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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의 역사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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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 에볼라


1부 식민지와 얽히다

1 식민지 훈련소 40

2 식민지 보건에서 국제보건까지


2부 사회의학, 대공황, 농촌 위생

3 국제연맹 보건기구

4 농촌 위생과 영양 문제의 국제화


3부 제2차 세계대전 후 보건과 개발의 비전 변화

5 전후 세계를 계획하다 - 사회의학의 유산

6 다시 좁아지는 비전 - 국제보건, 기술, 냉전 시대의 정치


4부 퇴치의 시대

7 불확실한 시작

8 좋은 캠페인과 나쁜 캠페인


5부 세계 인구 통제하기

9 인구 위기의 시작

10 국제 가족계획사업의 가속화

11 가족계획의 재검토


6부 일차보건의료의 흥망

12 보건 2.0 재고찰 - 일차보건의료의 부상

13 일차보건의료에 닥친 도전


7부 미래로 돌아가다

14 에이즈와 세계보건의 탄생

15 글로벌 펀드, 에이즈 긴급구호계획, 그리고 세계보건의 변신

16 세계보건의 의료화


결론 ? 에볼라 대응

감사의 말

참고문헌

색인

저자 소개 2

저랜들 패커드

관심작가 알림신청
 
의학·보건학 분야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존스 홉킨스 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의사학(medical history)과 공중보건사(public health history)를 가르쳤다. 미국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질병, 보건체계, 세계보건 정책 등을 연구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세계보건의 역사(A History of Global Health, 2016)》, 《말라리아의 역사: 열대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The Making of a Tropical Disease, 2007)》, 《백색 역병과 흑인 노동(White Plague, Black Labor, 1989)》이 있다. 그의 깊은
의학·보건학 분야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존스 홉킨스 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의사학(medical history)과 공중보건사(public health history)를 가르쳤다. 미국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질병, 보건체계, 세계보건 정책 등을 연구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세계보건의 역사(A History of Global Health, 2016)》, 《말라리아의 역사: 열대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The Making of a Tropical Disease, 2007)》, 《백색 역병과 흑인 노동(White Plague, Black Labor, 1989)》이 있다.
그의 깊은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보건의 역사》는 19세기부터 현재까지 ‘건강을 위한 노력의 역사’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촘촘히 엮어낸다. 또한 세계보건이 단지 ‘원조’가 아니라 과학적 지식과 실천이 정치경제적 맥락과 깊이 얽혀 형성되어 왔음을 밝힌다.
예방의학전문의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남태평양사무소에서 보건의료전달체계 기술자문관 및 투발루 연락관을 담당하였으며 서태평양지역본부에서는 만성 및 감염병통제부에서 근무하였다. 귀국 후에는 일차진료 의사로 활동하면서 보건 분야 연구, 강의, 컨설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노숙인(2012)》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사회정의와 건강(2021, 공역)》, 《지구건강(2025, 공역)》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40쪽 | 500g | 152*225*29mm
ISBN13
9791187313939

책 속으로

넓게 보면 2014년과 2015년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유행은 세계보건의료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많은 국가가 가장 좋았던 시기에도 지역 내 병의원의 진료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해 치료를 받으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병의원에 가도 흔한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이 부족하다. 일회용 장갑, 주사기, 정맥주사용 수액, 붕대 같은 기본 물품조차 없어서 환자나 가족이 병원 밖에서 구해 와야 한다. 의료인도 급여가 너무 낮거나 몇 달간 급여를 받지 못해 공공의료 서비스를 찾는 환자를 진료하는 대신 부업으로 사설 진료소에서 환자를 본다. 의료 서비스와 지역사회 간 연결은 미약하다. 주민들이 공공의료 서비스를 신뢰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새로운 감염병을 적시에 보고하고 추적하기 위한 검사와 검사실 기능이 부족하다. 파트너스인헬스(Partners In Health)의 공동 설립자 폴 파머(Paul Farmer)의 말처럼 세계 많은 지역의 보건의료 서비스는 “의료인, 물자, 공간, 체계(staff, stuff, space, system)” 등 4S가 부족하다. 북반구 선진국 사람들은 이것이 ‘후진국’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아프리카와 인도에 뭘 기대하나?”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 p.24

