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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류성룡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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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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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 차례

엮은이의 말 진정한 리더십과 애민은 무엇인가 • 6

1장 곪아 있는 조선을 바꾸고자 직언하다

신하의 죽기 직전 충언에 죄를 물리지 마소서 • 23
넓은 토지를 가진 자들은 세금 내기를 거부합니다 • 24
아전이 부패하게 되는 덴 이유가 있습니다 • 25
백성의 삶을 어루만질 방책을 찾아야 합니다 • 26
신하들의 붕당으로 시끄럽고 어지럽다 • 28
백성이 애써 쌓은 성들이 무너지고 있다 • 29
천거가 있어야 등용된다면 큰 폐단입니다 • 30
언로가 막히는 풍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 31
호남과 영남 사이의 작은 고을을 맡겨주소서 • 32
경상도 관찰사를 맡을 수 없습니다 • 34
오랑캐를 기습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 36
임금과 재상은 운명을 말하지 않습니다 • 37
까닭 없이 작위가 주어지면 안 됩니다 • 38
간쟁한 일 때문에 언관을 벌주면 안 됩니다 • 40
나에게까지 선물할 여력이 있는가 • 41
마땅히 물러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 42
목수가 나무를 쓰듯 사람을 등용하소서 • 44
옥사를 공정히 처리하면 저절로 복종할 것이오 • 46
폐단을 스스로 열어놓을 수 없습니다 • 47


2장 임금이 떠나면 조선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내가 이순신을 천거해 수사로 임명되었다 • 51
낯선 장수를 급히 보내면 반드시 후회합니다 • 52
일본과 합심해 숨겼다고 의심할 것입니다 • 53
진관이라는 이름만 있지 유명무실합니다 • 55
진관 제도를 급히 다시 정비해야 합니다 • 57
군정을 진관의 수령들이 방치하고 있습니다 • 59
왜적들이 심상찮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 60
조총이 있기에 왜적을 가벼이 볼 수 없소 • 61
우리 군사들이 겁이 많고 나약합니다 • 62
저의 형이라도 노모와 피난 가게 해주소서 • 63
내가 모집한 무사들을 먼저 데리고 가시오 • 64
임금이 떠나면 조선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 65
나라를 버리자는 논의를 누가 내놓았는가 • 66
임금의 파천은 모두 분하게 여긴다 • 67
모두가 힘을 합쳐 적을 쳐야 합니다 • 68
신이 어찌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 70
어찌 방비를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 71
너희의 충성은 지극하나 난을 일으켜선 안 된다 • 72
원컨대 서쪽으로 피난 가지 마십시오 • 74
왜적들을 물리칠 희망이 있습니다 • 75
청천 강변에서 왜적과 결전해야 합니다 • 77
더이상 피난 가지 말고 굳게 지켜야 합니다 • 78
밤새 달려가 명군을 데려오겠습니다 • 79
군량을 수송할 대책을 찾아내야 한다 • 80


3장 도성의 왜적을 일거에 소멸시켜야 합니다

평양의 왜적을 남쪽으로 패퇴시켜야 합니다 • 85
상벌을 분명히 하고 사기를 진작시키소서 • 88
그대는 서생이니 장수의 그릇이 아니오 • 89
북쪽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 • 90
하늘이 도와 군량이 도착했습니다 • 92
너희가 군졸로서 어찌 도망칠 수 있느냐 • 93
병들었으나 죽기 전에는 힘을 다해 뛰겠습니다 • 94
형세를 보면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 96
지금 명나라 군사가 물러나선 안 됩니다 • 97
여진의 속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 98
영남의 좌도가 무너지면 전국이 무너집니다 • 99
위급한 시기에 기댈 것은 오직 인심입니다 • 101
도성의 왜적을 일거에 소멸시켜야 합니다 • 104
얼어붙은 임진강에 부교를 만들다 • 105
명군은 퇴각이 아니라 진군해야 합니다 • 108
적의 머리와 꼬리를 단절시켜야 합니다 • 110
명군들이 출병하지 않아 원통하고 분합니다 • 112
왜적과 강화하러 가는 기패에 절을 할 수 없다 • 115
왜적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명은 받들 수 없다 • 116
이 전투가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 118
지금 적을 방어하는 일은 일각이 급합니다 • 120
군사들이 밤낮으로 배우고 훈련하게 해야 합니다 • 122
정예 병사 수만 명을 육성해야 합니다 • 124
유격전의 계책으로 왜적을 고립시키다 • 126
고운 모래와 재로 적의 눈을 못 뜨게 하다 • 128


