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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준우 형 2부 미아리 3부 71년생, 73년생 4부 똥 5부 미아리의 왕 6부 아버지 에필로그 |
Park M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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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승부욕으로 내 똥을 힘껏 밀어내는 어느 날이었다. 그 절정의 사투, 긴장되는 순간 갑자기 똥간의 문이 열리고, 형이 등장했다. 잠시 우리의 사이는 진공 상태가 되었다. 똥냄새만 멈추지 않고 피어올랐다. 형이 내 손을 잡았다.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엉덩이를 깐 채 나는 오리처럼 바깥으로 딸려 나왔다. 형은 나를 내팽개치고는 내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했다. --- p.182
나는 누군가가 뭔가를 먹고 있으면, 한입만 했다. 핫도그 한 입만, 하드 한 입만, 엿 한 입만, 솜사탕 한 입만. 그렇게 한 입만을 조르면 다섯 번에 한 번은 내 입에 그것들이 들어왔다. 나는 늘 굶주려 있었다. 내게 한 입만 주던 아이들도, 점점 나를 피했다.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한 입만으로 다 떨어져 나갔다. --- p.196 어머니는 새벽 일찍 김밥을 마셨다. 부엌이 좁아서 도마와 프라이팬을 방에 놓고, 달그락 달그락 김밥을 마셨다. 좁은 방이 해표 식용유와 참기름이 반반씩 섞인 냄새로 일순간에 환해졌다. 온몸이 기쁨의 온기에 졸여지고, 그 따뜻함이 일정 비등점에 도달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김밥의 양 끝 부분만 따로 한 접시에 쌓여 있었다. 모자이크처럼 예쁜 김밥이 검정색 찬합에, 정색을 하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먹기 싫은 당근도, 시금치도 그 속에서 그림이 되어 있었다. 고요함과 따뜻함과 김밥이 있었다. 형 역시 그 따뜻함을 못 견디고 눈을 떴고, 우린 터진 김밥을 하나씩 입에 물고, 어머니가 김밥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p.199 내가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큼 못난 애들이 학교에 바글바글했다. 유치원을 안 다니고, 한글을 모르고 들어온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절반 이상은 한글을 몰랐다. 깜짝 놀랄 만큼 멍청한 아이도 많았다. 똥간에 신발을 빠뜨리고 선생님께 꺼내달라고 우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명씩은 꼭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긴 막대기를 어딘가에서 구해와 똥으로 범벅이 된 신발을 꺼내, 수돗가에 내려놓으셨다. 멍청하고, 한심한 아이들은 울면서 신발을 닦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똥간에 신발을 빠뜨리는 천하의 바보들보다는 확실하게 내가 위였다. --- p.243 1월 1일은 MBC 10대 가요제를 본 다음 날 정도였다. 조용필이 가수왕이 되었다. ‘창밖의 여자’가 조용필을 가수왕으로 만들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 이쯤이면 끝내겠지란 기대를 번번이 무너뜨리면서 ‘누가 사랑이 아름답다 했냐’며 따졌다. 미아리에선 아무도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다. 혐의 없는 미아리 사람들이 왜 저런 추궁을 들어 줘야 하는가 말이다. 예의가 없는 노래였다. 그렇게 느리고, 축 처지는 노래로 어떻게 혜은이를 누를 수 있었을까? ‘쨍하고 해 뜰 날’의 송대관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한국 가요계는 춤도 흥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 p.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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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도 지질함도 유쾌하게 그려내는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여행 작가 박민우의 자전적 소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행복한 멈춤, STAY] 등 기존의 여행서와 달리 적나라한 솔직함과 배꼽을 잡는 유쾌함으로 흡인력을 자랑하는 박민우가 첫 소설을 냈다. 이전 여행서에서도 언급했던, 박민우의 첫 소설은 유년 시절의 경험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샘터에 발간한 [노란 손수건]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나도 전하고 싶었다. 그런 느낌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소재가 미아리였고, 나였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서울의 수많은 동네 중 가난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미아리에서 펼쳐지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박민우 특유의 입담으로 걸출하게 풀어나간다. [마흔 살의, 여덟 살]이라는 책 제목에서 보이듯 마흔 살의 나이에 여덟 살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돌아보며 가족과 화해하고,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묵은 상처를 따라가다 보면 곪아 있던 우리의 상처도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짙은 향수, 애잔한 그리움 유년의 기억을 통한 1980년 미아리의 기록 7080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사랑도, 라면도 부족하기만 했던 1980년의 미아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마흔 살의,여덟 살]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기억이기도 하다. 똥 속에서 꼬물대던 구더기가 비치고 그 위를 쥐들이 뛰어다니던 화장실의 조악함, 꼬질꼬질한 소매의 옷을 입고 콧물을 흘렸던 꼬마들, 계란프라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 동생이 싸워야 했던 가난, 척박한 삶 속에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부모님. 그 시절은 아련한 그리움인 동시에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자칭 꼬마 천재인 여덟 살 주인공의 독백은 그래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통해 가난 속에서도 끈끈했던 가족의 사랑과 30년 전에도 여전한 왕따의 아픔 등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가난했기에 피할 수 없었던 삶의 처절함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써 내려간다. 단순한 향수를 넘어 어린 자아의 성장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까지 이끌어내는 박민우 작가의 첫 소설은, 그래서 결국 아름답고 따뜻하다. 열 번을 읽으면 열 번 모두 다르게 다가오는, 박민우 식의 이상하고 괴상한 소설 박민우 작품의 특징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흔 살의, 여덟 살]은 화자가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듯 편하게 이끌어간다. 