라이크만과 달리 캠벨은 필리핀과 파나마의 공중보건 관리들처럼 현지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관점을 고수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실질적 협력에 관한 저서에서 그는 “불운한 국가들의 미개발, 교육 부족, 빈곤에 시달리는 대중”은 “이미 체념했고 냉담”하며, “고도로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문명국 사람들”과 너무나 다르다고 썼다. 캠벨은 농업협동조합의 힘을 믿었지만 반드시 자발적으로 진화한다고는 보지 않았다. “후진국에서 협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자발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아주 적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이를 육성하는 것은 정당하다.” 동시에 그는 중국 자체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국민당 정부가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너무 빨리 움직인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협동조합 정책을 추진한 정치적 동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은 중국 사회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에서 협동조합은 농촌 지역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확장하는 수단이었다. 국제보건 자문관들이 개발 사업에 대한 현지 정부의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다음 반세기에도 국제보건 전문가들이 수행한 사업의 특징으로 남았다. 캠벨의 협동조합운동도 중국 농촌 경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협동조합을 순전히 농업 활동으로 보았지만, 실제로 지역사회 경제는 소규모 제조업을 포함해 다양한 경제 활동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모든 국제연맹 자문관이 중국을 캠벨처럼 본 것은 아니었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던 이탈리아 출신의 농업 전문가 카를로스 드라고니(Carlos Dragoni) 같은 전문가는 중국이 그저 외부 자문관의 지시를 받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토지 재분배와 간척사업을 통해 더 많은 중국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 p.110

말라리아 퇴치를 천연두 퇴치와 비교할 때는 이 기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지 말라리아 사업은 실패했고 천연두 사업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말라리아 퇴치는 일부 지역에서 실패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성공했고, 천연두 퇴치는 모든 곳에서 궁극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이런 구분은 중요하다. 우리는 일부 말라리아 퇴치사업에서 실패에 기여한 요인을 알아보고, 왜 그런 요인이 천연두 퇴치사업은 방해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어떤 말라리아 사업이 효과적이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이런 의문에 답할 수 있다면 두 사업의 성공과 실패에 기여한 요인들을 더 잘 이해하고, 두 캠페인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말라리아 퇴치와 천연두 퇴치는 사업 조직과 실행 방법이 달랐던 것 같지만, 실은 공통점도 많았다. 두 사업 모두 살충제와 천연두 백신처럼 특정 기술을 활용해 전파를 막도록 설계되었다. 둘 다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치료와 격리가 필요한 환자를 확인하기 위해 질병감시체계가 필요했다. 두 사업 모두 질병 전파에 영향을 주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바꾸거나 개선하지 않고, 잘 작동하는 필수 보건의료체계도 없이 생의학 기술의 적용만으로 질병을 퇴치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 p.226

이 사업의 소통 전략 중에는 소가족과 대가족이 겪는 경험과 미래를 비교하는 포스터가 있었다. 대가족은 한결같이 불행하고 가난한 반면, 소가족은 행복하고 번영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집트는 이 전략을 변형해 소가족 장려를 “현대적인 이집트 가족”을 만들기 위한 폭넓은 사회공학적 노력과 연관 지었다. 소가족은 나세르가 주장한, 혁명 이후 새로운 이집트 사회를 세우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 더 적은 자녀를 갖는 것은 국가적 의무였다.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소가족은 좋고, 대가족은 나쁘다.

개발도상국 전역에서 이런 가족계획 홍보 포스터가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널리 사용된 것을 보면, 당시 사업을 조직한 사람들이 홍보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포스터는 젊은 가족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소규모 가족의 장점을 즉시 인식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피임법을 수용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졌다. 이런 홍보 전략은 가족계획 담당자들이 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런 시각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무지했음을 보여준다. 일부 도시 가정에서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있다 해도, 대다수의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시골 지역에 살았다. 칸나 연구에 대한 맘다니의 비판처럼 농촌 가정은 가족 노동으로 얻는 생산물에 의존했으며, 부모의 경제적 안정에 자녀는 필수 요소였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도시 가정조차 여전히 대가족 체제의 장점에 주목했다. 셰릴 므와리아(Cheryl Mwaria)가 예로 든 케냐에서 식민지 시기와 식민지 이후 토지 정책에 영향을 받은 토지 분배 형태와 농촌 빈곤 때문에 캄바족(Kamba) 가정들은 나이로비 등지의 도심에 있는 가구와 시골에 있는 다른 가구를 부양했다. 도시 가구의 구성원은 공식 또는 비공식 경제 활동을 통해 임금이나 소득을 얻었고, 시골 가구의 구성원은 농작물과 가축을 길렀다. 이런 형태는 가족의 경제적 생존에 필수적이었으며, 대가족 체제를 필요로 했다. 인류학자 댄 스미스의 연구에서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고등교육을 받은 아프리카인 부모들은 최근까지도 자녀 부양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대가족을 유지한다. 개인이 직업, 교육, 영업 면허를 얻는 등 다양한 거래처-고객 네트워크에 참여할 때 대가족 형태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 나이지리아에서 대가족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부모와 자녀가 사회적으로 출세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가족계획 전문가들은 산아제한을 권장하기 위해 단순화된 홍보물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이런 지역사회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 p.307