4장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명군이 출격하지 않으면 죽기 살기로 싸울 뿐이다 • 133
소금 굽는 일 하나는 시행해볼 만합니다 • 134
부산에 주둔한 왜적을 몰아내야 합니다 • 136
섬에 둔전을 실시하면 이익이 있습니다 • 138
공노비와 사노비도 병졸로 삼아야 합니다 • 140
성을 지키려면 포루를 설치해야 합니다 • 141
걱정할 일이 외부의 적뿐만은 아닙니다 • 144
지금이 어느 때인데 노복과 주인을 따집니까 • 146
군사들로 둔전을 설치해 경작해야 합니다 • 147
공물과 방물의 폐해를 고쳐야 합니다 • 149
명나라에서는 지방에서 진상하는 일이 없습니다 • 152
변방 군사 하나가 후방 민병 백보다 낫습니다 • 154
명나라의 노여움을 자극하지 말아야 합니다 • 156
도성에 1만의 정예병을 두어야 합니다 • 158
목숨을 바친 의병들을 제대로 포상하소서 • 160
화친을 주장했던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 162
병조는 날마다 군정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 164
강 연안에 둔보를 설치해야 합니다 • 165
서자건 노비건 재주가 있다면 인재입니다 • 169
군사를 군량에 따라 감축하면 안 됩니다 • 173
인재의 기준은 출신과 문벌이 아닙니다 • 176
헛되이 말만 해서는 복수할 수 없습니다 • 178
아직도 나라를 구제할 만한 희망은 있다 • 180
사가의 노비는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까 • 182


5장 나라를 구했지만 더 큰 시련이 시작되다

적군이 지나갈 때를 기다려 그 뒤를 밟아라 • 189
명나라 장수의 장난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 190
소서행장을 사로잡을 기회를 놓쳐 애통하다 • 194
인심이 뿔뿔이 흩어지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 196
나라의 근본인 도성은 반드시 고수해야 합니다 • 198
모욕을 받은 저의 관직을 거두어주소서 • 200
사염을 억제하고 공염을 확대해야 합니다 • 201
험한 곳에 자리 잡고 성벽을 지켜야 합니다 • 203
이순신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 205
통제사는 이순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 206
명나라가 요청한 둔전 설치를 반대합니다 • 207
이순신은 패하는 일이 없었다 • 208
탄핵 공론의 당사자로서 사직을 청합니다 • 210
논죄당한 것이 이미 중해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 211
다만 이 칼자루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 213
신의 속마음까지 공박하니 억울할 따름입니다 • 214
공론을 멸시하고서 조정에 들 수 없습니다 • 216
남의 발소리만 들어도 두근거리고 두려워진다 • 218
조정은 함부로 들고 나는 곳이 아니다 • 220
이제까지의 7년을 원망하지 않는다 • 221
신의 이전 직책을 거두거나 내려주소서 • 222
훈적 가운데 신의 이름을 삭제해주소서 • 224
백성을 기르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소서 • 226
애국의 일념만이 죽을 때까지 잊기 어렵다 • 228


6장 나는 평생에 세 가지 한이 있다

책을 읽을 때는 주해를 먼저 보면 안 된다 • 233
불서는 읽었지만 불교의 그릇됨은 압니다 • 234
양명학에도 배울 바는 있습니다 • 236
양명학의 단점은 버리되 장점은 취해야 합니다 • 237
그쳐야 할 곳을 알아 그치는 것이 핵심이다 • 239
겉과 속이 하나가 되면 저절로 이르는 것이 있다 • 240
주자가 문제가 아니라 주자를 읽는 자들이 문제다 • 242
같은 데서 시작했지만 가는 곳이 다를 뿐이다 • 243
양명학의 폐단은 문치주의보다 심하다 • 244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 245
체험함이 없는 자들은 모두 덕을 포기한 것이다 • 246
약삭빠르게 벼슬하는 자들의 방법을 배우지 말라 • 248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간다 • 250
마음 씀씀이와 일 처리가 군자는 모두 공정하다 • 252
정성이 있으면 사물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사물이 없다 • 254
하늘의 운수를 말하지 말고 사람의 일만 말하라 • 256
누추한 집이지만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 257
충효 이외에 다른 할 일이 없다 • 258
정성과 효도, 화합은 집안을 지키는 도이다 • 259
조화의 세계로 편안하게 돌아가고 싶다 • 260
나는 평생에 세 가지 한이 있다 • 261

