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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화
한국문학사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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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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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비상과 배신의 시간 속으로
세상, 안의 삶, 세상 밖의 삶
숨은 진실
자유, 그 불멸의 불꽃이 되어
그대 영혼의 날개를 묻다
새를 위한 악보
작품해설 평범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 전영태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거쳐, 1989년 장편 『피와 불』(『정보원』으로 개제)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여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했다.소설 『거품시대』는 조선일보에, 『불감시대』는 한국경제신문에 연재되었으며, 장편소설 『거품시대』(전 5권) 『사람의 멍에』 『범섬 앞바다』 『디스토피아』 『신·한국의 아버지』, 소설집 『전쟁을 이긴 두 여인』 『우리들의 두 여인』 등이 있다. 2005년 소설 「동백꽃」으로 제12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예지 『한국문학』 주간과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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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42g | 120*188*13mm
ISBN13
9788987527406

책 속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이상적인 부부상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지난 20년 동안 지켜본 승혁 부부를 떠올릴 정도로 그들 부부의 애정은 완벽해 보였다. 또 그 기간 동안 승혁은 미국 건축설계 분야에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영향력 있는 설계사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터여서, 그들 세 가족의 미래에는 느긋한 인생의 순항이 계속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p.11

성공…… 상대적인 것으로 끝이 없는 거다. 성공이라는 요물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지. 가족…… 가족의 훈훈함은 좋은 거다. 그러나 훈훈함을 맛보는 대가로 가식을 가져야 돼. 그 훈훈함이 가식이 주는 고통을 보상하지는 못해. 사랑…… 바로 속박의 굴레다.--- p.30

이 해방감은 가족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시간이라는 시한폭탄으로부터 그리고 애환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문득 이러한 해방감이 승혁이 말했던 해방과 그 형태는 다르다 하더라도 원천을 파고들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자문해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승혁이 추구하는 해방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형태인 반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탈출만을 위한 소극적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p.34-35

자물쇠가 잠긴 방의 창호지 한 귀퉁이를 벗겨 손전등을 집어넣고 천장을 향해 비춰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하게 검은색으로 그려진 해골들과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마귀할멈의 모습이 보였다. 글씨도 많이 씌어져 있었으나, 대부분의 글씨는 작아서 알아볼 수 없었고 붓으로 쓴 큰 글씨만이 보였다. ‘mediocrity’(평범)와 ‘horror’(공포)라는 영어 단어가 여러 군데 씌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창호지를 원래의 모양대로 붙이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p.69-70

“큰돈을 갖게 되면 인간의 본성이 없는 사람을 측은히 생각하게 되어 있어. 그게 컴패션, 바로 연민이지. 그런데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업신여기거나 경멸하게 되는 순간부터 있는 자도 파괴되기 시작해……. 그리고 ‘없는 자’가 ‘있는 자’의 경멸을 감지하게 되면 증오심을 갖게 돼……. 결국 ‘있는 자’의 경멸과 ‘없는 자’의 증오심이 충돌하게 되고 그것이 인류 역사의 계층의 전쟁, 즉 클래스 워(class war)야.”--- p.73-74

오늘 저녁에 경험한 것이 바로 인생의 축소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험한 파도, 칠흑 같은 어둠, 불안 속에 위태로이 떠가는 작은 배, 배 안에 있는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를 채운 인간들, 그리고…… 그리고 권력과 조직을 대변하는 서치라이트, 그 서치라이트는 필요에 따라 인간의 약점을 환히 드러내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고력도 마비시킬 수 있다.--- p.78

“호러(horror), 호러…… 공포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데서 오는 공포?”
내가 빈정대었다.
“아니, 미디오크러티(mediocrity)에 대한 공포지.”
“미디오크러티는 너도 알다시피 미디오커(mediocre), 즉 미들(middle)의 명사형으로 평범이라는 뜻이다. 중도(中道)를 의미하지. 동양철학에서 중도라는 개념은 최선을 의미하고, 무엇이든 ‘적당히’ 하라는 거야. 그러나 그 ‘적당히’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미덕의 근원이지.”--- p.101