아프리카인은 시계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에이즈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은 서구 사회가 아프리카의 에이즈 문제를 바라본 관점이자, 1990년대 국제 에이즈 정책을 형성한 문화적 고정관념 중 하나일 뿐이다. 아프리카인이 시간에 맞춰 투약할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도입하면 “무정부적인 상황에서 치료하는 것”으로, 약물 내성이 생겨 세계 모든 지역에서 약물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이티에서 파트너스인헬스 소속으로 일했던 폴 파머와 동료들은 빈곤국(아이티)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함으로써 “그런 뻔뻔한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했다. 국경없는의사회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외곽 칼리차의 흑인 거주 구역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제로 환자들을 치료해 비슷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의 가격 때문에 여전히 치료받기 어려웠다. 해결책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 가격을 낮추려고 노력한 남반구 개발도상국에서 나왔다. 1990년대 중반 인도와 브라질의 공공 연구소들이 민간 제약회사와 협력해 복제약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약값이 70% 떨어졌다. 다른 나라들도 뒤를 따랐다. 199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의회는 의약품 및 관련 물질 관리법을 개정해 국가 의료 비상 사태 시에는 특허권자의 허가 없이도 특허 의약품의 복제약을 생산하고 병행 수입하도록 허용했다.

법안은 통과되자마자 지식재산권과 충돌했다. 지식재산권은 1995년에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가 무역을 규제하고 무역 장벽과 관세를 없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개방 무역”을 실현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다. 비판자들은 WTO가 원자재 생산 개발도상국을 희생해 선진국의 경제적 이익을 꾀한다고 주장했다. WTO는 주로 선진국이 보유한 엔터테인먼트, 제약업, 소프트웨어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방어하는 데 활용되었다. 지식재산권 때문에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 태국, 중국의 기업들은 의약품이 절실히 필요한 개발도상국을 위해 저렴한 의약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없었다.

선진국 제약회사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고 공동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정부는 경제 제재를 시행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소송을 지지했다.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 에이즈 회의에서 치료 행동 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 등 에이즈 활동가들은 미국, 유럽, 제약회사, WTO가 생명을 구하는 에이즈 치료제를 저렴하게 생산하고 세계적으로 사용하도록 행동하지 않는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얼마 후 활동가들과 미 의회 흑인의원총회(Congressional Black Caucus)의 압력을 받은 클린턴 행정부는 입장을 번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약품 및 관련 물질 관리 개정법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소송은 2001년 4월 기각되었고, WTO 역시 이 법에 의해 시행된 긴급 조치는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Property Rights, TRIPS)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치료 비용은 1990년대 중반 연간 10,000~15,000달러에서 2002년에 300달러, 2007년에는 87달러로 급격히 감소했다.

한편 에이즈가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 때문이 아니라 가난과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 타보 음베키(Thabo Mbeki) 대통령의 영향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보건부는 에이즈 치료제 보급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계속 반대했다.
--- p.414

과학 기술의 단순한 적용은 단기적 효과가 있다고 해도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비타민 A 보충제 사업 지지자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식품 강화와 함께 농업을 개선하면 비타민 A 보충제 사업을 지속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필리핀, 네팔, 과테말라 등지에서 비타민 A의 대체 공급원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었고, 비타민 A 보충제 연구자들은 보충제 사용 중단 시기를 결정하기 위한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문제는 비타민 A 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과 의존이 장기적으로 식량 공급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방해하는지에 있었다.

비타민 A 보충제, 살충제 처리 모기장,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남성 포경수술, 어린이 예방접종, 소아마비 예방접종은 모두 인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보건 중재술이다. 한 번에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거나, 효과적인 보건의료체계 구축과 질병 발생의 근본적, 구조적 원인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보건 중재술을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영향력 측정 사업을 원하는 공여 기관의 압력, 건강을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전략, 공중보건 훈련 환경의 변화, 과학 발전 기금에 대한 의존 때문에 세계보건은 과학 기술의 개발, 보급, 영향력 측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20세기에 질병 퇴치를 위한 협소한 기술 중심적 접근과 건강의 근본적, 구조적 원인의 해결 및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광범위한 노력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계추는 분명히 전자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변화의 결과는 2014년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의 마을과 도시 빈민가에서 나타났다.

--- p.466

출판사 리뷰

왜 아직도 살리지 못하는가?

지난 세기 인류는 전 세계적으로 생명을 구하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엄청난 자금과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세계보건은 천연두를 퇴치하고, 말라리아에 대처하고, 비타민 A 캡슐을 보급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지만,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와 위생적인 환경을 누리지 못하며 죽어간다. 왜 그럴까?

과거가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의학·보건학 분야의 대표적인 역사학자가 쓴 이 책은 18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과거를 돌아보면 건강 악화의 근본적인 사회적·경제적 요인을 해결하려는 노력과 지속 가능한 건강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어떻게 살릴 것인가?

세계보건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여전히 해법은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에 대한 연민, 각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존중,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는 교만을 버리고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통찰,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는 문화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겸허함을 배우게 된다. 세계보건은 엄청나게 거대한 숲처럼 보이지만,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려면 나무 하나하나를 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결국 우리 모두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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