류성룡 상세연보 • 262

저자 소개

저자 : 류성룡 柳成龍(1542~1607)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 호는 서애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했고 25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뒤, 여러 자리를 거쳐 1590년 우의정에 올랐다. 왜란에 대비해 형조정랑 권율과 정읍 현감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조선의 기존 방어체제인 제승방략 대신 진관제도를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영의정이 되어 피난을 떠난 선조를 수행했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평안도 도체찰사로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 획책을 저지했다. 신분이 아닌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 정책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면천법?작미법 등의 각종 민생 개혁정책을 만들었다. 1598년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다. 1604년 다시 풍원부원군에 복직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607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후에 집필한 『징비록』『서애집』『신종록』『영모록』『운암잡기』등이 전해진다.

편자 : 강현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에는 ‘고전 다시 읽기’라는 취지로 고전들을 원전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롭게 재구성해 엮어내고 있다. 방대한 완역 고전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전문 연구자와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다. 엮은 책으로 『이순신의 말』 『영조의 말』이 있다.
역자 : 박승원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과에서 문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명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재단법인 성균관 학술교육팀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정본여유당전서 출간팀장 등을 역임했다. 논저로는 ‘주희와 절동사공학파의 논변에 관한 연구’ ‘정이의 천리론과 공부론 연구’ ‘정이 철학에서 성과 기질의 문제’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이순신의 말』『명심보감』『채근담』『영조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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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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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51MB ?
ISBN13
9788960604704

책 속으로

백성들을 위해 군주를 세운 것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옛사람이 “한 백성이 살 곳을 잃으면 왕정의 잘못을 알기에 족하고, 한 여자가 버려지게 되면 백성들의 곤궁함을 알기에 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하니 오늘날 경기 지역 내에서 구렁텅이에 빠져 살 곳을 잃고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하늘에 울부짖어 조화로운 기운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몇 억만이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소의간식(宵衣?食: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늦게야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에 부지런하고 걱정이 많음을 뜻함)은 언제나 백성의 삶에 두었고, 가엾게 여기고 어루만질 방책을 강구하심은 진실로 이미 이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오직 백 년 동안 쌓인 폐단이 고질에 빠지게 되어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군사의 수효는 날마다 줄어들지만 인보(隣保: 변방에 사는 백성들에게 가까운 이웃끼리 뭉쳐 적의 침입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게 하는 것)는 홍수나 화재보다도 심하고, 공물과 세금은 가혹해 방납(防納: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이자를 붙여 받는 일)하는 무리들은 사나운 호랑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큰 것이고 나머지는 다 논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바꾸어 바로잡지 않는다면, 벌판을 태울 것 같은 기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나라의 근본이 무너질 것입니다. _p.26~27

무릇 작위를 내리는 것은 애초부터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덕망이고, 그다음은 재능이고, 그다음은 공로이고, 그다음은 연차입니다. 만약 이 몇 가지에 해당되지도 않는데 까닭 없이 작위가 주어지는 것은 정사에 있어서도 잘못이고, 개인 신상에 있어서도 상서롭지 못합니다. 신은 이미 재능과 덕망으로 선택된 것도 아니고 또한 연차와 공로가 쌓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순서와 등급을 뛰어넘어 우뚝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니 정사의 체통에는 어떠하며, 물정에는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영남 변두리의 미천한 출신으로 어리석은 주제에 평소 학문도 제대로 통하지 못해 쓰일 만한 재능이 못 되고, 체질이 허약해 질병마저 더해졌으며, 식견과 도량이 어둡고 얕아서 일에 부딪치면 어쩔 줄을 모르니, 이 어찌 사무를 담당할 만한 그릇이겠습니까? _p.38

한 번 위급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모두 동요하게 되고, 장군이 없는 군사들은 먼저 들판 가운데 모여 천 리 밖에서 올 장수를 기다려야 합니다. 장수가 이르기도 전에 적의 선봉이 이미 쳐들어온다면, 군사들의 마음이 먼저 동요되어 반드시 궤멸될 것입니다. 큰 무리들은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기가 어려우니, 이때는 장수가 비록 도착했다고 해도 누가 함께 싸우겠습니까? 이전의 진관 제도를 다시 정비해 평시에는 훈련에 용이하게 하고, 유사
시엔 소집할 수 있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앞뒤가 서로 응하고 안팎이 서로 기댈 수 있어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되지 않아 일에 있어서 편리합니다. _p.57

