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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임성용
걷는사람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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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7
두더지 39
쥐가 있다 71
안녕 미미시스터즈 103
외계인들 151
토종 씨 우보 씨 165
어느 물리학자의 죽음 211
아무도 아무도 없는 225

해설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폭력들 259
-고봉준(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290

저자 소개 1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기록자들』, 공저로 『도망가자 밤으로, 밤으로』등이 있다. 현진건문학상 추천작,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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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46g | 130*200*17mm
ISBN13
9791175010536

책 속으로

권 주사는 대충 장단을 맞추다가 이쯤 하고 주민 센터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발을 잡는다. 할아버지라면 권 주사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터라 살가운 추억 따위 있을 리 없다. 더구나 아버지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역정부터 냈다. ‘그 인간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지는 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어 뿌서 후회도 없겠지마는도, 어무이하고 내는 우째 산지 아나?’ 이 지경이니 아버지 앞에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제사도 할머니 제사만 지냈다. 권 주사는 새 담배를 두 개 꺼내 불을 붙여서 하나를 기석에게 건넨다. 진짜든 아니든 일단 좀 더 들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중에서

사내가 터뜨린 공포가 옮아와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선 사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입 닫아!

건조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울리자 신기하게 벙커 안의 모든 것이 멈췄다. 몸의 떨림도, 공포를 머금은 생각도, 시간조차도 멈춰 버린 것 같았다. 그 공간의 모든 것은 그 목소리에 눌려서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 「두더지」 중에서

97%가 바다에 잠겨 있어도 대륙이란 말이야. 물 밖에 나온 3% 따위는 전혀 중요한 기준이 아닌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 3%만 보고 살잖아. 솔미도 대륙이었을 거야. 근데 우리가 다 무시했잖아. 특히 내가 그랬고.
야,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돼. 네가 뭘 어쨌다고.
아냐, 적어도 나는 그러면 안 됐어. 초등학교 때 미미시스터즈가 된 뒤부터 난 솔미로부터 점진적으로 멀어지려고만 했거든. 남극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같이.
--- 「안녕 미미시스터즈」 중에서

난 사실, 네 상상 너머에서 왔어. 꽤 멀었어. 너는 그 작은 머릿속에 좁은 골목길만 수없이 만들어 놨더군. 그래서 너에게 오는 게 꽤 늦어졌어. 길을 자주 잃었거든. 어쨌든 결국 내가 여기까지 왔어. 이제 너는 이 미로 같은 너의 골목을 빠져나가면 돼. 거기에 내가 온 세상이 있어. 그다음 세계도 있지. 아마 너에게는 구원이 될 거야. 아니면 일찍이 맛본 적 없는 절망이거나.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구원이든 절망이든 거기에서는 별 의미가 없거든. 금방 익숙해질 거야. 그저 너는 계속해서 떠날 준비만 하면 돼.
--- 「외계인들」 중에서

내 씨면 어떻고 남의 씨면 어떤가. 나락도 통일 벼다 화성 벼다 섬진 벼다 여러 종자를 심어 봤지만, 결국 종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키우는 사람이 잘 들여다보고 정성을 들이면, 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
--- 「토종 씨 우보 씨」 중에서

시간은 때로 가혹하고 또 평화롭기도 하잖아? 그리고 관념이든 물질이든, 그게 무엇이든 끝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잖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종국에는 의미 없음에 대한 의미도 없어진다고.
근데 꽃잎은 말이야, 시간의 마디에서 불쑥 튀어나온 관절염 같거든. 피어나는 물리적 시간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서 다 깨뜨려 버려. 시간을 깨뜨려 버리는 아름다움이야.
--- 「어느 물리학자의 죽음」 중에서

강호는

인생의 행이 바뀌거나 문단이 바뀔 때마다 아파트를 생각했다. 열아홉이 되어 보육원을 나왔을 때와, 미영과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그랬고, 솔미가 태어나자 그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택배를 받아주는 경비가 있고 미영과 솔미와 함께 있을 때 안전할 것 같은, 흔해 빠졌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 「아무도 아무도 없는」 중에서

출판사 리뷰

표제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과 연작 「두더지」는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자행된 고문과 폭력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고 있는지 추적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 유공자임에도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살아가는 기석은 동네 담벼락의 모든 ‘틈’을 시멘트로 메우는 기행을 일삼는다. 그 틈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영혼을 갉아먹는 ‘거미(특무대)’가 기어 나올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한편 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아들인 권 주사는 아버지의 과거와 기석의 현재를 교차시키며 ‘유공자’와 ‘빨갱이’라는 기호 뒤에 숨겨진 가해와 피해의 역설적 고리를 마주한다. 작가는 과거의 망령이 현재의 일상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그리고 ‘다정한 이웃’이라 믿었던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타인을 배제해 왔는지 서늘하게 그려낸다.

