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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9제2부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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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세계를 논할 때,낮은 곳에 엎드려 밥을 짓는 편지우리가 평생 가장 많이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그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본 적 없는 질문이 있다. 이 소설은 그 흔한 안부 인사가 사실은 인간이 신에게,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숭고한 질문임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화자가 드나든 그 공간에서는 ‘구조’니 ‘타자’니 하는 세련된 말들이 먼저 오간다. 문제를 풀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풀지 못한 채 버티기 위한 말들이다. 위를 향한 분노는 끝내 닿지 못하고, 가장 안전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날이 선다. 그러나 그 분석은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찌르는 말들을 뒤로하고, 화자는 냉장고 속 얼린 밥을 데워 먹으며 혼자 묻는다. 밥은 먹었는가, 식사는 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담론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자식의 날 선 질문에 대해, 부모는 반박하지 않는다. 성경의 욥기처럼, 신은 인간의 “왜?”라는 질문에 논리로 답하지도 않는다. 대신 펭귄이 눈폭풍 속에서 알을 품듯, 부모는 자신의 살을 깎아 밥을 지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쌀을 씻고, 불을 켜고, 자식이 돌아와 앉을 의자를 닦아놓을 뿐이다.『반성문』에는 섣부른 사과도, 눈물 젖은 화해도, 명쾌한 대책도 없다. 대신 서로를 향해 보내지만 만나지 못하는 편지만 있다.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다른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평행선을 긋는다. 성경의 욥이 신의 섭리를 인정하며 끝났다면, 이 소설은 신과 인간이 모두 무너진 폐허 위에 밥상 하나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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