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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4
여백 8 프롤로그 13 해후 17 부북赴北 29 총과 활 53 부방길 68 월이 76 의향 81 도망자 이환 94 복무 일지 108 반란의 기운 125 활쏘기 시합 137 회령 개시 150 이별 178 호랑이 사냥 201 과거科擧 206 남순 210 도사와 판관 217 향시 224 북순 233 조총별조감관 245 행영에서 한 달 265 방환 276 변란 294 남행길 306 추적자 319 남남북녀 336 나선 원정 339 에필로그 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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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살 필요가 있는가에 답하다
이 소설은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역사의 현장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고고학적 서사입니다. 동시에 변함없이 반복되는 민중 현실을 역사 전면에 드러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고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고현학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굳건히 살아남아 평등한 사람 세상을 꿈꾸는 묵시록입니다. 인간 역사는 존재 망각의 역사이며 인간 소외의 역사라고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은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 두지 못했던 우리 과거와 반복되는 현실과 유토피아를 담고 있습니다. 그 속에 남의 손에 좌지우지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 생각과 다른 삶을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작가는 다른 차원에서 찾고자 합니다. 소외되었다는 사실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소외 의식을 심어주는 인간적 방법을 모색합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고유한 존재이며 무엇이든 가능하며 이룰 수 있는 열린 존재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타성화되어 평균적 존재 이하로 스스로 인식한다면 가련한 안식만을 욕망하는 최후의 인간 말종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개성과 독특함과 존재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인간적 신비함을 늘 지향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간 존재감을 담고 있는 인물이 포수 김우종입니다. 김우종은 시공을 초월해 존재합니다. 거기에는 우리 민중의 염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소중한 존재이며 평균되게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며 소외되선 안 된다는 소명입니다. 작가의 시선은 거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이데거처럼 작가는 궁핍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존재의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묻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그 물음은 소외된 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규명하고자 했던 자기 존재의 증명이라고. 또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말합니다. 자기를 회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하고 방법까지도 찾아야 한다고. 마침내 “너는 어떤 삶을 살 필요가 있는가?” 묻습니다. 이 소설은 그 가능성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포수 김우종-부북기赴北記』는 무엇을 담았는가? 난세를 살아가는 방법과 오래된 미래 포수 김우종이 살았던 시대는 위험 사회였습니다. 울리히 백이 말한 위험이 인간 존재의 총체적 파국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17세기를 전후한 조선 사회는 전란과 차별로 점철된 인간 소외의 시대였습니다. 김우종은 왜란과 호란 속에서 살아남아 봉건적 폭압을 뚫고 가는 초인입니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회의 모습을 환기합니다. 노자의 사유처럼 함부로 목숨을 다뤄서는 안 되며 전쟁과 가난에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지 않는 이상 사회의 추구입니다. 이는 개인의 욕망에서 벗어난 소명입니다. 민중 수난의 역사에 대해 혹자는 환멸을 얘기합니다. 이제 그만 하자고 말합니다. 나아가 혐오를 조장합니다. 그들이 못 나서 불행한 운명이라고. 누구 탓을 하느냐고. 김우종은 말합니다. “나대고 깝죽거리지 않으며 조용히 뒷전에 머무는 처세를 깨우쳤다(23쪽).” 이 처세술은 일면 소극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현실에 부화뇌동하는 모리배에서 김우종을 떼 내 고독한 삶으로 승화시킵니다. 고독은 낭만적 소치로 치부될 수 있지만 릴케의 경우를 보면 외부와 차단된 순간, 오로지 자신만의 내면 공간을 뜻합니다. 신의 소리를 듣는 자기 침잠의 거룩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소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소명과도 같습니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거룩한 부름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는 맬랑콜리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인간 수모와 모멸 앞에 자기 우울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에는 인간은 없고 소외 사실 그 자체만 남습니다. 맬랑콜리한 순간 소외 사실을 잊고 외면하려 들 겁니다. 그 고립적 사태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역설적으로 거룩한 속물들의 위대함을 묘사합니다. “잘 기른 암소와 그 소가 낳은 송아지를 파는 자가 있고 돼지와 닭의 다리를 묶어서 사는 자가 있다. 각종 해물을 파는 점방에는 마른 멸치, 새우, 미역과 다시마를 파는가 하면 말린 대구, 청어과메기 엮은 두릅, 말린 문어, 북어와 각종 해산물이 부리나케 팔리고 있다. 몰래 담배와 섶과 땔나무를 파는 자가 있고, 전라도에서 온 싸전, 질 좋은 한지를 파는 종이 점방, 개경에서 온 인삼과 각종 약재를 파는 한약방과 비단을 파는 왕 서방이 있다. 주막에서 대낮부터 술병을 나발 부는 자가 있고 이미 대취한 자가 갈지자로 걷다가 고꾸라지기도 한다. 머리에 짐을 얹고 등짐까지 메고 가는 남자가 있고 머리와 등에 짐을 이고 지고 아이까지 안은 여자가 있는가 하면 서로 언성을 높이고 욕을 하며 밀치는 자들이 있고 손을 잡았다 빼며 희롱하는 남녀가 있다. 