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런던, 그의 고향인 강릉을 잇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처연한 기억의 발자국만이 아니라, 낯익은 세상의 틈새에서 낯설게 비쳐오는 사람과 마음의 풍경이다. 그 사람과 풍경이 지워진 뒤에, 물이 물길을 따라가듯 흘러가는 말이 사라진 뒤에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잔상, 조용히 오래 스며드는 울림이다.
깊은 밤, 갓전등 불빛 아래에서 쓴 손편지 같은 시편들.
낮은 목소리가 전해주는 진심의 온기들.
그래, 마중이구나. 마중하러 나온 거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지상에는 없는, 가만히 눈을 감아야 열리는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구나. 이 기다림은 떠나온 옛집이 잘 있는지 안부를 묻는 일이고, 빗소리는 비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죽 속에는 죽을 만드는 어떤 손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구나. 옥상에서 비 맞으며 담배 피우는 사람을 눈에 담는 유정한 일이구나. 매번 식어만 가는 차일지라도 당신을 위해 차를 우려 ‘가슴 선반’에 올리는 일,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그런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