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니산의 영험한 기운
2. 이곳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 3. 천하에 이름을 떨치다 4. 군자는 화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
주周나라 왕조의 공자는 영원히 만인에게 추앙받는 성인聖人이자 배우는 자들의 사표師表다. 그런데 공자가 태어난 시기는 주 왕조의 권위가 상실되면서 그 통제력이 쇠퇴한 춘추春秋 시대였다. 이 시대는 각지의 제후들이 주 왕실 대신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패권을 다투던 때였다. 이러한 상황은 공자가 이상으로 삼은 왕자王者에 의한 왕자의 정치, 즉 왕도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문에 공자는 어떤 제후에게도 몸을 의탁하지 못한 채 평생을 보내게 되었으며, 그가 품은 위대한 이상도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불행한 일은, 공자가 생전에 저술한 작품들 중 대부분이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대재앙을 만나 이사李斯에 의해 소실된 것이었다. 당시 공자의 9대 손인 공자양孔子襄은 책의 소실을 막기 위해 곡부曲阜의 자기 집 벽 속에다 전승된 비본秘本을 넣고 밀봉했다. 마침내 한나라 시대가 되자 노魯 땅의 영주로 봉해진 공왕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확장하려고 그 벽을 허물었는데, 이로 인해 예전에 공자양이 숨겨놓았던『상서尙書』『논어論語』『효경孝經』『예깅禮記』『공자가어孔子家語』등 유가의 귀중한 문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저술들은 공자의 12대 후손인 공안국孔安國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들은 모두 과두科斗문자라는 옛 글자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공안국은 이를 당시 사용하던 새로운 글자체로 바꿔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했다. 그 중에 특히 공자의 언행을 서술한『논어』와『공자가어』가 귀중하다. 공자의 생애에 대해선 이 두 책 외에도『제자백가諸子百家』를 비롯한 여러 책에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 기록들은 극히 짤막한 단편斷片에 불과하지만 공자의 위대한 교화는 이런 기록들이 있었기 때문에 단절되지 않고 후세까지 전해진 것이다. 공자는 열국列國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군주들에게 정도를 숭상하고 사도를 피하라고 피력했다. 그런데 백성의 이익을 위해 군주를 유도한 논변이나 행위는 순서에 따라 계통을 세워서 말하지 않는 한 후인들은 좀처럼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책에서 보다 많은 자료를 수집해 체계화함으로써 공자의 삶을 더듬어보았다. --- pp.19-21 |
|
자로는 사례를 한 뒤 물러나 공자를 뵙고 작별 인사를 했다. 공자가 물었다.
'너에게 수레를 선사할까, 아니면 교훈이 되는 말을 선사할까?' '교훈이 되는 말을 내려주십시오.' '강력한 힘이 없으면 스스로 목적에 도달할 수 없고, 인내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공을 세울 수 없으며, 충실하지 않으면 친한 이가 없고,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려우며, 겸손하지 않으면 예를 잃게 된다. 이 다섯 가지를 능히 행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구할 필요가 없다.' ---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