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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우리도 꽃처럼
맨 처음의 봄/ 봄눈/ 이른 봄 강구에서/ 우리도 꽃처럼/ 이중섭 1 - 가족들에게/ 이중섭 2 - 달과 까마귀/ 겹동백/ 황야의 늑대 - H에게/ 해금강/ 해녀/ 빗살무늬 토기/ 이 땅에 살면서 1 - 목숨의 뿌리/ 이 땅에 살면서 2 - 사랑 몇 소절/ 그 여름의 내 감꽃/ 파로호의 봄/ 시인 제2부 엉거주춤 섬목에 와서/ 엉거주춤/ 사람 풍경 1 - 갠 날 저녁/ 사람 풍경 2 - 초록 나귀/ 사람 풍경 3 - 해변 마을의 밤/ 탈을 위하여/ 호박/ 봉숭아물/ 봄 탓/ 할머니/ 까치밥/ 화전민의 꿈/ 서울의 우울/ 마른 풀들에게/ 눈의 무게/ 다산의 말 제3부 봄날의 애인들 봄날의 애인들/ 꿈/ 보리밟기/ 묻혀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 대청댐 수몰 지구/ 멸치/ 해탈/ 남한강에서/ 갈매기/ 가을의 야윈 어깨 너머/ 박용래/ 눈 쌓인 놀이터/ 봄에 홀려 늙는 줄도 몰랐네/ 시시한 시 제4부 가을은 늙지 않는다 것들/ 담쟁이넝쿨의 꿈/ 아름답군/ 고요하고 투명한/ 가을은 늙지 않는다/ 가을의 눈썹/ 가을밤, 외로운 밤/ 어쩌라고, 이 가을/ 갠지스 강가에서/ 황산벌에서/ 저승의 강/ 카멜레온에게/ 구두수선공 삼식이/ 돌아가는 저녁길/ 둥근 마음 모아 당신을 부를 때/ 나는 꽃, 너는 별/ 아픈 별 하나가/ 비닐우산/ 한 사내 - 가수 조영남/ 킬리만자로 - 가수 조용필/ 세상에 건널 수 없는 강은 없다 - 가수 한영애/ 구월의 장미 - 가수 이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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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꽃처럼 피고 질 수 있을까
길고 긴 인생길, 피고 지며 살 수는 없나 한 번은 라일락이었다가, 이름 없는 풀꽃이었다가 가끔은 달맞이꽃이면 어떨까 한겨울에도 눈꽃으로 피어 동짓날 밤, 시린 달빛과 어우러져 밤새 뒹굴면 안 될까 맹렬하게 불타오를 땐 아무도 모르지 한번 지면 다시는 피어날 수 없다는 걸 뚝뚝 꺾여서 붉게 흩어지는 동백 꽃잎 선홍빛처럼 처연한 낙화의 시절에 반쯤 시든 꽃, 한창인 꽃이 그립고 어지러웠던 청춘의 한때가 그립네 막 피어난 백목련, 환하기도 해라 저 그늘 아래로 조심스레 한 발씩 저승꽃 피기 전, 한 번쯤 더 피어나서 느릿느릿 고백할 수 있을까 봄바람 가득한 꽃들의 가슴에 사랑한다고 저릿한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단 한번 피었다가 지는 사람꽃 ---「우리도 꽃처럼」 중에서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은 얼음 풀린 강을 따라 강물의 끝에 있다는 도시로 떠나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단단한 뿌리만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이 땅에 가슴 묻고 있는 오늘 못자리판 한 귀퉁이에 땅강아지 미꾸리 같은 것들이 고통이라든가 죽음이란 것 아직 모르는지 이슬 맺힌 작은 물풀들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허리 굽은 노인이 삽을 둘러메고 목숨의 텃밭으로 나온다 수십 년 동안 살아온 고통과 죽음이 예정된 땅에 오늘도 삽을 들이대고 삶이 시작되는 땅은 어디며 삶이 찾아가는 땅은 어디인지를 하늘에 물어보면서 슬픔을 퍼 엎는데 작은 바람의 물결만이 그 주위를 맴돌고 오늘도 그 땅에서 겨우내 죽어 있던 목숨의 뿌리들이 움터 오른다 ---「이 땅에 살면서 1 - 목숨의 뿌리」 중에서 더 이상 강의 기적을 바라지 않으리라 술 취한 누이들이 수상하게 서성이는 밤 서걱이는 갈대의 입술을 탐내던 사내들이 부나비처럼 강의 이쯤과 저쯤에서 배회한다 누이처럼 생긴 꽃, 꽃처럼 생긴 누이들이 낙화의 아픔을 겪는 세기말의 지옥 아직도 눈물을 믿는 이들이 강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눕는다 무너져라, 축대처럼 켜켜이 쌓인 거짓들 저승의 진실이 매운 바람으로 흩어지는 밤 사내들은 싱싱한 수컷의 무성함을 앞세워 코뿔소처럼 도시의 대로를 질주한다 마왕의 씩씩함으로 껄껄 호탕하게 웃는다 바벨의 언어들이 파헤쳐져도 더 이상 아무도 숨죽이지 않는다 온통 우울한 것들만 살아남는다 모래사막의 한가운데 하이에나를 닮은 그들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가거라 게딱지 같은 생이여 숨죽이고 숨죽여 우리들의 남루를 감춰야 한다 서릿발 같은 칼날을 밟으며 다시 한 번 빛의 예각을 가늠해야 