너희들이 힘을 다해 성을 지키면서 어가(御駕: 임금의수레)가 성에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니, 나라를 위하는 충성이 지극하구나. 다만 이것을 핑계로 난을 일으켜 궁문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또한 조정에서도 성을 굳게 지키자고 장계를 올려 청하고 성상(聖上)께서도 이미 윤허하셨는데 너희들은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하는가? 네 모습을 보니 식견이 있는 사람 같은데, 반드시 이러한 뜻으로 여러 사람들을 타일러 물러가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은 장차 중대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_p.72

지금 성상(聖上)께서 서쪽으로 피난하신 것은 본래 명나라에 의지하려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지금 북도에 깊이 들어갔다가 중간에 적병이 가로막아 명나라와 소식이 끊기고, 또 불행히도 적병이 북쪽을 침범한다면, 그 위태롭고 절박함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지금 조정 신하들의 가족이 모두 동북 지방에 피난해 있기 때문에 각자 사사로운 계책을 마음에 두고 다투어 북도로 향하려 합니다. 신 또한 노모(老母)가 동쪽으로 피난을 떠났으니 반드시 함경도 지역으로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사사로운 계책으로 말한다면, 어찌 북쪽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나라의 대계의 측면에서 사사로운 의도는 용납할 수 없기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_p.90

생각건대 명나라 군사들이 퇴각해 주둔한 뒤로 장수들의 마음이 동요되어 어지러이 모두 물러나는데, 좋은 계책이 아닌 듯합니다. 신은 다시 권율을 독려해 행주산성으로 돌아가 지키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목책과 군영이 이미 모두 불타버려 군사들이 자리 잡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임시로 파주의 뒷산에 주둔하며 이빈(李?)·고언백(高彦伯) 등과 물고기 비늘처럼 진을 치게 했습니다. 이미 임진(臨津) 이남 지역을 굳게 지키고 있으니, 또한 기회를 보아 도성의 동서를 습격해 나아가 취할 계획입니다. 전해 듣건대 이 제독은 지금 황해도 봉산(鳳山)에 주둔하고 있는데, 자못 후회하는 뜻이 있어 군사를 돌려남쪽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 이렇게 여러 왜적들이 아직 다 합세하기 전에 뒤쫓아 군량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대군이 다시 진군한다면 큰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상께서는 또한 중신을 계속 보내정성을 다해 간절히 요청해 큰일을 이루게 하십시오. _p.108~109

이렇게 적이 후퇴할 즈음에는 정예 병사를 뽑아 많은 전략을 쓴 뒤에야 적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신이 경기(京畿) 내 여러 고을의 군대를 살펴보니 여러 해를적과 싸워서인지 마음과 담력이 이미 단단해 매번 전투마다 먼저 나섭니다. 추의군·창의군 같은 의병들이 비록 오합지졸이기는 하지만, 열 가운데 하나만 취한다면 어찌 쓸 만한 자가 없겠습니까?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삼남 지방에는 쓸 만한 자가 더욱 많을 것입니다. 강원도 산간에는 사냥을 생계로 삼아 맹수를 때려잡으며 굶주리고 목말라도 지치지 않는 자가 또한 많이 있습니다. 이제 곳곳에서 그런 자를 뽑아 활과 화살, 전투용 말, 양식을 대주고 용맹한 장수들에게 분배해 항상 훈련하게 하고, 또한 각 고을 수령에게 명해 자기 지역 내의 정예 병사를 가려 뒤섞이지 않게 하여 한곳에서 변란이 발생하면 서로서로 응원하게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군졸이 잘 훈련되어전쟁에 임해 적의 소문만 듣고 흩어져 도망갈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적이 믿는 것은 그저 조총뿐이니, 우리나라도 마땅히 밤낮으로 훈련해서 군사들이 배우고 익히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면, 적의 장기(長技)를 우리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_p.122~123

