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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자학의 천재 - 왜 안 그려질까 - 어떻게 살 것인가, 만화가여 - 인공지능과 친해지기 - 자학이 풍년이네 - 강연을 걷어차다 - 질투는 나의 힘 - 나는 웹툰이 싫다 관계 속에서 - 악플을 연구하는 무리들 - 어둠의 관종 - 만화카페 방문기 - 관계의 한계 - 들깨이빨 늑대치아 - 아름다워서 슬픈 아이돌 덕질 - 사인의 쓸모에 대하여 살아남기 - 만화가의 작업 일기 - 만화가의 건강관리 - 만화가의 제목 짓기 - 만화가의 밥 - 만화가의 계약 - 만화가의 자신감 |
들개이빨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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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하니 어떤 작가님들은 벌써 인공지능이랑 엄청 친해져서 둘이 손 붙잡고 아주 그냥 끝내주는 만화를 뽑아낸다던데. 이대로라면 나는 도태될 게 뻔한데. 하지만 신문물을 익히자니 귀찮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막말로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작가의 개성이 듬뿍 담긴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아예 사라지진 않겠지? 삐뚤빼뚤 찌글찌글한 가내수공업형 수제 만화를 팔아줄 연재처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남아 있겠지……?
--- p.38 「어떻게 살 것인가, 만화가여」 중에서 아니, 조물주 양반이 참 지독한 게, 모두가 원하는 귀중한 건 전부 뼈를 깎는 고통의 수련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게 해뒀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강연 몇 마디 듣는 걸로는 인생이 절대 개선되지 않아요. 오히려 남의 말을 듣고 그럴싸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더 안 좋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강연의 속성이란 사실상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거죠. 잠깐의 효능감을 맛본 뒤 길고 축축한 공허에 빠지는.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 p.60 「강연을 걷어차다」 중에서 이런 제가 걱정된다는 듯, 가끔 알고리즘이 성공한 웹툰작가 인터뷰라든가 만화 스토리 작법 관련 영상을 불쑥 띄워 올려주는데요.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 얼른 ‘관심 없음’ 버튼을 눌러버립니다. 어딜 감히 쉬는데 일 얘기를 꺼내가지고 기분을 잡칩니까. 인공지능이 사람 비위 맞추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 p.77 「나는 웹툰이 싫다」 중에서 모여서 남 욕하는 건 쉽고 재미있는 스포츠지만 공개적인 칭찬은 아무래도 좀 더 섬세한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잖아요. 새삼 칭찬해주시는 분들의 소중함이 확 와닿더라고요. 악의를 무책임하게 발산하고 사라지기 편한 환경임에도 일부러 귀한 에너지를 써서 응원해준 사람들. 굳이 악플을 되뇌며 고통받는 건 그분들의 선량한 에너지를 헛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89 「악플을 연구하는 무리들」 중에서 편집자님은 무심코 저지른 일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힌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인생 전체가 과거의 제가 뿌린 레고 블록으로 촘촘히 뒤덮여 있어서, 툭하면 발바닥을 붙잡고 울면서 주저앉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끈질기게 발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일이 있는데요. 바로 필명을 들개이빨로 지은 겁니다. --- p.126 「들깨이빨 늑대치아」 중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예전에 제 산문집 북 토크 자리에서 독자님들한테 징징댄 적이 있어요. 솔직히 나는 대체 왜 나를 보러 오는지 모르겠다, 책이나 만화를 보고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 하더라도 실제 저를 보면 와장창 깨질 텐데……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 뭐 이런 식 으로요. 그러자 독자님 한 분이 단호한 목소리로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건 작가님이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 pp.149-150 「사인의 쓸모에 대하여」 중에서 이 글에서조차 죽는소릴 너무 많이 해서 잊으셨을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 만화 사랑합니다. 