한다 온통 우울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서울의 우울」 중에서 여름은 감꽃 목걸이 엮어 주렁주렁 목에 걸면서 시작됐다 반쯤 벗은 소년들은 거웃이 돋기 시작한 잠지를 딸랑거리며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놀다가 지치면 쌉싸래한 감꽃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어기적거리며 씹어 삼켰다 계집애들의 여름도 다르지 않았다 머스마 같은 몇몇 소녀는 러닝 차림으로 저수지에 뛰어들고 소년들은 봉긋 솟기 시작한 소녀들의 가슴을 특툭 치면서 낄낄거렸다 감꽃 목걸이 걸어주던 그 애가 그해 여름 저수지 물 위로 영영 나오지 않던 그날까지는 여름은 평온했다 오늘 저 아파트 사이 그 애가 걸어준 감꽃 목걸이 쌉싸래한 감꽃들이 탐스러운 감이 되어 매달렸다 그 소녀는 그곳에서 잘 있을까 서둘러 떠난 그곳에서 소녀는 잘 살았을까 지상에서의 세월은 수십 번 감꽃이 피고 졌지만 아직도 감꽃이 얼룩진 옷을 입은 채 서둘러 떠난 소녀를 잊을 수 없다 그해 여름의 감꽃이 홍시가 되어 물러터지던 날 슬그머니 묘비도 없는 그 소녀의 집 언저리에 붉디붉은 내 마음을 가져다 놓았다 선머스마 같던, 웃을 때 덧니가 예뻤던 그 여름의 내 감꽃 ---「그 여름의 내 감꽃」 중에서 누구였을까, 맨 처음 저 우울한 가을빛의 세심함을 토기土器의 속살에 담았던 동굴 속의 외로운 남자는 사냥 나간 용감한 동료들 그 빛나는 근육보다 더 단단한 사랑의 끈으로 눈매 고운 그녀 위해 마음의 빛을 담았던 최초의 로맨티스트 오, 가엾은 첫눈이 오기 전에 그들이 돌아올 텐데 그녀는 기꺼이 튼튼한 사내의 품 안에 사뿐히 안길 텐데 ---「빗살무늬 토기」 중에서 설움도 붉음도 겹이어서 우리네 생을 닮았구나 꽃잎이 많고 붉으면 낙화의 아쉬움 또한 곱일진대 사는 일 또한 저러해서 너무 화사하면 지는 일이 허망하니 길가에 제비꽃으로나 피었다가 조용히 봄볕이나 즐기다가 소리 없이 질 일이다 꽃이 피는 일, 또 꽃이 지는 일 화사할 땐 모르네 그 모두 겹이라는 걸 ---「겹동백」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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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쓴 유성호 평론가는 이번 시집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과 새롭게 다가오는 신생의 기운을 이채롭게 결속한 세계”이며 “삶의 성찰과 역설적 희망의 시간을 구축해가는 오광수의 시는 고통에 대한 자기 위안과 치유의 속성을 강하게 견지하면서, 어둑한 추억과 진정성 있는 고백을 통해, 사랑과 그리움의 언어를 통해, 삶의 성찰적 담론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표제는 역설이다.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게 미친 짓이긴 해도 다시 한번 사랑을 말하고 싶다”는 시인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시인은 뜨겁고 저릿한 ‘첫사랑’과도 같은 시의 복원을 꿈꾼다. 중앙대 문창과 시절 후배들의 사랑과 질투를 받으며 ‘전설’로 회자되던 시인은 이후 오랜 기간 신문사 문화부에서 일해왔다. 그동안 ‘비동인’ 동인 활동을 하며 꾸준히 시를 발표해왔고, 대중문화 관련 산문집과 시해설집을 낸 바 있지만 첫 시집이 늦어진 이유를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신문사 문화부 풍경은 늘 책과 함께입니다. 누군가는 공짜(?)로 많은 책을 받으니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일주일이면 수백 권의 책들이 쌓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책에 멀미를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책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졌다고 할까? 변명하자면 미디어 글쓰기를 하면서 제 시쓰기를 게을리 했습니다.” “봄에 홀려 늙는 줄도 몰랐”다는 시인은 이번 시집이 ‘왜 사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자 자각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숨죽여 우리들의 남루를 감춰야 하는”(「서울의 우울」) 도시적 삶의 어둠과 슬픔을 배후로 사라져가는 농경의 서정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우리들 삶이/ 갈증과 갈증의 화답”(「마른 풀들에게」)이며 “지나온 삶의 발자국이/ 하늘의 별로 뜰 것”(「황야의 늑대」)임을 역설적으로 예감하기도 한다. 