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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괜찮아요/ 아파트 산책/ 겨울 담쟁이/ 결혼정보회사/ 내가 그리워하는 집/ 공중전원空中田園/ 물빛 그림을 그리는 저녁/ 건축 후기/ 구름다리에 대한 단상斷想/ 꿈꾸는 동안 누구나 섬/ 그런 집을 두고 왔다/ 머리부터 붉어지다/ 노래/ 수양개, 동굴 제2부 맥문동 가는 길-들꽃 산책/ 두물머리에서/ 디스크 1/ 디스크 2/ 뚱딴지/ 라인 댄스-광고문/ 문경병원/ 이따금 바다도/ 반듯한 기와집/ 백석정, 토끼의 귀환/ 벌개미취-야간자율학습/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뜨거운 별/ 봄비/ 3월, 석포에서 제3부 산상음악/ 삼강의 주막/ 성묘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시집가는 딸에게/ 신도시/ 쌀국수/ 쌈밥 / 아날로그 전화기/ 어떤 조장鳥葬/ 오,징,어/ 턱 걸려 넘어지셨다/ 옥수수 심는 날/ 우리는 제4부 월식月蝕/ 구부러진 바다/ 접골/ 즐거운 밥상/ 집 허물기/ 찔레꽃, 몽실 언니/ 코다리/ 큰어머니/ 태장리 느티나무/ 텃밭에서/ 풍등 날리기/ 프놈바켕에서의 일몰/ 초파일 봉암사/ 화살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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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파도에 묶인 이즈하라항에선 야윈 봄비가 밤새 내리고 때 이르게 벗고 누운 벚꽃 눈이 뜬눈으로 지새운다 해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것처럼 괜찮아도 괜찮지 않은 것처럼 말문을 툭툭 건드려 놓고 봄은 소리도 없이 떠나가네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하면 난 정말 괜찮아져요 --- 「괜찮아요 전문」 중에서 내가 살던 집은 골목길 따라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는 속 깊은 집 김현곤 시집_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03 자동차가 다니는 통로의 공해를 온몸으로 막아주는 집 여름이면 앞산 그늘이 내려와 놀고, 겨울이면 눈 덮인 소백산이 친구 하자는 집 하루에 지친 새우의 굽은 등을 다리미처럼 반듯하게 펴 주는 집 마당에 야생화를 가꾸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는 집 누구에게도 내어주고 싶지 않은 집 기념일이면 가족들과 포마이카 밥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집 자식들이 도시로 떠난 빈 둥지에 아내와 단둘이 있어도 허전하지 않은 집 창문을 열면 바람에 꽃잎이 날아들어 카펫이 꽃밭이 되는 집 사방이 이웃에 둘러싸여 누구든 부르면 달려오는 집 나는 그런 집을 두고 왔다 --- 「그런 집을 두고 왔다 전문」 중에서 병들어 앓고 있는 지구도 달에서는 아름다운 별이다 반딧불이 꼬리가 밝히는 저 구애도 어둠을 비추는 청정한 별이다 그대 몸에서 식어 버린 옛사랑도 내게는 향기로운 별이다 가까이서 보면 작고 하찮은 것들이 멀리서 보면 가장 뜨거운 별이다 --- 「뜨거운 별 전문」 중에서 이른 새벽 일어나 할 일 없을 때 김현곤 시집_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04 멍하니 앉아 바라보다 밥을 먹는다 커피포트에 물이라도 끓고 있으면 내 식은 가슴도 뜨겁게 데워진다 먹음을 저주하던 날 몇몇이었던가 이렇게 방 안에 앉아 밥 먹고 있으니 부처님보다 몇만 배 행복한 것을 못 먹어 돌아가신 아버지 남기신 밥을 아비 몸인 밥을 자식인 내가 먹는다 밥이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밥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전문」 중에서 ‘S’ 병원마저 포기하여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 마지막으로 살구 먹고 싶다 하셨다 어머니가 사 오신 때깔 좋은 살구를 한 알도 넘기시지 못한 채 목구멍에 턱 걸려 쓰러지셨다 어머니는 살구 난전을 지나가시다가 턱 걸려 넘어지셨다 ---「턱 걸려 넘어지셨다 전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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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꽃은 무수히 피는데 그 많던 꿀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 어머니 등에 업혀 섶다리를 건너던 시절, 맑은 달이 그린 세상이 또 여기 있으니- 2026년 봄 김현곤 김현곤 시인에게 집은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자 수많은 이야기가 생성되는 연못이자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사내가 무람없이 들어와도 늘 환한 불이 있고 아내가 반겨주는 안식처이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시간의 깊은 강물은 헤아리지 못해도/“물줄기를 따라 공그르고 추스르는 작은 조약돌의 아픔”(「우리는」)을 내면에 삭이며 고향 문경 한신마을을 노래한다. 김현곤 시집_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02 “이른 새벽 일어나 할 일 없을 때/멍하니 앉아 바라보다 밥을 먹는다//커피포트에 물이라도 끓고 있으면/내 식은 가슴도 뜨겁게 데워진다//먹음을 저주하던 날 몇몇이었던가/이렇게 방 안에 앉아 밥 먹고 있으니/부처님보다 몇만 배 행복한 것을/못 먹어 돌아가신 아버지 남기신 밥을/아비 몸인 밥을 자식인 내가 먹는다//밥이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밥/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밥 먹고 있으니 참 좋다」 전문) 표제작인 위 시에서 시인은 “아버지 남기신 밥을/아비 몸인 밥을 자식인 내가 먹는다”라는 구절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밥’의 의의와 위엄을 되살린다. “콩 한 알도 나누어 먹는 것처럼//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 공동체를 복구하려 한다. 이러한 정신은 지역과 관련된 시편들을 통해서도 지역과 사랑, 장소와 사람살이를 통섭하면서 하나의 지역사 혹은 보편적인 삶의 역사로까지 연결하고 있다. 해설을 쓴 박승민 시인은 “집과 자연, 집과 집, 집과 사람이 서로 단절되고 분절된 시대를 목소리는 낮되 꼼꼼하고 단정하게 기록한 이 시집은 애잔해서 마치 순정(純情)한 순정품(純正品)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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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곤 시인의 시를 읽으면 시인의 살아온 길이 보인다. 어디에서 어떤 사람과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가 살아온 길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시의 모티프가 일상의 체험에서 비롯됨을 말해준다. 그의 시에는 발길이 닿았던 곳, 이름난 장소, 문화재, 자연물, 음식 등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이나 자연현상이 빈번히 나타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그는 시적 상상력을 통해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필자가 알고 있는 김 시인은 말이 없는 사람이요 조용한 사람이다. 그 말 없음의 시간에 그는 감각으로 받아들인 외부 세계를 내면에서 시적 상상력의 작동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작 태도가 “밥 한 숟갈 먹고/달 한 번 쳐다보고/달 한 숟갈 먹고/밥 한 번 쳐다보고”(「월식」)와 같은 절창을 낳기도 한다. - 권서각 (시인, 문학박사) |