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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약속이 어긋나도‘자정의 태양’이라 불리었던예(禮)이토록 적막한누구의 것도 아닌이것이 저녁은정오허기의 힘으로벙어리 햇볕들이 지나가고사랑 혹은 흑암흰, 흰, 흰밤마다 먼 곳들이그러나 괜찮았다제2부가을볕보말죽독바위잊으면서 잊혀지면서거돈사지(居頓寺址)손님죄처럼 구원처럼춘수(春瘦)원샷으로아무 데서나 별들이떨어지는 해가 공중에서 잠시 멈출 때한옥(韓屋)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을 불러도제3부오대산장멧돼지는 무엇일까술을 뿌리다천둥 속의 눈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문밖에 빈 그릇을필터까지 탄밤의 파수꾼녹지 않는 얼음내 대신 울고 웃는마른 떡제4부봄눈1205호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눈물을 외롭게이번엔 뒷문으로모래내길내 곁의 먼 곳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해서변명검은 빵물속의 기차P당신 노래에 저희 목소리를해설|최현식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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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괜찮았다”슬픔과 고통뿐인 삶을 보듬는 따뜻한 사랑의 노래“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소통과 불화 등 이항대립의 실존적 사건이 뒤죽박죽 얽힌”(최현식, 해설) 이번 시집에는 신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종교적 감성이 두드러진 시가 적지 않다. 시인이 가톨릭 신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이 오로지 종교적 죄의식이라든가 영적 각성에 침잠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작 시인의 눈길이 가닿는 곳은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지금-여기’의 현실, 어둑하고 신비한 삶의 안쪽이다. 시인은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 속에서 삶과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는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슬픔과 고통뿐인 삶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와 기쁘다고”(「떨어지는 해가 공중에서 잠시 멈출 때」).시인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 했다. “곁에 있어도 안 보이는 것들”(「잊으면서 잊혀지면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의 그림자를 늘 깊이 응시하면서, 불화의 세계를 함께 견디어내며 살아가는 타자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시인은 시가 “깨진 그릇 같은 존재들”(「1205호」)을 위로하는 기도가 되고 “슬픔을 빛으로/신음을 향기로 내뿜는”(「춘수(春瘦)」) 노래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빛이 없는 찬란”(「‘자정의 태양’이라 불리었던」)을 발견하고자 세상을 “더 멀리, 더 깊이”(「물속의 기차」) 바라보는 시인의 선한 눈길이 더없이 애틋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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