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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며
우리의 장례희망,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1부 내 장례식에 놀러 올래요? 사과나무 아래 장례식 안녕, 나의 소중한 사람 봄날의 작별 인사 관계의 수명 내 생애 마지막 기념일 그대가 왔을 때 불편하지 않았으면 제 죽음은 호상입니다 떠난 내가 남은 당신에게 당신이 올 때 손 흔들며 마중 나갈게요 슬픔 없는 인사 죽음도 나다울 수 있다면 마지막 일기 의아하지 않은 손님맞이 나의 장례식 죽은 뒤 가장 먼저 마주한 얼굴 나의 죽음이 당신에게 슬픔이 아니기를 바람 혹은 비 또는 새처럼 자유롭게 2부 내일의 부고를 전합니다 내일은 비가 올까요 이 시대의 따스함, ‘정듦’ 별세 봄날의 안녕 내가 선택한 죽음 한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은 마지막 걸음 평범하지 않은 부고 세상의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아름다운 날 삶의 페이지를 덮다 마지막 편지 늘 푸르렀던 삶을 두고 할부로 슬픔을 조금씩 나눌 수 있다면 원로 수필가 백지 별세 눈 위로 내리는 눈 일상 예술가 바비의 부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기를 나의 서랍 속 부고문 3부 마무리하는 소설 한 편 울음 영역 책을 닫으며 우리의 장례희망, 마음껏 사랑하겠다는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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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사과나무 아래 마련했습니다. 그늘 아래서 여름을 맛보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 생의 달큰함을 좇아 걸어 나가세요. 빛의 형태로 음악이 되어 흔들리는 지상의 모든 것들 앞에 다만 도리 없이 서서 말을 잃고 그만 아름다움이 되어 버린 인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되지 못한 그것이 어쩌면 장례식을 찾아 준 당신에겐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17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마음에 바람 하나 걸어 두는 일이야. 내 병실 친구 ‘밤빛’이 입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홀연히 하늘로 갔을 때, 그때부터 나는 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실감했어. 그 후로 마음 한구석에는 간간이 바람이 불었어. 종이가 팔랑 넘어갈 법한 작은 바람. 어쩌면 종이가 인생일까?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길 때는 몰라. 종이의 단면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저 그런 매일을 살다 보면 잘 몰라. 아픔과 병과 죽음이 얼마나 삶 가까이에 있는지. 나는 잊지 않고 살았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 pp.19-20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나의 말, 표정, 사소한 습관들을 기억하고 저희들끼리 맞아, 백지가 그랬지, 하고 끄덕이며 키득거릴 사람들이 와주면 좋겠다. 그럼 나도 그다지 의아해하지 않으려나. 그리고 천천히 인사해 주면 좋겠다. 꽃잎을 한 장씩 가만히 내려놓으면서. 마음껏 슬퍼하면서. 장례가 끝난 뒤엔 훌훌 떠나면서. --- p.54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지나가면 다시 새로운 오늘이 된다. 그렇게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매일 열리는 나의 장례식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곳에 와준 모든 사람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진짜 죽음이 찾아오는 날, 작은 아이가 되어 검은 시골길을 걷다가 연초록의 나무 가까이로 몸을 눕혀야지. 나의 장례식을 함께해 준 좋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비로소 삶 대신 죽음을 살 것이다. 아무 두려움 없이. 가장 편안하게. --- p.56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는 제 안에 자리잡아 그날 나오지 않았던 눈물을 때때로 소환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그 빈자리가 어떤 무게로 남는지를, 삶이 제게 일깨워 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변 사람의 죽음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흩어진 기억의 파편으로 일생 동안 따라오거나, 상실의 슬픔으로 떼를 지어 몰려와 어깨 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 --- p.68 ‘슬픔을 일시불로 긁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이런 장례식을 생각해 봤다. 살아가는 내내 문득 보고 싶고 사무치게 그립고 가슴 아픈 순간들이 찾아올 때, 그녀의 장례식을 가끔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할부로 조금씩 조금씩 슬픔을 나눌 수 있다면 인생이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떠나는 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 잠깐의 위로의 시간을 건네고 싶다. --- p.111 그 당시 망자는 자유라는 말을 자주 썼다. “행복해” 대신에 “자유로워”라고. 