회상도, 그 회상을 고백하기도 힘든 장면에서는 가끔 이야기를 뚝 끊고 현재로 돌아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마흔 살의, 여덟 살]은 실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단한 생동감을 전해준다 . “내 글을 읽는다는 건, 나를 만나는 것과 같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반가움과 연대감을 느끼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독자들은 마흔이 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동참해 진한 공감과 애잔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만 시간 동안의]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 소설을 통해 박민우 작가와 더욱 깊고 친밀한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마흔 살의, 여덟 살] 박민우 작가 인터뷰 이전 여행기에서도 계속 소설을 쓸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박민우라는 작가의 입담이 가득 담긴 픽션을 기대했는데, 자전적 소설이다. 첫 소설을 자전적 소설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쓸 것.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어릴 적 문고판 책들이 그리웠다. 텁텁한 표지에 묵은 종이 냄새가 고소하게 돋는 책들을, 여름 볕 나뭇잎 살랑거릴 때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갓 펴 바른 시멘트 냄새와 장아찌 짠 내음 풍겨 나오는 마당 한켠에서 목이 마르면 수돗물 한 바가지 꿀꺽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글자가 주는 힘에 녹고, 잦아들었던 순간이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샘터에 발간한 [노란 손수건]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나도 전하고 싶었다. 그런 느낌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소재는 미아리였고, 나였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풍족하게 사는 20~30대에게는 어떻게 어필될 지 모르겠다. 자칫 우리 이렇게 어렵게 살았어요 라는 정도의 넋두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8월의 크리스마스’다. 불치병 걸린 남자의 사랑 이야기. 핵심 줄거리는 ‘시한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한부의 ‘식상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재보다는 그 소재를 버무리는 솜씨, 아니 솜씨보다 더 중요한 ‘진정성’. 그것이 영화에 있었다. 내 이야기가 넋두리로 느껴졌다면, 내 필력의 문제일 것이다. 소설 도입부가 남미의 과테말라라는 여행지에서 시작된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연상시킨다. 박민우 작가의 독자이고, 박민우 작가의 전혀 새로운 소설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라면 좀 뜨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도입부를 그렇게 잡은 이유가 있는가? 내 글을 읽는다는 건, 나를 만나는 것과 같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반가움과 연대감을 느끼길 바란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지질했던 그 남자임을, 궁상과 얍삽함, 여린 감수성과 피해 의식에 똘똘 뭉친 그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었다. 내 소설은 재밌었으면 한다. 재미를 위해선 등장인물에 몰입해야 한다. 몰입을 위해 나는 소설 속 인물을 ‘아는 사람’으로 배치했다. 별 다른 노력 없이 소설 속 주인공은 독자의 친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갑자기 소설의 흐름이 끊기며, 소설 중간 중간 작가가 육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소설의 한 장면으로 봐야 하는가, 박민우 작가의 설명으로 보아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답하지 않겠다. 앞으로 나는 소설 속 진위 여부는 일절 함구할 것이다. 독자에겐 무한한 상상을 위한 배려고, 나와 내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백 프로 사실이라면 소설이 아닐 것이고, 함부로 된 허구라면 공갈빵처럼 공허할 것이다. 진실과 허구의 비율은 3대 1 정도이다.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다. 앞선 여행기에서 박민우 작가가 보여준 입담은 그대로이긴 하지만, 어렵고 가난한 시대를 살아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분위기는 어둡다. 이 소설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어둡게 느껴졌다면 어두운 것이다. 각각의 독자가 느끼는 그 느낌이 정답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필터라고 생각한다. 나를 통해 글이 써진 것이고, 그 글은 독자의 것이다. 필터는 글이 잘 걸러지도록 늘 깨끗하고 예민해야겠지. 독자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다. 내가 5번 정도 퇴고를 하면서 한두 번 독자가 된 적 있는데, 나는 웃으면서 읽었다. 다섯 번에 한 번 정도는 코끝이 찡했고….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에서도 그렇고,?[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에서도 박민우 작가의 글에는 유독 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일부 독자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소재다. 똥 이야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터키에서 소를 잡는 걸 본 적 있다. 배가 갈라지고, 안에서 김이 펄펄 나더라. 아, 우리의 내장도 저렇게 뜨겁겠구나. 몸 안은 늘 우리와 함께이면서도 왜 낯설고 거부감이 들까? 그때 생각했다. 우리는 숙변이 가득하고, 가스가 괄약근 주위를 움찔거리는 사람을 사랑하고, 키스한다. 피부로 살짝 덮혔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분명한 진실을 외면한다. 모른 척 한다. 똥이건, 내장이건, 피건 모두 우리 몸을 이루는 것들이다. 어둠이나 죽음, 똥.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것들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쪽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거동이 불편할 때 똥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소설에서도 이야기하듯 현재 방콕에서 지내고 있다. 왜 방콕에서 지내고 있는가?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을 생각인가? 방콕은 물가가 싸다. 한 달에 40만 원 내외로 살 수 있다(숙소 해결이 안 되면 60만 원쯤 든다). 한국에선 어렵다. 덜 벌고 덜 쓰기가 쉽지 않다. 화폐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 내 노후 대비는 화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무모해 보이는 꿈이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다. 책을 많이 내지 않는 편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가? 인도 여행기를 곧 출간할 것이다. 그런데 1만 시간이 아니다. 삼천 시간의 인도, 혹은 1/3만 시간 동안의 인도. 후자가 더 지질해서 맘에 들지만, 뭐 제목은 편집장과 독자들에게 물어보면 결국 또 엉뚱한 게 채택되더라. 그리고 내가 읽고 싶은 소설책을 쓸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연애 소설인데, 그러니까, 매번 차이는 남자가 알고 보니, 전생에 연애의 신이었다. 웃기지 않나? 이런 식의 소설은 매일 준비 중이고, 매일 엎어지고 있다. 쓰는데 재미를 붙이면 아주 재밌게 써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