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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시간
개인적 사정이지만
그간 이곳과 교보 중고장터를 운영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보중고장터의 갑작스런 폐쇄로 인하여
당분간
알라딘으로 데이터 이동 작업을 해야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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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매일 하던 업로드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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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사항은
010 2373 7750
상현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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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앉은황소의 어린 시절
2. 뛰어난 전사로 성장하다 3. 신성한 인간 '위차샤 와칸' 4. 위험한 세력 '와시추' 5. '긴칼들'과의 전투 6. 창, 백인에 대항하다 7. 대추장으로 추대되다 8. 방패, 인디언의 수호자 9. 엘크 강으로 몰려드는 백인들 10. 전면전이 시작되다 11. 거꾸로 떨어지는 군대 12. 커스터 부대를 전멸시키다 13. '곰외투' 마일즈와의 만남 14. 좌절과 시련의 계절 15. 백인 친구 '긴창' 월쉬 16. 수우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버펄로 17. 원한 맺힌 부포드 요새 18. 항복의 매개자 장 루이스 19. 전쟁 포로가 되다 20. '선바위' 보호구역에서의 생활 21. 또 다른 세상에 서다 22. 남은 땅마저 빼앗기다 23. 인디언의 구세주와 유령춤 24. 위대한 추장의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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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황소는 40대로 접어들면서 가정 내부를 대대적으로 변화시켰다. 1860년대 후반에는 부인 두 명 몸에눈이내리다와 빨간여자가 끊임없이 다투어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는 몸에눈이내리다가 주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티피에서 내쫓았다. 1871년 빨간여자는 자신이 낳은 아들 한 명과 몸에눈이내리다가 낳은 두 딸을 남긴 채 병으로 죽었다. 앉은황소가 1857년 한마리황소를 양자로 입양할 때 함께 온 좋은깃털은 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앉은황소의 티피로 옮겨 왔다. 그리고 어머니 신성한문 역시 여전히 강력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앉은황소의 추장 지위는 부인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그래서 1872년 봄에 부인을 얻으려고 돌아다녔는데, 옷네벌(Four Robes)이란 여인이 마음에 들었다. 회색독수리(Gray Eagle)의 누이였다. 앉은황소는 회색독수리와 협의해서 제일 좋은 말 여러 마리를 주기로 하고 혼인을 성사시켰다. 옷네벌에게는 언니 부족이보다(Seen-by-the-Nation)가 있었다. 두 아들 꼬마군인(Little Soldier)과 푸른산(Blue Mountain)을 기르는 과부였다. 푸른산은 벙어리였다. 부족이보다는 옷네벌에게 자신도 동생과 똑같은 티피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으며, 옷네벌은 앉은황소에게 티피로 언니도 데려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앉은황소는 1872년 늦여름에 다시 회색독수리를 찾아갔다. 그 당시 전투 부대가 조직되고 있었기 때문에 앉은 황소는 회색독수리가 좋은 말을 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제일 아끼는 말 살찐턱을 주고 부족이보다를 데려왔다. 앉은황소는 이렇게 해서 두 부인과 두 양자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두 자매는 명랑하고 친절했으며 서로 질투하지 않았다. 새로운 변화는 관련자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으며, 이 관계는 앉은황소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 pp.134-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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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팅불은 1831년경 라코타족의 한 부족인 훙크파파족으로 태어났다. 수우족에게 '앉은황소'의 의미는 인내심이 많으며 체구가 웅장하고 궁지에 몰려 움직일 수 없으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전사였으며, 시팅불 역시 그 이름처럼 살아갔다. 그는 자라면서 전투와 사냥에서 뛰어난 용맹을 떨쳤으며, 정치적 자질과 영성 지도자로서의 탁월함을 드러냈다. 백인과의 전투에 관한 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는 전투 공적을 인정받아 제일 강한 전사 집단인 '강한심장'과 규율을 집행하는 '아키시타'의 일원이 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중년으로 접어든 다음에는 '말없이 먹는 자'라는 모임에서 활동했다. 이 모임은 백인이 인디언 땅을 뺏기 위한 래러미 조약서가 맺어진 1869년경에 만들어져, 회원의 이익보다는 부족 전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 조직이다.