신이 금번에 거쳐 간 여러 읍들은 하나같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충주는 적이 오래 주둔하고 또 명나라 군사들이 오가면서 경유한 곳이어서 피해가 더욱 심했는데, 혈혈단신으로 남은 백성이 며칠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니 너무나도 애통합니다. 도내 여러 고을의 식량 창고가 이미 모두 비어 서로 옮겨 구제할 대책이 없는데, 다만 소금 굽는 일 하나는 조금 시행해 볼 만합니다. 신이 듣건대 황해도의 풍천?옹진?장연 세 고을의 반경 안에 서너 개의 섬이 있는데, 그 섬 안에 잡목이 빽빽하다고 합니다. 만약 염호(鹽戶)를 불러 모아 소금을 생산하게 한다면, 한 달 사이에 수만 석의 소금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배로 소금을 운반해 호남과 호서 해변의 농사가 조금 잘된 곳에 흩어놓고 곡식과 바꾸어 도성의 백성을 구제하고 또한 개성 같은 곳에 그 곡식을 나눠주어 봄과 가을에 종자로 쓰게 한다면 그 이로움이 매우 클 것입니다. _p.134~135

충주는 상류에 있어 나라의 문호가 되니, 충주를 지키지 않으면 강 연안의 수백 리가 모두 왜적의 공격을 받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 충주를 보전하려면 마땅히 조령을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수문장 신충원(辛忠元)이란 자가, “조령 정상에서 동쪽으로 10여 리를 내려가면 양쪽 언덕이 깎아지르고 가운데 시냇물이 감아 도는 곳이 있는데, ‘응암’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이곳에 성을 쌓아 막으면 불과 백여 명의 굳센 병졸만으로도 조령의 파수가 저절로 견고해집니다. 연풍 읍내와 서면(西面) 수회(水回) 마을은 땅이 아주 비옥해서 마땅히 파수하는 군사들로 둔전을 설치해 경작하면 군량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할 일은 마땅히 사람마다 군사가 되고 곳곳에서 농사를 지어야 만에 하나라도 효과를 바랄 수 있습니다. 신충원과 같은 자를 지금 내려보내 그의 말에 의거해 길목을 지키고 둔전을 설치할 계책을 세우게하십시오. _p.147~148

나라가 태평하다가 갑자기 왜적의 변란을 만나니, 사람들이 남에게 뒤질새라 흩어져 달아날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힘을 다해 고립된 성을 지키다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도 있었고, 전장에서 마구 죽어가면서도 용맹함을 굽히지 않아 빛나는 의열(義烈)이 다른 사람들의 귀와 눈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때에 너무 많이 죽고 포상도 미치지 못해 지하의 충혼을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 명성을 앞날에 드러낼 수도 없었습니다. 경상?전라?충청 감사에게 명해 널리 묻고 찾아서 공론에 따라 보고한 뒤 차례로 포상 명부에 기록하고 또 그 처자식을 구휼해 충의를 권장하십시오. _p.160

하나, 지금 사람을 등용할 때 반드시 문벌을 먼저 따지는데, 문벌이나 비천함을 따지지 말고 오직 재주에 따라 등용하십시오. 또한 우리나라는 남쪽 지역의 선비를 많이 쓰고 서북에서는 전혀 없었다가 이제 겨우 몇 명이 있습니다. 실제로 서북에 일찍이 재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변란이 일어난 이래 7도가 와해되고 어가가 서쪽으로 거둥했을 때에 관서(關西) 사람들은 그 마음과 힘을 다해 접대하느라 바빴고, 군사를 차출해 군량을 운반하고 명나라 군사들에게 길을 인도했습니다. 이렇게 해 국토를 수복했으니, 그들의 공로가 매우 크지만 지금 조정에 등용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와 같으니, 무엇으로 그 지역의 민심을 위로하며 장래를 위해 권고하겠습니까? 청컨대 해당 관청에 명하여 널리 더 찾도록 해 함경도 사람과 함께 간간이 발탁해 등용하고, 인재들을 다투어 권고하게 해 남과 북에 차이가 없게 하십시오. _p.176

