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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Kim Hyeong-soo 金炯洙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59년 출생
출생지
전라남도 함평
직업
작가
작가이미지
김형수
국내작가 문학가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 에 소설로 등단했다.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 지금은 신동엽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시인이며 소설가, 평론가이다. 2023년 5.18문학상(본상)을 수상했다.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관한 추억』,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1,2)』,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외에 『문익환 평전』, 『소태산 평전』 『흩어진 중심-한국문학에서 주목할 장면들』 등이 있다. 작가 수업 시리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그리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임성용의 소설에는 자의식의 비대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직 서사의 힘만을 중시하는 작가를 만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현실의 무게를 구어체로 담보하는 대화체 서사, 독백체 서사는 그의 주무기라 할 실감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대화는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른 자리에 놓이는 까닭에 출현하고, 독백은 만인의 감정이 서로 같은 까닭에 성립한다. 근대 문학이 의존했던 시각 중심주의와 묘사주의를 시원하게 벗어나면서도 그는 존재와 존재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무지’와 ‘미지’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화자의 끊임없는 이동, 탈(脫)구성주의, 빠른 속도는 현란한 수사에 매달리지 않고도 독자를 꿈틀대는 세계의 한복판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당대의 삶이 빚어내는 현실 세계의 곤혹과 딜레마를 그려 내는 ‘작가 정신의 치열성’에 있다. 국가 폭력으로 심연까지 상처 입은 인간 군상, 가장 소외된 자리에서 가장 첨예하게 디아스포라와 토종의 문제를 앓는 농촌,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다준 소외 양상과 실존의 문제, 학원 문제와 사회 교육 구조의 난맥상에 이르기까지, 임성용은 복잡한 세상의 미로를 헤치고 장쾌하게 질주한다. 애초에 소설이 탄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잉 생산되는 정보 속에서 ‘실감이 사라진 세계’를 보라. 현대적 모럴을 구할 자리는 어디인가? 어떤 철학적 분석과 규정도 죽음을 향해 작렬하는 일상화된 실체에 답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 물질화된 형상과 파생되는 이미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삶의 근거마저 찰나에 그 실체감을 증발시켜 버린다. 매일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날마다 온몸에 폭탄을 감은 육체가 폭발하는 세계, 누가 이렇게 무거운 긴장을 자신의 내면에 실감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임성용의 소설이 평가받아야 할 자리는 바로 이곳이다.
  • 시라는 구축물은 세월이 아무리 난폭해도 변화시키지 못한 순정의 흔적들 위에 세워진다. 청년 시절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던 순간, 교도소 작은 쪽창에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 때, 그는 노동하며 실천하는 매 순간 시의 싹을 틔울 맹아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견 평이해 보이는 양기창의 언어들은 근대적 사유의 산물인 ‘데생’이 아니라 ‘마음’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다. 주목할 것은 이 ‘마음의 움집’이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창을 열어 보인다는 점인데, 여기서 발견되는 사유의 알곡들이 양기창 개인의 위상을 넘어서 장차 민중의 영혼을 감당할 새로운 노래들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작가 인터뷰

  • 한국인이 쓴 칭기즈칸 소설, 몽골에서 더 호평 - 김형수 『조드 - 가난한 성자들』
    2012.03.19.

작품 밑줄긋기

p.29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온몸이 온몸을 밀고 가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가슴만 달구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은 미쳐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문학은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요, 삶에 대한 그 어떤 표현도 삶을 망가뜨릴 만큼의 가치를 갖지는 못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사람이 불렀던 노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이지, 삶보다 노래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 시샘들을 하니까 공개 석상에 나와서 답하기를, 나는 내 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을 함부로 살지 않고 참아왔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문학에 미치라는 말의 참뜻은 어쩌면 상식을 깨뜨릴 만큼 방탕한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 아니라 입에서 쏟아내는 모든 언어가 숭고해 보일 만큼 설득력있는 삶을 살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옳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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