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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2. 무왕과 선화공주 3. 무애거사 원효 4. 고운 최치원 5. 백운 이규보 6. 고불 맹사성 7. 방촌 황희 8. 양녕대군 9. 매월당 김시습 10. 토정 이지함 11. 송강 정철 12. 백호 임제 13. 망우당 곽재우 14. 교산 허균 15. 서포 김만중 16. 다산 정약용 17. 추사 김정희 18. 김삿갓 19. 동리 신재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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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은 왕좌와 자유를 맞바꾼 우리 역사에서 매우 이채로운 인물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왕위를 두고 부자간이나 형제간의 피비린내나는 골육상쟁은 비일비재했지만 임금자리가 거추장스럽다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사람은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권좌의 칭호가 제왕이 되었건 대통령이나 수상이 되었건 권력 추구의 욕망 때문에 빚어지는 비정의 드라마는 예나 오늘이 다를 바 없다. 권력투쟁 뿐 아니라 금력, 곧 부의 세습을 두고 재벌가 형제들의 다툼이 우리 시대에도 걸핏하면 벌어져 뜻 있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 않은가. 양녕대군의 부왕의 뜻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에게 있음을 눈치채고 일부러 미친 척하여 절대권력이 보장된 만백성의 주상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자유와 풍류를 찾아 대궐의 높은 담을 훌쩔 뛰어 넘었다. 그런 까닭에 왕조사의 국외자로서 주유천하로 일관했지만 왕관과 자유를 맞바꾼 그의 삶은 후인들의 가슴에 영원한 풍류 호걸의 매력으로 살아 남게 된 것이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의 본래 이름은 숭례문인데, 편액의 '崇禮門' 세 글자가 양녕대군의 친필이다. 또한 서울 동작구 상도 4동 221번지, 관악산맥이 뻗어내린 국사봉 기슭의 장승백이 약수터에 그의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가 있다. ---pp.150~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