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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9
제2부 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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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문에 붙은 쪽지를 슬그머니 지나 식탁을 기웃거렸습니다. 이미 지나간 달력의 뒷면을 잘라 테이프로 붙여 놓은 그 쪽지입니다."
---「제1장」중에서 "내 일상은 그들의 예문이 되었습니다. 내 실패는 그들의 문장 한 줄을 더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쓰였습니다. (...) 타자, 구조, 세계, 주체. 그 단어들 아래에, 사실은 똑같은 밥과 이불이 깔려 있는데, 그 위에 한 겹을 더 얹어서 말하는 것." ---「제14장」중에서 "당신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물려준 것은, 이 제사뿐입니까. 당신 부모가 남긴 것은, 이 빚뿐입니까. 제가 이어받아야 할 것은, 이 절뿐입니까." ---「제16장」중에서 "어디서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떤 마음은 그런 식으로밖에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입에 붙지 않는 남사스러움 대신, '밥'이라는 단어만 붙는다. 밥을 안 먹는다, 밥은 먹었냐, 밥을 해놨다. 그 말들은 결국 다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제29장」중에서 "어떤 말들은, 말이라기보다 비명에 가깝다. 네가 못돼서가 아니라, 네 안에 남은 길이 그쪽뿐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든 내지르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날에는, 가장 안전한 사람을 고른다. 안전하다는 건, 다치게 해도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뜻일테니까." ---「제36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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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세계를 논할 때,
낮은 곳에 엎드려 밥을 짓는 편지 우리가 평생 가장 많이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그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본 적 없는 질문이 있다. 이 소설은 그 흔한 안부 인사가 사실은 인간이 신에게,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숭고한 질문임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화자가 드나든 그 공간에서는 ‘구조’니 ‘타자’니 하는 세련된 말들이 먼저 오간다. 문제를 풀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풀지 못한 채 버티기 위한 말들이다. 위를 향한 분노는 끝내 닿지 못하고, 가장 안전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날이 선다. 그러나 그 분석은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찌르는 말들을 뒤로하고, 화자는 냉장고 속 얼린 밥을 데워 먹으며 혼자 묻는다. 밥은 먹었는가, 식사는 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담론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자식의 날 선 질문에 대해, 부모는 반박하지 않는다. 성경의 욥기처럼, 신은 인간의 “왜?”라는 질문에 논리로 답하지도 않는다. 대신 펭귄이 눈폭풍 속에서 알을 품듯, 부모는 자신의 살을 깎아 밥을 지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쌀을 씻고, 불을 켜고, 자식이 돌아와 앉을 의자를 닦아놓을 뿐이다. 『반성문』에는 섣부른 사과도, 눈물 젖은 화해도, 명쾌한 대책도 없다. 대신 서로를 향해 보내지만 만나지 못하는 편지만 있다.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다른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평행선을 긋는다. 성경의 욥이 신의 섭리를 인정하며 끝났다면, 이 소설은 신과 인간이 모두 무너진 폐허 위에 밥상 하나만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