임성용의 시선은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한 미세한 폭력과 차별의 문제 또한 놓치지 않는다. 「쥐가 있다」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이주민과 약자를 향해 보내는 혐오의 시선을 ‘쥐’라는 재난적 존재로 형상화한다. 「안녕 미미시스터즈」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남겨진 이들이 겪는 부채감과 기이한 애도의 방식을 다룬다. 「아무도 아무도 없는」에서는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이성을 내려놓고 ‘가마귀신’이라는 무속적 믿음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부모의 처절한 심정을 그리며, 재난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비극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임성용의 소설은 개인의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세상의 질서(권력)”와 “불투명한 미래를 끌어안고 주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일상”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 작품들이 “폭력에 노출된 개인의 초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 즉 폭력성의 지배를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성용이 그려 낸 인물들은 절망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토종 씨 우보 씨」의 주인공 우보는 ‘토종’ 종자를 고집하는 세태 속에서 “내 씨면 어떻고 남의 씨면 어떤가. 키우는 사람이 잘 들여다보고 정성을 들이면, 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혈통과 출신을 따지는 세상에서 생명을 기르는 ‘정성’과 ‘돌봄’의 가치를 역설하는 우보의 투박한 진심은 우리에게 ‘진짜 이웃’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 책을 펼친다면, 무너진 삶의 틈새를 메우며 기어이 살아 내는 사람들의 단단한 마음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은 그렇게 우리 곁의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진정한 ‘다정함’의 의미를 묻는다.


첫 소설집을 내고 4년이 지났다. 아름답고 괴팍한 계절들을 지나는 동안, 나에게도 이웃들에게도 많은 일이 오고 갔다.
나에게는, 열여덟 순대와 열아홉 고래(기르던 고양이들)가 가고, 고혈압과 노안이 왔다. 인류에게는 코로나가 패치되었고, 대한민국에는 새 대통령이 왔다. 뒤이어 계엄과 탄핵이, 다시 새 대통령이 왔다.
저 멀리에서는, 지구에서 제일 큰 나라가 땅을 더 가지고 싶어 전쟁을 벌이고, 사막을 떠돌던 유목민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신에게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오래전부터 약속받았다며, 남의 땅에 대포와 총을 쏘아 댔다. 아직도 쏘아 댄다.
TV를 틀면, “목소리 크면 장땡”이나 “아 몰라, 배 째.”가 유행했다. 일은 벌어졌는데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하시죠.”, “다 그렇게 해 ㅂㅅ!”이 오래된 신앙처럼 단단했다.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많이 상했다. 백신이 없는 병원에서, 축제의 거리에서, 떨어진 비행기에서, 사기당한 아파트 옥상에서, 안전장치 없는 공장에서, 다리 위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축축하고 조각난 참호 속에서 맥없이 죽어 갔다.

(……)

그렇게 열기와 허무를 오가는 동안 소설이 몇 편 써졌다. 소설가라는 족속의 슬픈 구도인지, 알량한 자기 과시적 성토인지,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또 썼다. 썼으니 또 내보인다. 부끄럽지만 그게 이 족속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부족한 글을 살펴 주신 고봉준 평론가님과 추천사를 얹어 주신 김형수 선생님께 감사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출판을 위해 애써 주신 출판사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나를 돌아보게 해 주시는 모든 다정한 이웃들에게도 감사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 「작가의 말」

추천평

임성용의 소설에는 자의식의 비대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직 서사의 힘만을 중시하는 작가를 만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현실의 무게를 구어체로 담보하는 대화체 서사, 독백체 서사는 그의 주무기라 할 실감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대화는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른 자리에 놓이는 까닭에 출현하고, 독백은 만인의 감정이 서로 같은 까닭에 성립한다. 근대 문학이 의존했던 시각 중심주의와 묘사주의를 시원하게 벗어나면서도 그는 존재와 존재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무지’와 ‘미지’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화자의 끊임없는 이동, 탈(脫)구성주의, 빠른 속도는 현란한 수사에 매달리지 않고도 독자를 꿈틀대는 세계의 한복판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당대의 삶이 빚어내는 현실 세계의 곤혹과 딜레마를 그려 내는 ‘작가 정신의 치열성’에 있다. 국가 폭력으로 심연까지 상처 입은 인간 군상, 가장 소외된 자리에서 가장 첨예하게 디아스포라와 토종의 문제를 앓는 농촌,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다준 소외 양상과 실존의 문제, 학원 문제와 사회 교육 구조의 난맥상에 이르기까지, 임성용은 복잡한 세상의 미로를 헤치고 장쾌하게 질주한다. 애초에 소설이 탄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잉 생산되는 정보 속에서 ‘실감이 사라진 세계’를 보라. 현대적 모럴을 구할 자리는 어디인가? 어떤 철학적 분석과 규정도 죽음을 향해 작렬하는 일상화된 실체에 답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 물질화된 형상과 파생되는 이미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삶의 근거마저 찰나에 그 실체감을 증발시켜 버린다. 매일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날마다 온몸에 폭탄을 감은 육체가 폭발하는 세계, 누가 이렇게 무거운 긴장을 자신의 내면에 실감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임성용의 소설이 평가받아야 할 자리는 바로 이곳이다. - 김형수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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