비키라고 소리치며 물길 흐르듯 냅다 뛰어 도망가는 자가 사라지면 조바위 머리, 삿갓 머리, 올린 머리, 내린 머리, 패랭이 모자, 변발 머리, 중머리, 갓머리와 전립이 빈자리를 채운다. 오지게 왁자지껄하다.(160~1쪽)” 회령 개시 장면입니다.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연상케 합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는 시인의 전언은 작가도 함께 들었던 신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연대하며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이처럼 이 소설을 통해 난세가 곧 인간 소명의 계기이며 곧 도래할 미래의 언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김우종이라는 민중의 거룩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부북기赴北記, 즉 북관北關으로 갔다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통해 협소하게 위축됐던 웅혼한 기상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만주 벌판에서 호곡했던 그를 따라 심중에 묻어둔 호연지기를 펼쳐야 한다는 사무친 결기를 품게 됩니다. 그처럼 이 소설은 축소되고 고립된 한반도에서 맛볼 수 없는 감각을 맛보게 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공간적 판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발굴하고 개척해야 할 영지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북으로 올라가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소설은 수백 년 전에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김우종은 소리 높여 외칩니다. “언젠가 활의 시대는 가고 총이 대세인 시절이 오겠지. 그때 백성은 손에 총을 들고 외칠 것이다. 우리의 주인은 이 나라의 하늘과 땅이고 그 하늘과 땅이 바로 우리라고.(366쪽)” 김우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에 여기저기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작가의 역사적 신념입니다. 고통받는 소수자의 편에 서서 미래를 꿈꾸는 예언자적 지성이 그렇게 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김우종의 변신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복사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이 땅 무명의 거리에서 김우종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후 북쪽 간도 땅이나 회령 땅에서, 삼면으로 둘러싸인 바닷가에서, 팔도강산 곳곳에서 김우종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렸다. 다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그는 숨어 있었다. (366~7쪽)” "포수 김우종의 부북기는 조선 시대 1644년 겨울부터 1646년 봄까지 초임 군관들이 경상도 울산에서 함경도 회령으로 복무하러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썼다. 함경도 변경 지방에서 근무했던 무관 박취문의 군대 생활사를 기록한 종군 일기인 『부북일기赴北日記』(1645)가 소설의 배경이다.양반과 노비의 갈등, 무인 간의 알력, 조선 최전선 관북 지역의 생활상, 활과 조총의 대립 구도와 남남북녀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은 병자호란 쌍령 전투와 신류의 나선 원정 기록까지 확장했다. 전란 이후에도 양반과 군관에게 활쏘기를 장려하는 반면, 양인과 노비가 주축이 된 포수들이 사용한 조총의 존재감은 왕권 강화를 위해 점차 쇠락한다. 이후 조총 사용 금지령이 내려지고 점차 군졸들도 총 쏘는 법을 모르게 된다. 포수 김우종은 조선 땅을 떠돌다가 만난 박시문과의 인연으로 군관 일행을 남북으로 이어진 삼천 리 길을 따라 관북으로 이끈다. 그는 백전불패의 직업 군인으로 살았다. 양반이자 초급 무관인 시문과 포수가 되려는 노비 이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한편 관북 지역 군사령관인 북병사와 신임 군관이 된 시문은 의향이라는 여인을 두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인다. 마지막까지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김우종은 조선 후기에 삼백육십칠 년을 넘게 살았던 실재 인물이다. 제주에서 서얼로 태어난 우종은 뭍으로 도망쳐 노비로 살다가 임진왜란에서 포수로 공을 세워 양인이 된다. 그 후 남의 군역을 대신 지거나 품팔이를 하며 살았다. 병자호란 때 그는 적병의 칼날에 찔려 죽은 지 열사흘날 만에 깨어났다. 걸음걸이가 나는 듯했으며 지상의 신선이라 이를 만했다. 그에 관한 기록은 북평사 박래겸이 쓴 『북막일기北幕日記』(1827)에 자세히 나온다. 김우종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만난 일은 작가에게 행운이었다. 김우종은 조선 후기 민중사를 관통하는 특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김우종은 지금도 어디엔가 역사의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을지 모른다. 사라진 그를 찾아가는 여정에 여러 독자 제위께서 함께하길 바란다." - 저자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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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삶에 대한 단상斷想
『포수 김우종』은 실존 인물과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독자의 관심을 끈다. 17세기 박계숙, 박취문 부자의 부방赴防 기록인 『부북일기赴北日記』에 서술된 저자 박취문의 1년간 행적을 스토리 전개의 근간으로 삼아 박시문이라는 무관을 등장시켰으며, 19세기 박래겸의 공무 기록인 『북막일기北幕日記』에 언급된 신비로운 노인 김우종을 주인공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작품에 생동감을 더했다. 조선 시대 초급 군관들의 근무 형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데 『부북일기』는 일종의 파견 근무인 부방 생활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북막일기』는 1827년 7월부터 9개월간 박래겸이 함경도 북평사로 근무할 때 기록이다. 주인공 김우종에 대해서 『북막일기』에는 본래 제주인으로 함경도에 들어온 지 이백 년이 되었으며, 글자를 모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나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볼 때 삼백 살이 넘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적혀 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싶지만 도가道家 계통에서는 흔한 일이다. 