그렇다. 승혁은 멋지게 인생을 끝마치는 행운아가 돼야 한다. 승혁은 우리 모두를 철저하게 조롱해야 한다. 우리 속에 갇혀 던져주는 음식 찌꺼기를 배불리 먹고 사는 돼지를 비웃듯이,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을 조롱하듯이 우리 모두를 조롱해야 한다. 그는 깊은 산속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먹이를 찾는 산돼지가 되어, 파란 창공을 나는 한 마리의 야생조가 되어 돼지우리나 새장에 갇힌 우리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 p.182

출판사 리뷰

위선적인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비극적 영웅의 이야기

미국에서 건축가로 성공하는 등 아무것도 부족할 것 없어 보였던 주인공 승혁은 어느 날 어렵게 쌓아 올린 사회적 지위는 물론 단란했던 가족마저 버리고 갑자기 귀국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남편의 말을 들은 부인 석영은 승혁의 친구이자 중진 언론인인 화자 대식에게 남편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친구의 부인인 석영을 완벽에 가까운 여자라 생각하며 은근히 흠모하던 대식은 그런 승혁을 거세게 비난하지만, 승혁은 대식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안온한 삶을 버리고 귀국한 진짜 이유를 밝힌다. 오십 고개를 앞두고 틀에 박힌 삶에 갇혀 지내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것이 얼마나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지 고민하던 끝에 지금까지의 성공한 삶을 모두 버리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는 중년 남성의 위기에 관한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 끝에 성공이라는 결실을 거두지만 정작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은 저버리게 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중년의 남성이 언젠가 한번 겪게 되는 위기의식 속에서 인생 전체의 문제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게다가 이는 중년 또는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주제가 아니다. 틀에 맞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인간 본연의 자유와 진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고민하고 있으며, 또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으면서도 그 세대의 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창출하기 위한 모험을 감수하고 있다. 주인공 승혁이 바로 그러한 모험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작품에서 승혁은 세상사에 달관하고 어떠한 유혹에도 쉽게 이끌리지 않는 노회한 중년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을 성취의 과제로 삼고 있는 야심찬 젊은이와도 같다. 그는 자유를 속박하는 멍에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낯선 삶을 향한 모험을 시도하지만 사회의 상식은 그런 모험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승혁은 그런 시선을 비웃듯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유를 획득한다. 작품은 언뜻 참담해 보이는 결론을 통해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폭넓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삶이라는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는 치열한 인생 설계도

건축가로서 성공한 삶, 안정적인 가정, 거의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원하는 삶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승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 아닌, 국보 1호인 남대문(숭례문)을 웅장하고 빛나는 건축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자 승혁은 서해의 한 바닷가 마을에 머물면서 돌 쌓는 법을 연구하기 위해 방파제 축조현장에서 인부로 일하거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붕장어를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부가 되기도 한다.
그런 승혁에게 친구인 대식은 “가족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면서 자기의 직업에 충실한” 정상적인 생활이 그립지 않느냐 묻는다. 승혁은 “우리 속에 갇힌 채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 찌꺼기를 매일 배부르게 먹고 언젠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를 기다리는 돼지”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디오크러티란 인류의 가장 나쁜 적이야. 영혼에 기생하는 암이지. 이 암이 영혼을 죽이면 그 인간은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평범’이라는 균에 소멸되고 있어. 나는 우리에 갇힌 돼지가 먹이를 찾듯이 매일매일 같은 시간대에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 서려 있는 원망과 공포를 봤어. 또한 여러 분야에서 일단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도 같은 원망과 공포의 눈초리가 번뜩거리지. 그들 모두는 이미 사고하고 창의하려는 인간이 아니고 우리에 갇혀 던져주는 음식 찌꺼기나 받아먹는 돼지야.”(본문 중에서)

이처럼 이 작품은 속물근성에 젖은 이 시대 보편적인 생활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도한다. 반면 안정된 삶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승혁과 달리 화자인 대식은 그런 친구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결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오히려 승혁의 이른바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반작용처럼, 대식은 처세로 쌓아 올린 지위를 지키고 확장하는 데 골몰한다.
결국 완성을 보진 못하지만 이 작품에서 남대문은 승혁이 추구하는 삶의 진정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예술가의 진정한 행복은 창작에 있다는 것,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삶이 예술이라면 화려한 장식 같은 조건들이 아닌 삶 그 자체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삶의 멍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는 길이라는 확신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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