어지간히 사랑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같은 원고를 몇 날 며칠 붙잡고 있다 보면 불안과 좌절감이 사랑을 압도해버릴 만큼 커지니 문제죠. 그래도 의외로 어두운 감정에 지지 않고 숱한 위기를 용케 잘 넘겨왔던 것 같거든요. 자신감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랬나 싶은데, 생각해보니 너무나 강력한 힘을 꾸준히 받아왔더라고요. 담당자님들의 압박과 독자님들의 재밌다는 반응입니다. 다 죽어가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한 컷이라도 더 그리게 돼요. --- p.208 「만화가의 자신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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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은 일상, 질투는 체질
불편한 진심을 웃음으로 승화하다 만화가 들개이빨은 자학과 질투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주간 연재 시기의 작업 일기에서는 마감 전날까지 “나 진짜 그림 너무 못 그린다. (…) 스토리도 못 써, 그림도 못 그려. 도대체 만화가로서 내 장점은 뭘까? 역시 재능이 없는 것 같다”라며 자학하고, 『진짜진짜최종』을 쓰면서는 “정신적 기저귀를 끝도 없이 갈아줘야 하는” 습관성 자학자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그러나 이는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교차하는 상태에서 자학을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질투라는 감정에 있어서는 “누군가를 질투하느라 한 글자도 쓰지 못했습니다”라고 털어놓을 만큼 일가견이 있다. 그는 평생 ‘질투의 노예’로 살아오면서 질투를 다루는 기술에 대해서도 터득했다.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웹툰 플랫폼 메인 화면을 쳐다보지 않는 ‘타조 권법’을 연마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면서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 시의 제목처럼, 질투를 추하다고 평가 절하하기보다 생활의 동력으로 삼는다.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알게 되듯, 비교에서 시작된 질투가 삶을 움직이는 연료로 쓰이는 것이다. 아아, 정말 큰일입니다. 같이 있기 진짜 짜증 나는 인간 중 하나가 습관성 자학자잖아요.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하고 “아니야…… 그런 소리 마…… 너 정도면 괜찮은데 왜……” 따위의 리액션으로 계속 기를 살려줘야 하니까요. 정신적 기저귀를 끝도 없이 갈아줘야 하는 거죠. 죄송해요. 제가 좀 그런 스타일이에요. 면목이 없습니다. _본문에서 만화가 들개이빨의 진가는 ‘죽는소리’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로 글을 장악하는 데서 발휘된다. 의도적으로 설계한 개그가 아니라 생활 반경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유머는 스스로를 견디며 장착한 필살기이다. 실패에서 출발해 오늘까지 불완전한 상태로 굴러가기 『진짜진짜최종』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만화가 들개이빨의 집요하고도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웹툰 장수’가 되고 난 후 순수한 오락으로 즐길 수 없어 웹툰을 보지 않고, 점잖은 말투로 속을 뒤집는 악플의 유형을 분석해보고, 인공지능이 만든 스토리가 수준 미달인 데 괜한 자신감을 얻고, 쓸데없는 심판관에 빙의해 강연 제안을 걷어찬다는 일화들이 진진하게 이어진다. 그는 성공보다 실패를 출발점으로 삼고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산문집은 이루어낸 것 대신 오늘을 어떤 상태로통과했는지 들여다보고 기록한 동시대 창작자의 생생한 ‘상태 보고서’이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상태로 똑같은 고민을 거듭하면서 여전히 쓰고 그리는 만화가 들개이빨의 메시지는, 멈추지 않는 태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작가의 말 아닌 게 아니라 자학도 십수 년을 반복하니 연출력이 조금씩 늘더군요. 저는 느껴요. 요즘 하는 자학이 옛날보다 더 노련하다는 걸요. 그림도 한결 나아졌고요. 그러니까 얼핏 보면 제자리걸음 같지만, 실은 어디로든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또 모르죠. 이대로 가면 죽기 직전쯤엔 자타가 공인하는 자기 비하의 대가가 될 수 있을지도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제 만화들도 이 산문집도, 무의미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