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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플로리스트의 은밀한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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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십 분이라면, 그 십 분을 위해 보이지 않는 시간은 아마 백 분쯤 될 것이다. 그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십 분을 위해 백 분을 쓰는 게 아깝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꽃이 행복과 기쁨,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사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실컷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심. 그리고 꽃의 생애를 거의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는, 플로리스트의 은밀한 행운 때문이다.
--- p.6 늘 바라온 일이지만, 꽃을 곁에 두는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채면 좋겠다. 꽃을 만지며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위로도.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채워주는지도.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다. --- p.8 시간과 더불어 더욱 강인하고 아름다워지는 식물의 세계는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 p.27 늘 보던 진한 색감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연한 핑크빛의 이브피아제, 숨 막히는 아름다움에 홀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마법 같은 향기에 취해 있으면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아가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 시간 도둑이 따로 없다. --- p.53 사실 꽃은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꽃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봄이 되었는데 개나리도 목련도 피어나지 않고, 거리에 벚꽃도 장미도 없고, 라일락도 여름의 수국도 없다고 생각하니… 그 짧은 상상만으로도 슬퍼진다. 단 한 번도 그런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슬프구나.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게 된다.. --- p.55 세상에는 예쁜 꽃이 너무도 많아서 꽃시장은 늘 위험하다. 정원에 심고 싶은 꽃들도 끊임없이 나타나니 봄에는 온 세상이 위험하다. --- p.63 리코와 정원을 두고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을 두고 당분간 긴 여행은 어렵겠지만, 책 한 권 들고 장미 향으로 가득한 5월의 햇살 아래 앉아 있으면 ‘아, 이 순간과 여행을 바꾼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괜찮아. 지금, 너무 좋으니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 p.75 꽃을 선물하며 “잘 보살펴줘”라고 얘기할 때가 종종 있다. 사람이 꽃을 보살핀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꽃으로 인해, 식물로 인해 우리 마음도 보살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 p.81 모네는 색채를 담고 싶어 한 화가였다. 온갖 자연의 빛과 색을 화폭에 담고 싶어서 꽃을 심고, 정원을 가꾸었던 사람.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따라가며 그 찰나의 색을 붙잡으려면 얼마나 다급했을까. 카메라로 담기에도 이렇게 바쁜데 붓으로 남기려 했다니, 그 마음은 또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림에서 시작해 틈틈이 정원을 가꾸다가 마지막에는 진정한 정원사가 된 모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그의 그림 앞에서 감동을 느끼고,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행복감에 젖게 된다. --- p.97 사실 어렸을 때는 칭찬을 들으면 어쩐지 부끄럽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괜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칭찬은 늘 기분 좋고, 그 말을 꺼내 건네는 마음이 고맙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감사해요” 하고 기쁘게 말할 수 있다. --- p.123 보통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야 꽃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우리 곁에 꽃이 있기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하니까. --- p.148 휘감긴 뿌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식물의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뿌리를 내린 뒤에는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정화를 한다. 식물이 제 앞가림을 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는 생명의 신비를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 p.174 서로 다른 성격의 꽃들이 만나 하나로 어우러지려면 어색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러운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내가 꽃의 자리를 정하는 게 아니라 꽃이 가장 편안해할 자리를 찾아주는 일. 그래야 꽃의 수명도 길어지고, 보는 이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은 꽃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p.281 플로리스트로 살아가며 좋은 점 하나는 “아름답다, 너무 예쁘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 되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인생도 그 말처럼 아름다워질 듯하니 어찌 좋지 않을까. --- p.327 누군가의 기억 속에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마음을 소중히 담아 정성껏 꽃을 준비한다. --- p.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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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꽃은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꽃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갓 피어난 말간 꽃잎, 연둣빛 잎사귀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지친 마음에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저자는 꽃을 사고, 다듬고, 물을 갈아주고, 시든 꽃잎을 솎아내는 반복적인 작업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정돈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찰나의 빛, 작업실에 깊게 들어오는 오후의 그림자, 한 송이 장미 향기가 하루의 기분을 바꿔주는 경험은 아는 사람만 아는 기쁨이다. “우리의 영혼을 채워주는 건 대체로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이다. 이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148쪽) 이 책은 그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하루를 지탱해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꽃과 함께한 세월이 묻어나는 단단한 문장 플로리스트의 하루는 낭만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새벽에 시작되는 꽃시장, 고심 끝에 고른 꽃을 작업실까지 옮기는 일, 곧바로 이어지는 컨디셔닝과 수업, 주문과 배달 그리고 작업실 정리까지, 하루의 일과는 촘촘하게 흘러간다. 게다가 꽃은 잠시만 물 밖에 두어도 시들고, 잎사귀를 정리하지 않으면 금세 물이 내려버린다. 이 책은 플로리스트의 일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의 뒤편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 꽃이 가장 편안해할 자리를 찾아주는 섬세한 마음, 보이지 않는 뒷모습까지 아름답게 만들려는 고집, 남들의 눈에는 쉬워 보여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정직한 성장의 원리가 책의 곳곳에 스며 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중심, ‘코어’를 지키는 삶의 자세다. 이 책의 문장은 그 중심을 단단히 세운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밀도를 지닌다. 꽃 수업은 ‘관계의 공간’을 만드는 일 저자는 꽃을 가르치며 동시에 ‘기억이 머무는 공간’을 소망한다. 어딘가에서 그리운 꽃향기를 맡았을 때, 작업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우연히 들었을 때, 그날 함께 마신 차의 향기가 문득 떠올랐을 때, 그 기억이 잠시나마 삶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저자의 플라워 아틀리에인 ‘보떼봉떼’는, 단지 기술을 전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다시 피어나는 자리가 된다. 꽃을 만지며 눈물이 났다는 고백, 힘든 시기가 조금씩 괜찮아졌다는 이야기, 조용히 건네준 손편지와 메시지들. 누군가가 SNS에 남겨준 “아무리 바빠도 숨 쉴 틈 한 군데는 있어야지”라는 말처럼, 그녀의 아틀리에는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또 다른 영감의 풍경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저자는 파리, 지베르니, 헬싱키, 방콕과 치앙마이, 제주 등을 오가며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파리는 플로리스트로서의 길뿐 아니라 삶의 방향 감각을 일깨워준 도시이고, 지베르니의 정원은 모네의 색채와 빛을 다시 바라보게 한 장소다. 치앙마이와 방콕에서 느긋하게 흘러가던 공기, 자꾸 생각나는 헬싱키의 식물원, 제주의 바람과 빛은 저자에게 새로운 영감과 반짝이는 추억을 선사한다. 저자가 사진으로 담아낸 여행지의 풍경은, 당장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도 잠시의 휴식과 사유의 시간을 건넨다. 봄의 흩날리는 벚꽃, 여름의 청량한 넝쿨과 클레마티스, 가을의 농후한 색으로 물든 단풍과 열매, 겨울의 화려한 꽃과 포근한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이 책에는 꽃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그 순간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라고, 좀 더 오래 기억해보라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삶은 조금 더 괜찮아질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