지금도 지리산이나 계룡산에 호적에 오르지 않은 채 수백 년을 살고 있는 도인들이 실존함을 주장하기도 하니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비록 몇 백 년의 나이 차에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인물인 김우종과 박시문을 작품의 중심에 두었으며 다양한 성향의 주변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시련과 역경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특히 전란과 학정 속에서 자행되는 관리들의 탐학과 그 속에서 울분을 삼키며 근근이 버텨 나가는 민중의 참상을 쌍령 전투, 나선 정벌과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포수 김우종』이 우리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시간에 대한 철학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극복한 영원한 생명이 죽음이 예정된 유한한 생명보다 행복한가라는 물음과도 상통한다. 영화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를 보면서 죽지 않거나 세월을 역행하는 삶이 결코 행복이라는 단어와 등식을 이루지는 않음을 깨닫게 되듯이 불사신 김우종의 인생은 실로 상처투성이다. 삶은 고해苦海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는 슬프고 힘든 일을 더 많이 겪게 마련이다. 이러한 생의 고통을 김우종은 보통 사람보다 몇 배나 더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뒤의 외로움은 늘 그의 몫이었다. 이미 살아온 세월이 수백 성상이건만 여전히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노라는 김우종의 독백은 인생이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모르는 것이 늘어만 간다는 이치를 말해 준다. 길어야 백년 안에 끝내는 생사의 숙제를 남들보다 몇 갑절은 더 했건만 신선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편히 지낼 수 있는 신분을 얻지도 못한 채 민중들 속에서 부평초마냥 떠도는 김우종의 형상은 늘 갈망과 절망을 반복하다가 끝내 정착지를 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우리네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렇듯 그의 마음 한편을 차지한 지난 세월의 음영이 작품 행간에서 읽힐 때면 독자는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또한 이 소설은 초라했던 한 인물이 몇 세대를 뛰어넘는 세월 속에서 단련되고 노련해지며 성숙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름 모를 제주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아비에게 버림받고 멍석말이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열여섯에 뭍으로 나온 김우종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였다. 십대 중반의 모습에서 성장을 멈춘 채 앞가림조차 못하던 그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익혔다. 이러한 자각과 배움은 그의 외모까지도 변화시켰다. 『포수 김우종』과 『북막일기』에서는 ‘새벽별 같이 번쩍이는 두 눈동자’, ‘어린애처럼 부드러운 머리털’, ‘민첩하고 사나운 주먹’, ‘나는 듯한 걸음걸이’, ‘열 살 아이 몸집이나 대단한 식성’ 등으로 김우종의 특성을 묘사했다. 그의 이러한 외양은 세월의 연륜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소설에서 언급되었듯이 ‘나대고 깝죽거리지 않으며, 조용히 뒷전에 머무는 처신’, ‘중심에 이르지 않고, 언저리에 숨어서 눈치껏 하는 행동’, 이 모든 것이 그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처세의 비결인 만큼,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필부들이 보신과 영생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필히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전개되는 숨 가쁜 스토리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은 물론이요,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생의 철리哲理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 정시열 (영남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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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년 동안 떠돌던 포수인지, 이야기꾼인지 모를 이에게 취하다
요즘 소설들이 섬약하다는 말들이 많던 터에 모처럼 호방한 이야기를 만났다. 조선 후기 삼백예순일곱 해를 넘게 살았다는 김우종의 뜬 이야기에 피가 돌고 후끈한 숨소리가 느껴지기까지 작가가 쏟은 노력이 갈피마다 오롯이 느껴진다. 포수 김우종을 호명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의 말투와 행색을 살려내야 하고, 산으로 밀려난 포수들의 삶과 화살이 도고자에 스치며 내는 소리까지 재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시대로 돌아가 김우종이 되어야만 가능할 일이다. 수백 년 전 사건들을 이야기로 되살리는 일은 아득하기만 하여 내로라하는 이야기꾼들도 덥석 달려들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홀리고 푹 빠져서 아득한 인물들을 뒤집어써야 할 일이다. 과연 박인의 소설을 읽노라면 북방의 눈발 날리는 하늘을 찢는 화살 소리가 들리고, 세 걸음마다 총을 놓았다는 포수들에게서 풍기는 화약 냄새가 코에 닿아 온다.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과 치밀하고 생생한 묘사들에 탄복하면서도 자칫 작가가 함길도로 돌아가 다시 삼백예순일곱 해를 이어나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 이시백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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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은 저제나 이제나 서글프다. 그러나 정작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은 언제나 인간 대접 못 받던 그들이었다. 노비로 태어났으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육체의 한계조차 이겨낸 포수 김우종, 울산을 떠나 헤이룽 강까지 누빈 그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위아래 없는 세상이었다. 생생한 묘사로 복원해 낸 조선 후기 척박한 민중의 삶이 눈앞에 환히 밝아 온다. 눈여겨보라. 21세기 오늘, 포수 김우종이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누군가에게 백발백중 장총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르니……. -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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