이때 왜장들 가운데 도성에 있던 자는 평수가(平秀嘉)뿐이었는데, 관백(關白: 풍신수길을 말함)의 조카 또는 사위라고 했다. 나이가 어려 사무를 주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 업무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주관했고, 가등청정(加藤淸正)은 함경도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소서행장·평의지·현소 등을 사로잡았다면 도성에 있는 적군은 저절로 궤멸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적군이 궤멸되면 가등청정은 돌아갈 길이 끊어지고, 군사들의 마음은 어수선하고 두려워져서 반드시 바닷길을 따라 도주하려 했겠지만 도움은 안되었을 것이다. 한강 이남의 적진은 차례로 와해되어 명나라 군사는 북을 울리고 천천히 행진해도 곧바로 부산에 이르러 술이나 실컷 마시면 되었을 것이니, 잠깐 사이에 모든 강산이 조용하고 깨끗해졌을 것이다. 어찌 몇 년 동안 시끄러움이 있었겠는가? 한 사람의 잘못이지만 일은 천하에 관계되었으니 진실로 통분하고 애석할만하다. _p.194~195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運籌)’라는 이름의당을 짓고 밤낮으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여러 장수들과 군사에 관한 일을 함께 의논했다. 비록 하급 군졸일지라도 군사에 관한 일을 말하고 싶은 사람은 찾아와 말하도록 해서 군중의 사정에 통달했다. 이순신은 작전을 개시할 때마다 부하 장수들을 모두 불러 계책을 묻고 전략을 세운 후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 원균은 애첩을 데려와 운주당에서 함께 살았으며 무거운 울타리로 안팎을 막아 여러 장수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또 술을 즐겼는데 날마다 주정을 부렸으며 형벌을 쓰는 데 법도가 없으니 군중들이 수군거리기를, “만일 적병을 만나면 우리는 오직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여러 장수들도 서로 원균을 비난하고 비웃으면서 경외하지 않아서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_p.208

선학(禪學: 선불교)에 대한 경계는 매우 절실합니다. 그러나 강서(江西)의 이단의 학문(양명학)은 퇴계 선생께서 벌써 충분히 철저하게 물리치시고 유가에서 대대로 지켜 왔으니, 이제는 변별해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마음 측면에서의 장점은 본래 덮을 수 없고 선현들도 받아들였으니, 무엇이 나쁘겠습니까? 학문과 사변, 성찰과 극치(克治: 사욕을 이겨내고 다스리는 것)는 진실로 급한 일이지만, 만약 마음속에 길러서 쌓아놓은 힘이 없다면 또한 어디에 근거하겠습니까? 평소 벗들과 학문을 논할 때 이와 같이 말했는데, 벗들 사이에서도 저의 본의를 살피지 않고 매번 선학이라고 비난하기에 늘 웃음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보내주신 서신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이제부터라도 통렬히 반성해야겠습니다. _p.237

대개 군자는 착한 일을 하고 소인은 악한 일을 하는데, 반드시 그 부류들과 서로 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의사소통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인은 치우친 마음과 사적인 꾀로 오히려 남을 시기하고 누르려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간혹 그렇게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군자는 마음 씀씀이와 일 처리가 모두 공정해 처음부터 남을 시기하거나 이기려는 마음이 없고 동지들과 서로 의논하기를 즐거워해 오직 착한 일을 따릅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벗들과 강론한 다음에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착하게 여기는 일들을 모아서 착한 일을 하고, 충실하고 유익한 일을 더 확대해서 시행합니다. 그래서 행동에 과실이 없고, 사람들도 또한 그를 위해 충고해주기를 즐거워합니다. _p.252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청렴한 관리로서 부패한 조선을 바로잡기 위해 직언을 하던 임진왜란 전 류성룡의 모습을 담았다. 직위의 고하에 관계없이 나라의 폐단, 임금과 임금의 친인척에 대해 간언하는 것은 신하의 의무이자 임무라고 생각했던 원칙주의자 류성룡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2장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의 이순신 천거 장면으로 시작한다. 왜란에 대비해 권율과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전쟁이 터지자 도체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한 것부터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면직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3장에서는 풍전등화의 조선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한 류성룡의 노력들을 담았다. 도성 수복을 위해 전선의 최일선에서 온힘을 쏟았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4년에 걸친 조선분할 획책을 저지하는 등 자주외교를 추진하면서도 명나라와의 갈등을 피해나갔던 실리주의 외교가 빛나는 부분이다.
4장에서는 국난에 처한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류성룡의 개혁의지를 담았다. 신분이 아닌 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을 주장했으며, 각종 민생 개혁정책을 내놓는 등 오직 나라만을 생각하는 류성룡의 끊임없는 노력을 알 수 있다. 5장은 일본과의 화친을 주장해 나라를 그르쳤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북인의 공격으로 삭탈관직을 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칩거한 채,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던 류성룡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6장에는 류성룡의 학문관과 인생관을 담았다.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생애 대부분을 활약했지만,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자로서의 위치도 공고했던 류성룡의 군자다운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이 책을 통해 과연 진정한 리더십과 애민은 무엇인지 류성룡의 언행을 통해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반성과 성찰을 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류성룡이라는 역사 속 영웅의 진면목을 잘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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