병을 진단받은 것도 그즈음이었고 죽음이 어쩌면 자유의 연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어떻게든 살 생각을 하기보단 죽음 이후의 무엇을 동경했다. 이런 불온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그러나 없었다. 구석을 뒤져 봐도 양말 한 짝 보이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낙관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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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립서점에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 김완 작가가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죽음 워크숍’은 세 시간 만에 마감되었고,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부고문을 품에 안고 이 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써 내려간 글은 죽음을 준비하는 기록이라기보다, 오히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였다. 그 글들 속에는 ‘더 큰’ 것이나 ‘더 멀리’ 있는 것은 없었다. 늘 곁에 있는 사람, 매일 마주하는 커피 한 잔, 집 앞에 피어난 작은 꽃, 슬픔을 나누어 주던 책 한 권 같은 것들이었다. 이상하게 따뜻하고, 때로는 웃음이 나며, 묘하게 안도하게 되는 이 책은 죽음을 미리 바라봄으로써 삶의 진솔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주변에 둘러싼 존재들의 소중함을 조용히 전한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매일 열리는 나의 장례식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삶은 크고 작은 작별의 연속이다. 사라지는 사람뿐 아니라 오래된 감정, 잊고 싶은 기억, 지나가 버린 계절, 끝내 닿지 못했던 마음들 역시 우리 곁에서 조용히 작별을 맞이한다. 『장례희망』은 슬픔의 의식이면서 존재와 사랑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은 죽음을 먼 미래의 그림자가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삶을 비추는 거울로 바라보며, 흩어질 수 있는 작별의 순간들을 차분히 붙잡아 둔다. 18명의 저자의 문장들은 지나간 것을 바라보되 과장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붙들되 집착하지 않는 절제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환해진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 스스로를 잃어본 사람, 이제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장례희망』은 묵직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언어로 조용한 위로를 건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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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우리 입술을 떠나는 말 중에서 유언이 아닌 말도 없습니다. 이곳에 영원히 남아 있을 이는 아무도 없기에. 그리고 우리가 하는 어떤 말도 결국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사랑의 증언이거나 사랑의 부재를 알리며 여기에 와달라는 초청이거나.
저물녘 물에 띄운 이 고운 잎사귀들이 가라앉지 않고 밤새 강 건너 당신에게 무사히 닿기를……. 그 아침에 들어주세요. 우리 잎들이 전하는 말을. 귀 기울이면 세상에 노래가 아닌 것도 없고 기쁨과 눈물 아닌 것도 없고 당신과 내가 아닌 것도 없겠지요. 그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인 사랑 말고는. 잎이 나무에게, 겨울이 봄에게, 밤이 아침에게, 떠나는 내가 오시는 당신에게 남기는 어떤 유산도. - 김완 (작가, 『죽은 자의 집 청소』 저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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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부고와 장례식 초대장을 써 내려가는 책이라니. 처음엔 이 책이 조금 무서울지도 모릅니다. 엄숙하고 고요할 거란 인상과 달리, 죽음 앞에서 수다쟁이가 된 이들이 펼치는 끝내주는 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장례식장에서 틀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고, 각자의 삶을 농담처럼 꺼내 놓는 목소리들. 죽음에 관해 말하면서 이처럼 생기 있을 수 있을까요? ‘장래희망’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라면, ‘장례희망’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의 질문일 것입니다. 부고를 쓰는 행위는 잔인하지만 다정하며, 끝을 상상하는 순간 삶은 이상하게도 가장 현실적인 얼굴을 보여 줍니다. “떠나기 전에 수다 떨고 싶었나 보다, 하고 이해해 주세요.” 이 말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요? 『장례희망』 속, 사소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풍경들을 오래 곁에 두고 싶습니다. - 문보영 (시인, 『일기시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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