용기와 지혜를 가진 인물로 존경받언 시팅불은 1869년 마침내 수우족 전체의 최고 전투 대추장으로 추대된 후 라코타족 전체를 하나로 끌어모아 백인 군인들과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18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은 자신들의 문서에서조차 인정한 인디언 영토인 '대 수우족 보호구역'을 점령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곳의 중심부인 '검은언덕'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인디언들은 검은 언덕을 사냥감이 풍부하고 땔감이 많기 때문에 '식량 창고'로 여겼으며, 이런 실용적인 측면 외에 신비로운 곳으로서 매우 신성시했다. 미 정부는 1874년 남북전쟁의 영웅인 커스터 장군을 대장으로 하는 제7기병대를 이곳에 급파하여 금광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탐욕스런 백인 탐광자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성소이자 '예비 저장소'가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시팅불은 자신의 살을 떼어 내는 고통이 따른 의식을 통해 위대한 영, '와칸탕카'에게 부족민 전체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와칸탕카를 위한 태양춤을 추었으며, 황홀경 상태에서 메뚜기처럼 수없이 많은 군인과 말이 인디언 마을을 향해 거꾸로 떨어지는 놀라운 환영을 보게 된다. 결국 수우족과 샤이엔족은 리틀빅혼에서 미국 제7기병대의 커스터 부대를 전멸시키는 전설적인 전투를 벌임으로써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리틀빅혼의 참패에 자극을 받은 백인들은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인디언들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했다. 수우족은 미국 군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했으나 결국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다. 그들의 주요 식량이었던 버펄로는 계속되는 백인들의 침입과 철도 건설로 급속히 사라져 갔다. 굶주림 때문에 시팅불과 함께 하던 부족민들이 하나 둘 항복하고 보호구역으로 들어가자, 1877년 5월 그를 지지하던 추종자들을 이끌고 국경을 건너 캐나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서로 신뢰하고 의지했던 백인 친구, 월쉬 소령을 만나기도 했으나, 결국 캐나다 정부는 시팅불과 그 무리들의 문제가 미합중국과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자 이들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4년 뒤 시팅불을 따르는 무리들이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그는 굶주림과 헐벗음 때문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복 후 그는 얼마동안 전쟁 포로 취급을 받으면서 지내다가 '선바위'로 옮겨져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1883년 이후 선바위 관리소에 살면서도 부족의 땅을 교묘하게 빼앗으려는 백인의 시도에 대해 반대했으나 이를 막아내지는 못헀다. 결국, 백인들과 많은 협상을 맺은 오글라라족의 추장 '빨간구름'이 내린 다음의 결론처럼 그들은 남은 땅마저 빼앗기게 된다. "미국인들은 우리에게 많은 내용을, 내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내용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킨 약속은 단 하나였다. 우리 영토를 빼앗겠다는 약속......" 관리소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흥행업자 윌리엄 코디는 '와일드 서부' 공연에 시팅불의 참여를 제안했고, 그리하여 그는 쇼단의 일원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게 되었다. 그는 보호구역 생활의 무료함도 달래고 돈도 벌기 위해 바깥 세상에 나가길 원했으며, 이를 통해 백인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1890년경 많은 토지를 빼앗기게 된 라코타족은 깊은 좌절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 워보카가 창시한 '유령춤'이라는 종교운동이 일어나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인디언들을 사로잡았다. 이 종교는 인디언의 전통종교와 기독교의 혼합된 종교 형태였는데, 인디언 전통과 문화를 회복할 인디언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예언을 담고 있었다. 유령춤교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동요하고 있던 인디언들 사이에 널리 퍼지자 미 당국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선바위 관리인 맥로프린은 이 기회를 이용해 '골치 아픈 반항아' 시팅불을 제거하려고 했다. 1890년 12월 15일, 그를 체포하기 위해 인디언 경찰과 군인이 파견되었고, 시팅불은 자신의 통나무집에서 인디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인디언 전사들이 그의 체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결국 그는 인디언 경찰의 총에 의해 살해당했다.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수우족은 소나무 능선 보호구역 내의 운디드니에서 약 200여 명이 학살당함으로써 인디언들의 투쟁은 막을 내리고 만다. 그곳에 파견된 제7기병대는 '점박이엘크'라는 이름으로 시팅불과 함께 백인 군인들과 맞서 싸우던 '큰발'을 제거 대상으로 삼았으며, 12월 29일 그 무리에게서 무기를 압류하려다 총격전이 벌어져 그곳에서 잔혹한 학살극이 발생하게 되었다. 비록 시팅불과 인디언의 싸움은 백인의 속임수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그는 자기 부족의 땅과 전통과 문화를 가장 치열하게 마지막까지 고수하려고 한 위대한 추장이었다. 또한 그는 수우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4가지 덕목인 용기, 인내심, 관대함, 그리고 지혜를 가장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현한 인디언이었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능력과 용맹성을 발휘한 위대한 전사였으며, 부족을 이끈 영적인 지도자 위차샤 와칸이었고, 끊임없이 침입하는 백인에게 저항해 전통적인 삶을 훌륭하게 지켜 낸 고집 센 수호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