 --- 「흔들리는 구도 중에서」 중에서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인 저녁 식탁 아내가 비싼 국내산 갈치를 내놓았다 그녀의 흰 머리칼이 전등불에 빛난다 이 토막은 큰 놈 것 이 토막은 작은놈 것 이 꽁지는 당신 것 싱긋 웃음이 번진다 “내 것은 뱃속에 있어요” 때론 눈물도 행복이 된다 --- 「갈치」 중에서 내가 나를 안다지만 모를 때가 더 많네 그대도 나처럼 그렇지 아니한가 마음에 두 갈래의 강이 늘 굽이쳐 흐른다는 것을 --- 「아우라지에서」 중에서 바람과 독수리에게 내 몸을 내어주었다 살과 뼈가 흙이 되어도 끝내 두렵지 않았다 애초에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였다 --- 「부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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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이번 시조집 『구운몽, 그 꿈에 대한 유폐의 시』에 흐르는 사유의 결은 크게 네 갈래의 빛으로 나뉜다. 첫째는 역사의식에 대한 천착이다. 김만중과 김시습, 그리고 단종이라는 인물들을 통해 유폐와 상실, 의로움과 한恨이 서로 부딪히며 ‘생은 어차피 꿈’이라는 깨달음으로 흘러가는 내적 여정을 담아냈다. 억눌린 영혼들이 품은 고독과 신산함, 그 속에서 피어나는 통찰은 시조 특유의 정제된 형식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드러날 것이다. 둘째는 불교적 사유와 생명에 대한 경외이다. 「생사生死」에서는 삼천여 개의 알 중 단 한 마리만이 살아남는 거북의 생을 통해 생명의 경이와 무상함을 노래했다. 「유사流沙」에서는 사막과 모래, 낙타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윤회의 고리를 은유하려 했다. 「연어」에서는 캄차카에서 남대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여정 속에 귀향과 순환, 필연적 삶의 흐름을 담고자 했다. 푸른 대양, 달빛, 늙어 붉게 변하는 등짝 같은 상징들은 생명의 유한성과 자연의 순환을 동시에 품고 있다. 셋째는 가족과 일상 속의 소소한 기쁨과 다정함이다.「흔들리는 구도」, 「새벽 두 시」, 「아내의 생일」, 「갈치」 등에서 나는 평범한 저녁밥의 온기, 아이들의 숨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비치는 세월의 그림자 같은 것들을 시조 속에 담았다. 소박한 일상들이 때로는 역사와 철학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삶의 가장 온유한 순간들이 오히려 더 정직하게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넷째는 존재론적 성찰과 내면의 깊이다. 시조집 전체에 흐르는 사색과 명상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고요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과 생명을 매개로 인간 존재의 필연적 운명을 바라보고, 언어를 최대한 간결하고 단단하게 다듬어 시적 명료성 속에 서정적 깊이를 새기려 했다. 이렇듯 나의 시조들은 역사와 불교적 성찰, 가족의 온기,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향한 질문들을 품고 독자 앞에 서게 되었다. 비록 오래된 시편들이지만, 독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의미로 살아나길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도 시의 숨결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이 책을 펴내는 나의 마지막 용기이자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