「우리도 꽃처럼」에서는 “단 한번 피었다가 지는 사람꽃”을 응시하며 인간도 꽃처럼 해마다 다른 꽃으로 피고 질 수 없을까? 하고 사유한다. 대중문화 아티스트들, 즉 조영남, 조용필, 한영애, 이소라 가수들을 소재로 쓴 시편들도 이채롭다. 쓸쓸하지만 살 만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가인의 세계와 언어로 존재 갱신의 활력과 현재를 재구성해가는 시인의 세계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시를 써야 하는, 그러나 결국 좋은 시를 못 쓰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인종이 아닐까요. 늦었지만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스무 살 때 좋은 시를 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이제는 스무 살의 시와 또 다른 시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집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파고드는 테마형 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믿어본다. “설움도 붉음도 겹”인 시인의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가 바람과 만나 포옹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이 속속 나오리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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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오광수 선배는 우리 문창과 후배들에게 하나의 전설이었다. 스무 살의 그가 “삶은 부질없이 부는 바람과 같아/ 어느 땅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느 하늘에서도 잠들지 못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의 시를 아끼고 또 미워했던가.
세월의 질곡을 건너 온 그의 시는 그의 마음의 무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랫동안 차마 버리지 못하고 품어온 사랑과 추억, 그리고 몸 부대끼며 살아온 삶의 희로애락을 진솔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는데, ‘선 머스마 같던, 웃을 때 덧니가 예뻤던 감꽃’의 섬세한 서정이 있고, ‘달의 뒤편에 숨은 어둠’을 보는 젖은 눈빛이 있다. 그의 시는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쓴 시가 아니라, 종이 위에 또박또박 쓴 시 같다. 메아리가 깊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가슴의 말이기 때문이리라. - 전동균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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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다. 곱다고 말해야 하나? 아닌데? 투박한 단어, 음울한 언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조용하다. 고요하다. 이야기들이 흐트러지지 않게 자분자분 한 걸음씩 떼어놓는다. 모든 문학이, 모든 시가 다 이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나도 시를 이렇게 쓰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시인들은 수다쟁이들이다.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온갖 상념들을 결코 하나도 버리는 법 없이 살 붙여 풀어내고 그 텍스트를 조물락거리며 논다. 그러나 놀기일 뿐이겠는가. 힘든 노역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처한 마음의 노역자들이다. 힘들여 정갈하게 조탁한 그의 언어들이 내 마음을 툭툭 치고, 너도 보다 좋은 글로 네 이야기 좀 해보라고 충동질한다. 감사하다. - 정태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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