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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벌레라 불러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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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시미가이도리의 책방에 리스케라는 자가 있었다. 어느 해 섣달 초, 리스케는 혼자서 나라 지방으로 행상을 나갔다. 한데 생각보다 길이 멀어서 여정이 늦어지고 말았다. 결국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날이 저물었다.(…)리스케는 구름이 잔뜩 낀 탓에 별빛마저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찬바람 너머로 흔들리는 불빛이 보였다. 호롱불인 듯한 그 불빛이 차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보여드리죠, 보여드리죠」중에서 교토에서 약장사를 하는 마루야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귀갓길에 올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달빛이 어둑어둑한 강가에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꿈틀거리면서 굴러다니는 모양이 꼭 벌거벗은 사람이 기어다니는 것 같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술김에 담이 커진 마루야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보니 꿈틀거리던 그것이 얼굴을 확 치켜들고 마루야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사람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엔 눈도 입도 코도 없이 마치 커다란 참외 같은 미끈한 모양이었다. ---「마루야가 만난 짐승」중에서 쿄고이케 마을의 어느 집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주인도 겁에 질려 자신은 살지 않고 남에게 빌려줄 정도였지만 정작 그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그 귀신을 보고 싶다며 멀리서 두 남자가 찾아왔다. 그들은 집을 찾아가 세 들어 사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도 그 소문은 알지만 한 번도 귀신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저 이따금 한밤중에 무슨 소리가 들려 나가보면 집 뒤편에 있는 디딜방아가 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고. 이윽고 밤이 깊어 축시가 되자 밖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찌그덩 찌그덩. ---「디딜방아」중에서 산골짜기에 사는 한 남자가 고요한 달밤 아래 산책을 나섰다. 상쾌한 밤공기를 즐기며 걷고 있는데 멀리 길가에 뭔가 수상쩍은 것이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징그럽게 생긴 노인네가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 서 있다가 남자를 보고 히죽 웃고 있었다. 괜히 기분이 나빠진 남자는 그 길로 산책을 관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새벽, 잠자리에 들었던 남자는 종이를 발라둔 창문에 어른거리는 수상한 그림자를 봤다. 순간 산책길에서 만났던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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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 때마다 하나씩 꺼지는 촛불
이 책의 진정한 백미는 에도 시대의 금기된 놀이,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를 독서의 영역으로 소환했다는 점이다. 햐쿠모노가타리는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전통적인 괴담 향유 방식이다. 100개의 초를 켜두고 괴담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불을 꺼나가는 의식으로 마지막 불이 꺼지는 순간, 어둠 속에서 ‘진짜’가 나타난다고 믿었다. 이 책은 그 서늘한 긴장감을 현대의 독서 경험으로 소환한다. 당신이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행위는 곧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 행위와 같다. 전국을 떠돌며 괴이한 일을 수집하던 스님의 목소리를 따라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당신의 방 안에는, 당신의 등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쩌면 어둠 속에서 ‘괴이’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공포는 설명되지 않는다 『방울벌레 이야기』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 삶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전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호러가 공포의 원인을 규명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하며 명확하게 결말을 보여주는 반면, 이 책은 오히려 설명을 아낀다. 남는 것은 기이한 ‘현상’ 그 자체다. 그 밑바닥에는 ‘원(怨)’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천재지변과 전쟁이 잦았던 시대,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이들이 품었을 억울함과 분노가 이야기로 발현되었다. 인가에 소리 없이 숨어들어 사람들에게 까닭 모를 쇠약증과 울증을 퍼뜨리는 〈두꺼비〉나 자신의 죄를 감추려다 그 업보가 기괴한 현상으로 나타나 밤마다 죄인을 옥죄는 〈남이 모르는 죄〉 같은 이야기는 그저 피할 수 없는 일로 존재할 뿐이다. 닫히지 않는 결말, 영원히 지속되는 비일상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책임해 보이는 이 마무리가 사실 이 책의 가장 잔혹한 매력이다. 결말이 나지 않았기에, 이야기 속 원혼들은 책 속에 갇히지 않고 우리의 상상력 속으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을 덮어도 공포는 끝나지 않는다. 『방울벌레 이야기』가 허물어뜨린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는 당신이 잠든 침대 밑, 혹은 불 꺼진 복도 끝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 테니까. 그렇다. 이 책은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투박한 목소리로 오늘날 독자에게 변치 않는 두려움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여운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슬쩍 허물어뜨리며, 짜릿하고 섬뜩한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